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11, 2016
2016년 한국 방문기
10월 15일부터 11월 6일까지 3주 넘게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15일 시카고를 출발했다고 하지만 거의 자정이
가까워 출발해서 한국 시간으로 17일 새벽 인천 공항에 도착했으니 비행시간으로만 이틀을 소비했던 셈입니다.
금년이 아버님이 돌아 가신 1주기이니 성묘하는 것은 당연하고 일고의 한마음 축제가 우리 동기로서는 마지막이란
말을 듣고 꼭 참석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방문 기간을 충분히 잡은 것은 정다운 동창들을 만나고 싶어서 입니다.
첫 날부터 매일 매일이 강행군의 연속이었습니다.
광주를 두번이나 내려 갔고 경상도 구미도 내려 갔습니다.
공식 모임인 서울 청탑회와 한마음 축제에 참석하였고 종로포럼과 카페지기
모임까지 합치면100여명의 동창들을 만난 것같습니다.
거기에다가 개인적 또는 조그만 모임에서 만난 조철웅, 이달호, 임승규, 이내수, 이춘광, 임병훈, 김재욱, 우제길, 박은표, 김형주, 김석준, 백방선까지 합치면 고국을 방문한 보람을 충분히 가진 것같습니다. 아쉬운 것은 박진홍과는 만나자고
몇 차례 약속까지 했으나 시간 부족으로 짬을 내지 못했었고 봉석호는 부인의 간호때문에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 한것은 지금도 찜찜합니다.
거의 매일을 점심과 져녁으로 나눠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출발하기 전날에는 한 곳에서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 모임을 끝내고 곧 바로 두 정거장 떨어진 친구들의 술 좌석으로 이동했습니다.
생각나는 특별한 몇 모임이 있었습니다.
나의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인 이춘광을 만나기 위해서 구미에 내려가 옛 이야기를 하며 어렸을 적의 향수를 공유하였습니다. 전천후 마당발 김상연의 주선으로 만난 이정구와의 술자리도 의외이었습니다. 취하도록 마신 걸보니
내 기분이 상당히 좋았나 봅니다. 이강남은 밤 늦은 시간에 몇 친구들과 함께 자택으로 초대받아 차 대접을
받은데다가 친필까지 적어 넣은,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시간이 꽤 되었는데도 부인으로 하여금 직접 차 심부름을 시킨걸 보면 간이 부어 튀어 나왔거나 평소 부인에게 잘 하고 있던지 둘
중의 하나일 겁니다.
한 마음 전야제의 노래방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서울에서 내려 온 동창들을 위하여 강은수가 마련한 자리이었습니다.
그의 어렸을 때의 모습과 메치가 안되지만 그래서 더욱 그가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전춘옥 부부와의 2박 3일의 강릉여행입니다.
백제 문화 지구는 인위적인 억지 재현일 것같아 관광을 포기한지 오래이었고
신라의 고도 경주는 몇 년전에 들렀으나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지만 이번 강릉 여행은 달랐습니다. 아름 다운 한옥들이 멋지게 뻗어 있는 소나무 숲과 조화를 잘 이루어 고풍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상업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전주의 한옥 마을보다 좋았습니다. 이이와 신사임당의 오죽헌, 허균과 허란설헌의 생가도 좋았지만 선교장의 아늑하고 한가한 정경은
모처럼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경포 호수와 경포대는 주위에 차가 많이 다니어 머릿속에 그렸던
경치는 아니었어도 잘 가꾸면 아름답게 변할 수있을 것 같았습니다. 전 교수 지인의 알선으로 강릉 문화재 위원이
나와 우리들을 강릉 관아, 단오제 기념관과 오죽헌을 안내하며 단오제의 유래도 설명해주고 특히 오죽헌에 관한
해박한 해설에서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오죽헌이 1975년 박정희
주도로 정화되었다는 것도 알았고 이이가 오죽헌에서 태어났지만 그가 자라고 묻힌 파주와 합동으로 기념 행사를 한다는 것, 그의 호 율곡은 그가 자란 파주의 율곡리에서 따 왔다는 것도 나에게는 초문이었습니다. 이이를
모신 사당이 중심에 있고 신사임당을 모신 곳은 그 밑의 한 쪽에 치우쳐 있어 모자의 서열이 바뀌었다는 것도 가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그 억울함을 풀어 주려고 그랬는지 5000원권의 지폐에는 이이,
50000원 권의 지폐에는 신사임당의 초상을 넣어 어머니에게 무게를 더 실어 주었는지도 모른다는 농담을 하였습니다.
