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다른 많은 분들께도 알려드리고 싶어서 자주가는 동호회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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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장례식 초청장
(3월 26일은 베토벤의 기일입니다.)
1827년 3월 23일
"Plaudite, amici, comoedia finita est"
(박수를 치게, 희극은 끝났네)
1827년 3월 24일
출판업자 쇼트가 베토벤이 좋아하던 라인지방의 포도주 한 사자를 보내자
"애석하군, 애석해.... 너무 늦었어"
임종 당시 마지막 영성체를 모셨지만
그는 그곳에 있던 모든 신부들을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았답니다.
(천주교신자로 태어났지만 성당에는 안 다녔지만
그의 종교음악은 제게 그 어떤 작곡가의 종교음악보더 더 종교적이며
기독교의 본질을 가장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베토벤은 신앙이 아니라 교회라는 제도를 싫어했을수도...)
간경변과 수종이 악화된 상태에서 폐렴으로 죽었습니다.
1827년 3월 26일 오후 5시 15분경. 휘텐브레너의 증언
"그날은 매우 추웠고 눈이 왔다.
5시경, 갑작스러운 뇌우로 하늘이 흐려졌다. 아주 어두웠다.
갑자기 격렬한 천둥소리를 동반한 아주 큰 번개의 섬광이
임종의 방을 비추었다.
베토벤은 번개 빛에 눈을 뜨고 꽉 쥔 오른 손을 들었다가
뒤로 벌렁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임종을 지킨 사람은 요한나와
슈베르트의 친구이자 작곡가인 휘텐브레너뿐이었습니다.
낡은 비밀 케비넷 비밀서랍에서는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 세통,
줄리에타 귀치아르디의 초상화,
베토벤학자 솔로몬이 밝힌 안토니 브렌타노의 초상화가 있었고
(솔로몬은 브렌타노를 불멸의 여인이라고 설명합니다)
장서는 칸트의 "자연과학과 천문학 이론", 보데의 "천체지식입문",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조이메의 "시라쿠스 여행기", 코제브의 "귀족론",
페슬러의 "종교 및 교회에 대한 소견" 등이 있었답니다.
(베토벤이 읽은 책 중에서는 기독교의 고전인
"그리스도를 본받아"밖에 못읽어봤군요.--;
종교와 천문학에 많은 관심이 있었나봅니다.)
1827년 3월 27일
와루흐가 입회한 가운데서 바그너 박사가 부검을 하였고
청각기관의 문제를 알알보기위해 측두골의 일부가 제가되었답니다.
1827년 3월 28일
요제프 단하우저가 베토벤의 데드마스크를 뜰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단하우저가 제작한 베토벤의 "Death Mask"
3월 29일 장례식
비엔나의 역사상 가장 엄숙했다고 전해지는 베토벤의 장례식...
브로이닝과 신들러가 진행을 맞았고
하슬링거음악가게에서 초대장이 배포되었습니다.
당일에는 2만의 조문객이 참석한 가온데 공식행사로 치우어졌습니다.
그의 후기작품들은 거의 이해되지 못했지만
명성은 엄청나서 그는 생전에 이미 하나의 신화가 되어 있었답니다.
8명의 악장들이 관을 메었고,
34명의 친구들과 음악가들이 횃불을 들었습니다.
운구한 이들 중에는 유명한 작곡가 후멜이 있었고,
슈베르트가 횃불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따랐다고 합니다...


