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경북 의성에 계신 김영원 장로님께서 소천하셨답니다.
한국 기독교 생명농업운동의 큰 어르신이고 선구자이신
실천가이자, 운동가, 사상가라 할수 있는 분이십니다.
지난 2003년에는 [효선교회 100년의 숨결 - 평신도의 교회사]를 집필하심으로써
교회의 역사에 대한 깊은 애정도 보여주시기도 했습니다.
지난 9월 12일에 정주목회훈련으로 뵐 때만해도 정정하셨었는데
이 추운 겨울, 새해 벽두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빈소는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경북 의성의 효선농산 주택에 그냥 모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례일정은 4일장이므로, 오는 4일(목) 발인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애도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그분의 마지막 길에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음성 농촌선교훈련원에서... 홍승표 올림.
▶ 김영원 장로님 소개
식즉명(食卽命) ― 먹는 것이 생명의 건강을 결정합니다.
김영원장로는 1931년 경북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에서 13대째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는 병약한 아버님을 도와서 농사일과 집안 일을 거들고, 나이가 들어서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학업을 접고 농사를 지었다.
5대째 독실한 기독교 집안으로 33세 때 장로가 되어 1969-1985년까지 16년 동안 목회자 없는 고향의 교회에서 설교를 해왔다.
1978년 김영원장로는 과수원 농약살포 도중 농약에 중독 되어 쓰러진다. 농약 중독 사건은 농업의 철학을 세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김영원 장로는 “그 때 돈을 버는 것보다 생명이 소중하고, 내 자신의 생명만이 아니라 작물도, 그것을 먹는 사람들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라고 말한다.
김영원 장로는 그 뒤 자연스럽게 농민 운동, 민주화 운동, 유기 농업 운동, 환경 운동에 참여한다. 한국기독교 농민회 전국회장, 유기농업실천협의회 전국회장 정농회 이사, 우리농산물 먹기운동 공동의장, 기독교 사회운동연합 공동의장, 낙동강살리기 운동 공동의장 등을 거치면서 수백회의 강연과 유기농업 철학 전파에 전념하게 된다. 그를 일컬어 유기농업 운동의 1세대라고 할 만하다.
그는 지금도(2005년) 파킨슨병에 힘든 몸을 가누고서 번역에 몰두하며 청탁받은 논문을 작성한다. 많은 유기농 운동가들은 노구에 투병을 하면서도 생명 농업 운동을 활발히 펼쳐가는 그를 한국 유기 농업의 대부로 여긴다.
지금은 그의 자식(효선농산대표 김정욱)도 그가 걸어온 길을 따라, 농사도 유기농법으로 짓고 지역의 농민 운동과 환경 운동을 도맡아서 하고 있다. 김영원 장로는 유기농업으로 시작할 초기는 너무나 힘이 들었다고 말한다.
“발에 밟히는 건 낙과들이요, 그나마 앙상한 가지에 마치 탱자처럼 매달린 사과는 심식충에 의한 피해로 스펀지 같고 9월이 되면 내년 봄에 피어야 할 꽃이 벌써 다 피어나니 집사람은 아예 밭으로 가지 않으려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3~4년은 아무것도 거둘 수 없었습니다.”
마냥 포기할 수 없어서 농약을 살포하는 대신 병충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미생물, 초목회, 막걸리, 식초, 마늘즙액, 목초액, 흙설탕 발효액등 갖가지 민간농법이 총동원하게 된다. 이렇게 생산된 과일과 농산물은 겉모양에서 보잘 것 없어 시중 출하가 어려웠다. 누가 벌레먹은 배추를 사겠는가? 생산된 농산물을 활용한 가공식품을 생각하게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야채효소를 제품화 하게 된다.
“이제 이십 몇년간 유기농업으로 농사를 짓고 있지만 선택을 잘 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의 가족은 14대를 이어서 전통 농법을 고집하는 보기 드문 농가를 이루었다. 김영원은 효선농산의 실질적인 창업자이다.
