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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고후 5:17절
제 목 :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일 시 : 2021. 4. 4.
고후 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는 말씀은 매우 복되고 기쁜 소식입니다. 새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새 옷과 새 신발이 때로는 익숙하지 않아서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새 것이 좋기는 합니다. 성도로서 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생각만큼 빨리 달라지고 변화되지 않는 것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말로만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새롭게 되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는 말은 새로운 피조물로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1.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까?
성경은 그 방법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연합하여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시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답하기 전에 다른 질문을 해 봅니다. 왜 불교인들이 새롭게 변화되지 않습니까? 불교인들 중에서 거룩한 사람을 본적이 없습니다. 이슬람인들 중에서 거룩한 사람을 본적이 없습니다. 유교인들 중에서 삶이 거룩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무신론자들 중에서 거룩한 사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에게는 부활의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왜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부활의 능력 때문입니다. 즉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능력, 부활과 창조의 능력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부활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피조물은 결코 할 수 없고 흉내낼 수가 없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나 옛 사람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은 창조의 능력을 가진 하나님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놀라운 기적은 예수님이 바로 부활이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지낸 바 되셨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것같이 자신을 믿는 모든 사람들도 다시 살릴 수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부활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창조사역의 한 부분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은 하나님의 창조의 또 다른 과정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만든 가짜 종교, 죽은 종교에서는 부활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부활을 믿는 사람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날마다 새로운 창조를 경험하고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지는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똑같은 삶의 반복이 아니라 날마다 새롭게 되는 창조의 연속이며 변화의 연속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죽은 행실을 벗어 버리고 날마다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죽은 행실이란 마귀에게 포로되어서 기능이 상실되고 마비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탄 마귀가 사람을 사로잡게 되면 영과 혼과 육체의 기능이 마비되어 버립니다. 특별히 영과 혼의 기능이 마비가 됩니다. 육체는 멀쩡한데 정신은 혼미합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은 성도들이 알고 믿는 진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두움이 사로잡고 있어서 깨닫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인 용어로 혼미케 하는 영이 사로잡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믿는 우리가 볼 때는 안타깝지만 본인들은 기능이 상실되었고 그 부분이 마비되고 가리워져 있어서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천국을 볼 수 있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거듭남이란 마귀에게 포로되어 마비된 영과 혼의 기능이 다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과거에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고, 과거에 전혀 깨닫지도 못하고 믿지 못했던 것들이 깨달아지고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고 회복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은 바로 마귀에게 포로되고 눌려 있는 부분들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눅4:18-19/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고 했으며, 행10:38/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4장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읽으시면서 그 예언은 바로 자신에게 하신 예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0장의 말씀은 누가복음 4장에서 소개되었던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중에 한 가지는 바로 마귀에게 포로되고 눌린 사람들을 자유케 하고 고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이야기하거나 부활주일을 지키면서 마귀에게 눌려 있다는 것은 서로 모순입니다. 우리가 부활주일예배를 드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축복을 체험해야 하고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옛 사람을 새 사람으로 만드시는 일이고, 마귀에게 눌린 것을 고치고 회복시키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다면 가장 먼저 자신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영과 혼과 육체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사야가 예언하였고 또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예수님께서 직접 삶과 사역을 통해서 성취하셨는데 그렇게 하시는 과정에는 반드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 결과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뒤 50일 만인 오순절에 성령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는 120명의 제자들에게 기름 붓듯 임하셨으며, 사도들은 드디어 성령의 권능을 받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실제적으로 병든 자, 약한 자,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해방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과 사도행전의 역사와 교회역사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반드시 예수님의 부활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연결되어야 하고, 그 결과는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자유케 하는 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아무리 이야기 해도 거기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없고 성령님의 강력한 불이 임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보여 주신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사람들이 새롭게 되는 변화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믿는 것이고, 그것은 더 나아가서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던 믿음처럼 하나님을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으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분으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부활의 역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영과 혼과 육이 회복되는 치유사역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됨으로 우리의 죽은 생각과 병들고 연약한 세포들과 죽은 행실 즉 마귀에게 포로되어 잃어버린 죽은 행실을 다시 회복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 안에 있는 아직 회복되지 않는 죽은 행실은 암세포와 같습니다. 반드시 찾아내어 제거해야 합니다. 같은 대구노회에 있는 동창목사님이 계시는데 몇 일 전에 고시부 모임에서 만났는데 동산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했는데 폐암2기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암세포는 반드시 잘라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암세포는 몸을 마비시키는 일을 하기 때문이고,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암세포가 위에 있으면 위가 마비됩니다. 암세포가 간에 있으면 간이 마비됩니다. 암세포가 장에 있으면 장이 마비됩니다. 암세포가 식도에 있으면 식도가 막혀서 죽습니다. 암이 폐에 있으면 폐가 마비 되어 숨을 쉴 수 없어서 죽습니다.
