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수영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시여, 침을 뱉어라」중에서
거짓을 배격하고 구속과 억압을 거부한 시인, 자유시인 김수영.
자유와 사랑을 노래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인 김수영.
그는 1921년 11월 27일, 서울 종로에서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김수영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예술을 향한 열정을 간직한 청년으로 성장한다. 그 시작은 연극을 통해서였다.
이후 1945년, 광복의 기쁨을 안고 가족과 함께 만주로부터 서울로 돌아왔다.
이듬해 김수영은 <예술부락> 제2집에 시 <묘정의 노래>를 발표하며 자신의 예술적 무대를 연극에서 문학으로 옮기기에 이른다.
김수영의 시에서 한국 현대시 사상 처음으로 시적인 말과 일상적인 말의 차별이 사라졌다.
이것은 시와 삶을 완전히 일치시키려는 김수영의 치열한 노력과 극단적인 정직성이 낳은 결실이었다.
광복 후, 그의 삶에 어두운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1950년 민족상잔의 아픔 6·25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였다.
당시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던 김수영은 의용군에 징집되었고 두 달 만에 훈련소에서 탈출,서울로 돌아왔지만 경찰에 체포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포로수용소에서의 생활은 김수영에게 자유의 의미를 뼛속 깊이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52년 겨울, 석방되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환경에서 살아나온 그에게 서울은 서러운 곳이었다.
물질적 궁핍과 문화적 후진성, 독재정치와 분단 현실 그리고 서양 문물의 파도는 김수영에게 깊은 번민을 주었으나 김수영은 꿈과 감정을 다루는예술가로서의 자세를 조금도 흩뜨리지 않았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충격을 줄 수 있는 진정한 시, 자유로운 시를 쓰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1959년 출간된 시집『달나라의 장난』은 김수영 생전에 출판된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으로이 시기의 시들은 바로 살고자 하는 의지와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현실 사이의 갈등과 슬픔의 극복이 중심적인 내용을 이루고 있다.
1960년 봄, 김수영의 시적 세계를 변화하게 만든 큰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3·15 부정선거와 4·19혁명이 그것이다.
통제와 억압의 시대, 자유를 갈구하는 민중의 목소리가 거리를 가득 메웠던 그때. 시인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통일을 느꼈다고 했다.
4·19혁명 이후 김수영의 시는 현실에 대한 자기주장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바로 자유. 자유와 사랑이었다.
한편 4·19혁명을 통해 자유의 참뜻을 현실적으로 체득했던 그는 4·19혁명이 군사정권에 의해 좌절되는 것을 보고 깊은 회의에 빠져 자기풍자와 현실비판의 시들을 절규처럼 썼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김수영 시에서 자유의 이상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고 이로부터 그의 유명한 온몸의 시학이 탄생한다.
김수영의 산문은 그의 시에 못지않은 명문으로 꼽힌다.
특히 산문「시여, 침을 뱉어라」는 독자에게 시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일깨우는 시론이자 인식의 틀을 깨는 혁신적인 시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시론에서 김수영은 예술로서의 시와 구체적 현실을 일치시키는 시를 주장했다. 시인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꿈을 추구하지만 시가 되는 순간 그것은 가능한 현실로 바뀐다.
독자는 그 시로부터 새로운 현실을 보고, 느끼게 된다.
이러한 새로움을 보여주는 시의 언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운 우리말이며 이러한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시인의 임무라고 김수영은 주장했다.
거칠고 힘찬 어조 속에 가득 찬 자기반성과 폭로, 사회현실에 대한 맹렬한 비판을 통해 현실 참여와 사회 정의를 부르짖었던 김수영. 하지만 그의 시는 삶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있다.
1968년, 그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48세 그 짧은 생을 마감한다.
김수영 사후, 김동리, 박목월 등 한국의 대표적 문인들이 주축이 되어 먼저 간 시인을 추모하고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사망 1주기를 맞아 서울 도봉산 기슭에 시비를 세운다.
문인들과 독자들로 구성된 290여명의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아 만든 성금을 바탕으로 건립된 김수영의 시비에는 1970년대 이후,우리 시의 새로운 길을 열게 한 김수영의 대표작이자 그의 마지막 작품 시 <풀>이 새겨져 있다.
현대 문명과 현실을 비판하던 서정적 모더니스트에서 자유와 저항을 부르짖던 참여시 작가로,모질고 격한 비바람 같았던 우리 역사와 함께 서서 시대와 함께 변모하고 고뇌했던 시인 김수영.
그는 떠났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삶과 현실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시비 안내
김수영 시인 시비
김수영 시인 타계 1년 후인 1969년 고인의 선영인 도봉동에 건립된 이후1991년 도봉산으로 이전되어 현재 도봉서원 앞에 위치해 있다.
시비에 새겨진 구절은 그의 마지막 작품 「풀」의 두 번째 연이며글씨는 시인의 자필원고를 확대한 것이다.
김수영 시인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