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대표적 화엄명찰 금정산범어사(金井山梵魚寺)(1)
부산을 대표하는 사찰 하나를 들라면 대부분 금정산범어사(金井山梵魚寺)라 할 것이다. 1972년 총각시절 넉넉지 못한 봉급이지만 친구 U와 돈을 저축하여 난생 처음 배를 타고 제주도를 갔다 돌아오는 길에 제주-부산행 아리랑호를 타고 부산에 내렸것다. 그 때 긴 여행으로 피곤은 했지만 시간의 여유가 조금 있어 부산의 명소를 찾아보자는 제안에 송도 해수욕장과 용두산공원 등 몇 군데를 헤매다 범어사를 들렀었다. 그래서 지금도 범어사 하면 그 때 인상에 남았던 일주문의 돌기둥이 기억나곤 한다. 부산하면 다른 특색이 있겠지만 내 취향에 따라 범어사를 먼저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그 후 부산을 들를 기회가 몇 번 있었으나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범어사와의 인연은 닿지 않았다. 그저 이따금 그 시절 빛바랜 흑백사진으로 범어사를 추억할 뿐이다. 그런데 이번 여래지답사회 프로그램에 범어사 코스가 있어 내심 작정을 하고 찾아 나서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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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의 상징 큰 돌기둥의 일주문)
이제 고속도로가 거미줄처럼 건설되어 1박을 해야 찾을 수 있는 곳을 하루 만에 여유롭게 다녀오게 된지도 꽤 오래되었다. 미명(未明)의 7시에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문경 휴게소에서 잠간 쉰 후 중부-영동-중부내륙고속-경부-신대구부산고속도로를 내달아 4시간여 만에 목적지 범어사주차장에 내려놓는다. 범어사 주차장에서 점심 식사 예약을 한 식당으로 가는 길 옆에 부산의 대표적 소설가 요산 김정한(樂山 金廷漢 1908~1996) 선생의 문학비가 있어 디카에 담아 본다. 선생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민중의 투쟁과 비극을 형상화하는데 노력한 작가로 사하촌, 모래톱 이야기 등 문제작을 쓴 작가로 범어사 아래동네가 바로 선생이 태어나신 곳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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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가는 길의 멋진 소나무와 요산 김정한 선생의 문학비)
갓가지 밑반찬의 백반으로 점심을 든 후 첫 답사지인 범어사의 부속 암자인 원효암으로 출발한다. 범어사를 거치지 않고 금정산 기슭을 타고난 길을 따라 조금 오르니 발 아래로 범어사 사역이 눈에 들어온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범어사 옆 계곡의 커다란 바위 덩어리들이다. 그것도 지름이 2~5미터에 이르는 큰 바위(巖塊)들이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다. 계곡이라기보다 큰 바위 즉 ‘암괴류(巖塊類)’라 부르는 너덜지대, 대개 강바닥 자갈은 하류로 내려올수록 작아지지만, 중력에 의해 굴러 떨어진 암괴류는 하류가 더 큼직하다. 어른 2~3명이 누워도 될 만한 너럭바위로 계곡을 덮었다. 암괴류는 범어사 입구에서 본찰 위에 있는 금강암까지 200m 정도 이어진다. 특이한 지질이다. 해설엔 빙하시대 형성된 것이라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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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계곡의 암괴류)
금정산의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부산시민들로 좁은 길은 이어진다. 숨을 헐떡이며 능선위로 오르니 멀리 부산시내의 일부가 눈 아래로 들어온다. 주변엔 편백(扁柏)인지 키가 큰 나무가 겨울인데도 싱싱하다. 상록수림 사이로 부도 3기가 정돈되지 않은 기단위에 원구형과 범종모양을 하고 있다. 조성연대는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길 왼편은 기단이 생략된 3층 석탑이 몸돌이 긴 1층에 비해 2,3층은 아주 작다. 옥개석이 여기저기 깨진 채 복원된지 얼마되지 않아 보인다. 안내판을 보니 라밀려초(羅末麗初)에 제작 된 삼층석탑으로 부산시유형문화재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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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암 오르는 길과 입구에서 내려다 본 부산 시가지)
쭉쭉 자란 편백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오르니 우측으로 허름한 일주문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양반가의 솟을 대문처럼 조금 높은 문 양쪽으로 행랑채를 끼고 있다. 나중에 보니 이 지방 특징적 형식인지 금강암의 일주문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정면에 길게 기억자의 맞배지붕의 무량수각이 퇴색된 기와에 비가 새는지 두꺼운 비닐로 둘러친 모습이 을씨년스럽다. 암자라고 하기엔 전각의 규모가 크다. 많은 신자들이 자유로이 전각 안으로 드나들며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신자들이 쓰는 방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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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암 입구의 부도밭과 동편 3층 석탑과 안내문)
