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13일 연중 6주일 복음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루카복음 6장 20~26사이의 말씀이다. 우리는 이를 평지설교라고 하고
비슷한 마태오복음 5장 3~12절을 산상설교라고 하는데 사실중 산상설교는
참행복뿐만 아니라 세상의 소금과 빛등 여러가지 가르침이 들어있다.
오늘복음이 산상설교의 참행복만 있는것과 달리 평지설교는 불행선언이
첨가되어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복음말씀은 주님이 하신말씀을 직접 받아서 적은 글이 아니라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을 체험한 공동체에서 이들 필요성을 느끼고
자료를 모았으리라 여겨진다. 공관복음인 마태오 마르코 루까와 영성복음인
요한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른각도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구전되어오던 말씀을 문자화시키는데에 오는 오류를
어느정도 커버하는 마치 입체적으로 들려올수가 있다는 것을 암시해보인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는 누구에나 그러하듯이 늘 행복만 아니면
늘 불행만 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불행이라는 것이 나쁜의미나 나쁜일로
인해서 발생된다고 여겨지지도 아니할 것이다
오래전에 청년들과 함께 북한산을 오른적이 있었다.
올라갈때에는 입장료를 안내기 위해서인지 수유동에 있는 이준열사묘역을 지나는
길을 택했다. 가장 재미나는 길이라고 하지만 가장 몸이 무거웠던 시기인지라
올라가는데 드문드문 큰바위를 지나야하기에 힘들었던 것 같았다.
아마도 이런 어려움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만나게되는 불행일지도 모를 일이다.
한참 올라가다가 반가운 성문을 만난 것이다. 그곳을 가면 더 이상 오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성벽을 오르기도 하고 참으로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고 내려가는 길을 잃었던 것이다. 내려간다고 해서 가다보면
어느사이에 오르막길이 나타나고 이를 반복하고 있었다. 한참헤메이다가
저멀리서 큰 불상을 찾아내고 그곳에 사찰이 있고 분명 하산길이 있을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곳을 거쳐서 내려오니 국민대근처로 나오게되었다. 해서 각자는
국민대학 정문 맞은편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저는 시흥역근처에 있는 무지개아파트에서 올려다보는 바위의 정상이 있는
삼성산모습을 보게된다. 이곳도 성당의 청년들과 함꼐 올랐다. 늘 약수를 마시러 가던 길로
해서이다 어느쯤인지 갑자기 높은언덕이 나타나고 그곳에는 암석들이 즐비하게 있다.
그곳을 통해서 올라가게 되면 저 멀리 관악산자락을 통해서 서울대입구로 가는데는
그리 힘들지 않다는 것이다. 또다른길로 가면 시흥동끝자락이나 아니면 안양유원지로
나올수가 있었다. 낮은봉우리이지만 오르는데 힘들지만 여기에 올라서 8부능선을 타게
되면 마치 평지를 가는듯한 것보다 더 편안하게 갈수가 있었다. 저는 스스로가 속도를
정할 수가 있었기에 그 외에는 여러차례 혼자서 다니곤 하였다.
때로는 서울대로 해서 아니면 안양유원지를 통해서 내려와서 가까운 곳에 가서 바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수가 있었다. 몇시간의 간단한 산행에서도 나는 행복과 불행을
맛보았던 것이다.
세상이치는 그러하다고 여겨진다. 집으로 들여오는 물을 가정에 보네기 위해서는 펌프라는
것을 사용한다고 한다. 전선줄안에 갇쳐있는 전류도 스스로 펌프가 있어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낙차를 의미하는 전압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전압은 사실상 흐르는 물인 전류에
의해서만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방해하는 저항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저항이 전압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마도 지금과 같은 코로나의 장기사태에도 주님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말씀의 메시지가
분명 있을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만남도 비대면으로 하다보니 신앙생활이 단조롭기만 하고
서로 나누워야 하는 것이 없어보인다고 한다.
