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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와 청주에 약주와 막걸리 등, 술의 유래와 기원에 관하여 생각하다!
우리나라는 고조선 시대부터 술이 있었으니.... 대표적으로는 막걸리로 불리기도
하는 입에 착 들러붙는 탁주와 맑고 향기로워 식사 반주에 제격인 청주에,
청주에 여러가지 부재료를 넣은 약주, 청주나 탁주를 증류한 소주등이 있었습니다.
1103년 송나라 사신 손목이 고려를 다녀온후 저술한 계림유사에서 "고려에서는 술을 '수발(酥孛)'
이라 한다" 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어중의 ㅂ은 이후 '수ᄫᅳᆯ' 을 거쳐 “석보상절
(1447)” 에서는 '수을' 로 약화되어 나타났고, 그 이후로 수을→수울→술로 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중국 전한 (前漢) 시대에 유향이 편찬한 동주의 전국시대를 다룬 “전국책에 하 (夏) 나라 우 (禹) 임금의
딸이 의적 (仪狄) 에게 술을 빚게해 아버지에게 바쳤다는데..... 후한시대 허신이 쓴 ”설문해자“
에 보면.... 의적이 빚은건 탁주 (醪 료) 이고 두강 (杜康) 이 고량주 (秫 출) 를 처음으로 빚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술은 전성기를 맞이하지만 사람들의 식량인 귀한 곡식을 허비(?) 하는지라 영조 (1756년)
부터 시행된 강력한 금주령으로 인해... 중국에서 들어온 제조 방법으로 밀이나 콩을 쪄서
띄워 누룩곰팡이를 번식시키는 종래의 방식이 바뀌니, 누룩의 품질과 전통주의 질이 떨어지게 됩니다.
즉 크게 만든 누룩을 서늘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이나 그늘진 곳에 매달아 띄우는 방식이었으니, 저온
발효를 오랜 기간 진행했기 때문에 당화력과 발효력이 우수했는데.... 하지만 영조의 금주령
시기에는 누룩을 관리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은밀하고 빠르게 제조해야 하는지라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상업 양조자는 온돌방에서 누룩을 대량생산하는 반밀폐형 제법을 도입하게 되니 온도와 습도를
통제할 수 있고 미생물을 정착시켜 누룩의 품질을 개선시키는 방법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종 2품 당상관까지 참수되는 등 강력한 금주령으로 인해 밀주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질 보다는 빠르게 술을 만들수 밖에 없었고.... 당연히 제조된 누룩의 당화력과 발효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정조가 즉위해 금주령을 폐지하지만 밀주를 만들던 업자들은 평민을 대상으로 한지라 값비싼
녹두 등 잡곡, 도꼬마리나 여뀌 등의 초재를 사용해 천천히 만들던 양반가의 고급 누룩이
아니라, 저렴한 재료로 빠르게 만든 원가 절감 누룩이 주류가 되면서 품질이 떨어진 것입니다.
대한제국 말기 일본의 영향으로 세수 확보를 위해 주세법을 최초 도입한 직후, 일제강점기
에서 조선총독부는 조선 식민지에 대한 비용 지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세저항이 적은 간접세를 적극 도입했고, 이 과정에서 주세법이 강화되어 시행됐습니다.
당시 주세법은 면허제와 회사의 통합, 조선주(전통주) 와 일본주의 구분이 주요 내용이었는데, 희석식 소주
에 대한 주세가 저렴했던 일본 본토 주세법의 영향으로 희석식 소주는 세금이 저렴했으니 1920년대
말에 마스나가 주조소가 처음으로 희석식 소주를 생산한 이후 조선 업체들까지 등장하며 널리 퍼지게 됩니다.
일제는 1916년 각 가문에서 자가용으로 만드는 "가양주" 에 대해서도 제조 면허를 받도록 했는데,
시판하는 술 보다 높은 세율을 매겼으니, 만들어 먹는 것보다 사 먹는게 더 싸게 만듦으로써
양조 업체들의 술을 사마시도록 유도했으니..... 사실상 가양주 주조를 막으려는 정책이었습니다.
