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 21:12-22
제목: 강도의 소굴이 아닌 기도하는 집
찬송: 279장
12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14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15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16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17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18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기원전 4년에 태어나시고 기원후 29년 3-4월 경 유월절이 있는 금요일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일요일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금요일까지의 6일간을 가리켜서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사복음서 모두 고난주간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데 마가복음은 시간순서대로 기록해둔 반면 마태복음은 시간순서보다 주제별로 묶어서 기록해 두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들도 시간순서는 맞지 않습니다. 성전을 깨끗하시게 하시는 사건은 일요일이 아닌 월요일 있었던 사건이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의 대화는 마태복음에만 있고,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신 것은 월요일에 저주하시고 화요일에 나무가 마른 것을 제자들이 확인하게 됩니다. 이처럼 마태는 정확하게 시간순서대로 기록하지 않고 시간은 서로 얽혀 있는 주제별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그 곳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보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내쫓으셨습니다.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성전에서의 이 장면은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도 한 번 있었습니다(요 2:13-22). 그만큼 당시 유대 종교가 얼마나 부패하고 세속화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성전에 방문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도모한다면서 상인들로 하여금 성전에서 장사하게 했고 이로 인해 자신들의 배를 채웠습니다. 주님은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셨는데 특히 돈 바꾸는 자들과 비둘기 파는 자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당시 누구든 성전세를 내야했고 그러려면 당시 사용하던 화폐를 유대의 화폐로 바꾸어야 했는데 제사장들은 거기에서 큰 이익을 남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위해 허용된 제물인 비둘기조차도 80배나 되는 가격으로 팔았습니다.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성전을 이용했고 더군다나 가난한 자들까지도 착취했습니다. 주님은 분노하시며 이들을 향해 너희는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며 책망하십니다(사 56:7; 렘 7:11).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언된 메시아이심을 보이셨습니다(사 35:5-6). 어린이들이 성전에서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며 소리 질렀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보고 또 어린이들의 소리를 듣고는 노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며, 곧 어린이들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느냐며 신성모독을 언급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시 8:2). 주님은 찬양을 받기에 합당한 메시아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곳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십니다.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 시장하셨습니다. 길 가에 있는 무화과나무를 보셨습니다. 열매를 찾으러 그리로 갔지만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나무를 향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저주하셨습니다. 그러자 무화과나무가 곧 말랐습니다.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기며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어쩌면 그 나무에게서 열매를 찾지 못하자 아직 열매의 때가 아님에도 저주하신 것은 조금 이상하게 생각됩니다(막 11:13). 그러나 이것은 당시 형식주의와 의식주의적 신앙, 자신의 배만 채우고 세속화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빗대어서 그들의 운명이 이렇게 될 것임을 보여주신 겁니다. 경건의 형식은 있는데 능력은 없는 그들을 빗대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않고 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참된 신앙을 말씀해 주십니다. 경건의 능력은 참되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구하는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 신앙을 핑계 삼아 자신의 배를 채우며 약한 자를 괴롭히지 않게 하옵소서. 자신의 기득권이 빼앗길까봐 예수님마저 거절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옵소서. 형식주의, 의식주의, 세속주의에 빠져서 경건의 형식만 남고 능력은 사라진 신앙을 갖지 않게 하옵소서. 그 어떤 것도 아닌, 자신도 아닌, 참되게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의심치 않고 주님께 구하는 참된 신앙을 소유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