한국 유기농업 운동의 1세대
1930년 경북 의성 춘산면 효선리 출생
5대 기독교 집안으로 33세에 장로가 되다
1969년-1985년까지 16년간 목회자 없이 강단에서 설교
과수원에서 농약살포중 쓰러짐 (1978)
농약의 위험성에 대한 고민, 유기농업을 홀로시작
한국기독교 농민회 전국회장
오기농업실천협의회 전국회장
정농회 이사
우리 농산물 먹기운동 공동의장
기독교 사회운동연합 공동의장
낙동강 살리기 운동 공동의장
기독교사회운동연구원 집행위원
한살림 생산자협의회 초대회장
가톨릭농민회 유기농업자문위원
전국귀농운동본부 고문
국민은행 환경상(1회)
안동 MBC 향토문화상
<농민예언자 김영원의 들소리> (흙과 쟁기)
<효선리 농부의 세상사는 이야기> (종로서적)
<눈뜬 장님밥상, 김영원의 유기농업이야기> (소나무)
▶ 김영원 장로님 책 소개
<김영원의 유기농업 이야기 “눈뜬 장님 밥상”>
출판사 : 소나무 / 출판일 : 2002년 10월
주요내용
1부 ― 왜 유기농업인가? (환경 생태학적에서 바라본 우리 농업의 미래)
2부 ― 유기농사 짓기
3부 ―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미국은 늘 한국에 식량을 공급하지 않을 것이다.”
“21세기, 사람들은 밭으로 돌아간다.” 등 인문사회적 에세이가 실려있음.
<효선리 농부의 세상사는 이야기>
출판사 : 종로서적 / 가격 : 4,800원
주요내용
; 농업은 정말로 포기되는가 / 유기농업은 공존과 평화의 원동력 / 벌레가 먹을 수 있어야 사람도 먹을 수 있다. / 자연과 공존 못하면 이웃관계도 끊긴다.
<농민 예언자 김영원의 들소리>
출판사 : 흙과 생기
<효선교회 100년의 숨결 - 평신도의 교회사>
출판사 : 대한기독교서회, 2003년
▶ 김영원 장로님 방문기
2004년 9월21일 (정원재 목사, 5기)
장소: 의성 효선리 김영원장로
김영원장로님은 뵙지는 못했지만 책을 통해서 알고 있는 분이시다. 또한 우리나라 생명농업대부이시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갔다. 도착해 인사를 드리고 장로님을 뵈었다. 15년전부터 파킨스병에 걸려 말하기 힘들 정도로 몸이 떨리는 데도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 떨림을 완화시켜주는 약을 드시고 말씀을 이어가시는데 얼굴이 정말 환하다. 여러 가지 한국농촌이 직면한 문제 쌀개방이라던지 가족제도의 붕괴등을 이야기하시며 꼼꼼하게 자신의 삶과 연계해 말씀해 주신다 . 몸이 불편하신 가운데서도 10월에 있을 유기농관련 모임에서 발제하실 원고를 차목사님께서 대신 읽으며 우리는 중간중간 궁금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질문했다. 마음속에 와 닿는 말씀은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의 가치를 알 수 있는 척도는 농업이라는 말씀이었다. 과연 우리나라는 농업을 어떠한 가치로 여기는가?
평생 농사꾼으로 사셨는데 어찌도 그리 해박하고 전문적인 지식이 많은지 전문가들도 와서 배워갈 정도란다. 그 이유는 우리보다 농업선진국인 일본의 서적들과 학자들을 정기적으로 만나 연구하고 삶을 통해 적용함으로 얻어진 진짜 지식이다. 점점 지구는 온난화다 사막화다 이상기후로 기아시대는 다가오는데 농업을 포기하는 우리나라는 도대체 제정신이냐고 호통을 치신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가 일제신민지 시대를 살았듯이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신다. 이러한 시대에 대안은 “공생공빈” 이라 하시며 너무 많이 먹고 가지려하고 나누려하지 않는 인간의 악한습성을 꼬집으시며 하나님께서도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라고 말씀하셨음을 다시 깨우쳐 주셨다. 왜 김영원장로를 “농민예언가”라 하는지 알 것 같다. 이렇게 하루를 마감하며 맛있게 지어주신 저녁식사를 하는 중 부인되시는 권사님께서 아침식사 준비 할 터이니 먼길 가시는데 먹고 가란다. 차목사님은 원래 아침은 않먹기로했다고 사양하시자 권사님말씀이 “우리 집에 엘리야의 기름병 있는 것 모르세요?” 라며 꼭 먹어야 한단다. 이집엔 일년이면 많게는 1천명의 사람이 손님으로 온단다. 그런데 지겹고 짜증날 법도 한데 정말 정성을 다해 손님을 대접하는 모습을 보며 지금의 장로님이 있기까지 아내와 아들 며느리가 함께 했기에 가능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주님께서 무엇을 하던지 주께 하듯 하라 하셨는데 이분들의 삶을 보며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이것이구나” 라는 생각과 과연 나는 나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과 불이익이 되는 사람을 나누어 대하지 않았다 되돌아보게 된다. 떠나는 길 직접쓰신 “효선교회 100년의 숨결”이란 책을 일일이 싸인해서 주시며 문밖까지 나와 배웅해 주신다. “내가 앞으로 살면 얼마나 더 살겠냐며”....
