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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는 세마리 강쥐가 있다. 2001년 병치례를 몇년 하는동안 마음의 허해 졌는지 자꾸만 외로움을 느끼던 터라 마침 큰아이가 서울서 잠시 내려 왔을때 11월 7일 오일장날 아이와 난 강쥐 한마리를 2만원을 주고 사는데 주인할머니가 "잘 키워!" 갑자기 가슴이 짠~ 뭉쿨거려 올라오는 걸 누르고 그 자그마한 녀석이 너무도 이쁜 눈으로 마치 아기사슴처럼 슬픈눈으로 날 처다보는데 가슴이 쌰~ 해지더라 오일장에서 내 한손에 아직 넉넉하게 자리잡고 앉아 내차로 걸어 오는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내 강쥐를 보고 귀여움의 표현을 무지 많이도 하였지. 발바리 잡종이라고 여기저기 얼룩송아지마냥 얼룩 얼룩 ~ 자그마한 그녀석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동물병원으로 데리고 갔지 강쥐이름을 '야' 로 지어지고 예방주사와 각종 접종을 하고 회충약이랑 레불루션도 해주었지. 우리 '야'의 이쁜 집이랑 밥그릇이랑 육포랑 사료랑 옷이며 치아발육 장난감 등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야'에게 정신이 팔려 저녁이 되는줄도 모르게 지내고 있었지. 아이들은 안고 잔다고 부산떨고 나는 나나름대로 안고 잔다고 우기고 남편은 거실에 재우라고 야단야단하고 결국은 큰애방에 같이 재우기로 결정을 봤던게지 . . 몇일지난 어느날 서울 친구에게서 한통의 전화가 왔다 강아지 한마리가 너무도 갸여운데 불쌍해서 죽겠다고 태어나기는 전주의 한 교회에서 교회목사의 손에 의해 태어난 강쥐인데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많은 고초를 겪은 강쥐라 했다. 석탄창고에서 일주일 지내고 그러다 못해 썰렁한 겨울 사무실 바닥에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강쥐는 진폐증까지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친구는 내게 했다 . . 전화를 끊으면서 나는 내가 그 강쥐를 데려다 아픈걸 고쳐주고 싶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게 보내달라"고 했다. 보낼 방법이 마땅히 생각이 나지 않은 우리들은 조금 망설였지만 항공사에 문의해보니 철장에 넣어서 비행기가 이륙하기 2시간전에만 공항으로 데려가면 올수 있다고 했다. 친구에게 보내줄것을 부탁하고 시베리안화이트허스키인 흰둥이가 우리집에서 살기 시작한것은 2002년1월29일부터였다. 그날부터 우리집은 잦은 다툼과 웃음이 떠나가지 않았다. 잦은 다툼은 남편은 강쥐들을 밖에서 키우라고 하고 나는 겨울인데 어떻게 밖에서 키우냐고 하고 매일 오가는 소리가 강쥐 이야기로 나날을 보냈다. 덩치는 커다랗지만 몸무게는 '야'만도 못한 흰둥이는 엉뚱하기 그지 없었다. 핸드폰벨소리에 우우~하고 노래를 부르질 않나 내가 차타고 가면서 노래를 하면 같이 따라서 노래를 부르질 않나 내가 즐겨듣는 클래식도 곧잘 따라 듣고 어쩌나 보려고 가요를 크게 틀면 외면하고 어디론가 가버리곤했다. 얌전한 여자강쥐인 '야'는 먹는걸 너무 좋아해서 마구 먹어대 뙈지라고 놀림당하고 흰둥인 천성이 늑대개라서 그런지 자꾸만 시원한곳을 찾아 다녔다. 밖에다 키우려니 갸엾단 생각이 들어 나는 자꾸만 옷을 해 입히고 목도리를 만들어 걸쳐주고 '야'는 아예 이불속에서 안고 잠을 잘 정도였다. 그러던중 새삭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봄이 오고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2002년 월드컵대회를 개최하고. 흰둥이는 지 먹을것을 야 에게 주면서 지 각시로 삼으려고 단단히 버르고 있었다.
6월27일. 한통의 전화 서울 어느아파트 관리실에 채 눈도 떠 있지도 않은 강쥐 한마리가 종이상자에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에서 누가 버린것 같다고. 유기견센터로 보내려한다고 유기견센터에 보내지면 주인이 15일내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 주사를 놔서 세상 하직하게 한다고. ㅠㅠ 너무 슬픈 전화 한통화였다. 나는 서슴없이 " 내게보내줘~" 라고 하고 비행기에 태우는 요령에 대해 설명해줬다. 2002년6월30일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구름이라 이름지은 구름인 내게로 왔다. 발바리 잡종인 작지만 영리한 구름인 흰둥이 형아에게 졸졸졸~ 흰둥이 따라맨이 된것이다. 세마리강쥐의 생활이 그때부터 시작된것이다.
