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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 벽화로 배우는 부처님의 지혜 >
제4회 /십대제자 이야기 ( 제1 사리불존자 ~ 제5 부루나존자 )
* 본 회에서는 『부처님의 십대제자 이야기』는 분량이 많은 관계로 2회차에 나누어 게재하겠습니다. 이번에는 1 ~ 5( 사리불존자 ~ 부루나존자 )까지 올립니다.
Ⅰ. 십대제자 이야기
1. 바라문 스승을 버린 출가인연, 사리불존자
2. 천상과 지옥을 다녀오다, 목련존자
3. 연꽃을 전한 부처님 마음, 가섭존자
4. 바느질로 만든 공, 수보리존자
5. 법을 전하는 마음가짐, 부루나존자
6. 마음의 눈으로 본 세상, 아나율존자
7. 말이 아닌 지혜로 논의, 가전연존자
8. 내 마음 속이지 않는 것이 계율정신, 우바리존자
9. 부처님의 훈계, 라훌라존자
10. 벼랑 끝에 올라선 아난존자
구인사 예불 시간
부처님에게는 뛰어난 제자들이 많았습니다. 『유마경維摩經』에서는 그 가운데 각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열 분을 십대제자라고 불렀습니다. '부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면, 바로 이 분들의 모습을 모두 합하면 중생들의 눈에 비친 부처님의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가장 뛰어난 지혜를 갖춘 지혜제일智慧第一 사리불
제자 가운데 신통력이 가장 높으신 신통제일神通第一 목건련
출가자의 수행에 엄격한 본보기가 되셨던 두타제일頭陀第一 가섭
공空의 이치를 가장 잘 깨우친 해공제일解空第一 수보리
뛰어난 설법으로 가르침을 잘 전하신 설법제일說法第一 부루나
깊은 통찰로 세상을 두루 잘 살피던 천안제일天眼第一 아나율
넓은 학식으로 토론에 뛰어났던 논의제일論議第一가전연
계율을 철저히 지켜내신 지계제일持戒第一 우바리
누가 보지 않더라도 행동과 마음가짐이 올바른 밀행제일密行第一 라훌라
부처님의 법문을 가장 많이 듣고 익힌 다문제일多聞第一 아난
십대제자는 각각 부처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부처님의 모습을 본 받아 수행이 뛰어나셨던 분들입니다. 십대제자의 행동 하나하나를 배우게 되면, 우리도 부처님의 모습에 점차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1. 바라문 스승을 버린 출가인연, 사리불존자
부처님의 첫 번째 제자는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받아들인 오비구五比丘입니다. 그들은 한 때 수행자 시절의 부처님과 같이 수행했던 도반이었는데,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후 제자가 되었습니다. 다섯 비구 가운데에는 마승(馬勝, Assaji 앗사지)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마승비구가 탁발을 갔다가 사리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리불은 육사외도六師外道 가운데 산자야라는 분을 스승으로 모시는 제자였습니다. 사리불은 그때까지 부처님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백 명의 후배들이 있을 만큼, 산자야 아래에서도 높은 지위의 수행자였습니다.
마승비구는 이미 녹야원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아라한이 되신 분입니다. 그의 기품은 남달랐습니다. 훌륭한 몸가짐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습니다. 사리불도 마승비구를 보는 순간 성자다운 그의 기품에 탄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 아라한의 도를 갖춘 자가 있다면, 바로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그는 누구에게 출가했으며,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어떤 가르침을 따르고 있을까 ...'
사리불은 마승비구에게 솔직한 마음 그대로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그 분은 저희들에게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승비구는 그 동안 배웠던 부처님의 가르침들을 사리불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마승비구의 눈동자는 밤하늘의 별빛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사리불은 마승비구의 말을 듣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순간 눈 앞이 밝아지며, 그 동안 자기가 찾던 모든 해답을 부처님께서 알려 주실 것이라는 기쁨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아 그 동안 나는 부질없는 시간을 보냈구나. 나도 부처님을 찾아뵙고, 그 분의 제자가 되어야겠다.'