이기선 목사 (9월 21(화)일)
장소: 의성 효선리 김영원 장로님 댁 방문
강문필 선생님 댁에서 아침을 먹고 예배를 드린 후에 의성에 계신 김영원 장로님 댁을 방문했다. 김영원 장로님은 기독교 농민회부터 시작해서 농민운동의 대가라 할 수 있는 분이라 한다. 처음 방문해서 뵙는 분이지만 그 모습에서 그 분이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김영원 장로님은 농민 운동을 하면서도 그때부터 관행농법이 아닌 유기농법이 대안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지금까지 농사를 유기농법으로 짓고 계신다고 한다. 김영원장로님댁은 김영원 장로님 내외분과 그리고 아드님이 김영원 장로님의 대를 이어 농사를 짓고 계신다. 이렇게 그의 자손이 대를 이어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이 정말 훌륭?? 보였다. 그것도 농사를 대를 이어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그 아드님도 열심히 농사를 지으시면서 농민회에서 열심히 활동하시고 농촌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러면서 김영원 장로님은 대가족 제도의 부활이 문화의 부활이라고 말씀하신다. 또 김영원 장로님과 같이 대화를 나누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몇 년안에 정말 식량위기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자연은 황폐해지고 그로인한 자연 기이현상, 그리고 농촌의 몰락등으로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식량위기에 닥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식량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대안농법과 대안사회의 대안은 공생, 공빈이라고 말씀하신다. 즉 모두가 가난해져서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만 부유해지고 농촌은 가난해지는 이런 기이현상으로는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갈 수없다는 것이다. 도시든 농촌이든 모두가 가난해져서 나누는 삶을 삶아갈 때 다같이 함께 살아나갈 수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참 답답함과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김영원 장로님이 말씀하신 이 위기들이 지금 내 마음에 그리고 내 눈에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많은 고민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박유일 목사 (5기)
9월 21일(화) 장소: 김영원 장로님댁
마늘로 유명한 의성, 김영원 장로님댁은 94년에 한번 와보았던 곳이다. 장로님은 병으로 불편하신 몸인데도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셨고 바른 자세로 정성껏 대하여 주셨다. 아프시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호전되어 보이셨다. "누구에게나 질병은 오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뜻 없이 병을 주시는 게 아니다. 병을 가지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걸 배워야 한다. 병을 모시고 사는 거다."라고 말씀하시는 장로님은 지금도 번역작업과 집필활동을 하고 계신단다. 손수 집 지었던 얘기를 하시던 중에, 목수의 4대 덕목을 알고 그것만 할 줄 알면 누구나 집을 지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것은 첫째, 다림줄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물반 곧 수평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셋째로는 각도 곧 직각(90도)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넷째로는 용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로님은 이것은 목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하셨다. 다림줄을 볼 줄 안다는 것은 수직을 볼 줄 안다는 것으로 정의를 세우는 것을 의미하며, 물반 곧 수평을 볼 줄 안다는 것은 평등을, 각도를 볼 줄 안다는 것은 편향이 없이 사람을 대하는 것이며, 용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곧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하시며 교회는 그렇게 지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과연 귀담아 들을 말씀이라고 생각되었다. 기독교 농민운동의 대부라고 하면 운동가로서의 모습을 더 강하게 떠올릴 수도 있겠으나 직접 만나본 장로님의 모습은 올곧고 진실된 신앙인의 모습이셨다. 이번이 차목사님과 우리일행을 보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시며 성심껏 대해주시는 태도가 모두의 마음을 울린다.
[사진1] 김영원 장로님의 최근의 모습 (2006년 9월 12일) : 당시 번역중이시던 책의 내용을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계신 생전의 김영원 장로님 모습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