또 이이 사당의 현판인 문수사란 글씨가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로 왼 쪽에서 오른 쪽으로 쓰여져 있어 다른 현판의 글씨와는
약간 조화를 이루고 있지 않는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허균과 허란설헌 생가인 초당집을 둘러보고 기념관에 들어서니 해설가가 나오지
않아 마침 그 곳에 잠깐 들른 옆 건물의 공방 직원에게 부탁하였는데 그녀의 속사포같은 30분
간의 해설은 역사에 목말라 있는 나에게 단 비와 같았습니다. 오누이의 가계로부터 시작해서 허란설헌의 글이
알려진건 허균의 공헌이었다는 것, 그들의 아버지인 허엽이 동인의 영수로써 서인인 이이와 대립각을 세웠다는
것, 허균과 서자 출신인 이달과 칠서파와의 관계로 부터 호민론과 개혁사상 까지 그 짧은 시간에 모두 들었고
허균이 같은 대북파인 이이첨의 모함으로 국문없이 사지가 찢겨 나가는 거열형을 당했다는 것도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며칠 후 김상연의 고견에 의하면 그 거열형을 만든 사람이 나의 시조인 유방이었다고 귀뜸해 주었습니다.
그녀의 강의 중에 하나 더 첨가할게 있습니다. 이이가 외가인 오죽헌에서 태어 난것은 그 때까지 남아 있었던 고려시대의 결혼 풍습 때문이었고 그 후 허균, 허란설헌이 시가인 강릉에서 태어 난것은 조선 시대의 풍습때문이라고 합니다.
경내의 무료 찻 집에 들어가 한복 입은 두 여인으로 부터 다과 대접을
받고 리필까지 해주는 후덕한 마음씨에 혹하여 방명록에 몇 자 적는 호기까지 부렸습니다.
그 건너편 공방에는 앞서 만난 그 속사포 아가씨와 재회의 인사를 나누고 손으로 염색한 커다란 베에 수 놓은 여러 작품들을 관람하였습니다. 한 작품이 마음이 들어 값을 물었으나 비매품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동해안을 따라 드라이브로 북상하였습니다.
주문진에서는 수많은 전기 등이 걸어진 오징어 잡이 배도 보았고 어망에서
도루묵을 열심히 떼고 있는 부부도 보았습니다. 더
올라가 양양 낙산사의 의상대와 홍련암도 구경하고 더 북쪽의 고성 화진포에서는 이승만 별장과 김일성 별장도 구경하였습니다. 이승만 별장에는 일고 선배이자 육군 참모총장을 역임하였던 김동신 대장의 현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나라를 세운 대통령이었지만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역사의 논쟁속에 변변한 기념관 하나 없다는
것에 한심하다는 생각을 잠시 가졌습니다.
우리가 구경한 모든 곳의 입장료는 경로라는 전 교수의 말 한 마디에
공짜이었고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든 우리 부부는 입을 닫고 슬그머니 묻혀 들어 갔습니다.
숙소는 특별히 주선한 선교장에 머물렀으나 방은 넓고 바닥은 처음에는 차고
나중에는 펄펄 끓어 냉온탕을 들락거리고 방안 공기는 건조하여 불편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침에 일어나 경내의 리몽 카페에서 여유롭게 차 한잔을 마시며 유리 창 밖으로 보이는 조용한 선교장의 경치는 간
밤의 고생을 말끔히 씻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전국 최고의 바리스타가 모였다는 강릉, 그 곳에서도 제일로 친다는 테라로사에서 커피도 마셔 보고 강릉 명물이라는
초당 순두부와 식혜 막국수도 맛 보았습니다.
강릉은 도시 냄새가 풍기지 않고 아늑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좋았습니다.
약간 첨언하자면 해변 가까이에 있는 난잡한 건물을 없애고 경관 주위에
이리 저리 불규칙하게 뻗어 있는 도로를 잘 정비하면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도시 계획을 한다면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태어날 것같습니다.
경포대에서 프랑스 노 부부를 만났습니다.