그것처럼 성도들도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새 생명 가운데서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로서 당연히 실천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마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회복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성도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직 마귀에게 눌려 있고 회복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부활주일 예배만 드리지 말고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서 모든 것이 회복되고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는 복을 받아 누려야 합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전도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복음의 빛이 비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전도자가 나타나면 도망가거나 황급하게 피합니다. 아니면 거세게 반대합니다.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듣고 있지만 불편해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복음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전도자가 복음을 전함으로 진리와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들어감으로 영과 혼과 육체가 회복되는 것은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들에게는 쫓겨나야 하는 일입니다. 복음의 빛이 들어가면 어두움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나고 쫓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은 전도자를 싫어하고 복음을 듣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것처럼 설교시간에 목사가 회복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불편해 하는 분들이 있고 듣기 싫거나 부담이 되거나 심지어 기분이 나쁜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원수 마귀가 하는 일은 생각을 통해서 사람을 사로잡고 포로로 만드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원수 마귀는 육체적으로는 연약하고 병들게 하고 그리고 물질적으로는 가난하게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요하게 되고 잘살게 되는 비결을 말씀드리면 너무나 기분이 나쁩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요하게 되는 순간 가난의 영들이 쫓겨나야 되기 때문입니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유식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순간 무지하고 어리석게 만드는 악한 영들은 쫓겨나야 합니다. 그래서 부활을 말씀 드리면서 회복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회복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지만 가장 기본적인 회복은 영적인 회복이며 마음의 회복이며 육체적인 회복입니다. 육체적으로 연약한 상태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대표적으로 한 가지만 소개합니다. 시115:17/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로 내려가는 자들은 아무도 찬양하지 못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찬양은 의인과 정직한 자들의 마땅한 바라고 했으며, 모든 피조물들은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33:1/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라고 했으며, 시148:11-13/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과 고관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이며 12 총각과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13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을 보면 세상 모든 피조물들과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죽은 자들은 찬양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왜 사람들과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하지 못합니까? 영적인 암세포와 같은 것들이 그 사람 안에 존재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가로 막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능이 있고, 기도하는 기능도 있고, 전도하는 기능도 있고, 헌금하는 기능도 있고, 봉사하는 기능도 있고, 가르치는 기능도 있고, 섬기는 기능 등 다양한 기능이 있는데 찬양하는 기능이 마비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죽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찬양하는 기능이 마비되어 죽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전도를 못하는 사람은 전도하는 기능이 죽은 사람입니다.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기능이 마비되어 죽은 사람입니다. 그 외에도 성도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그 기능이 마비되어서 마치 죽은 사람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악한 영들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이 연약하고 병들었다는 것은 그 부분이 마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몸이 병들었다는 것은 그의 생각이 병들었다는 뜻입니다. 그의 생각이 성경말씀과 일치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끔씩 호수나 바다의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호수나 바닷물이 오염되었다는 뜻입니다. 누군가 사람들 몰래 농약이나 공장폐수를 호수나 바다로 흘러 보내기 때문에 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합니다. 마찬가지로 육체가 병들었다는 것은 그의 마음과 생각이 병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는 자기 속에 마비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제거하고 회복시켜야 합니다.
3. 어떤 방법으로 마비된 기능을 회복시키고 새롭게 할 수 있습니까?
