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우재공 묘사(墓祀)를 11월 08일 토요일 오전 청기 죽골(注洞) 공(公)의 산소에서 올렸다. 우재 묘사에 대하여 2007년 11월 28일 글 258번에 ‘우재(愚齋) 산소’와 11월 29일 글 259번에 ‘우재(愚齋) 묘사’ 두 편 글을 쓴 바 있다. 올해 제사라지만 제사야 매년 같은 것이니 상당 부분 중복 되겠으나 기억과 기록을 위하여 정리한다.
시제(時祭)와 묘제(墓祭) 작년 2007년 우재공 시사 관련 글에도 이야기 했지만, 통상 시제(時祭), 시사(時祀)라고 부르는 제사는 묘사(墓祀), 묘제(墓祭)가 맞다. 시제(時祭)는 원래 중국에서 음력 2,5,8,11월에 고조부 이하 조상을 함께 모시던 제사다. 장소는 사당이나 또는 사당이 없을 경우 정침 곧 집 대청에서 지내는 제사로 산소에서 올리는 묘제(墓祭) 와는 다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가을에 산에 가서 지내는 제사를 시사(時祀)라고 부르고들 있으니 필자도 그를 따른다. 묘사(墓祀)와 집에서 지내는 제사가 다른 점 산소에서 드리는 제사는 집에서 지내는 제사와 몇 가지가 다르다. 첫째 조상 무덤에 직접 제사하니 신주(神主)나 지방(紙榜)을 쓰지 않는다. 둘째 유식(侑食)을 하지 않는다. 유식(侑食)이란 신(神)에게 식사를 권하는 절차로 구체적으로는 술을 잔에 더 따라 채우는 첨작(添酌)과 숭늉을 올리는 진다(進茶) 등인데 묘사(墓祀)에서는 하지 않는다. 셋째 묘사에는 지신(地神)에 대한 제사 산신제(山神祭)를 따로 드린다. 죽골 우재공 산소 있는 골짜기는 한자로 주동(注洞)이나 부르기는 ‘죽골’ 이다. 큰 산소 있는 곳이 대개 그렇듯이 있는 죽골도 옛날 호랑이라도 나왔을 깊고 깊은 산중이다.
사진: 우재 산소 구글 지도 옛날 청기에서 가려면 마을 뒷재를 넘었겠지만 지금은 자동차로 편하게 바로 아래까지 간다. 산소로 올라가기 재실(齋室) 근처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사진: 우재 공 산소 초입 열 댓 명 되는 이날 제관(祭官) 면면을 보니 필자만 내년이 예순일 뿐 60대 중반이 어린 편이고 대개 70 대다. 제물을 지게에 진 분도 70 객(客)이다. 몇 년 더 있으면 산에 올라가지 못해 시사 못 지낸다는 소리 나오지 않을는지.
사진 : 우재 공 산소 가는 길 중턱에서 산소 가파른 산길을 약 10분 오르면 우재공 묘역(墓域)이 나타난다.
사진: 산소 입구 기울어진 망주석(望柱石) 산소 앞에 가니 망주석이 기울어졌다.
사진: 기울어진 망주석. 바로 세우려고 힘을 쓰는 분은 우재공파 종손(宗孫) 병기(丙基) 씨로 필자와 재종(再從) 간이다.
사진: 여럿이 달려 들어 망주석을 바로 세웠다. 산신제(山神祭) 우재공 제사를 준비하는 동안 토지지신(土地之神)에게 간단히 예를 올렸다.
사진 : 산신제 이날 산신제에 쓴 축(祝)은 다음과 같다.
