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유통, 스마트팜...코로나가 농협의 길 알려줬다"
대한민국 제1의 협동조합
-공적마스크 공급. 격리시설 제공
-매출 타격 화훼농가 돕기 행사도
-농가 33.5%가 70대 이상
"고령화로 일손 부족 심각... 스마트화로 청년농가 키워야
-작년 농가 소득 4188만원
"영세농민 연금 상품 개발할 것"
지난 2월4일 강원도 홍천의 한 딸기 농장에서는 특별한 취임식이 열렸다. 제24대 농협중앙회장으로 선출된 이성희(71)회장이 딸기 꽃순을 제거하는 농촌 일손 돕기로 취임식을 대신한 것이다. 230만 농민을 대표하는 데다 NH농협은행, NH투자증권 등 28개 계열사, 12만 임직원을 통솔하는 농협중앙회장인 만큼 그간 취임식은 계열사 임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로 이뤄졌다. 지난 9일로 취임 100일을 맞은 이 회장은 본지 인터부에서 "꼭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현장 취임식을 한 것은 아니다"면서 "하루라도 빨리 현장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로 농협의 나아갈 길 확신 가졌다"
코로나 확산 초기, 농협은 하나로마트 등을 통해 공적 마스크를 공급했고, 경북 경주와 전남 구례의 연수원을 격리 시설로 내줬다. 또 입학.졸업식 등 행사 취소로 피해를 본 화훼 농가 지원을 위해 꽃 소비 촉진 행사에도 나섰다. 이성희 회장은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우리나라 제1의 협동조합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다"면서 "코로나 사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역설적으로 코로나 사태로 농협이 나아갈 길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로 그가 취임 때부터 강조하던 '유통 혁신'이 더욱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오프라인에서 물건을 보고 사지 않기 때문에 온라인 중심으로 급격히 유통 환경이 재편될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소비가 늘면서 대형 인터넷 쇼핑몰들이 경쟁이 치열해졌지만, 정작 농협 인터넷몰은 인지도가 떨어져 경쟁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그는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소비하는 시대에는 유통 혁신만이 '농협'이라는 브랜드의 강점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은 "농산물은 품질이 중요한데, 보지 않고 사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농협몰을 농식품 특화 쇼핑몰로 재구축해 이곳에서 사는 농산물은 품질이 보장된다는 신뢰를 쌓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회장은 "농산물의 반복적인 수급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수급 예측 시스템을 개발, 농산물 생산 단게부터 수급 안정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농협은 지난달 농협 경제지주 산하에 '올바른 유통위원회'를 설치해 전문가와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유통 혁신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 중이다.
◆"현장 돌아보지'스마트팜' 필요성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당초 계획처럼 현장 방문이 쉽지 않았지만, 이 회장은 틈틈이 현장을 찾았다. 그는 "현장을 돌아보니 고령화로 인한 일본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농가 인구의 33.5%가 70대 이상이고, 20~30대는 9.1%에 불과했다. 이 회장은 "농사짓는 분들이 고령이라 농업이 혁신하지 못하면 점점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라면서 "청년들이 농업에 종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스마트 농업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2022년까지 7200억원의 예산을 들여 광역지자체 4곳에 '스마트팜 혁신 밸리'를 조성하기로 했다. 농협은 스마트팜 종합자금 대출 지원, 청년 대상 창농 교육, 지자체 협력 사업 등으로 정부의 스마트팜 사업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
◆ASF 돼지 재입식, 농가 소득 증가는 숙제
이 회장이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났지만, 그가 당면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당장 아프리카돼지열병(ASF)여파로 기르던 돼지를 살처분했던 경기. 강원 북부 등의 돼지 농가에 돼지를 다시 들이는 '재입식'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지난해 9월 국내에서 ASF가 최초로 발생하고 10월 이후엔 사육돼지에게선 더 발병하지 않고 있지만, 야생멧돼지에서는 계속 ASF가 발견되고 있어 정부는 반년 넘게 재입식 시기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은 "돼지 농가의 어려움을 알고 있지만, 확산 위험이 여전하다"면서 "ASF로 피해를 본 농가에 단계적으로 재입식이 이뤄지고, 폐업 희망 농가의 폐업 보상금이 지급될 수 있도록 정부에 적극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농가 소득을 끌어올리는 문제는 좀 더 장기적인 숙제다. 지난해 연평균 농가 소득은 전년보다 2.1% 감소한 4188만원으로 도시 근로자 가구 평균 소득의 64%에 불과했다. 이 회장은 '농업인 소득 안정을 위해 농업인 월급제와 농민 수당 등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면서 "영세 농민들에게 특화된 연금 상품 등을 개발해 농가 솓그 안전망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출처 : 조선경제 2020년 5월 13일 수요일 안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