세미원에서 가을의 문턱을 넘는다. -소나기마을(황순원문학관)-두물머리 –세미원 –정약용 유적지 –용인 와우정사
어제 밤 시간을 이용하여 달려온 덕분에 아침은 넉넉하고 여유롭다. 북한강변에 자리한 숙소역시 생각보다 아름다워서 여행의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우리는 숙소에서 가까운 소나기마을로 향했다.
단편소설.<소나기>는 1953년 5월 『신문학(新文學)』지에 발표되었고, 1956년 중앙문화사(中央文化社)에서 간행한 단편집 『학(鶴)』에 재수록되었다. 1959년 영국의 『인카운터(Encounter)』지의 단편 콩쿠르에 유의상 번역으로 입상되어 게재되기도 하였다. 이성에 눈떠가는 사춘기 소년소녀의 아름답고 슬픈 첫사랑의 경험이 서정적으로 그려져 있다.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은 황순원 작가의 삶과 문학을 기리며 대표작 《소나기》의 서정적인 풍경을 재현해 문학과 자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양평의 ‘문학 테마공원’이다. 약간의 언덕길을 올라 도착한 소나기마을은 여느 마을과 다름없는 평화롭고 아담한 마을이었다. 황순원문학관을 올려다보며 도착해보면 <소나기>속 수숫단을 형상화한 독특한 원뿔형 건물이 특이하다. 중앙홀은 마치 높다란 수숫단 움막 속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으며 안내실과 카페 그리고 작은도서관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어느 작가의 문학관과 별다를 바 없이 황순원 선생의 육필 원고와 작가의 연대기도 볼 수 있었다. 밖에는 소설 속 장면을 떠올릴 수 있는 산책로와 정원 그리고 다양한 조형물 등이 마련되어 있어 단순히 전시를 관람하는 것보다 천천히 걸으며 공간을 둘러보기 좋은 곳이었다. 특히 「소나기」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면 곳곳에서 소설 속 장면과 문장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느낌과 함께 조용히 전시만 관람하는 문학관보다는 야외 공간이 작품과 잘 어우러지게 조성되어 있어서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다. 전시관에는 황순원문학상 수상자과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수많은 수상자들을 더듬어 보면서 작품상의 욕심도 가져보는 시간이었다. 한편 실향민 작가 황순원 선생의 실제 고향은 평안남도 대동군이다. 하지만 소설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단 한 줄 덕분에 양평이 소년과 소녀의 첫사랑이 깃든 배경 무대가 됐고 제자들과 양평군 그리고 선생이 재직했던 경희대학교가 뜻을 모아 2009년 이곳에 문학관을 건립했다고 한다. 잠시 소나기마을에서 산책과 함께 거닐며 작가 전체의 문학 세계를 산책한 듯한 여운을 짙게 남기며 이곳에서 약 10km떨어진 두물머리로 향한다.
