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새소식] <인터뷰> 향기로 공감을 꿈꾸는 향기연구소 ‘센토리’ 김아라 대표
<인터뷰> 향기로 공감을 꿈꾸는 향기연구소 ‘센토리’ 김아라 대표
이제 ‘향’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일상의 트렌드가 된 지 오래다. 시각장애인 사이에서도 취미이자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었다. 향은 보지 않고서도 느낄 수 있고, 노력 여하에 따라 의도적으로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취미로 고체 향수를 만들거나 전문적으로 조향을 배우는 일도 적지 않다. 따라서 시각장애인이 가진 후각적 잠재력과 새로운 직업 모색을 위해 조향사 프로그램 개설 기관도 늘고 있다. 이렇게 시각장애인계에도 향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는 요즘, 조향 교육 전문기관인 향기연구소 ‘센토리’의 김아라(여, 33세) 대표를 만나보았다.
* 조향사, 향기로 삶을 꾸미는 일상의 마술사
‘향을 고르는 사람’이라는 명칭답게 조향사는 천연, 합성 향료를 조합해 향기를 개발해 제품에 적용한다. 크게 후각을 자극하는 향수나 생필품의 향을 만드는 퍼퓨머(Perfumer), 식·음료에 첨가해 미각과 후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식향을 만드는 플래버리스트(Flavorist)로 나뉜다. 또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하며 향을 기획하고 강사로 활동하는 센티스트(Scentist)도 있다. 김아라 대표는 센티스트다.
“센티스트는 공식적인 분야는 아닙니다. 저처럼 아카데미에서 교육하며 활동하는 이들을 구분 짓는 명칭이거든요. 향후 함께할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조향사는 주로 화장품, 식·음료, 생필품 회사에서 근무한다. 혹은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의뢰를 받고 향기를 만들기도 한다. 또 전시회장이나 공연장에 향을 접목해 공간적인 디자인을 창출하거나 그림 작품에 향기를 더하는 협업 작업도 수행한다.
“응용하기에 따라 진출 분야가 다양합니다. 문화예술, 홍보 마케팅, 심리치료까지 말이죠. 가령 연극 무대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할 때 시원한 향을 더해 관객에게 이미지를 전달할 수도 있답니다.”
국내외적으로 조향사 관련 국가자격증은 없다. 그러나 각 협회나 사단법인이 주관하는 민간자격을 취득하면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조향사가 되는 데 도움이 되는 전공 분야는 ‘화학’이다.
“합성 향료를 다루다 보니 기본적인 화학 지식이 필요합니다. 향을 구분할 수 있는 후각은 필수고요. 하지만 그보다는 상상력과 창의력, 감성을 최우선으로 꼽고 싶네요. 추상적인 무형의 향에 스토리를 담는 게 조향사니까요.”
꼭 관련 전공을 택하지 않더라도 교육기관을 통한 훈련으로도 조향사에 도전할 수 있다. 현재 센토리에서도 조향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정안인뿐 아니라 시각장애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향기 교육’을 펼치고 있다.
* 장애 비장애의 벽을 허물고 가능성을 보는 향기의 공감
‘센토리’라는 명칭은 향기(scent)와 기관(ory)에서 따왔다. 한편 이야기(story)의 의미도 갖는다. 처음 시작은 스터디 모임이었다고 한다.
“향으로 다양한 것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2012년부터 준비했고 생각이 닮은 사람들이 모여 지금의 회사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그 후 2013년부터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향기 수업을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수강생은 서울맹학교 학생들이었다. 때마침 록시땅 코리아에서 후원을 해주었다.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시각이 아닌 후각으로 세상을 느끼고 공감하게 돕고 싶다는 취지가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록시땅과 맞았던 거죠. 현재도 서울맹학교 학생들과 수업을 하고 있어요.”
그의 동생도 미숙아망막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김 대표는 늘 시각의 부재만으로 다른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 조향사 교육에 마음이 쏠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올해는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성인 교육도 맡았다. 성인반은 진로에 중점을 두고 있어 책임감이 더욱 느껴진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국내외적으로 시각장애인이 조향사로 활동하는 사례는 몇 되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하나의 가능성일 따름이다. 김아라 대표는 바로 그 ‘가능성’에 주목한다.
“시각장애인이라고 모두 후각이 특출하게 뛰어나진 않아요. 하지만 향에 대해 물으면 아주 섬세한 부분까지 느낍니다. 새로운 관점으로 향기를 표현할 수 있는 장점도 있어요. 장미가 화려한 꽃이라는 시각적 이미지가 아니라 촉각의 경험을 살려 부드럽고 은은한 향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죠.”
시각장애인 조향사를 양성하기 위한 환경적 지원은 아직 부족하다.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관도, 진출할 수 있는 틈새도 좁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아라 대표는 그 안에서 가능한 방법을 찾고 전달하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2년마다 진행되는 전시 ‘프라고라마(Fragorama)’도 그중 하나다. 다양한 예술과의 협업을 통해 시각장애인이 정안인과 다르지 않음을 전하고 싶다는 게 김 대표의 바람이다.
“향기에 공감할 수 있다면 시각의 장애는 더는 장벽이 아니에요. 오히려 여러분의 섬세함은 큰 장점입니다. 향기를 좋아하고 즐긴다면, 조향사가 꿈이라면, ‘센토리’로 찾아오세요(웃음).”
(2018. 8. 1. 제100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