먹는욕심이 남달른 '야'를 개명시켜주기로 했다 사실 '야' 부르면 세마리 강쥐들이 한꺼번에 쪼르르~ 달려오는것이 때문이다. 그래서 '야'를 남편이 재롱을 잘부리니까 '재롱이'라고 부르자고 했다. 재롱이는 9월7일생 흰둥이는 10월20일생 구름인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6월20일경일것 같다. 세마리 강쥐들은 제나름대로 방안이며 거실이며 일층 이층 베란다며 안 다니는곳이 없어졌다. ㅋ 집에는 강쥐냄새가 진동하는것은 말할 나위없지~ 2002년 9월 이 세마리 강쥐들에게 큰 소동이 벌어진것이다. 원인은 재롱이가 첫 발정을 하게 된것인데. ㅎ 흰둥이가 애지중지 지먹을것 안먹으면서 지 각시로 삼으려고 단단히 버르고 있었는데 구름이가 지누나뻘인 재롱이랑 덜컥~붕가붕가를 해버린것이다. 난리가 난 흰둥이는 구름일 물게 되었고 난 물린 구름일 안고 동물병원에를 데리고 가고 흰둥인 그날부터 유배생활을 하게된것이다. 훈련소에 데리고 간 흰둥이를 훈련소장이 보자 흰둥이는 너무 안하무인으로 지밖에 모르게 자라서 가르치기가 무지 힘들것 같단다. 그런 소릴 듣자 됐네요~하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 하지만 잦은 횟수로 구름일 자꾸 위협하자 구름이가 소변을 참았는지 요도결석에 걸리고 만것이다. 동물병원서 마취하고 수술하고. 재롱이도 담세상엔 절대로 개로 태어나지 말라고 염원하는 마음에 복강수술을 시켜버렸다. 2세를 만들지말라는 경고지 뭐. 두어달 동안 수술한곳이 아물도록 간호해주고 흰둥이를 밖에서 키우기로 결정을 봤다. 겨울이 오자 흰둥이가 실내에서 자란 탓인지 아니면 어린때 진폐증을 앓아서 그런지 자꾸만 감기에 걸리는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우리집은 그렇게 지내던 2006년 또 한마리의 강쥐가 온것이다. 이름은 반야 진돗개 숫컷으로 지나가던 자동차가 반야의 다리를 치고 도망가 버린 강쥐를 또 내가 거둔것이다. 동네 병원으로 데리고 와 상태를 물었더니 차에 치인지 열흘쯤 지나선지 염증이 많다느 것이다. 제발 다시 네발로 걸을 수 있게 고쳐달라고 부탁을 하고 수술후 석주가 지나 집으로 데리고 와 훈련소에 보냈다. 제법 네발로 잘 걷고 경찰견마냥 훈련이 잘 되있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고 작년 1월6일날 재롱이가 갑자기 아픈것이다. 동네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링거 한대 맞고 낼 아침에 데려가도 될것 같다고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시는것이다. 다음날 의사선생님께서 전화가 왔다. "우리 재롱이 데리러 가도 되나요?" 물었다. 갑자기 의사선생님 말씀이 사라졌다. "지금가요?" 다시 되물었다. 핸드폰으로 들려오는 의사선생님 말씀이 "재롱이 ......죽어부런마씀" 갑자기 정적이 방안을 맴돌고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링거한대면 거뜬히 나아서 집에 돌아 올 수 있었다던 재롱이가 죽었다는것이다. 병원으로 달려갔다. 차가운 시트위에 하얗게 죽어 있을 재롱이를 차마 보지 못할 것 같았다. 병원으로 달려가면서 재롱이가 깔고 자던 이불을 챙기면서 '아니겠지. 우리 재롱이가 아니겠지.' 제발 아니길 바라면서 어떻게 운전하고 갔는지 .. ...... 우리 재롱이가 하늘 나라로 간게 사실임을 증명시켜주듯 조그만 상자에 아직도 따뜻한 기운이 만져지는 주검을 안고 차로 돌아 왔다. 한라산 중턱으로 재롱이를 데리고 갔다. 묻어주러 간것이다. 갑자기 비가 내리고 길은 질펀하더니 차가 옴짝 달싹하지 못하게 빠져버린것이다. 견인차가 오고나서야 우리 재롱이가 혼자 이 먼곳에 묻히기 싫어서 그런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견인차가 내 차를 진흙더미에서 빼주자 다시 차를 집쪽으로 돌려 오는시각이 새벽 2시가 넘어버렸다. 차에 재롱이를 두고 집으로 들어 오는데, 구름이가 난데 없이 계속 짖어된다. 마치 재롱이 어디갔냐고 묻는듯 하였다. 우리 아이들과 난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며 아침을 맞이 하였다. 집 근처 우리 소나무 밭으로 가 묻어주기로 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2층 옥상으로 나온 구름이는 너무도 짖어대며 이리저리 날뛴다. 