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마음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오늘 아침,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잠시 마트를 다녀오던 길인데 누가 집 앞에 차를 세우더니 나를 불렀다.
“임선생님, 임선생님”
흘깃 뒤돌아 보니 아는 분이었다.
“어디 다녀오시나 봐요. 전화를 했더니 안받으시대요”
하면서 다가왔다. 뜻밖에도 먼곳에 사는 조영만 회장이었다. 비워둔 집을 돌아보려고 잠깐 들른 김에 전달할 것이 있어서 찾아왔다며 쇼핑백 하나를 내밀었다.
“변변한 것은 아니지만 한번 드셔보세요. 제가 농장에서 직접 가꾼 겁니다”
내용물을 보니 대봉포도였다. 네 댓 송이가 종이에 정성스레 싸있었다.
“아이쿠, 안주셔도 되는데 일부러... 잘 먹겠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금방 헤어졌다. 바로 이분, 조영만 사장은 내가 사는 곳에서 약 8km떨어진 화양면에서 농장을 경영하며 지내고 있다. 내가 가보지는 않았지만 숙식을 할 수 있는 도구를 갖춰놓고 있다고 한다. 본가는 내가 사는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웅천에 있는데, 그곳은 종종 둘러보기만 한단다. 그러니까 집을 둘러보러 온 김에 나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얼마나 고맙게 생각되는지 몰랐다. 무엇을 꼭 선물 받아서가 아니다. 그리고 양과 가격이 문제 아니다. 마음에 없다면 아무리 밥을 사준다고 초대해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 따뜻한 마음을 헤아려본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특히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은 무엇일까. 무엇을 좋게 본 것일까.
조영만 회장은 그간 한국을 떠나 30년 남짓을 미국에서 산 분이다. 미국에서는 물류유통업에 진출하여 크게 성공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바쁜 생활에 건강을 잘 돌보지 못해서인지 어느날 갑자기 중풍이 찾아왔다. 해서 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국내에 들어올 결심을 하고 정착할 만한 곳을 찾아서 전국을 누볐단다. 그런 끝에 여수를 택하게 되었다. 고향이 서울이니 그 근교를 고려할 수도 있었지만, 오염되지 않는 해안도시를 찾아보니 여수가 낙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를 알게 된 계기는 다니는 성당 서가에 꽂혀있는 책을 보게 되면서라고 한다. 집에 가져와 읽어보니 한번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단다. 아마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한 3년 전 나는 어느 낯선 분한테서 전화한통을 받았다. 뵌 적은 없지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인연을 맺게 되었다. 조회장은 이제는 완전히 성한 사람 이상으로 건강을 되찾았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맑은 공기마시며 텃밭을 일구고 산 게 비결인 것 같다고 한다.
대봉포도송이를 보면서 조회장의 따뜻한 마음을 헤아려 본다. 그리고 느껴 본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으로 부터 받은 따뜻한 손길도 생각난다. 엊그제는 서울에 사는 후배문인으로 부터 용돈을 받았다. 말복도 가까워오니 집사람과 같이 삼계탕을 드시라고 보내왔다. 이 밖에도 명절만 되면 잊지 않고 선물을 보내주는 분도 있다. 과일을 보내고 한과를 보내고 해산물도 빠지지 않고 보내준다. 집사람 때문에 고생한다고 보내주는 호의지만 실로 호사는 내가 받고 있는 셈이다.
이 분들과는 거의 글을 씀으로서 인연이 맺어졌다. 글을 쓴 연륜이 좀 깊다보니 대접을 받은 것인데, 고맙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하나의 타성인가, 받으면서도 그간은 별로 큰 감동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진정 생각하는 마음이고 배려가 아닌가 싶다. 적어도 보내는 순간만은 나를 생각하고, 시간을 할애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사람의 면면을 헤아려보니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것을 떠올리면서 좋은 인연을 절대로 잊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각박하게 살아가는 인생길에서 자기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닌가.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깊이 든다.
오늘 아침 나는 내가 아픈 아내의 식사를 챙기면서 선물 받은 대봉포도를 씻어서 내 놓았다. 그걸 본 아내의 아내의 얼굴빛이 갑자기 밝아졌다. 어디서 났느냐고 묻는 눈치를 보인다.
말은 못하지만 알아는 들으니까 “조회장이란 분이 가져왔다”라고 하니 서툰 발음으로 한 마디 한다.
“식사!”
식사를 대접하라는 것이다. 설마 내가 받기만 하고 살까마는 그런 일에는 보답이 있어야 한다는 아내의 생활철학을 말한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알겠노라고 다소 과장되게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2018)
첫댓글 저로서는 발뒤꿈치도 따라갈 수 없는 선생님의 순애보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조 선생님과 인연이 기이하군요 화양면에서 농사 지으신다니 궁금하기도 하고요
작은 모임에 김 선생님이 발을 거두고계시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악연도 있지만 대부분 인연은 아름다운 노정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인연 더욱 소중하게 가꿔나가시기 바랍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8.12 17:04
우리 선생님, 정말 따뜻하신 분^^
박선생님 댓글 고마워요.
마음 씀씀이가 따뜻한 사람이 있어요. 고마운 사람이지요. 저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는데, 평생 잊지않고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따듯한 사람은 언제 보아도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