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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정문학 원문보기 글쓴이: 知音남성대
─‥‥신인작품등단모집남성대 작품평
작성자:양상구작성시간:2018.11.07 조회수
[등평:18-4-2 수필]
병상일지
知音남성대
삭풍이 채 가시기 전 꽃샘바람 시샘하는 춘삼월 어느 날 해질녘에 간병인협회로부터 온 메시지다.
“SS종합병원 별관 507병동 11호실. 권 현 84세 18시까지 가세요. 수고하세요.”
서둘러서 짐을 챙겨 집을 나선다. 3호선 일원 역 계단을 오르며 또 다른 삶의 숨 가쁜 발걸음을 지켜보며 함께해야 할 긴장감이 짊어진 가방의 무게만큼이나 무겁게 다가온다.
병원 주변 야트막한 동산에는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자작나무 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별관 회전문을 따라 5층으로 올라가니 굳게 닫힌 병실문은 여느 병실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소지품부터 검사한다. 휴대폰은 물론 볼펜 한 자루, 신발 끈마저도 허용되지 않는다. 연필도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의 몽당연필을 지급할 정도로 철저히 통제된다. 보호자 1인 외에는 출입을 불허하며 환자의 상태가 통제하기 어렵거나 난동을 부리는 경우 독방에 구금 또는 일정기간 담당 주치의의 결정에 따라 결박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선 인권의 사각지대라고 볼 수 있지만 불가항력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가족들도 종종 목도하는 일이지만 야간에는 더욱 심해져서 강력한 통제가 불가피하다.
증상이 부드러운 경우 다인실에서 분위기 좋게 지낼 수도 있지만 심한 사람은 특히 야간에는 거의 밤새도록 힘겨운 씨름을 해야만 한다. 독방에 함께 갇힌 채 문을 밖에서 잠근 후, 비상벨을 건네준다.
아침이 밝아오면 일상처럼 규칙적인 생활로 타원형의 복도를 따라 걷기도 하며 모두들 나와서 건강 체크도 하고 티타임에는 간식도 서로 나눠먹으며 모든 일상이 공동생활을 통해 질서를 유지한다. 모범적인 사람은 칭찬을 해주며 그래프를 작성해 붙여놓고 일정한 점수가 되면 전화카드를 주어 가족들에게 전화를 하게 한다든지, 안전요원들의 인솔 하에 병원 밖 나들이는 최고의 인기 있는 상품이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노래자랑은 그야말로 야단법석 대단하다.
정신병원이라 하면 미친 사람 취급하던 옛날과는 인식을 달리해야 한다. 물론 심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너무나 순수하다.
내가 모시고 돌보던 분들 중 이름 만 대면 알 수 있는 장관, 국회의원, 박사님 등 신분과 직업의 귀천에 관계없이 누구든 예외 없이 건강은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11호실 앞에 도착하니, 어딘지 낮설지 않은 80대 초반의 세련된 여성분이 병실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이라고 하기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젊어 보인다.
초면인데도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반갑게 맞아주신다.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자초지종 설명을 하는데, 첫대면부터 심정을 다 쏟아놓는다.
오죽하면 그러랴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예기치 못한 일인데다 병의 특성상 누가 알까 무서워 쉬쉬하다 보니 마음의 고충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나 보다.
설상가상 환자가 횡설수설하며 가만 있지 못하고 병실밖으로 나가려고만 하니 이 노릇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구세주를 만난 듯이 잘 부탁한단다.
나부터도 걱정이 앞선다. 문제는 수면인데 얼마나 버틸지 난감하다.
오래전 퇴임한 후, 전공분야인 원자력연구소를 차려놓고 연구에 전념하면서 전직 교수 분들과 함께 짬짬이 산행을 할 때면 언제나 앞장서서 다닐 정도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살만큼 건강했다고 한다.
얼마 전부터 무릎관절에 이상이 생겨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후, 별 문제 없었는데, 그 후로 잠이 오지를 않아 인근 병원에서 수면제 처방을 받아 복용했었단다. 점점 양을 늘리게 되었고
수개월 만에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병실안으로 들어가니 풍모가 출중한 건장한 분이 안정감이 없이 불안정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여보! 당신을 돌 봐 줄 분이예요. 경험이 많은 좋은 분이예요."
"안녕하세요?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환자는 관심이 없는 듯 초점 없는 눈빛으로 흘깃 보고는 부인을 바라보며 말한다.
"여기가 어디야! 이분은 누구신데 무슨 일로 오신거야! 빨리 집에 갑시다."
