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分) 유감
노 승 희
거리에 나서면 부드러이 스치는 바람결에 아카시 꽃 향기가 요동을 치는 오월이다. 하마 오늘 내일로 뻐꾸기 울음소리도 들려오겠지. 너무나도 서둘러 가는듯한 세월의 아쉬움 속에 매주 한번은 아침일찍 집을나와 7시 30분 고속버스에 오른다. 서울에서 청주는 만만한 통학거리는 아니어서 늘상 마음이 분주하다. 불안한 마음으로부터 오는 조급함이 싫어 충분한 여유를두고나오다보니 터미널에서 이삼십분을 기다리기가 보통이어서 오늘따라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집안일을 이것저것 챙겨놓고 나왔다. 관악산 자락에 자리한 동네의 아침공기가 바램 이상으로 신선하다.
혹시 늦는건 아니겠지. 그렇더라도 도리없는 일이니 일단은 편한 마음으로 가자고 생각하며 전철을 내린다. 7시 27분. 안타까운 시간이다. 나는 황급히 출구를 빠져 나왔다. 지하 상가를 가로질러 가기만 하면 되는데 과연 3분만에, 30분 정각에 떠나는 차를 잡을수 있을런지.
벌써 2년째 무릎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고 보니 빨리 걷는다거나 뛰어간다는것은 참으로 난처한 일, 조심조심 낭창 거리는 걸음인데 큰일은 났다. 집이 먼 만큼 늦을수도 있겠다는 이해의 눈빛은 사양하고 싶었다. 기왕에 공부 하려고 마음다잡고 오는 길인데 단 한번도 지각하지 말아야겠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던터이기도 했다. 뜻하는 바와 같지않게 차를 놓치고말면 지각은 말할 필요도 없는것, 심장에 초특급 비상이 걸린다. 작동중인 에스컬레이터를 겅중겅중 내려갔다. 아직 개점전의 지하상가를 달리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 낭독할 원고가 들어있는 책가방도 내게는 만만찮은 무게이다.
뛰엇!
잘만 달려가면 차는 잡을수 있을것도 같았다. 빤히 보이는 직선거리가 십리는 되는것 같아 옆도 돌아보지 않고 정신 없이 달리는데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린다.
'땅 꺼져요 땅 꺼져...'
얼핏보아 중년인지 노년인지 모를 한 남자가 길게 늘어선 상가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다가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뛰어가는 나에게 던지는 한마디이다. 땅이 꺼진다는 말인지 그 정도 가지고는 안 꺼진다는 말인지 알 수는 없어도 하여간에 땅이야 꺼지든 말든 달리자 달려!
쪼르륵!.... 우리 가족의 모습이 ....전기줄에 제비모양 쪼그리고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어어..! 우리 희(姬) 씨! 그렇게 쎄게 달려도 되나! 태강 (한의원) 아저씨 6개월만에 등산할수 있다더니 무주 구천동이나 갈까. 덕유산 어때, 아니면 두륜산?'
'엄마 지금 뭐하는 거야 그렇게 달리다 도로아미 타불되면 나는 몰라 연우는 어떻게 볼려구..'
'엄마 조심해..늦으면 고만 이잖아 지각 하면 될거아냐..'
'엄마 이리와요 내가 업을게 내 등에 엎혀요. 그러면 안늦을수 있어요. 빨리와 빨리빨리..'
그래 그래 아들, 네가 최고다 너는 거실에서 엄마를 안고 빙빙 돌리다가 천정으로 들어올리기를 재미있어 했었지. 아니 엄마가 좋아 했던가? 근래엔 계단만 보이면 업고 다녔잖아. 언제라도 손을 잡아주었어. 근대 임마 넌 지금 너무도 멀리 있잖아 짜아식...!
이미 누구의 아내도, 어머니도 아닌 오로지 나 만의 나를 위하여 달리고 달린다. 같은 값이면 아카시아 무성한 언덕길을 달린다는 상상을 하자 흠....향기를 따라서 나는 가는거야..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많기도 많은 계단. 아 밉다 미워! 아들아 어쩐다니. 다리에 이상신호가 온다. 뻐근해 지더니 순간적 마비..속력을 줄이는 도리밖에는 없다. 일초 이초 . 다소 늦어진다.
'아저씨! 청주행 버스 떠났나요?'
'네 갔습니다.' 아..허무한 소리가 들린다.