해방후 전통주는 희석식 소주, 청주에 맞선 힘겨운 경쟁을 지속하던중 6.25 전쟁으로
생산설비가 파괴되고 기술자와경영자들이 사망하거나 납북당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는데.... 청주와 증류식 소주와 같은 고급 가양주들도 주 소비자
들이 지역 유지인 옛 명문가 사람들이었으니 이들이 북한군에 처단되면서 몰락합니다.
전후 정부는 쌀 자체가 부족하여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는 판이었기 때문에 쌀이 많이 드는
전통주 제조를 허가하기 어려웠으며, 1965년 주세법이 개정되며 일부 수출용
제품을 제외한..... 미곡을 원료로 하는 전통주는 탁주 까지도 전부 제조가 금지되었습니다.
해외에 내놓을 대한민국을 대표할 전통주가 있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금복주에서 만드는
경주법주가 나왔지만, 브랜드명만 "경주법주" 인 도저히 전통주라 할수
없는 질이 낮은 술이었고, 정작 경주에서 법주를 만드는 명가들은 제조를 금지당했습니다.
1. 소주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에 의하면 몽골인들의 증류주 제조 모습을 담은 몽골 화가 샤라브가
1910년에 그린 ‘몽골의 하루’ 에서 보듯 소주의 기원은 몽골로 추정된다는데..... 몽골의
증류 기술이 정복 활동을 통해 널리 퍼지면서 소주가 널리 사랑받게 되는 계기를 만들게 됩니다.
“술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자연의 선물이니 과일이나 곡물 속의 당분을 효모가 분해하면서 알코올이
자연스럽게 나오기 때문이다. 증류주인 소주는 특별하니 알코올의 비등점을 이용하여 분리해낸 인간
의 노력과 과학 기술의 산물로 좋은 술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이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진 결과가 소주이다”
소주의 기원을 정의하기 어려운건..... 증류 기술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수천년 문명의
발달 중에 점차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니 이미 2500년 전에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방술 (方術) 이 중국으로 전해져서 진시황 때에 이미 다양한 방사 (方士) 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때에 수은을 구워서 다양한 단약( 丹藥) 을 만드는 증류 기술이 발달했고, 알코올도 증류
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하지만 사람들의 기호품으로 증류주가 널리 퍼진 것은
흔히 몽골제국 이후이기 때문에..... 몽골이 소주의 기원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 입니다.
최근 중국 고고학계에서 배갈이라 불리는 중국의 증류주(백주) 는 중국 기원이라는 주장이
대두되었는데, 2006년에 만주 쑹화강 평원 한가운데인 지린성 다안의 한 배갈공장에서
건물을 새로 짓다가 땅속에서 거란 시대의 술고리 (술을 빚는 솥과 쟁반) 를 발견했습니다.
심지어 옆에는 10, 11세기에 만든 4,000매의 동전이 그득한 돈 항아리마저 나왔는데, 고고학자들은 발굴된
술고리를 복원했으니 술을 빚어서 2번을 걸러보니 지금 마시는 것과 거의 비슷한 40∼50도의
증류주가 나왔고 이에 중국은 배갈이 서방이 아니라 중국 자체의 발명품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합니다.
하지만 만주 평원지대인 지린성은 중원과는 멀고 거란족이 살던 지역이니 중원이 아니라 만주에서 첫번째
소주가 나왔다고 보는 것이 맞는데..... 그렇다면 왜 거란에서 첫 번째 증류주가 나왔을까. 유목민인
거란도 거대한 제국을 만들고 몽골까지 진출하여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와 다양한 교류를 했습니다.
