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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뉴욕, 정장을 차려입은 제이크 라모타가 디너쇼를 준비하며 거울 앞에서 멘트를 연습 중이다. 그로부터 다시 1941년, 링 위에서 경기 중인 왕년의 젊은 복싱 선수 제이크를 비춘다. 압도적인 경기를 펼쳤지만 심판전원일치 판정패를 당하고 분노한 그의 팬들은 링 위로 난입해 경기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무명 복서인 그는 동생이자 매니저인 조이와 함께 미들급 챔피언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러다 아름다운 금발 여인 비키에게 첫눈에 반해 결혼에 이른다. 하지만 의처증을 가진 제이크는 자신의 일을 도와주는 샐비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과 아내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아내가 잘생기고 인기가 많다고 말한 선수 재니로를 링 위에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짓이겨놓기도 한다.
이후 챔피언 제이크는 점점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거기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마피아와의 유착도 끼어든다. 결국 그는 조이와 아내의 관계도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러 형제 관계 또한 끝장나고 만다. 접전 끝에 슈거 레이 로빈슨에게 패하고 만 그는 은퇴를 선언하고, 급격하게 몸무게가 늘어난 그는 링 밖의 개인적 삶마저 엉망진창이 된다.
나이트클럽을 열지만 미성년자 알선 혐의로 형무소 신세도 지게 되고 결국 비키도 그의 곁을 떠난다. 동생 조이와의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도 물거품이 된다. 그렇게 그는 과거 선수 시절의 추억으로 연명하는 밤무대의 스탠딩 개그맨이 된다.
1. 실존 인물 제이크 라모타와 사회적 배경
1941년으로 시작하는 과거 이야기에서 보건대 제이크 라모타는 1920년대 미국 금주법 시대에 태어난 젊은이다. 그가 관통해온 유년기와 청년기는 수백만 명의 실업자가 넘치던 미국의 암흑기였다. 실업자와 빈민이 식료품을 무료 배급받으려고 줄 서 있는 모습은 미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뉴딜 정책을 펼치며 사회적, 경제적 개혁을 시작했고 청년 실업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여러 정책도 시도했지만 제이크 라모타 같은 뜨거운 피를 지닌 청년은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자신과 전혀 체급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헤비급 챔피언 조 루이스와 시합을 벌이고 싶다고 진지하게 얘기하는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돈과 주먹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싶다는 야심밖에는 없다.
그의 모습에는 미국의 암흑기를 힘겹게 거쳐온 가난한 이탈리아계 이민자 세대의 한이 서려 있다. 1930년대 이후 어둠의 세계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이탈리아계 마피아의 모습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가 보여주는 폭력적 성향과 기행(奇行)도 그렇게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것은 마틴 스코시즈가 자신의 성장 배경을 끌어안는 것이기도 했다.
영화평론가 리처드 시켈이 쓴 〈마틴 스코세이지와의 대화〉에 따르면 “〈분노의 주먹〉은 내게 새로운 무언가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그건 바로 내 성장 배경을 받아들이는 거였다. ‘내 정체성과 출신 배경은 어떻게 해도 도저히 부정 못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서, 실제로 영화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출연했다. 부모님은 세트장에 와서 내 정체성과 출신 배경을 상기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그동안 속에 꾹꾹 눌러 담아온 분노와 화가 마침내 〈분노의 주먹〉에서 폭발했다”고 말했다.
2. 영화사적 의미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1980)의 참패로 퇴출당할 위기에 처했던 유나이티드 아티스츠사는 〈분노의 주먹〉으로 기사회생했다. 뮤지컬 〈뉴욕, 뉴욕〉(1977)을 야심차게 만들었다가 실패하고, 비슷한 시기 마약 복용으로 삶이 피폐해졌던 마틴 스코시즈 또한 이를 계기로 다시 할리우드의 중심으로 복귀했다.
무엇보다 〈분노의 주먹〉은 1970년대 미국영화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1980년대를 힘차게 열어젖혔던 대전환기의 영화이기도 하다. 흑백으로 완성되어 1970년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최후의 클래식 무비라고나 할까.