Franz Stober 가 그린 베토벤의 장례식 풍경 2점
장례식은 알처교회에서 치루어졌습니다.
관이 교회에 다가갔을 때는 그의 유언에 따라
피아노소나타 12번이 장송행진곡으로 연주되었다고합니다.
추도사는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극작가 프란츠 그릴파리처가 썼고,
배우 안쉬츠가 낭독했습니다. 다음은 추도사 전문입니다.
"작고한 베토벤의 묘지 곁에 서서, 우리는 전 독일과 독일 민족을 대표하여, 이제는 사라져 버린 우리 민족 예술의 광휘며, 우리 조국의 완전한 영적 만개로서 높이 추앙받던 그의 죽음을 애도하노라. 독일 운문의 영웅은 아직도 살아있고, 그의 삶은 영원하리라, 그러나 아름다운 노래의 최후의 거장이며, 영혼이 담긴 협화음의 오르간이며, 헨델과 바흐, 그리고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불멸의 명성의 계승자이며 증폭자인 그는 이제 가고 없으니, 우리는 이제 여기 침묵하는 운명의 끊어진 현을 애도하노라.
잠잠해진 하프여. 그를 그렇게 부르게 해 다오. 그는 예술가였으며, 그의 존재의 근원은 예술이었으므로. 삶의 가시는 그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고, 마치 추방자가 외딴 곳에서 안식처를 찾듯이 그는 예술의 영광스런 자매이자 친구며, 상처 입은 마음들을 치유해 주는 향유며, 천상의 존재인 예술이며, 그는 그대 예술에게 처연히 매달렸으며, 그대가 그에게 들어가 속삭였던 그 문이 닫혀 그의 귀가 어두워졌을 때에도, 그리고 그의 어두워진 귀로 그가 그대를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때라도, 그는 여전히 그대의 모습을 그 마음에 간직하였고, 그가 죽어 눈을 감았을 때에도 여전히 그것을 그의 가슴에 간직하였도다. 그는 진정한 예술가였으니, 누가 감히 그에게 견줄 수 있을까? 돌진하는 거대한 고래가 파도를 밀어 내듯이 그는 예술의 극도의 한계까지 유랑하였도다. 비둘기의 속삭임부터 우뢰와 같은 천둥소리까지, 예술의 한계를 넘어 교묘히 잘 짜여진 묵직한 저음으로부터, 각축하는 자연의 힘들이 만들어 내는 무법의 소용돌이 속에 모든 계획적인 의도들은 사려져 버리는 그 경이로운 고음에 이르기까지, 그는 그 모든 것들을 넘나들었으며 모든 것들을 장악했노라. 그의 뒤에 오는 이들은 그를 결코 계승하지 못하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하리다. 왜냐하면 그가 떠난 곳은 바로 예술이 끝난 그 곳이기에. 아델라이데와 레오노레여! 비토리아시의 영웅들의 승전가와 미사의 겸허하면서도 헌신적인 노래들이여! 세 번, 네 번 나뉘어진 목소리들의 자손들이여! 천상까지 울려 퍼지는 화음이여 환희여 노래여! 더욱더 빛나고도 아름다운 신의 불꽃이여! 백조의 노래여!
칠현의 수금과 노래의 신이여! 그의 무덤에 가서 영광의 월계관을 바치시오.
그는 예술가인 동시에 인간이었다. 모든 의미에서, 그리고 가장 고귀한 의미에서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가 세상으로부터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인간 혐오자라고 불렀고, 경박한 감상을 경계했기 때문에 무감각한 사람이라고 비난했었다. 아, 자기의 마음이 냉정한 것을 아는 자는 결코 움츠리지 않는 법! 가장 섬세하고 예민한 것들이야말로 쉽게 무디어지며, 약해지고, 꺾여지는 것. 극도로 섬세한 감수성은 그것을 드러내는 것을 피하지 않는가! 그가 세상으로부터 도망간 것은, 사랑으로 가득 찬 그의 마음속 어디에서도 세상에 대적할 무기를 찾기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인간들로부터 자신을 멀리한 것은 그가 모든 것을 주고도 아무것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혼자 산 것은 그의 짝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의 심장은 모든 인간들을 위해, 그리고 아버지와 같은 애정 속에서 그의 동족들을 위해, 그리고 그 더운 피로써 세상을 위해 따뜻하게 뛰었도다. 그렇게 그가 살았고, 그렇게 그가 죽었음으로, 그렇게 그는 세상을 끝날까지 살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우리를 따라온 그대여, 결코 슬퍼하지 마라. 그대들은 그를 잃은 것이 아니라, 그를 얻은 것이니. 어떤 살아있는 사람도 영생의 전당에는 들지 못하며, 육체가 소멸하기 전까지는 그 문은 닫혀 있는 법이다. 그대들이 애도하는 그는 지금부터 영원히 신성하게 살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 슬퍼하지만 그러나 꿋꿋한 마음으로! 그리고 그대가 몰아치는 폭풍처럼 그의 창조의 위대한 힘을 느끼게 되고, 그 넘치는 환희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로 넘쳐 흘러들어갈 때, 그 때는 지금의 이 시간을 기억하고, 대시 한 번 되뇌여라. 그가 땅에 묻힐 때 우리가 그곳에 있었으며 그가 죽었을 때에 우리가 그를 애도했었음을."

베토벤의 첫번째 무덤
베토벤의 관은 알처교회의 바링공동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제가 모 동호회에서 닉네임으로 사용하고 있는 S.V. Breuning은
하나밖에 없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헌정받을 정도로
베토벤과 각별한 사이였는데, 몇년간 관계가 소원했다가
죽기 얼마전에 우연히 만나 죽을 때까지 모든 고락을 함께했답니다.
그리고 베토벤의 장례식이 있은 후
사람들이 베토벤의 머리를 노린다는 사실을 알고
밤마다 그의 무덤을 지켰답니다...
1863년 10월 13일 비엔나 음악협회에서 다시 매장을 했고
1888년 6월 21알 비엔나 중앙묘지로 다시 안장했습니다.

현재 베토벤의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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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오늘은 집에 가서 "불멸의 연인"을 다시 볼 것 같습니다.
피협 5번 2악장을 누가 잊을 수 있을까요...
첫댓글 베토벤 좋아하시는군여...저도 고2 때 "불멸의 연인" 보구선 한동안 베토벤에 빠졌었는데...^^
저도 다시 한번 봐야겠어요~~~오호호라
피아노 소나타12번이 장송곡으로 쓰였군요. '불멸의 연인'을 보고 '장엄미사' 가 쓰였을 줄 알았는데...그런데, '불멸의 연인'에서 쉰틀러가 낭독한 추도사가 저 글을 간추린 것이었군요. 정말 멋진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