이미 아라비아의 증류 기술은 그 전부터 널리 발달했으니 증류주를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한국도
신라 때에 아라비아 및 페르시아의 상인들과 활발한 교류가 있었지만 소주를 만들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거란족이 최초의 소주를 만든 이유는 유목이라는 생활과 만주라는 지리환경 때문으로
유목 생활을 하면서 빠르게 만들수 있고 휴대하기 편한 증류주는 매우 요긴한데,
게다가 겨울이 길어서 알코올을 거르는 데 필수적인 냉각제로 얼음을 쓰기도 쉬웠습니다.
만주 지역에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함께 사는지라 수수와 같은 재료를 구하기도 쉬웠으니, 소주를
대량으로 만들기에 좋은 조건이었으며, 고려는 거란과 여진 때에 다양한 술을 포함한 많은 물산을
수입했으니 최초의 소주는 몽골 침략 이전에 만주에서 발원해서 고려로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고려시대때 소주는 ‘아랄길’ 이라고 불렸는데, 몽고어로 증류시설을 뜻하는 ‘알렘빅’ 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니..... 고려시대에 이미 소주가 만주 일대에서 유행했지만,
황제의 행사에서만 쓰였으며 이것이 세계의 술로 등장한 것은 몽골제국의 등장 시기 부터였습니다.
몽골의 정복 활동과 역참 (驛站) 으로 세계는 하나로 엮였고, 동서양 할 것 없이 몽골의 영향이 미친 곳은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증류주를 만들었는데, 몽골의 영향은 지금도‘아라기’라는 이름에 남아 있으니
몽골, 카자흐스탄, 튀르키예 등 유라시아 대부분의 지역은 물론이고 동남아에도 그 이름은 남아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고려시대에 소주는 아랄길 (阿剌吉) 이라고 기록했고 최근까지도
아라기는 경상도 일대 방언에서 술 또는 술지게미를 의미하는데, 아라기는
아라비아의 증류시설인 ‘알렘빅’ 에서 유래했으니 아랍어로 땀이라는 뜻에서 비롯됐습니다.
술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모습이 땀과 같기 때문인데.... 한국에서는 고려시대 목은 이색(1328∼1396)
의 시에서 “이슬” 이라는 단어로 소주를 표현한 이래 지금도 이슬을 소주와 연관지으니,
연상 단어는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불순물을 없애고 정화되어 가는 과정을 소주라고 묘사한 것입니다.
근대 이후에 차 (茶) 와 도자기가 동서양을 잇고, 현대사회가 인터넷으로
소통하기 훨씬 전에 이미 세계는 소주로, 증류주로 대동단결한 셈인데
소주가 가장 한국적인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술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증류주와 도수 낮은 술을 섞은 폭탄주의 유래도 수천년 전이니, 증류주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폭탄주로...... 20세기 이후 러시아에서 시작해서 한국으로 유입된 폭탄주는
다양하지만, 핵심은 증류주와 도수가 낮은 술을 섞어서 적은 양으로 빠르게 취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기원은 수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니 다양한 술과 약을 섞는 방법은 고대 사제들이 흔히
쓰던 방법이었는데, 3000년 전의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들은 실로시빈이라는
버섯과 소마 라는 알코올 음료를 섞어 먹었고..... 2500년전 흑해 연안의
스키타이인들의 유물 가운데서 마약과 대마초 성분이 담긴 작은 황금 잔들도 발견되었습니다.
고대의 폭탄주는 일부 선택된 사제들이 신과 소통하기 위하여 취한 상태에 도달하려는 노력
이었지만, 반면에 지금의 폭탄주는 말 위에서 서로 잠깐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빈번한 유목민들에게서 시작되었으니, 사정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도 남아 있습니다.