전각엔 여러 편의 현판이 보이는데 무량수각(無量壽閣)이란 낮 익은 현판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가만히 살피니 해남 대흥사에 걸린 추사 선생 글씨의 현판을 모각해서 걸었는지 글씨는 추사 선생의 예서체인데 낙관엔 약완(若阮)이라 작은 해서글씨로 써있다. 그러나 선생의 필체는 아니다. 약완이라면 추사와 같다는 뜻인지... 추사가 제주로 귀양 가는 길에 썼다는 대흥사의 무량수각(無量壽閣)과 같은 비후미(肥厚美)의 예서체 글씨이다. 넓은 마당엔 낮게 깔린 향나무와 활엽정원수가 나목으로 서있고 그 주변은 덤불처럼 덮여있다. 일행들 중 일찍 와 찬찬히 돌아보는 분들도 있다. 많은 여신도들의 억센 경상도 억양들이 넘나드는 방 옆엔 우리네 안방처럼 꾸민 조그만 방안엔 부처님을 모셔 참배하는 사람들이 훤화(喧譁)소리와 상관없이 지심정례 절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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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암 입구의 편백수림과 일주문 그리고 무량수각)
생활공간 위에 예배 공간인 스님들의 선방은 단청이 되지 않은 모습이 퇴락해 보인다. 그옆에 선방처럼 상처가 많은 3층 석탑이 있어 올라보았다. 곳곳의 명찰엔 신라의 화엄종주 의상이 다녀갔고 그곳엔 그의 라이벌 원효가 있어 이곳 범어사도 의상 스님이 창건할 당시 원효선사가 원효암(元曉庵)도 함께 세웠다니 한국 불교의 가장 우뚝한 봉우리로 숭앙받고 있는 두 스님은 구도의 동반자임을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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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암의 편액들 원효암은 관지가 희미해 누구의 글씨인지 판독이 어려웠고, 제일선원은 이 지방의 명필 자우 김찬균의 수적으로 그리고 무량수각은 추사선생의 모각 같다)
또한 이곳은 범어사 조실로 존경을 받고 있는 지유선사가 주석하는 암자라 한다. 이렇게 신도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선사의 법문을 들으려 한다는 안내문을 보니 승속의 구분을 따지지 않는 걸림없는 노선사의 도력을 짐작할 수 있겠다.
암자의 바로 위로 의상대와 원효석대가 있다하나 마음은 벌써 범어사에 가 있어 오던 길을 내려왔다. 너럭바위 계곡을 건너 사역으로 들어서니 범어사 뒤쪽 넓은 일군의 건물은 최근에 조성한 듯 산뜻한 단청의 건물인 각해선원(覺海禪院) 등 수행공간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현판글씨를 보니 부산의 대표적인 서예가 청남 오제봉 옹의 말년의 작품인듯 한 현액은 고졸한 필체이나 획은 힘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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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위쪽의 각해선원과 청남 선생 휘호의 편액)
선원 내부를 한 바퀴 돈 후 위쪽의 금강암으로 향하니 금정산에서 하산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래 선원과 마찬가지로 암자라고 하기엔 규모도 크고 전각도 많다. 독립된 사찰이라 해도 될 것 같다. 좁은 입주문을 들어서니 마당엔 등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일주문 현판에서부터 대웅전 등 크고 작은 전각의 현판과 주련이 온통 금색의 한글로 되어 있는데 모두 한사람의 글씨로 되어 있다. 능필도 아닌 비후미의 글씨가 눈을 어지럽힌다. 어느 분의 행위인지는 몰라도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암자와 사찰은 부처님이 상주하는 공간으로 꾸밀진데 지고지선의 정성과 아름다운 조형물로 불국을 장엄해야 함에도 어떤 분의 사사로운 욕심이 이런 연출을 한 것은 아닌지.... 한 중생의 욕심에 찬 글씨로 덕지덕지 매워있어 차라리 눈을 돌리고 싶다. 그래선지 그 넓은 공간과 많은 전각에 관심을 가질 수 없어 그저 한 바퀴 휑하니 돌고 나왔다. 지금 꾸미는 전각과 탑 등 불사의 유물들은 현세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먼 후세까지 미칠 것을 생각한다면 나무 한 그루 꽃 한 포기를 심어도 좀 더 먼 앞날을 내다보고 공간경영을 해야 할 것이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범어사 외곽을 돌아 입구 쪽으로 내려왔다. 입구에서부터 차례차례 둘러보고 싶어서이다. 일요일이라 절 내외엔 사람들로 넘쳐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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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암 일주문 다정한 부부가 포즈를 취하고 있어 그대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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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암의 등)
첫댓글 잘 감상했습니다.
오랜만에 제 블러그에 있는 글을 올려 봅니다. 감사합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산사인데....5년 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답사여행기 찬찬히 읽어보고 가을 쯤에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가보아야겠습니다.
물꽃나무님, 지난 2월 참으로 오랜 그리움으로 범어사를 다녀왔습니다. 그리움이 깊으면 기대만큼 다가가지 못하나 봅니다. 그러나 범어사의 무게만큼 느끼고 왔습니다. 많은 부산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사찰이었습니다. 그저 글씨 찾아 떠나는 사찰 기행입니다. 늘 찾아 격려의 글을 올리시기에 이렇게 서투른 글이나마 용기를 내어 오랜만에 올려 봅니다. 범어사 만큼은 물꽃나무님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겠죠. 함 차분히 둘러 보십시오.
절에만 도착하면 너의 눈에서는 빛이난다는 친구의 말이생각나는 아침입니다...가본곳은 아니지만 가본듯이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무림선생님...건안히 늘 행복하셔요...
네 지난 3월에 다녀와 정리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