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색 다 바나나>
제이슨 풀포드ㆍ타마라 숍신 쓰고 그림, 신혜은 옮김, 봄볕
함지슬
봄이다. 바싹 말라보이던 가지 어디에 숨어있었던지 잎도 꽃도 끝없이 피어난다. 가만히 보면 나무마다 꽃잎 색이 미묘하게 다르다. 벚꽃만 해도 어떤 벚꽃은 하얀빛이 뚜렷하고, 어떤 벚꽃은 중심에 분홍빛이 감돈다. 또 어떤 벚꽃은 전체적으로 분홍빛을 띠고 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건 공통점이다.
왜 꽃들 색이 저마다 다를까? 벚꽃의 꽃잎이 내는 색은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 때문이라고 한다. 따뜻한 지역에서는 벚나무가 안토시아닌을 만들지 않아서 꽃잎이 좀더 하얗다. 다 비슷해보이는 벚꽃도 미묘하게 다르다. 벚꽃의 품종마다, 자라는 지역의 토양에 따라, 날씨에 따라, 꽃잎의 색은 모두 미묘하게 다르다. 사람은 오죽할까.
여기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있다. 연두색, 풀색, 노란색, 황토색 색깔이 줄줄이 있고 그 위에 바나나가 그려져 있다. 제목은 <이 색 다 바나나>. 말 그대로 표지의 색들은 모두 바나나의 색이다.
바나나는 익기 전에는 연두색이고, 점점 익을수록 노란색이 되고 검은 반점이 생겨나면서 황토색, 갈색으로 변해간다. 색의 변화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바나나를 대표로 보여주면서 세상의 다양한 색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과가 항상 빨간 것은 아니라 하면서 다양한 사과의 색을 수집하듯이 모아서 보여준다. 마치 컬러차트 같은 페이지는 매 바닥 반복된다. 여기서 사과의 모양이나 이름, 품종 등에 대한 정보들은 모두 배제한 채 오로지 색깔만 보여주었다. 초록색에서부터 연한 연두색, 풀색, 빨강색, 황토색, 갈색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사과색이 있다.
풀도, 구름도, 장미도 참으로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다. 불도 물도, 알의 색도 참으로 다양하다. 도대체 어떤 알이 이런 색일까 궁금해지고,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색만을 보여주는 컨셉은 독자로 하여금 직관적으로 느끼게 도와준다. 그 색을 가진 사물을 상상하게 만들고, 그 사물이 있는 풍경은 어떨까 점점 상상을 확대하게 된다.
대표 사물이 갖는 색이 있다면 알에 대한 이야기는 특이성을 가진 생물도 언급한다. 마치 아보카도처럼 진한 초록색인 에뮤의 알, 새파란 울새의 알. 본문에서는 그림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글에서 언급한 에뮤나 울새를 검색해보니 정말 그렇다. 오른쪽 페이지에 있는 다양한 색 중에서 어떤 것이 에뮤의 알 색깔일지, 어떤 것이 울새의 알 색깔일지 저절로 찾아보게 된다. 세상에는 이렇게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많다. 이 장면은 고정관념을 깨고 유연하게 세상을 바라보도록 차근차근 설계된 페이지이다.
단순한 사물의 나열 같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사과에서부터 풀, 구름, 장미와 같은 자연물을 이야기하다가 점차 생물의 이야기로 옮겨간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사물의 색을 보여주고,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자연은 다양하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점차 동물의 이야기로 옮겨와 개들도 모두 색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한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또 이렇게 모아서 보니 개들의 털색이 이렇게나 다양하구나 직관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 다음에는 제목에 나왔던 바나나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바나나는 하나의 색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시기에 따라 여러가지 색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물은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고, 때로 어떤 사물은 고유한 자기의 색이 변하기도 한다.
아, 그렇구나 깨달음이 오는 그 시점에, 이 책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지막에 딱 보여준다.
“너도 색깔이 있어.”
이제까지 자연에서 식물, 동물로 이어오던 다양성에 대한 논의를 사람에게로 옮긴다. 우리는 모두 색이 있다. 색이라고? 아, 피부색을 말하는 거구나 생각하는 순간 “저기 빈 네모 뒷면에 손을 갖다 대 봐.” 하고 친절하게 제시한다.
사람마다 다른 피부색들, 그 다양한 색에 나의 피부색을 더하는 것. 나 역시 다양한 자연의 존재 중 하나라는 점, 우리는 누구나 다르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하는 책.
다르다는 지점에서 이야기를 끝내지만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이 색 다 바나나> 이 색들이 모두 바나나지만 모두 같은 바나나인 것처럼 우리는 모두 피부색이 다르지만 모두 다 사람이다. 이 책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자연과 생물의 다양성을 색에 제한하여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단순한 구성을 띠고 있으면서도 사람 역시 자연과 같은 생물 중 하나이며 다양한 존재라는 결론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책, <이 색 다 바나나>. 참 매력적인 책이다.
첫댓글 재미있을 것 같아요. 보고픈 책이 왜 이렇게 많은지 하루가 24시간인 게 넘나 아쉬워요. 찾아보겠습니다!^^
바나나 하나를 단순한듯 보이지만, 접근하는 방법과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양하네요. 궁금해요^^
이 책 너무 재미있더라구요 :-) 고정관념을 깨주는 멋진 그림책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