소주와 같은 증류주가 가진 매력은 양질의 술을 쉽게 공급하는 데에 있는데, 하지만 기술의 발달은
양날의 칼이 될수 있으니.... 황실에서 증류주를 관리한 거란족과 달리 몽골제국은
비밀스러운 증류 기술을 널리 확산시켰으니 정복지에 소주를 전해주고 현지인들이
소주를 즐기다보면 몽골에 대한 반감은 사그라지고 소주로 몽골의 세계에 동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피지배인들을 알코올로 다스린 것은 몽골뿐이 아니었는데...‘술 식민주의’라는 용어가 있으니 지배
국가가 피지배인들에게 알코올을 공급하여 저항의 의지를 상실시키는 것으로 러시아가
시베리아의 원주민을 정복할 때, 그리고 신대륙을 정벌한 유럽인이 알코올로 현지의 반발을 눌렀습니다.
소수의 몽골인이 거대한 제국을 통치할 때에 각지에 도수 높은 증류주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공여
했을 것이니.... 지나친 술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며 삶의 괴로움을 달래는 약간의 소주가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동서양을 가로지르며 완성된 증류 기술은 소주로 완성되었으니, 실크로드는 바로 소주의 길이었는데
우리가 마시는 소주 한 잔에는 바로 동서 문명을 가로지르는 인간의 지혜가 있었고, 또 애환도
숨어 있으니 인류의 역사에서 술 한 잔만큼 서로의 경계를 누그러뜨리고 하나로 만드는 음식은 없습니다.
과음의 폐해는 조심해야겠지만, 서로 총칼을 겨누고 죽이는 것보다는 백배 낫지 않은가
싶은데, 한 잔의 소주로 서로를 이해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요즘입니다.
2. 청주
청주 (淸酒) 는 누룩으로 곡물을 발효 (효소에 의한 전분의 당화와 효모에 의한 당분의 알코올
발효) 시켜 탁주를 담근 뒤, 용수를 이용해 자연적으로 침전시키거나, 고운 천으로
술지게미를 걸러낸 맑은 술이니..... 흐린 술인 탁주 (막걸리) 의 반대 위치에 있는 술 입니다.
알코올 도수는 13~ 18% 로 포도주 처럼 식사를 하며 반주로 들기 적합한 술이며 요리에 요긴하다는
점도 비슷한데, 고기의 누린내와 생선의 비린내를 제거해 요리의 풍미를 돋우는 역할을 합니다.
곡물 외에 다른 것이 첨가되지 않은 순곡주는 청주라고 부르고, 부재료가 첨가된 청주는 약주
라고 부르는데, 주세법에서 내리는 청주의 정의는 곡물은 쌀만, 그리고 누룩은 1% 미만
으로 써야 하는데.... 이는 일본식 청주, 곧 사케를 말하니 한국에서 청주 라고
부르던 술을 약주라 해야 하고..... 오직 사케만을 청주로 칭하도록 법이 규정된 것입니다.
전통 누룩 보다 사용량이 훨씬 많은 일본식 입국은 주세법상 누룩에 포함되지 않아 사용에 제한이 없고,
밀, 녹두 등 쌀이 아닌 잡곡으로 만드는 전통 누룩과 개량 누룩의 사용량만 제한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형적인 분류의 원인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니 일제는 주류세를 걷기 위해 1916년에 세분화된
주세령을 내리면서 가양주 제조를 금지했으며 그리고 일본식 청주(사케) 만을 청주로 정의했고 기존의
한국식 청주는 청주에서 제외시켜 약주라고 했는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그대로 쓰는 것 입니다.
청주는 쌀과 누룩 그리고 물로 빚는데..... 멥쌀 보다 찹쌀로 빚은 술이 더 고급이니 찹쌀은 알갱이의
대부분이 심백이며, 아밀로스가 없고 아밀로펙틴만 전분으로 존재하기 때문인데 또 멥쌀의
경우는 찌는 방법으로는 잘 익지 않기 때문에 술을 담글 때 실패할 확률이 있고 단맛이 적은 편입니다.
쌀을 호화시키기 위한 가공법으로는 죽, 떡, 밥의 세 가지 가공법을 모두 사용하며, 각각의
하위로 분류되는 세세한 가공법까지 고려하면 가공법은 엄청나게 다채로운데, 가공법
에 따라 호화 정도가 다르고 이는 당화 및 발효 속도, 결과물의 맛과 향에 영향을 미칩니다.
