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유다인들은
돌을 집어 예수께 던지려고 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좋은 일들을 많이 보여 주었는데
그 중에서 어떤 것이 못마땅해서
돌을 들어 치려는 것이냐?" 하고 말씀하셨다.
...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거룩한 일을 맡겨 세상에 보내 주셨다.
너희는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 때문에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
내가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니
나를 믿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일만은
믿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그때에 유다인들이
다시금 예수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몸을 피하셨다.
** 사순 제5주간 금요일 복음말씀에서 **
** 새 ‘대일 독트린’ 에 거는 기대 **
정부가 대일본 정책의 기조를 큰 폭으로 전환하는
‘한-일 관계 독트린’을 발표했다.
수교 뒤 40년 동안 지속돼 온 ‘조용한 외교’를
‘원칙에 기초한 적극적인 대응’으로 바꾼 것이다.
정부의 문제의식은 타당하다.
지금까지의 인식은
평화롭고 번영하는 동북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본을 숙명적 동반자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
과거사나 독도 문제 등과 관련한
일본 쪽의 도발에 여론이 들끓더라도
될수록 조용한 해결을 추구한 것이
정부의 기본적인 태도였다.
이런 정책이 완전히 틀렸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일본의 우경화는 급속하게 진행됐고,
최근에는 국수주의, 군국주의화 경향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갖가지 도발과 망언도 더 잦아졌다.
이런 상태로는 동북아의 번영은커녕
잠재적인 분쟁 가능성만 커질 뿐이다.
이런 면에서 정부의 정책 전환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우리의 소극적인 대응이
일본 쪽의 무분별한 행위를
은연중에 부추긴 측면은 없는지
자성해 봐야 한다.
아울러 정부에 당부할 것이 있다.
우선 단호하면서도
일관된 태도를 유지해 달라는 것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문제가 생겼을 때는 발끈했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역사 왜곡, 일제 피해자,
독도 문제 등의 현안을 해결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일본 쪽에 분명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국제사회와 일본 안 양심세력의
지지를 확보하는 일도 게을리 해서는 한 된다.
우리가 가진 도덕적 우위에다
정교한 논리, 폭넓은 노력을 결합시켜
국제적인 지지기반을 넓혀가야 한다.
정부가 ‘인류 보편적 가치와 상식’을
내세운 것도 이런 취지라고 본다.
민관 합동기구를 꾸려
겨레의 에너지를 결집시키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일본이 스스로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자폐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성의 있는 조처를 취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최근의 경우처럼 일방적으로
문제를 과거보다 악화시켜 놓고는
오히려 큰소리치는 일도 절대 없어야 한다.
바야흐로 미국·중국·일본 등
한반도의 정세에 큰 영향을 끼치는
주요국들과의 관계가
한꺼번에 조정되는 시점이다.
단기적인 진통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요구라는 측면이 더 크다.
얼마나 슬기와 용기를 발휘하느냐에 따라
몇 해 뒤 우리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진리가 무엇인가?"(요한 18,33)
초췌한 형색
볼품 없는 몰골
연민 어린 동정마저 솟게 하는
홀로 선 죄인에게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거머쥔
최고의 권력자가 묻습니다.
당신의 침묵이
마지막 웅변입니다.
진리 그 자체이신 존재자가
말을 잊은 시간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신
빛을 볼 수 있는 맑은 눈이
세상에서 사라진 시간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 8,32)는
진리의 선포가
먼지처럼 흩어지는 시간입니다.
"진리를 말하는 데 왜 믿지 않느냐?"(요한 8,46)는
당신의 절규가 무너지는 시간입니다.
주님,
당신의 파란만장한 여정은
진리와 거짓의 한 판 전쟁이었습니다.
마지막 고난의 시간 앞에서
당신은 밤새 피눈물의 기도를 바치시옵니다.
"아버지,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세상을 위해서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신
이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요한 17,9)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요한 17,17)
주님,
우리는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진리이신 빛을 피할 수 없어
'진리를 깨우치는 사도'(디도 1,1)로
부름 받은 몸이옵니다.
'진리에 어긋나는 일을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고린2 13,8)
진리의 생명을 몸으로 영하는 몸이옵니다.
하오나 주님,
세상은 아직도 당신께서 머물던
피곤한 전쟁의 때와 다른 것이 없사옵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축복하신
'후손과 땅' 한 가운데서 벌어지는
시기와 음모
간계와 사악
불의와 욕심
아집과 독선으로
'악하고 삐뚤어진 세상'(필립 2,15)이옵니다.
주님,
오늘의 말씀은 진리가 심판 받는
어둔 밤의 전야제이옵니다.
진리를 향한 마음이 닫히고
진리를 향한 돌을 움켜진
핏발선 불의가 일어서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참담한 분노의 광경에
제가 머물게 하시어
끝내 '진리가 나의 빛'이라
고백하는 자로 남게 하소서!
부디
감정 때문이 아닌
국익 때문이 아닌
진리 때문인 생명을 살기 위하여
당신의 지혜를 구하게 하소서!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요한 16,33)
당신의 승전가를 다시 부르기 위하여
진리를 향한 믿음의 빛을
사도의 가슴에 새기게 하소서!
(배경음악은
2000년 8월 15일
한국 가톨릭 문화원에서 주최한
부천시민 통일음악회에서
부천 소사3동 성당 글로리아 성가대와
복사빛 성가대가
운집한 3만 5천 시민과 함께 부른
'터'입니다.)

배경사진 안나 한국 가톨릭문화원 특별회원 |
사설 새 '대일 독트린'에 거는 기대 한겨레 신문 |
묵상기도 스콜 한국 가톨릭문화원 지도신부 |
배경음악 건전가요 소사3동 성당 성가대 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