두물머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서로 만나는 합수지점이자 수려한 경치로도 유명하며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져서 서울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한강으로 흐른다. 물론 빼어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유원지로 명성이 높아 양평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는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소나기마을에서 출발하였으니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았지만 벌써 주차장마다 가득 차있어 우리는 두물머리 주변을 한참동안 돌고 돌아야만 했다. 두물머리는 두 물길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섬 전체를 의미하며 도착해보니 섬 전체 규모가 제법 되어 걸어서 한 바퀴 돌아보기에는 우선 지칠 수도 있을 것 같아 먼저 세미원으로 건너가보기로 한다. 세미원은 팔당호가 삼면에 둘러싸인 물과 꽃의 정원으로 동양의 전통적인 정원 양식과 수생식물 등 약 270종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단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2019년 6월에는 경기도 제1호 지방 정원으로 지정되었다. 두물머리로 이어지는 배다리(열수주교)가 등장한다. 조선 후기 정조대왕이 경기 화성시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려면 한강을 건너야 했다. 이에 실학자 다산 정약용에게 배들을 엮은 다리를 설계하도록 지시했는데, 배다리는 이런 역사를 재현한 공간이란다. 세미원은 태극무늬가 그려진 출입문 ‘불이문(不二門)’에서 시작한다. 대승불교 유마경에 나오는 ‘불이법문(不二法門)’에서 따온 문의 이름은 ‘자연과 인간은 둘이 아닌 하나’라는 뜻이란다. 실제 문턱을 넘는 순간 기분이 달라진다. 발걸음도 마음도 한 박자 느려진다. 한반도 모양으로 꾸민 연못 국사원 양옆으로 청아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시냇물 덕분이다. 물 위에는 예쁜 징검다리가 길게 놓였고 푸른 숲과 어우러져 한참을 걸어도 징검다리 하나 하나가 처음인 듯 새롭다. 많은 관광객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징검다리를 건너는 아이들 웃음소리마저 풍경의 일부가 돼 물소리에 섞여 든다. 국사원을 지나면 아직 남은 한낮의 열기를 식히는 장독대분수를 만난다. 크고 작은 항아리 수백 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고 그 위로 물줄기가 힘차게 솟아오르는 풍경이 시원하다. 장독대 앞에서 정한수를 떠놓고 자식의 안녕을 빌던 어머니들의 간절한 마음이 이 항아리 하나하나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진다. 물줄기가 항아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소리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세미원에서 올 가을의 문턱을 넘는다. 목적은 두물머리에 왔다가 세미원은 잠시 둘러볼 참이었는데 정녕 우리는 세미원에서 보내는 시간에 지칠 줄 모르고 즐겼던 것 같다. 세한정에 있는 세한도의 그림과 우리 역사의 숨결과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탄생된 세미원에서 하루도 모자랄 여유를 부리다 다시 두물머리로 건너와 원점회기하여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인 정약용 유적지로 향한다.
정약용 유적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위치해 있으며 다산 정약용이 태어나 자라고 말년을 보낸 고향이다. 이곳은 정약용의 5대조부터 뿌리내린 유서 깊은 지역으로 그의 삶과 학문이 녹아 있는 장소이다. 다산 정약용은 유형원과 이익으로 이어지는 실학을 계승하고 북학파의 사상을 수용하여 실용지학과 이용후생을 강조하며 실학을 집대성하였다. 두물머리에서 출발하여 유적지까지는 약 7km정도의 거리인데 잘못 안내해 준 네비게이션을 따라가다 보니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돌고 돌아 1시간 이상을 도로에 낭비하고 고생하여 겨우 유적지에 도착하였다. 사실 내일의 일정을 용인에서 보내야 할 계획이기에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이곳에서 일찍 출발하여 용인으로 내려가야 할 일인데 시간 낭비를 너무 많이 하고 말았다. 어디에서나 머문 곳에서 타지역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해가 지면 서둘러지고 조급해진다. 특히 여행 중에는 더욱더 그렇다. 이곳을 선택할 때에는 생가와 유적지는 물론 다산 생태공원까지 둘러보면서 차분한 일정을 계획했건만 해가 저물어가면서 용인까지 내려가야 하니 대략 둘러보자는 마음으로 유적지에 들어섰다. 이곳은 유유히 흐르는 북한강변의 가을 정취 속에 조선의 실학정신과 애민사상을 꽃피운 다산 정약용 선생의 숨결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었다. 우리가 다산의 생가 <여유당>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는 처음 만나는 거중기가 있었다.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하여 적은 힘으로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는 기계라는데 1792년 수원 화성을 설계하고 쌓는 데 활용되어 무려 4만 냥의 건설비를 절감했다고 적혀있다. 실학을 상징하는 기계라는 설명을 읽으며 다산이 학문을 삶과 나라에 실질적으로 쓰이게 하려 했던 점을 새삼 느끼면서 많이 아쉬운 발길을 돌려 내일 투어의 목적지인 용인으로 향한다.
*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경기 양평군 서종면 소나기마을길 24 * 두물머리 -경기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 세미원 - 경기 양평군 양서면 양수로 93 * 정약용유적지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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