잠시 후, 은빛 머릿결에 카리스마가 넘치는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담당 과장님이 오셔서 문진을 해보지만,
여기가 어딘지 계절은 물론 무슨 일로 여기에 와 있는지도 모르고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 하면서 막무가내로 가자고만 한다.
과장은 젊은 주치의한테 안정 시킬 것을
눈짓으로 지시한 후,
부인께 조용한 어투로 그동안의 정황을 묻는다.
곁에서 듣고 있던 나를 보더니 아들이냐고 묻는다. 간병인이라고 소개하자,
“그러세요? 고생이 많겠네요.수고 좀 해주세요.”
이렇게 시작된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힘겨운 씨름이 시작되었다.
정신과 병동에서는 간병인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순간적으로 돌발 행동을 하거나 심지어 자해를 하기도 한다.
다양한 증상을 가진 환자들과 함께 마주치고 어울리기 때문에 잠시라도 방심할 수 없다.
어떤 환자들은 겉으로는 분간 할 수 없을 만큼 멀쩡한 사람도 있다.
본인은 가족과 함께 상담차 왔다가 그만,
이 곳에 남겨 둔 채, 가버렸다며 억울해 하는 것이다.
다음은 주치의가 가끔 환자 상태를 테스트 하기 위해 문진하는 방법이다.
"자, 잘 기억해 두세요. 곧 물어 볼테니, *비행기*연필*소나무." 그리고는 곧 이어서,
"100에서 7을 빼면 얼마죠? 그 다음 다시 7을 빼면요. 다시 7을 빼 보세요."
"아! 내가 왜 이러지, 어려서 신동이라는 소릴들었었는데.....이것도 못 풀다니 이상하네.!"
"그러게요. 괜히 이유 없이 입원 시켰겠습니까? 조금 전 기억해 두라고 한 것 말해보세요."
"뭐드라? 기억이 안나요. 비....비.....비, 뭐였드라? 잘 생각이 안나요. 이럴수가 있나. 나, 원 참!"
권 박사님 부인은 평생 교직에 계셨던 분으로 성품이 올곧고 경우가 바르다.
가부장적일지 모르지만, 남편을 섬기는데 최상의 예우를 한다.
*어르신이 앉는 소파에는 자식들 뿐만
아니라 누구도 앉지 못한다.*
그런데 한번은 부인에게 벼락 같이 화를 내며 밥상을 뒤엎은 적이 있었다.
부인이 내게 화 내는 것으로 생각 되었던
모양이다.
"평생 함께 살면서 언성 한번 높이지 않았는데 이럴 수가 있어? 나는 이제 2 순위로 밀려났지 뭐야!" 라며 농담을 건네 곤 했다.
아들은 종합병원 과장이다. 딸과 사위는 부드러운 말씨에 온화한 성품을 지닌
선남선녀가 서로 만난 듯, 보기에 좋았다. 사위는 공과대 교수로서 "로봇 공학박사" 라고 한다.
가족들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겸손함을 겸비한 배려에 힘들었지만 보람있는 일로 여기며 최선을 다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마지 못해 하는 것과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투병생활도 다를게 없다.
환자 자신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부정적인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은 상반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나는 재활환자를 돌보면서 재활의 신비한 능력을 지켜 보았다.
건강을 위해서는 될 수 있는 한 많이 걸어야 한다는 것이 의사선생님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나는 이 방법을 통해 재활의 능력을 증명해 보일 것이다.
마나님은 침대 난간에 머리를 기댄 채, 수심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두 분 서로의 깊은 정이 느껴지는 듯하여, 헝크러진 흰머리가 더욱 애잔하게 보인다.
“어르신 휴게실에 가셔서 눈을 좀 붙이세요. 걱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아요? 모든 것은 의사에게 맡기시고요. 저도 환자와 친숙해져야 하니까요.
아무래도 오늘 밤은 꼬박 새워야 할 것 같습니다. 두 사람 모두 밤을 새울 필요는 없겠죠. 내일 일도 생각해야지요.”
“남선생 말이 일리가 있네요. 그렇게 합시다.”
마나님은 병원 복도를 따라 휴게실 쪽으로 가면서도 자꾸만 뒤돌아 본다.
환자는 소리소리 지르며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눕기를 반복한 끝에 새벽녘이 되어서야 주치의의 처방대로 주사를 맞고서야 조용해 졌다.
그렇게 어수선하게 밤을 지새운 후, 날이 밝자, 뇌파검사, MRI 검사, X-레이,초음파, 혈액 검사 등 예약이 잡혔지만 어느 것 하나 진행할 수가 없었다.