누룩은 한국식 청주와 일본식 사케의 차이가 결정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으로..... 이는 청주에서
파생된 막걸리와 증류식 소주의 경우 또한 같으니, 일본식 입국으로 밑술을 만들거나,
일본식 입국으로 대부분의 곡물을 당화시켰다면 한국식 청주로 부르기에는 큰 무리가 따릅니다.
청주에 사용되는 한국식 누룩은 익히지 않은 곡물을 빻거나 곱게 가루내어 미생물을 키우는 것인데,
사용되는 곡물도 밀을 필두로 녹두, 멥쌀이나 찹쌀, 기장, 보리, 수수, 조 등 다양합니다.
산곡 (흩임누룩) 은 동아시아에서 흔한 누룩이니 한국에서는 남쪽으로 갈수록 산성막걸리에 쓰는
산성누룩 처럼 얇고 넓게, 북쪽으로 갈수록 삼해주에 쓰는 분곡 처럼 두껍고
좁게 만드는 방식으로 충분히 기후 대응이 가능했고, 흩임 누룩이 당화력이
낮고 효모 개체수가 적기 때문에 좋은 술을 빚기가 어려워 조선 후기에는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한국 보다 습한 기후인 일본은 산곡을 대량생산에 맞게 발전시켰으니 가루 내지 않은 알곡
상태의 멥쌀을 쪄서 익힌 고두밥을 흩어서 곰팡이를 배양하는데 이게 입국이니,
해방 후 일본의 쌀입국을 도입한 한국 막걸리 업계가 1966년에 쌀의 사용이
전면 금지되자 재료를 밀가루로 변경한 것이 막걸리 양조장에서 사용하는 밀가루 입국 입니다.
미생물인 황국균 하나만 인위적으로 종국하여 배양하는 입국과 달리, 한국식 누룩은 여러가지
미생물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 또한 중요한 차이점이니, 따라서 한국식 누룩에는
누룩뿌리곰팡이를 우세종으로 해서 털곰팡이, 황국균, 백국균, 흑국균, 홍국균,
유산균등... 여러 종류의 효모 등이 혼재되어 있으니 풍미가 복합적이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전통 누룩은 대기 중의 모든 균체가 달라 붙는 바람에 술을 성공적으로 양조하기 어렵고 품질이 균일하지
못한데... 벽돌 모양인 된장 메주와 구멍 뚫린 도넛 모양인 고추장 메주를 보면 알수 있듯이, 같은 원료를
사용하고 똑같이 가루를 뭉친 누룩이라도 원료의 형태와 누룩의 크기나 모양에 따라서 미생물이 달라집니다.
누룩을 매달거나 덮어두는데 사용하는 쑥이나 도꼬마리, 짚 조차도 누룩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종류에 영향
을 끼치며, 당연히 누룩을 띄우는 시기도 영향을 미치니, 한국식 청주의 보편화와 품질 향상을
위해서는 전통 누룩에서 양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개별 균체를 선별, 분류하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한편 전통 누룩에서 분리된 미생물들을 펠릿 형태로 뭉친 밀가루에 접종시킨 개량 누룩도 이미 시판중인데,
이는 국순당 계열 회사의 제품에 이미 사용되어 왔으며 인터넷 쇼핑몰을 통한 개인 구매도 가능합니다.
효모는 전분을 포도당으로 분해하는 당화에만 입국을 사용하고, 에탄올 발효를 위한 효모를 따로
투입하는 사케와 달리 청주는 전통 누룩에 효모가 포함되기 때문에 발효가 자동으로 가능하며
알코올 도수는 16 ~ 18% 내외이며, 1년 이상의 장기발효시 발효주의 한계치인 22% 까지 올라가갑니다.