과거와 현재를 자유로이 오가는, 당대 전기영화 스타일에 대한 혁신적 접근으로서도 〈분노의 주먹〉은 어떤 교과서와도 같은 지위를 획득했으며, 수많은 평론가와 학자들이 비평의 대상으로 다뤘다.
가령 데이비드 보드웰과 크리스틴 톰슨이 쓴 〈필름 아트〉는 〈분노의 주먹〉에서 드러나는 한 남자의 흥망성쇠와 폭력의 재현 양상을 통해 미국적인 이데올로기를 묘사하는 태도에 주목했다. “제이크 라모타는 말다툼, 협박, 구타 등이 아니면 어느 누구와도 교제할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두 번의 결혼, 특히 두 번째인 비키와의 결혼 생활은 집 안에서의 말다툼과 폭력으로 점철돼 있다. 가장 가까운 동생 조이도 끝내 질투어린 분노로 두들겨 패고 멀리한다. 자신을 둘러싼 타인 모두에게 상처를 주고 내쫓는다”라며 ‘미국적인 삶에 있어서의 폭력의 역할’에 대한 중요한 텍스트라고 지적한다.
또한 그것은 마틴 스코시즈 개인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데이비드 톰슨 등이 엮은 그의 자서전 〈비열한 거리 : 마틴 스코시즈, 영화로서의 삶〉에 따르면, 그는 “〈분노의 주먹〉을 내 경력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내가 알고 있는 것, 느끼는 것을 모두 쏟아 부었다. 이것이 내가 ‘가미카제식’ 영화 제작법이라 말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쏟아 붓고 그리고 모든 것을 잊어버린 다음 다른 생활을 모색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3. 영화의 주제
〈비열한 거리 : 마틴 스코시즈, 영화로서의 삶〉에 따르면, 스코시즈는 “제이크 라모타의 성격이 갖고 있는 자기파괴적인 측면에 매료됐다”며 “그것은 원초적인 감정이다. 사실 다른 사람을 때려서 쓰러뜨리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더 원초적인 것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덧붙였다. 〈마틴 스코세이지와의 대화〉에서는 “난 항상 더 내려갈 밑바닥도 없는 다윗이 계약의 궤에 손을 올리자, 하나님이 와서 그를 끌어올리는 위대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다윗이 나쁜 일을 그토록 많이 저질렀다는 점에 흥미를 느낀다”고도 말했다.
그러니까 〈분노의 주먹〉의 주제는 한 이탈리아계 이민자 복서의 분노와 출세를 향한 절박한 몸부림에 담아낸 미국적 영욕의 삶, 그 자체다. 영화비평가 로저 에버트는 〈분노의 주먹〉에 대해 “〈분노의 주먹〉은 복싱영화가 아니다. 질투와 성적 불안감에 온 정신이 마비되어 링에서 징벌받는 것을 고해성사로, 참회로, 면죄부로 여기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라며 “더불어 인간의 질투를 가장 고통스럽고 비통하게 그려낸 영화다. 말하자면 〈분노의 주먹〉은 우리 시대의 〈오셀로〉다. 여자들을 학대하게 만드는 남자들만의 자존심, 성적 불안감, 두려움을 다룬 영화 중에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격찬했다.
4. 테크닉의 백과사전과도 같은 복싱 장면
원래 2주 정도 촬영할 계획이었던 복싱 장면은 무려 10주 동안 이어졌다. 애초에 복싱 팬이 아니었던 스코시즈가 생각하기에 영화 역사상 복싱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은 버스터 키튼의 〈싸움왕 버틀러〉(Battling Butler, 1926)였다. 그래서 그는 고정된 카메라의 단조로운 화면을 벗어나 카메라가 진짜 복서와 함께 링 위에서 움직이길 바랐다. 그렇게 카메라를 링 안에 머물게 했고 화면의 앵글과 사이즈를 원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조절했다.
〈필름 아트〉에 따르면 이 영화에서 “싸움의 대부분은 스테디캠으로 촬영됐고, 링 주위의 카메라 스포트라이트들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은 역광은 선수들이 펀치를 맞을 때 날리는 땀방울이나 피를 강조한다. 종종 생략된 편집과 결합된 빠른 편집은 시끄럽고도 날카로운 사운드와 함께 펀치의 물리적인 힘을 강화시킨다. 특수분장 또한 선수의 얼굴에 기괴하게 솟아난 혈관들의 효과를 돋보이게 만든다.”