그 당시 사리불은 산자야 문하에서 절친한 친구인 목건련(목련존자木連尊者)과 함께 수행중이었습니다. 사리불은 목건련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며, 이 곳을 떠나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가겠다는 심정을 털어 놓았습니다.
"친구여, 드디어 나는 진정한 스승을 찾은 것 같네. 그 동안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으나, 나는 아직 진리를 찾지 못하였네, 이제 부처님을 만나 세상의 참된 진리를 얻으려 하네."
하지만 목건련은 사리불을 막아서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사리불의 됨됨이를 잘 알고 있었고, 그의 생각이 잘못되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목건련도 친구인 사리불을 따라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곳을 떠나기로 정했습니다. 세상에 부처님이 출현하셨다고 합니다. 그 분에게 진리의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이제 스스로의 길을 걷기 바랍니다."
스승과도 같았던 사리불과 목건련의 선언에 오히려 두 사형을 신뢰했던 다른 수행자들은 그들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로써 사리불과 목건련은 250여 명의 수행자를 데리고 부처님께서 계신 죽림정사로 찾아갔습니다.
"길을 열어주어라. 저기 훌륭한 두 제자가 찾아오고 있구나."
사리불과 목건련 두 제자는 모두가 신통력이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리불은 지혜 또한 뛰어나 신통의 힘을 지혜롭게 잘 사용하셨기에 부처님의 인정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쓸데없는 신통력은 사람들을 현혹시키므로, 함부로 보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한 번은 기원정사를 건립했던 수닷타장자가 이 나라에서 절을 지으려면 왕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면서, 그러려면 부처님 제자의 도움이 필요하니 누구를 좀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자, 부처님께선 사리불을 보냈습니다.
사위성에 도착한 사리불은 왕이 내세운 외도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노도차勞度差 도인과 신통을 겨루었습니다. 왕은 자신의 뛰어난 도인들과 신통대결에서 이기면 절을 짓도록 허락하겠다는 것입니다.
둘의 신통대결이 시작되자, 먼저 노도차가 신통을 부려 온갖 보석으로 장식된 큰 연못을 만들어 보였습니다. 그러자 사리불은 커다란 코끼리를 만들어 연못의 물을 모두 마셔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노도차가 다시 거대한 산을 만들자 사리불은 금강력사를 불러와 산을 가루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또 노도차가 무시무시한 용을 만들자 사리불이 금시조라는 새를 만들어 용을 잡아 먹어버리게 하였습니다.
결국 화가 난 노도차는 스스로 야차로 변해 사리불을 해치려고 하는데 사리불은 거대한 신장으로 변하여 야차로 변한 노도차를 밟아 버렸습니다. 그러자 노도차는 사리불에게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며 용서를 빌었고, 이렇게 사리불은 외도들을 신통력으로 제압해 버리자, 왕은 부처님의 제자들에게 감복하여 기원정사의 건립을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곱게 물던 구인사의 가을 단풍
사리불과 목건련은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될 당시 이미 부처님보다 나이가 더 많았습니다. 이후 부처님 제자들 중에서 다른 비구들을 잘 이끌어 주던 사리불존자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몇 달 전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에 들었습니다. 수행이든 공부든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애초에 잘못된 방법이라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성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길을 잘못 들었다면 돌아 나와야 합니다. 헤매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아까울 뿐입니다. 불교의 수행에서도 택법각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혜로써 바른 가르침만을 선택하고 그릇된 가르침은 버리는 것입니다.
