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항아리 정지연
밝은 햇살, 시리도록 파란 하늘만 봐선 봄빛이다. 겉모습과 달리 차가운 바람이 짧은 솔잎 휘어잡으며 스러지고 있는 햇볕을 흩는다. 창문이 크게 소리를 낸다. 이런 날 저녁 은 동태찌개가 어울릴듯하다. 베란다로 나간다. 살며시 뚜껑을 연다. ‘덜그럭.’ 날카로운 듯 긁히는 질그릇 특유의 울림소리가 난다. 항아리의 어둑하고 넉넉한 속에 팔을 넣어 무를 꺼내든다. 소래기 뚜껑이 다시 소리를 내며 제자리에 앉는다. “제발 그것 좀 버리자. 무슨 보물이라고….” 뒤뚱 맞게 걸리적거린다고 소리가 날 때마다 듣는 날 선 소리다. 나는 또 밴댕이 속이 되어 답답해진다. ‘어떻게 알거나? 내 속내를.’
베란다에 두 개의 독이 볕을 쬐고 앉아있다. 간장독과 된장독이다. 지금은 명분에 맞지 않게 마른 나무새나 가을에 뽑은 무와 배추를 넣어 보관하고 있다. 빈 항아리다.
결혼한 다음해 담장 밑에 작은 장독대가 있는 사택으로 이사를 했다. 엄마는 먼 옹기점에서 이 아이들을 직접 골라 리어카에 싣고 오셨다. 볏짚을 태워 소독하고 깨끗이 닦아 장독대에 올려놓으셨다. 메주 넉 장과 필요한 재료들을 싼 보따리를 내놓으셨다. 장맛은 내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방법을 알려주시고 장 담는 날과 소금물 비율이 적힌 쪽지만 놓고 가셨다. 정월, 손 없는 날, 길한 날과 말날 (馬日)처럼 장 담그는 날이 따로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정성이 담긴 중요한 행사라는 것도.
생애 처음 내손으로 장 담그는 날. 걱정으로 떨리면서도 설레던 날이다. 메주덩이들과 마른고추, 숯까지 준비를 끝낸다. 제일 중요한 소금물을 만들기 위해, 쪽지대로 깨끗한 물을 정한 수처럼 조심조심 붓는다. 소금을 넣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저었다. 저울도 없이 양동이와 바가지로 맞추고 달걀을 띄워보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매주를 넣은 항아리에 소금물을 붓고 빨간 고추를 띄운다. 밖으로 메주가 떠오르지 못하게 대나무살도 열십자로 휘어 눌러준다. 항아리 속에 넣은 불붙은 숯의 ‘지지직….’ 소리로 마무리된다.. 이제 시간과 햇볕, 바람의 몫이다. 뚜껑을 열었다 닫기를 세 달.. 간장과 된장으로 가른다. 메주를 건져 치대어 덩어리를 없애 남은 항아리에 꼭꼭 눌러 담는다. 이날, 이 아이들은 간장독과 된장독이란 이름을 얻었다. 국화꽃이 필 즈음까지 다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다. 자연과 공유하는 기다림과 정성의 인내를 배운다.
‘장맛이 좋아야 집안이 잘 된다는데….’ 엄마가 손가락으로 맛을 보신다. 장맛을 잘 냈다며 대견해하셨다.. 자연과의 합작품, 맛의 기본, 내 장맛의 씨 간장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장맛에 숨어있는 삶의 지혜, 큰 시험을 통과한 것처럼 뿌듯했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부터 나를 따라다니며 나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맛을 만들어내는 은밀한 사이가 되었다.