뜻은 대략 다음과 같다. 아! 모년 모월 모일 아무개는 감히 토지신(土地神)에게 아룁니다. 우재공 산소를 신께서 보호하고 은혜를 주시어 감히 술과 안주를 제물로 받들어 올리오니 흠향하소서. 유세차(維歲次) 란 제문, 축문 첫 머리에 관용적으로 쓰는 말로 굳이 풀자면 ‘이 해의 차례’ 곧 지금이 언제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유세차 다음에는 모년 모월 모일(某年 某月 某日)과 그 간지(干支)가 나온다. 그 다음 유학(幼學) 아무개는 제를 올리는 사람이요, 감소고우(敢召告于)는 (유학 이) 감히 어느 분에게 아뢴다는 뜻이니 우(于) 다음에 제사를 올리는 대상이 나와야 하는데 위는 산신축이니 토지지신이고 존경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줄을 바꾸어 첫 머리에 올려 썼다. 恭修歲事(공수세사)는 삼가 공손한 마음으로 세사(歲事-연중행사) 곧 제사를 올린다는 뜻이고, 그 다음에 우재 공 산소를 설명 드리면서 維時保佑(유시보우) (토지) 신이 우재 산소를 보호하여 주고 實賴神休(실뢰신휴) (토지) 신의 은혜를 받으니 감히 주찬(酒饌)을 경신전헌(敬伸奠獻) 공경을 다해 받들어 올리니 상향(尙饗) 비록 적지만 흠향하소서 란 뜻이다. 옛날 무식해서 내용을 몰라도 ‘유세차’ 하면 축문, 제문을 읽기 시작하는구나, 상향(尙饗) 하면 아 이제 다 끝났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었다. 우재 제사 이제 우재공에 대한 제사를 시작하는데 어느 제사든 제물(祭物)을 상 위에 차려 놓는 진설(陳設)부터 시작한다. 진설에 대하여 어동육서(魚東肉西), 두동미서(頭東尾西), 서반동갱(西飯東羹), 조율시이(棗栗枾梨), 홍동백서(紅東白西) 등 여러 가지 있으나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집집마다 다르니 뭐가 옳다고 굳이 핏대 세울 필요 없이 보기 좋게 올려 놓으면 될 것 같다. 강신(降神)과 참신(參神) 진설이 끝나면 신(神)을 내리는 강신(降神)을 한다.
사진: 강신(降神) 강신은 제사 주인이 향불을 피우고 집사가 따라주는 술잔을 받아 그릇에 담긴 모사(茅沙-모래) 위에 씻어 내리는 동작이다. 참신(參神)은 제사에 참여한 사람 모두가 두 번 절하는 (一同再拜) 절차로 신(神)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강신(降神)과 참신(參神) 중 어느 것이 먼저인가 논란이 있으나 제사는 신령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강신(降神) 먼저가 맞을 것 같다. 헌작(獻酌) 강신(降神)과 참신(參神)을 하고 나면 신령에게 술잔을 올린다. 이를 헌작(獻酌)이라고 하는데 유교 예법에서는 잔을 세 번 만 드린다. 온 사람 전부 드리는 풍습은 불교의 영향일 것이다. 이 세 번 드리는 잔을 각각 초헌(初獻), 아헌(亞獻), 종헌(終獻)이라고 한다. 초헌(初獻) .
사진: 우재공 시사 초헌 초헌(初獻)은 반드시 제사 주인-직장자(直長子) 종손(宗孫)이 올리는 것이니 이날 초헌은 우재공파 종손(宗孫) 함오 24세 병기(丙基) 씨가 올렸다. 삽시저(揷匙箸) 집에서 제사 지낼 때 헌작이 끝나고 유식(侑食) 때 하지만 묘사에서는 유식이 없으니 초헌 때 한다. 독축(讀祝) 제사 주인-종손이 첫 잔을 올리고 꿇어 앉으면 축관(祝官)이 주인 왼편에서 축문을 읽는다.
사진: 이날 축관(祝官)은 작년 2007년 과 같이 함오 24세(世) 창락 씨다. 축문(祝文) 올해도 축(祝)은 한문이었다. 한문으로 쓰면 짐작은 할지 모르나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또 조금 더 있으면 한문 축(祝) 지을 사람도 그 나마 없을 것이다. 서식 책이 있다지만 베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이제 한글로 바꾸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날 축(祝)은 종손의 셋째 동생 병관 (함오 24세) 씨가 지었다.