사리불과 목건련은 비록 잘못된 스승을 만났으나, 진리의 부처님을 알게 되는 순간 그동안의 인연과 지위에 연연하지 않고, 그릇된 가르침을 버리는 결단을 보였습니다. 항상 바른 마음으로 생활하면, 반드시 좋은 인연이 찾아옵니다. 그 순간 사리불처럼 현명하게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2. 천상과 지옥을 다녀오다, 목련존자
부처님 제자 가운데 목련존자는 이 가장 뛰어나신 분입니다. 부처님은 여섯 가지의 신통력을 두루 갖추신 분이셨습니다. 목련존자도 부처님의 신통력을 그대로 배우셨습니다. 여섯 가지 신통력(六神通 육신통)이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천안통天眼通, 먼 곳의 소리까지 모두 듣는 천이통天耳通,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타심통他心通, 사람의 전생을 훤하게 들여다 보는 숙명통宿命通, 어느 곳이든 마음대로 나타날 수 있는 신족통神足通, 모든 번뇌를 끊을 수 있는 누진통漏盡通을 말합니다. 부처님과 보살님들께서 중생을 구제하실 수 있는 것도 이 육신통에 의해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누구에게도 말씀 없으신 채 발우와 가사를 가지고 사라지신 적이 있습니다. 수 년간 많은 제자들이 생겼는데, 그 규모가 점차로 커지게 되자 제자들이 부처님의 말씀대로 수행하는 것을 게을리 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형태를 꾸짖을 목적으로 부처님께서는 그 해 우기를 도리천으로 올라가 지내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부처님을 낳아주신 어머니 마야왕비와 천상의 중생들에게 설법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한편 지상에서는 부처님께서 가신 곳을 몰라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지혜의 눈을 갖춘 아나율 존자가 천안으로 살펴보니 부처님께서는 마야왕비, 제석과 함께 도리천에 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 달이 다 되도록 내려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 대중의 요청으로 목련존자는 천상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우기가 끝날 무렵 도리천으로 올라간 목련존자는 모든 제자들이 반성하고 있으니 부처님께서는 그만 지상으로 내려와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모든 비구와 비구니들이 자신의 오만과 게으름을 뉘우치고 있습니다. 우바새(출가하지 않고 부처님의 제자가 된 남자)와 우바이(출가하지 않고 부처님 제자가 된 여자)들도 부처님 뵐 날만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부처님께서는 7일 뒤 지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물론 목련존자가 신통력으로 천상에 다녀오지 않았더라도 때가 되면 부처님께서 돌아오셨겠지만, 여러 제자들이 목련존자에게 하늘 세계에 다녀와 주실 것을 부탁드린 것만 보아도 그의 신통력이 가장 뛰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목련존자는 불교명절 가운데 하나인 백중, 즉 우란분절과도 연관된 분입니다. 하루는 목련존자가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한 마음에 신통력으로 천상을 두루 살펴보았으나 아버지만 천상에 계신 것이 보였습니다. 이 사실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더니, 그의 어머니는 삼보를 믿지 않고 인과를 어긴 죄로 지옥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찾지 않을 수 없었던 목련존자는 지옥세상으로 가보았습니다. 지옥의 광경은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모습이었습니다. 목련존자는 부처님께 나아가 어머니를 구할 방법을 간청하였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염라대왕에 명하여 모든 중생을 놓아주라 하셨고, 이때 지옥고의 중생들은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천상으로 올라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목련의 어머니는 죄가 워낙 무거워 지옥에서 빠져 나오기는 했지만 천상에 태어나지 못하고 아귀의 몸을 다시 받았습니다.
육도를 윤회하는 가운데 가장 나쁜 곳이 지옥이며 그 위의 세상이 아귀,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은 축생이라 하여 짐승의 몸을 받게 되는 세상입니다. 이 셋을 삼악도라 합니다.
목련존자는 여러 부처님과 보살님을 청하여 어머니를 위해 경전을 독송했고, 그 공덕으로 목련존자의 모친은 이제 개의 몸으로 환생한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그의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목련존자는 타심통으로 어머니에게 심정이 어떠한지 물어 보았습니다.