주치의가 몇 번이나 설득해도 어쩔 수 없어서 친구이자 옛 동료 교수 딸인 홍 박사가 이 병원 정신과 과장인데 직접 설득해보기 위해서 방문했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대책 없이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일단 쉬운 것부터 진행하기로 했으나 문제는 MRI검사가 문제였다. 30분 이상 움직이지 않은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난감하기만 하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가는 동안 환자와는 어느 정도 소통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오래전 옛날 시골 풍경이나 풍습 같은 얘기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도해 보았더니 아쉬운 대로 효과가 있었다. 대화가 끝나자마자 곧 다시 불안정한 상태로 돌아가곤 했다.
벽시계만 뚫어져라 바라보며 불안해하거나 느닷없이 엉뚱한 말이 튀어 나온다. 그때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주문을 외우 듯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를 반복하며,
“자 이제 편안하게 잠이 올 것 같지요?”
이렇게 안정시키곤 했다. 그 후 어려운 고비마다 마음을 안정 시킨 후, 검사를 하거나 시술을 할 때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무튼 도움이 되어서 시술팀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을 8번이나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다른 팀 관계자가 나가 달라고 할 때면,
“김 박사께선, 그분은 필요합니다. 그냥 두세요.”
내가 옆에 없으면 불안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도움이 된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모병원 정형외과 과장인 아들은 이쪽 의료진과 수시로 통화하면서 신경을 많이쓴다.
간병인이 환자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간병인으로서는 부담스럽다.
사위는 올 때마다 수고한다며 돈을 주고 가서 매번 받기가 미안해서 사양할 때면,
"안 받으시면 제가 불효하게 됩니다.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아주십시요." 하면서 슬쩍 주머니에 찔러넣고 잰 걸음으로 웃으며 나간다.
담당의인 김 박사님은 회진 올 때마다 나에게 상태를 묻는다.
“어제 밤에는 어땠습니까?”
“네, 소변 량이 평소보다 엄청 많았는데, 그 때문인지 아침부터 후들거리며 몸을 지탱하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아침 운동을 걸렀습니다.”
“네, 약을 바꿔서 그럴 겁니다. 여지껏 잘하고 계시지만 너무 지치지 않게 쉬어 가면서 하세요.”
“네. 잘 알겠습니다.”
“정신과 시술이란 메스를 대지 않고 머리에 부착된 전극을 통해 전기를 흘려서 인위적인 경련을 유발하여 정신병적 증상이나 기분증상을 호전시키는 ECT 전기충격치료 방법이다.”
마취가 풀리고 병실에 돌아온 후, 한 시간 정도 산소 호흡기를 씌운 채, 주의를 기울여 관찰해야만 한다. 의식을 회복한 후, 최근의 기억이 지워져 내가 누군지도 기억을 못한다.
“어르신, 내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에이! 내 친구 태수 아닌가, 서울시 부시장 지낸,”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마나님, 얼마나 웃으시던지, 이젠 여유를 찾으신 듯 농담도 건넨다.
“태수 어른이 당신 보고 싶어 찾아 오셨지 뭐야.”
“이 친구, 새삼스럽게 뭐 하러 와! 산행 때 만나면 되지.”
상실한 기억은 차츰 회복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늦어도 6개월 이내엔 완전히 회복 된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며칠씩 건너가며 8회를 거듭했다. 마취 후, 뇌신경을 전기 충격으로 자극을 주기 때문에 근육 이완주사를 놓게 된다. 그렇기에 시술 후에는 한동안 환자나 간병인이나 힘든 건 마찬가지다. 기력이 떨어지고 잠을 잘 못 이루기 때문에 재활과정은 더더욱 힘들다.
4각 보행기에 의지한 채, 허리 벨트를 부여잡고 못 걷겠다며 주저앉는 사람 달래가면서 힘든 재활이 시작된다. 종아리에 근육이 뭉치고 풀리기를 몇 번 반복해야 한다.
너무나 힘들어 때로는 적당한 핑계대고 빠져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날이 갈수록 지치고 힘들어진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주저앉거나 넘어지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번 넘어지거나 넘어질 뻔만 해도 벌벌 떨며 두려워한다. 한번은 에스컬레이터를 태워보려 하다가 입구에서 겁을 먹고 주저 않은 후 한동안 그 옆을 지나가지 못했다. 한번은 병원 2층 연결 통로를 지나 야트막한 동산 산책로를 걷던 중에 무섭다며 불안해 해 돌아온 적도 있다.
날마다 열심히 채근한 결과 손을 놓은 채, 밖에 나가서 둘레가 4백 미터쯤 되는 병원주위를 하루 일곱 바퀴씩 돌다보니 어느새 움도 트지 않았던 살구나무에 주렁주렁 살구가 익어가고 있었다. 신발 밑창을 바라보니 지나온 여정이 아득하게 느껴져 "벌써 추석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구나." 하고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 생각이 난다. 권 박사님과 같은 동갑이기에 더욱 눈앞에 선하다.