아파트에 살게 되니 장맛들이기가 힘이 들었다. 옥상은 햇볕이 강해 된장이 소금이 솔아 굳어지고, 이 강해 된장은 소금이 솔아 굳어지고, 베란다는 햇빛과 바람조절이 잘 안 된다. 이 아이들과 나는 욕심을 내려놓았다. 남은 속을 파먹으며 이때부터 이 아이들은 몸이 비어가기 시작했다. 좋은 맛을 내려면 좋은 재료에 깨끗한 물, 알맞은 햇빛과 바람의 허락이 필요하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이런 자연의 이치를 잘 알았기에 정성을 다해 장을 담갔나 보다.. 기다림을 감사로 소중하게 여겼나 보다..
지금은 선배 언니와 함께 남편친구 부부의 농원에서 ‘전통 장 담그기’에 참여하여 직접 장을 담가온다. 한 독에 같이 세말을 담아 숙성이 끝나면 똑같이 나누어 가져온다. 시골이라 ‘솔숲 바람, 맑은 햇빛과 깨끗한 물’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장맛이 좋다. 함께 담근 많은 장들은 똑같은 소금물과 재료, 똑같은 환경에서 숙성시켜도 항아리마다 맛이 다 다르다.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에 맞는 삶이 있듯이 자기만의 ‘손맛’이 있단다. 여기에도 오묘한 자연의 섭리가 존재한다. 인생의 참맛, 삶의 지혜를 배운다. 장을 퍼 올 때마다 ‘인생의 장맛’을 찾아 준 엄마가 생각난다. 보고 싶은 엄마.
예전엔 장맛이 좋아야 집안이 잘 된다고도 했다. 그만치 장 담그기는 삶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행사였다. 그러나 요즘은 장맛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밀폐된 김치통과 냉장고가 장독을 대신하니 항아리도 필요치 않다. 꼭 물려주고 싶었던 내 장맛도 내게서 끝이 날 것 같다. 내가 떠나고 나면 빈 항아리 이 아이들은 덩치 큰 애물단지가 될 것 같다.
이제 장독은 마음에 묻어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몇십 년 세월을 함께 늙어 빈항아리가 되어 추억만 먹고사는 이 아이들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닦을 때마다 만져보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엄마의 손길을 지울 수가 없다.
‘ 달그락’ 소리가 속 깊은 빈항아리에 그리움을 채운다. 끝이 없는….
첫댓글 톡톡 튀는 표현과 묘사가 무딘 감성을 자극합니다. 빈 항아리에 얽힌 추억이 스물스멀 올라오는 듯합니다. 자연과 공유하는 기다림과 정성의 인내를 느끼게 합니다.
장독은 마음에 묻기로 하고 나도 빈 항아리가 되어 그리움을 채우고~~~
봄비 오는 날 감성 한스푼 먹은 글 잘 읽었습니다.
빈 항아리 속에 담긴 꽉찬 추억과 지혜가 낯익기도 낯설기도 할 시간의 발자욱을 따라잡는 작은 보물창고 같네요 늘 감성의 춤을 추는 어메이징한 표현력, 오늘도 리스펙트 합니다
물 흐르듯 잔잔하면서 공명을 주기가 어려운 것인데,
그것을 해내시는 선생님글 멋지십니다.
배독합니다.
덕분에 좋은 글
감상 잘 했습니다.
빈 항아리에서는 잘 발효된 장맛만 담기는 것이 아니군요. 묵은 장처럼 감칠맛 나는 작품에서 저도 어깨 너머로 배웠던 옛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의
지혜가 담긴 추억과
자연의 이치가 주는
감사를 담뿍 느끼셨으니 행복하시겠어요.
이미 고인이 되신
울엄니와 함께 장과
된장 담그기를 하지
못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빈 항아리에 소복 쌓이고
이해인 수녀님의
시가 떠오르네요.
엄마의 사랑은
죽지도 않고
날마다 새롭게 부활하여 나에게
살이 되고 뼈가 되고 피가 되네.
오늘도 엄마의 사랑의 새옷을 입고
살아갈 힘을 얻는
기쁜 날 되셔요.
멋진 글 고맙습니다.
비움은 채움으로 통한다지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