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라바조의 ‘병든 바카스 신’
카라바조(1571-1610)는 화가로서 극적인 생애를 살다 갔다. 극렬했고, 활동적인 그의 삶이 그림에 투영되었다. 그래서 대표적인 바로크 화가로 손꼽는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후광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
이제 그림을 통해서 그의 삶도 살펴보자. ‘병든 바카스 신’은 1593-4년 경의 작품으로 젊은 시절에 그렸다. 이때는 가난하여 여러 작업실을 전전하면서 일감을 찾아 다녔다. 자신의 독립된 작업실을 가진 것은 1595년이었다. 카라바조는 작품 속에 병든 자신의 모습을 냉소적으로 표현했다. 미래에 대한 야심과 실패 사이를 오가고 있는 자신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은밀히 표현했다. 그림에 등장하는 청년(바카스 신)은 북부 이탈리아 사람들의 전형적인 얼굴 모습이다. 자신의 고향인 롬바르디아 청년들은 일반적으로 검은 머리카락과 다소 짙은 피부색, 그리고 검은 눈동자를 가졌다. (이 시기에 그린 ‘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한다.)
카라바조는 1571년에 북부 롬바르디아 지역의 밀라노에서 출생했다.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죽은 지 7년 뒤이다. 당시에 페스트가 대유행을 하여 카라바조의 가족은 밀라노, 카라바조 등으로 피신을 다녔으나 7세 때 할아버지, 아버지를 잃고 포도밭을 유산으로 받았으나 미래를 보장할 수 없었다. 그가 어린 나이에 화가가 되기로 한 것은 불우한 환경 때문이었으리라고 한다. 13세 때 밀라노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스승은 티치아노의 제자였다.
특히 ‘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은 카라바조의 양식으로 불리는 테네리즘(극도의 명암법을 적용하여 전면은 빛으로, 배경은 어둔 검은 색으로 표현한 양식으로 카라바조의 대표적인 양식이라 한다. 즉 어두운 곳은 더 어둡게, 밝은 곳은 더 밝게 표현했다.)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병든 바카스 신’도 테네리즘을 적용했다.
그림의 주인공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얼른 구분이 가지 않는 것도 카라바조 그림의 묘미이다. 과일은 벌레 먹은 과일, 흠집 등을 표현하여 자신의 처지를 은밀히 드러냈다. ‘병든 바카스 신’을 좀 더 보자. 병이 들어 움푹 들어간 눈을 그렸다. 오른쪽 어깨의 일부는 요염하게 그렸다. 이 청년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롬바르디아의 시골 청년이 로마에 발을 들여 놓았으나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던 청년이 무엇을 바라보았을까? 화려한 로마의 미술세계를 냉소적으로 바라 본 것은 아니었을까?
일부 역사가들은 이 그림을 카라바조가 말라리아에 걸려 로마의 빈민구호 자선단체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린 자화상이라고 한다. 다른 학자들은 말라리아가 아니라 말을 타다 떨어져서 입원했을 때의 자화상이라고 한다. 어쨌거나 자화상이라면 이 그림을 그릴 때의 그의 처지가 무척 고단했으리라고 느껴진다.
르네상스 때에 바카스 신을 그렸다면 이렇게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고의 찬사와 더불어 최고로 화려하게,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그것도 지상에서는 만나 볼 수 없는 천상의 아름다움을 그렸을 것이다. 이 그림은 어떤가? 손톱에 때가 끼어 있는 병든 시골 청년의 모습으로 그렸다. 어둠 속의 우울한 모습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희미한 냉소가 관람자를 당혹하게 한다. 상식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은 관람자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이 입을 반 쯤 벌리고 있다. 이 그림은 카라바조의 어려운 시절에도 무엇인가 미래에 대한 도전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승리의 월계관을 쓴 병든 바쿠스는 지금은 비록 병들고 보잘 것 없지만 언젠가는 로마의 미술계에 이름을 날리겠다는 야망이 들어있다.
‘병든 바카스 신’이 보여주둣이 카라바조의 그림에는 자신의 자의식을 화면의 전체에 드런는 것을 주저하지 않은 화가이다. 카라바조가 활동하던 16-7세기는 아름다움을 찬미하단 르네상스 화가들은 무덤으로 갔고, 아름다움을 과장하던 매너리즘 화가들은 여기저기서 서로 후원자를 찾기 위해 경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의 변방에서, 시대의 경계에서 머물고 있는 카라바조는 병실에 앉아서이지만 그들을 냉소하고 비웃고 있다. 카라바조의 시대를 예언하면서.
우리는 그림 감상을 할 때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그림도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문학 작품처럼 시간따라 사건이 전개되면서 이야기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긴 이야기의 한 순간을 포착하여서 표현했으므로, 우리는 상상을 통해서 긴 이야기를 복원하는 것이 회화 감상의 맛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