1~2년정도에 한번 이니 그이상의 시간에 만나는 광주교구의 신부님이 계신다
그분의 모습을 봐도 인생의 축소판의 길을 보여준다. 대도시근처에 사셔도
아니면 시골에서도 더 나아가서 섬에 사실적에서도 그러하다.
인구2000여명이 사는 섬지역에서는 본당외에도 좀 떨저져있는 공소에 다니시는지라
다른신부님들이 다 하시는 일을 하지만 신부님을 도와주는 몇안되는 사목위원뿐이지
수녀님도 사무장도 계시지않는다. 평일미사만 드리다가 왔기에 주일미사를 겪지
못해서 잘 알수가 없지만 아마도 미사에 참석하는 인원은 수십명에그칠 것이다.
성당은 오래전에 지은듯한 모습인지 벽에 붙어있는 제대의 모습도 보여진다.
그신부님은 적은 신자들과 함께 미사후에 섬 해안가를 몇km를 몇시간에 걸쳐서
함꼐 돌아보곤 한다고 하셨다. 여기섬은 다른섬과 달리 아주 바다바닥에 맞붙어있는듯한
평지로 되어있다. 바로 옆섬이 거의 산악지대로 되어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라 할 수가
있다. 아마도 긴도보로 다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생겼을 것이다. 신부님은 이를
통해서 공동체를 결집하는 것 같았다. 작은 본당 그리고 작은 수입으로 신부님 생활비는
교구의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같이 지낸 며칠을 보면 자유스러운 영혼이라는 것을
알수가 있지만 공소에 갈때에나 옆성당관할지역으로 갈때에 신부님이 운전해가시면서
끝없이 기도를 하신다 저도 따라하게되는데 주로 성인들의 호칭기도이십니다
도움을 줄 선교사 몇분을 교구에 신청했다고 하시면서 그분들이 묵을 작은 집을
소개해주시면서 저는 3일동안 그곳에서 보냈다.
아마도 여러해동안 여러본당을 다니면서 신부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그분의
본성을 볼수가 있었다. 지금은 코로나 시기라서도 그러하고 그분이 교구일로 해서
교구청내에 머물기 때문에 가끔하는 전화도 하기가 어렵고 명절즈음에 문자만 주고받고
하는 형편이다.하루빨리 코로나가 그치고 그분이 어느본당으로 발령받기만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하면 가마득하다 영세는 1980년에 받았지만 그동안
거의 활동을 하지못하다가 1990년대에 들어와서 사람들도 만나고 모임을 하였던
초보시절에 그분도 1990년에 사제서품받으시고 바로 초보사제일시절에 서울에서
만날수가 있었던 것은 그분이 바로 정의구현사제단의 일원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여기고 그안에서 오늘복음인 참행복과 불행선언이 교차하는 것을 상기할 수가 있음을
새삼놀랍기만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경험한 모든 것에는 의미를 분명 부여하신것입니다.
한달후면 대선이 옵니다.우리가 누굴 뽑든지간에 이것은 우리나라가 처해진 운명이라고
봅니다. 언론은 역대 가장 비호감선호도가 높은이들의 경쟁이라고 합니다
제대로 된 정책을 통한 경쟁이라기보다는 다들 남의 흠을 잡는 네거티브전략이 먹히는
것 같은 것이기에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산란합니다.
이곳에서도 우리의 삶에는 의미가 부여된다는 진리는 그대로 들어있을것이라 여겨진다.
가지에 붙어있어야 열매를 맺을수가 있는 포도처럼 우리는 늘 가급적이면 자주
주님의 말씀에 붙어야 할것입니다. 요즈음 저는과거처럼 생각이 명확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보니 글쓰는것도 횡설수설한 것 같지만 이또한 주님의 영역에 속한것이라
여겨집니다. 또다시 성서형제회가족들과 만날때에 나의 모습을 그리며 기다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