40일 예정으로 관광을 왔다고 합니다.
경포대 앞의 호수를 가르키며 아름답다는 칭찬을 아끼 않았습니다.
온지 2주되어
서울을 이미 구경하였고 이제 강릉을 마치고 버스로 안동을 들러 부산까지 간다고 합니다. 서투른 영어로 둘만의
여행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보고자 한 것은 한국의 옛 아름다움일 겁니다.
국민 모두가 옛 것을 지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시카고 특파원 일용이가
후기: 10월 19일 임승규, 이내수와 함께 이춘광을 보러 버스로 구미를 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 사람 모두 우리 동기의 기인들입니다. 이춘광은 초등학교 6학년,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을 했습니다. 너무 빡빡한 스케줄에 갈 시간이 없을 것같아 스마트 폰으로 그의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했더니 아직도 구식 폰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가 너무 보고 싶어 무리하게 시간을 냈습니다. 왕복 8시간이었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졸업 후 한번도 본적이 없는 이달호, 그리고 조철웅을 6시에 만나자고 약속까지 해 놓은 상태이었습니다. 돌아 오는 시간이 늦다보니 만남의 장소를 강남 터미날로 바꾸고 9시 넘어 터미날에 도착했습니다. 3시간 이상을 기다려준 두 동창에게 다시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춘광은 구미에서 사업에 성공하여 그 곳에서 많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사전에 승규에게 들었습니다. 그의 수석 수집은 전국 제일이라고 합니다.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아주 좋았습니다. 훤석제 (춘광이의 호) 석록이라는 두꺼운 도감도 받고 거기에다가 생전 처음으로 금 일봉까지 받았습니다. 한사코 거절했으나 친구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와 많은 어렸을 적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내가 본 그의 어렸을 때 모습, 그가 본 나의 어렸을 때의 모습을 이야기하며 동심으로 돌아 갔습니다. 서로 “해라”를 하니 그렇게 마음이 가벼울 수가 없었습니다. 내년에 마누라와 함께 재 방문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렸습니다.
임승규는 은퇴 후 양평에서 고고히 천연 기념물 닭과 진도개를 사육하며 아주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버스에서 오골계, 또 무슨 닭 (무어라고 했는데 잊어 먹었습니다-알이 푸르스름합니다)이 낳은 알 들을 삶아 와서 꼭 옛날 소풍갈때의 기분이었습니다. 박재열의 풍수 이야기도 꺼냈습니다. 승규 자기의 거처가 풍수의 대길 자리라며…그의 얼굴은 도무지 기억에 없습니다.
이내수는 은퇴후 독서로 소일하고 한문, 한자 글씨 쓰는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나에게도 한글로 쓴 친필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지금은 우주의 생성과 신의 존재 여부를 나름대로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의 결론인즉 우주의 생성을 공부하고 보니 신은 존재하지 않고 결국 신은 인간이 만들었다는 요지이었습니다. 우주를 공부 안했어도 신은 인간에 의하여 만들어 졌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반박하면서 서로 파인대소했습니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다가는 내 무식이 폭로될까봐 한 쪽으로 듣고 한 쪽으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세 사람 모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기인들입니다.
때 묻지 않는 그들을 보니 나의 피로가 헛되지 않아 좋았습니다.
첫댓글 긴 여행의 피로가 아직일텐데 미국 대선에 관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보며'라는 글을 쓰고 이어 '한국 방문기'를 올렸군. 대단한 체력이 부럽네 그려. 함깨 한 2박3일, 덕택에 나도 강릉과 주문진에 대해 많이 배웠다네. 또한 해안선 따라 세워진 단단한 철조망이 푸른 동해물과 쉬임없이 밀려오는 하얀 파도와는 잘 어울리지 않다는 사실을 38선 휴게소에서 뚜렸이 보았고 안보 의지를 더욱 강하게 다짐하고 왔다네. 우리 생전 통일이 된다면 명파해변을 걷고 금강산까지 올라가 보세. 덕분에 여행 함께 해줘서 즐거웠네. 고마워!!.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에서 대리 해설사께서 허균과 관련된 정치적 상황을 설명하다가 사색당쟁, 즉 동인, 서인 , 북인, 남인, 노로 소론, 대북 소북 등 대표적 인물 이름을 놓고 깜빡해 말을 놓고 있을 제, 유박이 누구 누구 아니냐고 그녀를 도와주자 한 권 밖에 없는 '강릉문화이야기' 를 선물로 즉석에서 증정하였다. 유박의 청명함이 그대로 들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녀 왈, 역사에 상당한 전문가이신 것 같다는 평가였다. 미리 공부하고 온 것은 아닐텐데 ... 기억역이 아직도 대단한데 그 비결이 무엇인지 알려주면 고맙겠네.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강릉을 방문했다는 말에 그 속사포 아가씨가 선심을 썼었지. 지금 역사책이 옛날 우리가 배울때와는 많이 다르다는 말을 들었어. 틈나면 한번 체계적으로 읽고 싶어. 머리는 옛날같지 않아도 이해는 잘되니 여러번 읽으면 머리에 남겠지. 석학 상연이가 요약된 역사책을 알아본다고 언젠가 말한적이 있는것 같은데...