권 박사님의 병명은 건강 염려증으로 지나친 염려와 걱정이 빚어낸 불안과 초조로 인한 수면장애에다 덧붙여 과도한 약물 남용에 의한 뇌신경 손상으로 나타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 보면서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
“마음의 즐거움은 약이 되어도 마음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잠언 17장 22절)
{(2018-겨울호↔4-2)=[남상대]{수필} 작품 심사평}
"마음의 즐거움은 약이 되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니,"
최종심에서 가려내고 본 심사에 오른 작품은 <병상일지>라는 당선작 1편이었다. 최종심을 거쳤던 만큼 수필작품은 자연적인 것, 경험적인 것을 작품이란 감상과 상상력이 완만한 등가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쓴다고 하지만 작품을 일구어 가는 테크닉이 등가곡선에 따라 꾸미려는 장인정신이 스몄고, 문학성을 감출 듯, 노출할 듯한 표현 기법이 수작(秀作)으로 향했다는 수고로움이 배었다. 수필 등단은 한 작품만을 골라 작품평 쓰는 것을 원칙으로 했던 선례에 따라 보면 작품성이 완만한 부여를 담으려 했다.
작가의 작품 <병상일지>는 병상에 누운 환자와 간병하는 자의 관계가 불명확한 상태가 작품의 중반이 지나도록 드러나지 않아 긴장감을 자아내게 하여 궁금증이란 독특함이 작품의 뒷면에 숨어 있어 흥미와 관심을 갖게 했다. 작가는 작품의 첫구절에서 삭풍이 채 가시기도 전에 꽃샘바람 시샘하는 춘삼월 어느 날 해질녘에 간병인협회로부터 온 메시지가 왔다고 전제하면서 그 내용을 소개했다. [종합병원 별관 507병동 11호실 권 현, 84세. 18시까지 가세요. 수고하세요]라는 문구에서 긴박하고 위중한 느낌을 자아내도록 했다. 산문 문장은 이와 같이 긴장감을 감돌게 했을 때 읽는 재미와 기대감을 더 풍만하게 자아낸다.
수필작품은 11포인트로 A4용지 4매라면 버금 중수필로, 작은 분량이 아니었지만 지루하지 않았고, 거침없는 작품 언어가 시원한 문장력에 소화력을 낳게 했다. [나를 보더니 아들이냐고 묻는다. 간병인이라고 소개하자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러세요? 잘 부탁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이후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힘겨운 씨름이 시작되었다]는 긴장감 넘친 작품의 서곡을 울리는 특수성을 보편적 가치 위에 얹어 안정되게 올려놓았다. 서곡을 장식하는 간병인 역할이 중요한 작가의 역할에 대한 필치에 인내심을 갖고 환자의 특성을 파악하면서, 교감을 주면서 주위 환경을 정리한다는 일반론까지 전제되었다. 간병은 자극적인 소리나 불안요소를 제거하고 차분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질론부터 안정감을 주었다.
간병인의 역할은 무엇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백의의 천사’는 아닐까라는 생각은 다음 질문과 답변에서 알겠다. ‘오래전 옛날 시골 풍경이나 풍습 같은 얘기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도해 보았더니 아쉬운 대로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정신병 환자였기에 대화가 끝나자마자 곧 다시 불안정한 상태로 돌아가곤 했지만 참는 인내와 지혜를 보였다. 작가는 화자의 입을 통해 기력이 많이 떨어지고 잠을 잘 못 이루기 때문에 재활과정은 더더욱 힘들다는 너털웃음 한 마디를 내뱉는다. 환자는 “4각 보행기에 의지한 채 허리 벨트를 부여잡고 못 걷겠다며 주저앉는 사람을 달래가면서 힘든 재활이 시작된다”는 넋두리를 담으며 재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종아리에 근육이 뭉치고, 풀리기를 반복하듯이 그렇게.
남상대 작가는 축약을 요구한 운문성도 있었지만, 감정의 펼침을 요망하는 수필의 운치까지 한 구절 한 기운도 버리기 아까운 문치를 일궜다. 작가는 화자의 속내를 빌어 잠언 17장의 다음 말을 인용한다. ‘마음의 즐거움은 약이 되어도, 마음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라는 금언을 뇌이면서 작품의 편안함을 포근히 감싸 안는 긴한 모양새까지 보였다.
2018년 11월, 심사위원 채규판(시인, 원광대 명예교수) / 장희구(글, 문학박사․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