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진익(閔鎭翼)
[생졸년] 1661년(현종 2)~1731년(영조 7) / 壽 70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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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암 이재(李縡) 撰비문
통덕랑 민공 묘갈명(通德郞閔公墓碣銘)
입암(立巖) 민 이상[閔貳相, 민제인(閔齊仁)]의 손자인 휘 여준(汝俊)은 음보(蔭補)로 창신교위(彰信校尉)가 되어 반란민을 진압하고 고을 백성을 안정시킨 공로로 호조 좌랑에 추증되었고, 이후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문정공[文貞公, 민유중(閔維重)]이 본생친(本生親)이라는 사유로 은혜를 청하여 의정부 좌참찬에 한층 더 추증되었다.
참찬의 후손들이 그대로 부여(扶餘)에 대대로 살면서 번창하고 어질었다. 휘 구(構)는 진사로, 아들이 없어 동생 교관 근(根)의 아들 사섬시 직장 광윤(光尹)을 후사로 삼았다. 직장은 휘 명중(明重)을 낳았는데, 무과에 급제했으나 벼슬하지 못하고 죽었다. 공은 이분의 아들이다.
공의 휘는 진익(鎭翼)이고 자는 덕좌(德佐)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경사(經史)를 섭렵하였다. 문정공이 참찬공의 신주를 고쳐 쓰는 일로 남쪽으로 내려와서 공이 축문을 쓰는 것을 보고는 글자의 민첩함과 정교함에 감탄하기를,
“이 아이는 재주가 아까우니 어찌 시골에 둘 수 있겠는가.”
하고는 함께 돌아가 자제들과 같이 공부하기를 권했으나 공이 어버이의 병을 이유로 사양하였다.
공은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색양(色養)의 도리로 부모를 섬겼고, 거상(居喪)을 잘하여 3년 동안 상복을 벗지 않았다. 사당 뒤에 선친이 심은 배나무가 있었는데 항상 손으로 어루만지며 감개하여 눈물을 흘렸다. 누차 향시에 합격했으나 끝내 급제하지는 못했는데, 운명에 맡기고서 탄식하거나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
평소에 산수를 좋아하고 또 시 짓기를 즐겼으니, 단암(丹巖 민진원(閔鎭遠)) 상공이 전라 감영(全羅監營)을 다스릴 때 공을 청하여 가서 명승지를 유람하고 수창한 시가 많았다. 노년에 모친상을 당해서도 예제(禮制)를 지킴이 더욱 굳건하였으며 눈물이 다 마르고 피가 흘러 눈이 실명할 지경에 이르렀기에 이후로 과거공부를 그만두었다.
당시 종인(宗人)들이 대부분 현달하였지만 공은 곤궁한 생활을 편안히 여겨 이들에게 의지하려는 생각이 없었다. 71세의 나이로 신해년(辛亥年,1731, 영조 7) 4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같은 고을 신암리(薪巖里) 오향(午向)의 언덕에 안장하고, 배위 완산 이씨(完山李氏)를 합장하였다.
아들 셋을 두었는데, 장남 이수(頤洙)는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차남 항수(恒洙)는 남의 후사로 나갔고, 삼남 정수(鼎洙)도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여러 손자는 백경(百慶), 백당(百當), 백간(百幹), 백영(百榮)이다. 공은 사람됨이 인후하여 제부(諸父)를 아버지 섬기듯이 섬겼으며 여러 종친들을 동기처럼 대하였다.
남의 곤궁한 처지를 보면 자신이 굶주리는 것처럼 생각하여 아무리 집이 가난해도 반드시 힘닿는 대로 두루 구휼하였으니, ‘한 고을의 선사(善士)’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의 여러 아들이 내가 문정공의 외손이라 하여 찾아와 명(銘)을 청하였다. 명은 다음과 같다.
주나라 향학의 육행 / 周鄕六行
공이 그 아름다움 지녔으니 / 公有其美
선사라 칭하기에 충분하도다 / 足稱善士
아, 후손들이여 / 嗟哉後人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들어 낳아주신 분을 욕되게 하지 말라 / 夙夜無忝
남은 경사가 너희에게 있나니 / 餘慶在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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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脚註]
[주01] 통덕랑 민공 묘갈 :
이 글은 민진익(閔鎭翼, 1661~1731)의 묘갈이다. 민진익의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덕좌(德佐)이다.
[주02]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 추증되었다 :
민여준은 민유중의 본생 증조부이다. 민유중의 조부 민기(閔機)는 민여준의 둘째 아들로, 백부 민여건(閔汝健)의 후사가 되었다.
[주03] 색양(色養)의 도리 :
자식이 얼굴빛을 화열(和悅)하게 하여 부모님을 섬기는 것, 혹은 부모님의 안색을 맞춰서 봉양하는 것을 말하는데, 자하(子夏)가 효
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孔子)가 ‘색난(色難)’이라고 대답한 데에서 나온 말이다.《論語 爲政》
[주04] 주나라 향학의 육행 :
주(周)나라의 향학(鄕學) 교육 과정에 육덕(六德), 육행(六行), 육예(六藝)가 있는데,《주례(周禮)》〈대사도(大司徒)〉에 “지방
에서 세 가지 일로 모든 백성들을 가르쳐 우수한 자를 빈객으로 삼아 들어 썼다.
첫째는 육덕이니, 지ㆍ인ㆍ성ㆍ의ㆍ충ㆍ화이다. 둘째는 육행이니, 효ㆍ우ㆍ목ㆍ인ㆍ임ㆍ휼이다. 셋째는 육예이니, 예ㆍ악ㆍ사ㆍ어
ㆍ서ㆍ수이다.[以鄕三物, 敎萬民而賓興之, 一曰六德, 知仁聖義忠和, 二曰六行, 孝友睦婣任恤, 三曰六藝, 禮樂射御書數.]” 하
였다.
[주05] 일찍 …… 말라 :
《시경》〈소아(小雅) 소완(小宛)〉에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들어서, 너를 낳아 주신 분을 욕되게 하지 말라.[夙興夜寐, 無忝爾
所生.]”라는 말이 나온다.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 최예심 장유승 권진옥 이승용 (공역)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