즐거운 시간을 보냈구만...ㅎㅎㅎ
네가 강은수에게 전해 주라고 한 후원금은 강은수가 바빠서 몇일전에야 전해 주었다.
매우 고맙다고 하더라...그날밤(11월 9일)강은수가 청고회 회원들을 위해서 맛있는 어묵과 밥.김치를
10인분을 갖과 와서 동창회 사무실에서 맛있게 먹었다.네 이야기 하면서...ㅎㅎㅎ
은수가 전화했더라. 은수가 나에 관해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궁금하네. 청고회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좋은 친구들 만나 보람된 시간 바쁘게 보내고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갔구나 ㅎ ㅎ
너하고는 4번을 만났었지...청탑회, 카페지기 모임, 종로포럼, 김대성 주최모임에서 였지?
유일용 박사 덕에 강릉에 관해서, 전에는 일지 못하던, 더 많은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성에서 내려 오는데 이북 방송이 들리더라. 금강산 관광이 끊겨서 그런지 상가의 경기가 좋지 않은 것같고...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더라.
서울 광주 구미 강릉 그리고 고성 까지 다녀갔으니 이번여행의 동선이 길었다.
만나기 어려운 친구들과도 연락하고 찾아다녔으니 존경스럽다. 바쁘게 건강하게 보내시고 투표날 맞춰 잘 갔구나. 카페를 통하여 자주 연락하자.
머리 속에 기억나는 많은 벗들, 많이 만났지. 임건웅을 청탑회에서만 보고 말아 한번 더 봤으면 좋았을텐게... 자주 카페에서 보자
고국 방문 일정을 바쁘게 그리고 보람되게 마치고 무사히 귀가하였군.
...만남을 통해 가졌던 우정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오래오래 기억되길 ~~
건강하고 기쁨과 평화가 가득하시길 기원하네~^^
강릉에서 돌아 오던 4일 밤, 윤장이, 창웅이, 너 모두 5명이 만나던 날 우리 버스가 연착하여 서로 오랫동안 이야기도 못하고 헤어졌지. 그날 밤 아니면 못만나고 떠날것 같아서...
노년에도 한결같은 우정을 나누는 유박사 여행기에서 친구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네. 전춘옥 부부와 함께한 2박3일의 강릉여행기가 퍽 인상적이네 멋과 풍류와 정이 넘치는 글이네. ,선교장의 정취가 느껴지는 유박사 글에 소생도 언젠가는 그곳에 한번 머무르고 싶네. 오늘 같이 Full Moon이 뜨는 밤 친구들과 함께하면 .얼마나 좋을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고 싶네 늘 건강하고 행복한 날들 비네
맞아! 보름달이 비치는 여름 밤, 나뭇가지의 조그만 흔들림도 들리는 고요한 바람소리에, 베토벤의 14번 피아노 소나타 월광을 들으며 정다운 벗들과 함께 술과 차를 들며 담소를 나누고 싶다. 아무리 주위 세상이 바빠도 그런 여유를 부릴줄 아는 그대가 선물한 그림, 마누라와 상의끝에 액자는 gold frame으로 결정했고 어데다 걸것도 정했지. 그대 마누라에게 차 대접 잘 받았다고 전해주거나. 어부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았지만 그대가 평소에 얼마나 잘해 주었으면 그럴까 생각하고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었다네. 더 늙어 못 움직이기전에 미국에 한번 오시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