정확한 핸드 폰 시계화면은 아직 30분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다. 어쨋거나 경기는 끝났다. 완벽한 패배였다. 넉넉잡아 1분, 단 1분이 모자라서 나는 앞으로 한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1분이 무언가. 10분, 100분, 아니 며칠 몇달씩도 함부로 물 쓰듯 써버리는 시간의 과소비는 어떠한가. 물같은 시간중에 그놈의 딱 1분이 모자라서 유감이다.우리의 삶도 결국은 하나의 점과도 같은 1분의 연결로 이루어 지는것 아닌가. 한 알의 모래 알갱이가 백사장을 이루듯.
'택시를 타고 쫓아가면 안될까요' 그렇게라도 버스를 따라붙고 싶었지만 아저씨는 소용없는일이라고 일관한다. 무슨 수를 써도 되찾을수 없는 1분이다. 긴장이 풀리면서 사지에 힘이 쭉 빠진다. 나는 나무벤치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진정을 하고 나서 어차피 날아가버린 한 시간 이라면 60분중에 다소의 시간이나마 건져보겠는 마음으로 원고를 꺼내 들었다. 사람들이 수시로 들어와서는 '당진요' '서산요' '전라도 광주요' 하고 승차권을 구입해간다. 어수서한 가운데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처럼, 그러나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버티고 앉아 내가쓴글을 또박또박 읽어보고 수정할부분을 찾아내고 있었다.
푸른솔 문학의 숲..203호 강의실에 들어선것은 30분 늦은 10시 30분이었다. 나를 반겨주시는 선생님들의 조용한 미소를 향해서 1분과의 격투를 벌이고 온 사연을 말도 못한채 휴...! 하고 한숨 한번 쉬었다.
첫댓글 그 멀리서 달려오시는 선생님의 열정이 아름답습니다. 1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갑니다.
랑랑님. 대단하십니다. 그 열정의 꽃 피우실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랑랑님의 달리는 모습 식구들의 응원 모두 모두 부럽습니다. 예쁜 외모 만큼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사시는 여인이시여~
에효 ~ 강남 고속터미날에서 1분 패배.. 안타까운 랑랑 선생님 ... 파이팅 입니다!
정확한 핸드 폰 시계화면은 아직 30분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다. 어쨋거나 경기는 끝났다. 완벽한 패배였다. 넉넉잡아 1분, 단 1분이 모자라서 나는 앞으로 한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1분이 무언가. 10분, 100분, 아니 며칠 몇달씩도 함부로 물 쓰듯 써버리는 시간의 과소비는 어떠한가. 물같은 시간중에 그놈의 딱 1분이 모자라서 나는 괴롭고 짜증이 치솟는 것이다. 랑랑 선생님 그날의 긴박감이 느껴집니다. "촌음을 아껴써라" 라는 말의 진실을 실감하게 하시네요. 뜨거운 배움의 열정 너무 아름답습니다.
랑랑 선생님. 그 열정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건강, 건강이 제일입니다. " 푸른솔 문학의 숲..203호 강의실에 들어선것은 30분 늦은 10시 30분이었다. 나를 반겨주시는 선생님들의 조용한 미소를 향해서 1분과의 격투를 벌이고 온 사연을 말도 못한채 휴...! 하고 한숨 한번 쉬었다. "
선생님을 만나뵙게 되어 감사합니다..영광이죠. 먼 곳에서 통학하시며 배움의 열정에 푹 담긴모습도 아름답기만 합니다. 건강하셔서 꿈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인생은 시간과의 다툼이라지요,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행복을 만드는 것 이겠죠..파이팅!!! 선생님
1분에 매달려 안타까워하셨군요 저도 그런 경험이 많아 실감이 남니다.열심이신 서생님! 저는 가까운데도 지각을 함니다. 반성해야겠죠
아무런 생각이 없는 1분은 무의미하지만 이번 1분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 열정을 존경합니다...^^ 강남~청주 고속버스 배차가 이른 아침이라서 그렇게 늦는가 보죠?...
선생님의 1분...참으로 숙연하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가까이 사는 사람이라서 감사한줄 모르고 다니던 글공부를... 다시한번 깨우치고 갑니다 좋은글 감사 합니다 핫팅!!
그 허무함.. 가슴에 와닿습니다. 그 1분으로 이렇게 글을 멋지게 쓰셨으니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ㅎㅎ. 늘 배웁니다. 선생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