'어머니, 개의 몸으로 환생하였는데, 지옥에 있을 때와 어떠합니까?'
'비록 개의 몸으로 더러운 찌꺼기나 남의 음식을 받아 먹더라도, 지옥의 고통보다 몇 만 배는 더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목련이여'
부처님께서 목련존자에게 다시 알려주셨습니다.
"긴 장마철 동안 한 곳에서 열심히 수행을 하고, 안거를 마치는 칠월 보름에 모든 대중들에게 우란분재를 베풀면 너의 어머니도 개의 몸을 벗어나 천상에 태어나리라."
이후 불교에서는 음력 7월 15일을 백중으로 정하여, 자손들이 부처님의 가피력과 지장보살의 힘으로 여러 부모님을 위해 모든 지옥중생을 구제하려고 함께 천도재를 올리는 날이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길가에 버려진 뼈 무더기를 보고도 어느 생에서는 우리와 인연있는 부모였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목련존자와 같은 신통력을 가졌어도 생전에 스스로의 나쁜 행동의 과보로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구제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부처님의 힘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나쁜 업보를 쌓아 지옥 세상에 걸어 들어가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도 안 되겠지만, 지옥의 여러 중생을 구해주기 위해서라도 부처님과 지장보살에게 정성껏 기도를 올려야 하겠습니다.
3. 연꽂을 전한 부처님 마음, 가섭존자
부처님께서 마가다국 왕사성에 있는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하루는 제자들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부처님께서 거처하시던 여래향실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제자들이 모여들자 가부좌를 하고 앉아 계신 부처님께서 법문을 하시는가 싶었는데, 그 날따라 부처님께서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며 부처님께서 법문을 하시기만 기다렸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손에 연꽃을 한 송이 쥐고 계셨는데, 그 하얀 연꽃을 조용히 들어서 대중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모두 어리둥절하여 서로 얼굴만 멀뚱 멀뚱 쳐다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도 영문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때 대중 가운데 가섭존자만이 부처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고 합니다.
"나의 법은 가섭에게 부촉하노라."
말하자면 가섭이 부처님의 법을 이어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염화미소拈華微笑라고 부르는 말입니다. 염화미소의 '염 (拈)'은 '집을 염'자 입니다. 그래서 '염화'라는 것은 '연꽃을 집어 들었다'는 말이며, 가섭존자가 빙그레 웃었다고 하여 미소, 즉 염화미소라는 말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마음을 전한 것은 가섭과 부처님께서 서로 뜻이 통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말이 아닌 마음으로 가르침을 전하는 것을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도 합니다. 가섭존자는 두타제일로서 부처님처럼 출가자의 수행에 엄격하셨기 때문에 부처님의 뜻을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4. 바느질로 만든 空, 수보리존자
부처님께서 도리천에 올라 어머니에게 석 달 간으 법문을 하고 계실 때, 목련존자는 도리천으로 부처님을 찾아뵙고, 그만 지상으로 내려와 주실 것을 청하였습니다.
7일 뒤 부처님께서는 내려오시는데, 한 동안 부처님을 뵙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은 승속을 떠나 너나 할 것 없이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 수보리존자의 모습은 모이지 않았습니다. 수보리존자 역시 스승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옷을 깁던 바느질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다 다시금 자리에 주저앉으며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서둘러 부처님을 맞이하러 가려고 하다니, 과연 지금 내가 보려고 하는 것이 진짜 여래인가 아니면 허상뿐인 몸인가. 부처님의 형상은 눈, 코, 귀, 혀, 몸, 뜻의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참으로 부처님을 뵙고 공경하려거든 이 오온이 모두 무상함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의 형상도 무상하여 시시각각 변한다. 그러므로 모두 공하며, 내것이라고 고집할 무엇도 없으니, 이것을 부처님께서 무아無我라고 말하시지 않았던가. 이렇듯 일체가 모두 공인데, 무엇 때문에 부처님을 뵈려고 안절부절 못하고, 이렇게 나서려 하다니 나는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이처럼 생각하고는 덤덤하게 다시 하던 바느질을 계속했습니다. 부처님을 직접 보고자 나서는 것은 부처님의 형상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수보리의 생각과 행동을 꿰뚫어 보시고 다른 제자들에게 수보리가 옳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공의 경지에 즐겨 들어가고, 공의 이치를 잘 헤아려 사람들에게 차근 차근 일러주는 이는 수보리가 최고다."