효모의 양이 충분하지 않아 발효가 안정적으로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안정적인 발효를
위해 전통 누룩에 효모를 추가로 넣어주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 제빵용 효모를 넣거나
너무 많이 넣는 바람에 효모를 넣으면 인공적인 향이 나며 술과 잘 맞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청주의 양조에 쓰이는 물은 대개 연수가 사용되는데, 한반도는 지질학적으로 오래된 땅이기 때문에
물의 여과가 잘 되는 화강암 지대의 비율이 높아 전체적으로 수질이 매우 좋으며 연수의 비중이
높으며 경수라도 칼슘이나 마그네슘 이온 함유량이 해외의 석회암 지대의 물에 비해서 적은 편입니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양조에 연수가 사용되어 왔으며, 수질이 특별히 좋은 경우가 아니면 잡균으로
인한 오염도 막을 겸 해서 대개 물을 끓여 사용하는데..... 이 중에서도 칼륨과 마그네슘,
인 이온의 함량이 높고, 칼슘, 망가니즈, 철 이온의 함량이 적은 물이 청주 빚기에 적합하다고 합니다.
3. 막걸리, 탁주
누룩으로 곡물인 쌀을 발효시키는데.... 효소에 의한 전분의 당화와 효모에 의한 당분의 알코올
발효를 함께해서 걸러면 막걸리 다른 말로 탁주가 되는데.... 이 탁주를 용수를 이용해
자연적으로 침전시키거나, 고운 천으로 술지게미를 걸러낸 맑은 술을 청주(淸酒) 라고 합니다.
누룩이란 술을 만드는 효소를 갖고 있는 곰팡이를 곡류에 번식시킨 것을 말하니.... 술을 빚는데
쓰는 당화제이자 발효제로..... 밀이나 찐 콩 등 곡류를 띄워 누룩곰팡이를 번식시켜
만들며, 일반적으로는 밀을 이용하나, 쌀, 녹두, 보리 등 다른 곡물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청주가 지체 높은 양반 지주들의 술이라면 막걸리 곧 탁주는 조선 서민들의 술이니 명나라의 “계림유사
(鷄林遺事)” 에는 고려의 술에 관해 “고려국에는 찹쌀은 없고 멥쌀로 술을 빚는다” 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시대 때 송나라 사신을 따라 왔던 서긍(徐兢) 이 지은 “고려도경”이란 견문록에도 한국 술에 관해
“술의 색이 무겁고 독하며, 빨리 취하고 빨리 깨며 누룩으로 술을 빚는다” 라고 하였습니다.
또 서긍 (徐兢) 이 지은 “고려도경” 에 보면“ 고려 조정에서는 맑은 술을 빚으며 민가
에서는 술을 잘 빚기가 어려워 맛이 묽고 색이 진하다” 라고 하니.....
조정에서 빚는 것은 청주 이고, 민가에서 일반 백성들이 빚는 것은 탁주라 여겨집니다.
우리나라는 35년 전인 1990년 부터 쌀로 술을 빚을수 있게 허락이 되면서 탁주,
막걸리는 물론이고 맑은 술 청주와 약주가 등장하게 되었는데 그 전에는
쌀로 술을 빚을수 없었다는 말이니.... 쌀은 사람이 먹고 사는 귀한 양식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술을 빚지 못하는 금주령을 여러번 내렸고 해방후도 가난해서 보릿고개에 굶어죽는
사람도 흔한지라 쌀로 술을 빚는것을 금지했던 것인데.... 1990년에 쌀 사용 금지가
풀리게 되니 이제 양조장에서 명절 제주로 정종 스타일을 대체한 차례 술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첫댓글 허선생님 그간 안녕하십니까?그동안 별고 없으셧죠?
너무나도 오랜만에 들러서 너무 너무 죄송합니다.
이제부터는 틈나는데로 자주 들러겟습니다.
모처럼 여행기 잘 읽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안녕히계십시요.
수원에서 김성길올림
하아..... 참 오랫만에 뵙습니다.
해가 바뀌어도 늘 건강하신줄 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