세 가지 방법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1) 먼저 예수님의 부활의 기쁜 소식을 들음으로 가능합니다. 2) 두 번째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3) 세 번째는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육체의 병든 부분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그것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잡혀 있어서 그렇습니다. 본인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육체가 연약하고 병든 사람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성경 말씀 위에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말과 의사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위에 놓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의 병과 연약함이 고침받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4. 다시 부활의 기쁜 소식을 말씀 드립니다.
요11:39-44/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장면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나사로를 보세요?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서 썩은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그의 육체가 완전히 부패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의 영과 혼과 육체가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부활을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이 부활을 믿는다면 여러분의 육체는 회복되어야 합니까? 마비되고 연약하고 병든 채로 그대로 있어야 합니까? 부활을 믿는다면 모든 기능이 회복되어야 합니까? 그대로 있어야 합니까? 회복되어야 합니다. 만약 회복되지 않는다면 부활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부활은 신령한 육체로 바뀌는 부활이었습니다. 다시 죽어서 썩게 되는 나사로와 같은 육체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나사로의 부활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사로는 썩어서 냄새나는 상태에서 완전히 새롭게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은 사람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는 일이고,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롭게 되는 회복운동입니다. 그래서 고후 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부활을 믿는다면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하여 모시고 산다면 우리의 영도 혼도 육체도 우리의 가정도, 우리의 경제도, 우리의 사회생활도, 우리의 교회도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부활주일 예배를 아무리 많이 드려도 이런 사실을 모른다면 그것은 부활의 본질과 부활이 주는 축복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부활은 개혁이며 형명입니다. 정치적인 혁명이나 군사적인 형명이 아니라 영적인 혁명이며 정신적인 혁명이며 육체가 건강하게 회복되는 아름다운 혁명입니다. 이것이 개개인에게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가정에서 일어나야 하고 교회와 사회에서 일어나야 하고 회사나 기업체 안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부활의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죽은 행실들과 병든 부분들을 고치고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십니다. 다만 나 자신이 스스로 죽은 부분이 무엇이며, 병든 부분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고치려고 해야 합니다. 마비된 부분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회복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그리고 회복시켜야겠다고 마음에 결단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때부터 예수님이 일하십니다. 내가 마음으로 무엇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작정하면 그 때부터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일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마음으로 40일 작정전도를 결단하니까 그 때부터 주님께서 일하시고 도와주셔서 계속해서 전도하게 하십니다.
구약시대의 다니엘은 왕이 주는 진미를 먹지 않고 채소를 먹기를 결심하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단1:8-9/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말로만 부활을 이야기하지 말고 삶을 통해서 부활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죽은 복음, 죽은 예수를 전하는 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예수님을 전하는 자이며 부활의 예수님을 전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자신도 회복시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회복시킬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과 부활의 예수님을 믿는다면 가장 먼저 자신이 변화되고 자신의 건강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정과 사회와 도시와 나라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더 이상 죽은 예수님을 믿지 말고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부활의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부활은 그것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날마다 새롭게 하고 건강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고 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아멘
◆ 홀로 앉으십시오.
1. 고후5:17절을 읽고 부활과 새로운 피조물과의 관계를 생각해 봅시다.
● 함께 나누십시오.
1. 사람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조건과 그 이유는?
2. 부활은 하나님의 무슨 사역과 그 과정에 속한 것입니까?
3.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중의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4. 성도가 찬양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5. 마비된 것을 회복하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은 무엇입니까?
6. 부활의 예수님이 마비된 부분을 회복시키도록 하는 실제적인 방법은?
1.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곧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연합하여 내가 예수님안에 예수님이 내안에 거하시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새로운피조물이되는 이유는 부활의 능력때문입니다
2.창조사역의 한 부분이며 창조의 또 다른 과정입니다
3.포로된 자들을 자유케하고 회복시키기위해서입니다
4.악한영들이 가로막고 있기때문입니다
5.1)예수님의 부활의 기쁜 소식을 들음으로 가능하고
2)성령의 기름부으심을 통해서 가능하고 3)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바꾸어야합니다
6.자신 스스로 죽은 부분이 무엇이며 병든부분이 무엇인지 깨닫고 고치려고 해야하며 마비된부분이 무엇인지 알고 회복되기를 갈망하며 마음에 결단하면 예수님이 그때부터 일하심으로 회복시키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