바느질은 말 그대로 옷을 기워 입는 것입니다. 스님들이 하시는 바느질은 부처님 당시 출가 수행자가 지켜야 할 수행법 가운데 두타행頭陀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분소의糞掃衣라 하여 사람들이 헤지고 떨어져 입지 못하게 된 옷을 내다 버리면, 그것을 주워 쓸 만한 부분만 골라 서로 기워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입니다.
수행이란 화려하고 분에 넘치는 행동으로 일어나는 헛된 마음을 멀리하고, 항상 검소하고 최소한의 것에 만족함으로써 마음에 조금의 욕심과 번뇌도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두타행을 즐겨했을 때 세상의 복잡함을 멀리하고, 항상 평화로운 마음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의 이치를 터득하고 즐거이 실천한 수보리존자가 가장 평화로운 제자였다고 합니다.
"비구들이여, 내 제자 가운데 수보리는 평화롭게 사는 이들 가운데 으뜸이다. 내 제자 가운데 수보리는 다른 이에게 보시를 받아 마땅한 이 가운데 으뜸이다."
수보리존자의 바느질은 그저 한가로운 여유가 아니었습니다. 일상 그대로 묵묵히 수행하며, 언제 어디서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충만하였기에 텅 비어 있는 空을 바르게 실천하신 분이 수보리존자였습니다.
5. 법을 전하는 마음가짐, 부루나존자
부처님 제자 가운데 설법을 가장 잘 하는 분은 부루나존자였습니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얻은 깨달음의 기쁨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설법하는 것을 즐겨했습니다. 급기야 멀리 수로국으로 부처님의 법을 전하려 떠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하다, 부루나여.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좋은 가르침을 전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부처님은 부루나존자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부루나야, 그 나라 사람들은 포악하고 잔인하다. 욕된 말로 그대를 비난할 텐데 괜찮겠느냐."
"흙뭉지를 던지지 않으니 이 얼마나 친절한가.라고 여기겠습니다."
"흙뭉치를 던지면 어쩌려는가."
"몽둥이로 때리지는 않으니 참으로 친절한 사람이라고 여기겠습니다."
"몽둥이로 때린다면 어떻게 하려는가."
"칼을 휘두르지는 않으니 참으로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여기겠습니다."
"날카로운 칼로 목숨을 뺏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는 것이라고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몸은 무상한 것입니다. 많은 비구들이 이미 이 몸과 목숨은 늘 덧없는 것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언제든 버려도 아깝지 않은 것을 저들 덕분에 한 시름 덜게 되었으니 고맙다고 여기겠습니다."
"장하다, 부루나여, 그와 같은 마음을 갖고 법을 전한다면 교화하지 못할 사람이 없고, 능히 뛰어넘지 못할 장애가 없을 것이다. 언제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도 좋다."
이후 부루나존자는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수로국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열반에 들 때까지 홀로 불법을 천하며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고, 많은 절을 지었습니다.
상불경보살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만나는 사람마다 합장하시고, '여러분은 모두 부처가 될 분들입니다. 그러니 저는 여러분을 가벼히 여기지 않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다녔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없이 평등하게 대하는 모습을 실천하신 보살이십니다.
부루나존자도 이와 같은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펼쳤을 것입니다. 부루나존자의 설법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게 된 수로국 사람들은 항상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법문'을 들어며 서서히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출처] < 사찰 벽화로 배우는 부처님의 지혜 > 제4회|작성자 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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