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조식이 벌써 4일 째인데
메뉴가 전혀 바뀌질 않는다.
하긴 투숙객이 더 자주 바뀌니 관계자는
아무 상관 없겠지.
설마 오늘은 새로운 음식이 나오겠지하며
기대를 하지만
바꿀 의사가 전혀없는 눈치다.
식빵 구워 샌드위치 만들어 먹는 방법이
나날이 발전한다.
짠딸은 삶은 계란 으깨어서도 만들고, 햄 소세지 등 잘 활용하여 스스로 살길을 찾는 중.
그래, 점심 저녁을 바꾸어 먹는게 낫겠지 하고 포기하니 편하다.
오늘은 내셔널갤러리 가는 날.
트라팔가 광장을 품안에 안고 있는 위엄있는 건물이라 더 멋지다.
아직 갤러리 오픈 전이라서 잠시 아침의 광장을 즐겨보기로 한다.
3년전 짠딸이 이 사자상에 올라앉아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올라가기 쉬운 곳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그 땐 광장에 함께 있던 일본애들한테 지지 않으려고
아주 추한 모습으로 기어올라 갔었노라고.
지금은 그 때보다 늙어서 안될 것 같네....
남편은 슬슬 기회를 엿보더니 순식간에 올라가버린다.
마치 이 광장의 주인인 넬슨제독이라도 된 듯 굽어살피며 내려보는 저 눈빛.
짤딸은 3년전보다 노쇠한 몸으로 아빠의 도움을 받아
엉거주춤 기어올라서는 아주 여유있는 척.
어떻게 내려올건데~~~
나??
싫여싫여. 사다리 놔주면 모를까.
좀 있으니 사람들이 갤러리 입구에 줄을 서 있다.
자 들어가 볼까요?
설레이는 이 기분
고흐의 해바라기도 만나고
모네의 정원을 그린 그림도 만났다
스탕달 증후군이란게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만났을 때
느끼는 현기증 같은 거라는데
나의 스탕달 증후군은 현기증으로 나타나지 않고
비명을 지르고 싶으니 어쩐다지?
꺅!
어머나!
어머어머어머....
이를 테면 이런 종류의 비명.
모네의 정원 그림.
내가 저 초록색의 이쁜 다리위에 서있어 볼 기회가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며칠 후 파리근교 지베르니에서.
잘 모르는 작가의 그림이라도 유난히 눈길이 머무는 그림이 있다.
자꾸만 이 소녀의 얼굴 앞에서 소녀의 눈과 마주하고 싶다
당돌한 눈빛이 아주 맑고 강렬하다.
보고 또 보고 결국 사진에 담아왔다
너의 생각들을 듣고 싶어진다.
한국어판 안내서를 보고 다니는데 빨갛게 표시된 방이 번호를 찾으니 찾을 수가 없다
짠딸이 그 곳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그 방이 이렇게 나뉘어 있는데 아직 번호를 안붙여놨다며
친절하게 그림까지 그려가며 방 번호를 적어준다.
그러면서 고흐의 해바라기 봤냐고, 자신은 그 그림이 정말 좋다면서
아주 호들갑스럽게 말을 건다.
우리도 너무 좋다면서 맞장구치고 눈길을 나누었다.
참 친절한 안내원아저씨.
곧 가게 될 베네치아 풍경화가 있어서 자세히 보니
그 시절 곤돌라가 정말 화려했구나.
너무 화려함을 추구하다보니 경쟁적으로 사치가 심해져
검은 색만 칠하도록 규제를 했다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오른쪽의 하얀 레이스같은 곤돌라 참 화려하고 이쁘네.
옷자락의 주름
양말의 레이스
모피로 만든 손토시를
어쩜 이렇게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저 모피는 한번 쓰다듬어 감촉을 느껴보고 싶다.
보고 또 봐도 멋지다.
영화 '파리로 가는 길' 이후 이런 사진을 나도 자꾸 찍게 된다.
너무 멋지고 행복한 공간.
여유있게 그림을 감상하다가 갤러리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며 쉬기도 한다.
갤러리 카페의 벽이 참 재미있다.
갤러리 안에 수없이 많은 그림을 보고 잠시 쉬러온 고객들에게
눈도 쉬어가라며
벽에 걸린 액자는 속이 모두 비어있다.
명화를 모사하고 있는 저 여인의 카키색 가방엔 뭐가 들어있을까?
그림 그리다 목마르면 마실 물도 들어있을테고
에어컨이 강해 서늘해 지면 걸친 머플러도 들어있을테지.
갤러리를 나와 점심을 먹고는 슬슬 걸어
재미있는 장소 M&M에 들어가봤다
동심을 자극하기를 넘어 중년인 나도 흥미진진하다.
저 색의 유혹을 떨칠 수가 없어
봉지에 조금씩 좋아하는 색의 알초코를 담다보니
제법 양이 많아진다
무게를 재어 돈을 내면 된다.
남편은 이 계단을 내려다보고
포루투에 있는 렐루서점 비슷하지 않아?
어!!!
한번 쯤 먹어봤을
M&M 초코렛으로 다양한 케릭터도 만들고
컬러별로 긴 유리관에 넣어두고 조금씩 담아
사갈 수 있게 했다
외출가방에 조금씩 넣어다니며 티타임에 몇개씩 와그작와그작.
골프공까지 있어 탐이 나기도 했지만
골프공이란 어짜피 잃어버리는 거니
욕심내지 말자.