마음이 아프다.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남편이 소나무밭 양지바른곳에 땅을 파기 시작하였다. 이곳으로 오려는데, 아들이 한말이 생각이 난다. "엄마! 깊게 파서 묻어죠. 다른 짐승이 파지 못하게 깊게 파서 묻어죠." 목이 메어진다. 딸과함께 재롱이를 품에 안고 광명진언과 아미타불을 염송하였다. 깊게 파힌 흙을 보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남편은 혼잣말로 뭐라고 한다. 아마도. 다음세상엔 좋은곳에 나라고 염원해주는것 같았다. 재롱이를 놓고 재롱이가 좋아하던 육포랑 인형이랑 염주랑 구름이 사진을 같이 묻어주고 무덤 주변에 돌무더기를 깔아 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하염없이 울었다. 물론 지금도 구름인 재롱이의 죽음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다. . . 그러다 작년 우리 가게를 오픈 준비를 하던중 갑자기 우리 반야가 목줄을 한 체 사라져 버린것이다. 백방으로 뛰고 유기견 센터에 알아보고 동네 수소문해보고 안가본 곳이없을 정도로 찾아 보았지만 지금도 우리 반야는 집에 돌아 오지 않는다. 밤에 자다가도 강아지 짖는 소리가 나면 우리 반야가 아닌가 하고 아이들이랑 나는 밖을 내다보기까지 하지만 아직도 우리 반야는 집에 돌아 오질 않는다. 아직도 밖에서 놀고 있는것일까? 아니면 나 보다 더 좋은 주인이 키워주고 있는것일까? 무사히 돌아오기만 손 놓고 기다리고 있다. . .
이렇게 강쥐와의 사연을 만들던중 올해 우리집엔 또 다른 유기견이 또 우리 가족이 되었다. 딸이 서울서 학교를 다녔는데. 주인이 이사를 가면서 버리고 갔는지 마티즈 숫컷을 데리고 집으로 온것이다. 전 주인에게 혼을 많이 났었는지 조그만 소리가 나도 짖어된다
지금은 내 품에서 잘 자고 잘 먹고 구름이와 잘 지내고 있는 행운이는 행운이가 우리 집에 들어오자 마자 내겐 행운이 겹치는것 같아 행운이라고 이름을 지어 줬다.
수많은 사연들과 함께 해온 우리 강쥐들 주변사람들은 나더러 동물은 동물처럼 키워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난 내 자식처럼 온갖 정을 줘선지 동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강쥐들을 부를때도 아기~들이란 표현을 쓴다. 사람은 배신을 하지만 동물들은 절대로 배신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외부로 여행을 떠날때는 나는 차에 태워 데리고 다닌다. 나의 강쥐사랑은 내가 살아 있는한 영원할 것이고 그 누구도 말리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내품에 있는 강쥐들에게 다음세상에선 절대로 강쥐로 태어나지말라고 머리를 쓰다주면서 염원해주고 있다.
지금은 다른세상에 가버린 재롱이와 행방을 알 수 없는 반야와 지금 내곁에서 같이 생활하는 흰둥이와 구름이 그리고 행운이를 위해................... 늘 부처님께 기원드리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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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애틋한 강아지 사랑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배고파도 아파도 말을할 수 없는 동물들을 보면 애처로운 마음이 생깁니다. 강아지들과의 인연이 참으로 깊은가 봅니다. 그래도 좋은 주인 만나서 흰둥이와 구름이 행운이는 참 행복할 것 같습니다. 몇 일전 백중기도에 재롱이 이름까지 올리시고 암컷이라고 종이옷과 다라니를 함께 써 올리던 무진향 보살님의 그 절절한 마음을 이 글을 읽으니 알 것 같습니다. 재롱이 이야기를 하며 눈물 글썽이던 눈물많은 무진향 보살님........ 재롱이는 좋은 곳에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행방이 묘연한 반야도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_()_
우리 재롱이와 반야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모셔갑니다.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