위 축문의 대략적 뜻은 다음과 같다. ‘아 모년 모월 모일 12대 손 병기는 감히 12대 조고(祖考-할아버지)와 조비((祖妣-할머니)에게 아룁니다. 세월이 흐르고 바뀌어 찬 서리가 이미 내렸습니다. 산소를 쓸고 우러러보니 문득 사모하는 마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에 감히 맑은 술과 여러 음식을 갖추어 공경하는 마음으로 매년 올리는 대로 제사를 올리오니 흠향하소서’ 유세차(維歲次) 와 감소고우(敢召告于)는 산신축에서 이미 설명했다. 고(考)는 남자 조상, 비(妣)는 여자 조상. 조고(祖考)는 할아버지, 조비(祖妣)는 할머니다. 기서유역(氣序流易) 세월이 흐르고 바뀐다. 상로이강(霜露旣降) 찬 서리가 이미 내렸다. 첨소봉영(瞻掃封塋) 산소를 쓸고 우러러 보니 불승감모(不勝感慕) 흠모하는 정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때는 불승영모(不勝永慕), 조부 이상은 불승감모, 방계 조상일 때는 불승감창(不勝感愴)을 쓴다. 근이청작서수(謹以淸酌庶羞): 삼가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음식으로 지천세사(祗薦歲事) : 삼가 공경하는 마음으로 연중 행사-제사를 올립니다. 상향(尙饗)은 위 산신축에서 설명. 아헌(亞獻) 집에서 제사 지낼 때는 주부(主婦)-맏며느리가 아헌을 올린다고 예법에 있다. 그것은 부부공제(夫婦共祭)-부부가 같이 제사를 받든다는 정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자가 잔 올리는 것이 어색하여 형제나 손님이 했다. 더욱이 내외 법 상 여자가 산에 가지 않으니 묘사(墓祀)에는 어쩔 수 없다.
이날 아헌관(亞獻官)은 함오 24세 병직(丙稷)씨가 올렸다. 병직 씨는 병기 씨와 같이 필자와 재종(再從-육촌)간 이다. 종헌(終獻)
종헌관(終獻官)은 함오 25세(世) 정호 씨였다. 부복(俯伏) 잔을 다 올리면 모두 땅에 엎드린다.
사진 : 잔을 다 올린 뒤 부복(俯伏)한 일동 그 뒤 사신(辭神)-일동 두 번 절하여 신(神)을 보내고 철상(撤床)-상 위에 제물을 물리면 제사는 끝난다. 철상(撤床)도 하지 않고 상 위 제물을 그대로 집어 먹으면 본데 없는 짓이다.
이상으로 우재공 묘사를 마쳤지만 묘역에는 다른 산소가 더 있다.
사진: 우재 산소 묘역
묘역 제일 안쪽에 있는 산소가 우재(愚齋)공, 우재 공 옆으로 우재 셋째 아드님 휘(諱) 이승(以升), 우재 공 산소가 뒤에 있지 않고 나란히 있는 것은 나중에 이장한 때문이다. 다시 이승(以升)공 앞으로 그 아드님 휘(諱) 삼걸(三傑) 공 세 기(基)와 약간 떨어져 삼걸 공 손자 휘(諱) 경대(慶大) 공 산소가 있다. 이 산소에 계신 분들을 세계표(世系表)에서 찾으면 다음과 같다.
우재 공 제사를 마친 뒤 이 분들에게도 제사를 차례로 올렸다. 13세(世) 휘(諱) 이승 공 (以升) 제사
14세(世) 휘(諱) 삼걸 공 (三傑) 제사
16세(世) 휘(諱) 경대 공 (慶大) 제사
이렇게 시사를 다 끝냈지만 재종형(再從兄) 병직(丙稷)씨가 한 군데 더 가자고 한다. 다른 이들에게는 방계 조상이나 필자에게는 직계인 분이 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들 음복(飮福)할 동안 굶고 산을 더 올라 갔다. 15세(世) 휘(諱) 학표(學標) 공 산소 (화산재 산소) 숲이 우거져 길도 없는 곳으로 약 오분 올라가니 산소가 나오는데 온통 풀로 뒤덮여 있다.
15세 휘(諱) 학표(學標) 공 묘(墓)인데 보통 화산재 산소라고 부른다.
사진: 앞쪽만 간신히 치우고 절을 올렸다. 이상 |
출처: 구룡초부 원문보기 글쓴이: 구룡초부
첫댓글 옛날 어른들이 전해오전 많은 용어가 구분이 안되었는데 많은거을 배우게 되네요
상세한 시사 절차와 지방 모두 우리 후손들께 알리는 기록으로 남아 배울수있어 더욱 감사드리며 반가운 일가님들 뵙게되니 무척 반갑습니다,이렇게 대대손손 내려오는 제례 후손들도 길이 잘 뫼셔지겠지요수고 많으셨습니다,추워진날씨 건강유의 하십시요,
글이나 내용이나 사진들이 너무도 좋네요...많은것을 배웁니다...잊혀진 역사을 되살려주고.. 다시 한번 옛날을 생각하게 하네요...
오랫만입니다. 건강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