영국 황실의 차를 담당해서 명성이 높은
'포트넘메이슨'
명성에 어울리게 다양한 홍차와 찻잔, 그리고 생활용품까지 갖춰
럭셔리한 편집샵 분위기를 만들었다.
주방 용품들, 크리스마스 용품들 모두 한아름 안아 오고 싶은.
카페공간에서 잠시 쉬면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니
앙증맞은 아이스크림 콘을 함께 준다.
빅벤 야경을 보러가기엔 아직 이른 시간
난 다시 트라팔가 광장에 가고 싶다고 하니
이층버스체험 시켜준다는 우리의 친절한 가이드님
이층에 아무도 안 올라와
우리끼리 신난다고 소리지르며 몇정거장 체험.
약간 미친 동양인들이 위층에서 떠든다고
아래층 승객들이 흉봤을지도.
거리가 너무 화려하고, 건물들 아름답고, 사람들 활기차고
그러니 더 신나는 걸 어떡해요.
트라팔가 광장에 다시 오니
뉘엇뉘엇 해가 기울기 시작한다.
오후의 광장은 더 활기차고 흥분시키는 분위기다
오전엔 없었는데 누군가는 광장바닥에 만국기를 그리고 있다.
신기한건 모델없이 그냥 머릿속에 각 나라의 국기가 다 들어있단다.
태극기도 그려놨길래
태극기위에 동전을 던졌다.
지나가는 관광객들 애국심 발동으로
자기나라 국기 위에 동전을 던진다.
이것도 일종의 버스킹인게다.
남편의 애피소드 하나.
광장을 거닐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어떤 걸인인 듯한 남자가 다가와 담배를 한가치 달라고 하더란다.
예전에 구걸하는 사람들한테 담배나 돈을 주면
동료들을 떼로 몰고와 곤혼을 치른적이 있다는 경험담을 들은지라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더란다.
그랬더니 다 피운 공초라도 달라고 하기에 그것도 거절했다고.
그런데 한참을 앉아있던 남편 내내 걸렸는지 담배한가치 주고와야겠다고 일어난다.
마침 구걸을 하러 나선 그 남자 남편이 내민 담배 한가치에
마치 예수그리스도에게 구원이라도 받은 표정과 몸짓으로 감사함을 표현한다.
우린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웃었던지.
담배 한가치로 한 남자를 구원한 당신
복받을껴!
버스킹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한 남자가
우리 앉아있는 잔디밭에서 책을 읽으며
저리 멋진 폼으로 기다리고 있다.
다들 어찌 그리 멋진 노래들을 들려주냐구요.
체스를 두고 있는 이 남자도 참 특이하다.(앉아있는 남자)
지나가던 누구나 이 남자와 체스를 두고 약간의 동전을 상자에 주고 떠난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아저씨가 도전했는데
졌는지 웃으며 상대의 실력에 엄지척 하며 웃는다
이기든 지든 모두가 즐거운 표정으로.
그런데 이 남자 옆에도 기타가 놓여있다.
인스타그램를 살펴보던 짠딸이
이 체스맨이 기타연주하는 모습이 인스타에 떴다며 영상을 보여준다.
어머!
"솔이야, 너 저 체스맨한테 버스킹 언제 하는지 물어봐주라"
히히, 이거 일종의 영어앵벌이 아닐까?
영어실력이 안되니까 딸래미 시켜서 물어보게 하는 거.
눈을 살짝 흘기던 짠딸이 엄마의 호기심을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살짝 가서 부라부라 쏼라쏼라.
웃으면서 돌아온 딸이 말한다.
"20분 후에 한대"
야호! 거봐 물어보길 잘했네.
세바스찬이라는 이 스페인 남자
너무 멋지게 연주한다.
노을이 깔리는 광장이 세바스찬의 기타음률도 더 아름답다
자신의 시디도 판매한다.
동전을 찾으면 짠딸은 1파운드 이상은 못주게 한다.
이미 코벤트가든에서도 너무 여러명의 버스커에게 동전을 주었다며
엄마는 너무 기분파고 통이 크다고. 호호.
세바스찬의 연주
버스킹 감상하며 열심히 저녁메뉴라도 의논 중인가보다.
넬슨제독은 저 높은 곳에서 안듣는 척하지만
두 사람의 고민을 알고 계시리라.
특별한 음식이 뭐 없거든요.
영국엔 특별한 음식이 없다네요
맛집 검색하면 햄버거집이 제일 많이 나온다고 할 정도로.
점점 아름다운 화장을 하기 시작한 트라팔가 광장의 내셔날 갤러리 건물
주변의 건물들이 곱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천천히 걸어 빅벤 야경을 보러 강가로 간다.
유럽도시의 야경은 어디나 실망시키질 않는다.
빅벤의 야경 참 멋지다.
사람들이 빅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다 차도쪽으로 넘어와 위험했는지
3년전에 없던 안전벽을 설치했노라고
"그새 변한게 많네 "
노인네처럼 말한다.
오늘도 아침부터 야경까지 12시간 근무한것 같다.
마지막 사진에 선명하게 찍힌 지하철 표지판.
그래 오늘도 우리 집으로 안전하게 데려다줄거지?
첫댓글 ㅋㅋㅋ노쇠하다고 하고 노인네같다고 하고 ㅋㅋㅋ쫌 기부니이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