그야말로 복싱 장면 연출의 혁명을 이뤄낸 것이다. 힘들게 흑백으로 결정된 화면과 함께 제이크의 주관적 시점으로 연출된 장면은 종종 폐소공포증을 불러일으켰으며, 캐릭터의 고통이 한없이 이어져 관객의 깊은 감정이입을 유발했다. 앞서 〈택시 드라이버〉(1976)를 함께 했던 마이클 채프먼 촬영감독의 역량은 〈분노의 주먹〉에 이르러 화려하게 만개했다.
제이크 라모타(로버트 드니로 : 1943, 미국, 177cm) : 무명 복서로 시작하여 미들급 세계 챔피언이 된다. 비키에게 반해 아내를 버리고 두 번째 결혼을 하지만, 사사건건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고 경기력도 떨어져 결국 은퇴하고 만다. 그리고 클럽 밤무대의 스탠딩 개그맨으로 살아간다.
조이(조 페시: 1943, 미국 / 이탈리아계 이민족, 163cm) : 제이크 라모타의 동생이자 매니저다. 함께 세계 챔피언의 꿈을 이루지만, 질투에 눈이 먼 제이크로 인해 관계가 소원해진다.
비키(캐시 모리아티 : 1960, 미국, 175cm) : 제이크 라모타가 한눈에 반한 금발의 아름다운 여인으로, 결코 제이크에 지지 않는 강한 성격을 지녔다. 하지만 제이크의 계속되는 의심과 폭력으로 결국 그를 떠나고 만다.
난 최고가 될 수 있었어. 난 도전자가 될 수 있었어. 난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었어.
- 제이크 라모타〈분노의 주먹〉은 제이크 라모타가 무대에 서기 전, 거울 속의 자신을 상대로 대사를 읊는 장면으로 끝난다. 선수 시절과는 달리 엄청나게 살이 찐 그가 힘차게 주먹을 휘둘러도 보지만 그럴수록 이 챔피언의 몰락은 더욱 슬퍼 보인다. 여기서 그가 읊는 대사는 엘리아 카잔의 〈워터프론트〉(1954)에서 ‘나는 도전자일 수 있었다’며 테리(말론 브랜도)가 형인 찰리(로드 스타이거)에게 던졌던 원망 섞인 대사다. 이에 대해 제이크가 형제 조이를 원망하는 것인지, 아니면 뒤늦게 모든 책임을 스스로에게 지우는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비열한 거리 : 마틴 스코시즈, 영화로서의 삶〉에서도 스코시즈는 “나에게도 곤란한 질문”이라며 관객의 상상력을 환기시키는 애매한 결론으로 남겨뒀다. 실제로도 영화에서 가장 마지막에 촬영했으며, 총 19번 촬영했다가 결국 드니로가 양보하여 스코시즈가 원하는 장면으로 결정됐다.
제이크 라모타의 자서전 〈성난 황소 : 나의 이야기〉(1970)
• 1980년 LA비평가협회상 작품상, 남우주연상(로버트 드니로)
• 1980년 뉴욕비평가협회상 남우주연상(로버트 드니로), 남우조연상(조 페시)
• 1980년 전미비평가협회상 남우주연상(로버트 드니로), 남우조연상(조 페시)
• 1981년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로버트 드니로), 편집상(델마 슌메이커)
• 1981년 골든글로브상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로버트 드니로)
• 1982년 영국 아카데미상 편집상(델마 슌메이커), 신인배우상(조 페시)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중 간주곡(Intermezzo)이 흐르는 가운데 등장하는 오프닝 장면은,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오프닝 중 하나로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이 장면에선 제이크 라모타가 흑백의 링 위에서 혼자 섀도복싱을 하며 몸을 풀고 자욱한 연기 속에서 간혹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것만 보인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몽환적인 이 오프닝은 이후의 전반적인 영화의 정서마저 지배할 만큼 압도적이다.
〈알리〉(2001, 마이클 만) :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말로 거침없는 연승 행진을 이어갔던 실존 세계 헤비급 챔피언 알리의 이야기다.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함으로써 부당하게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국내에서의 시합은 물론 출국조차 금지당한 뒤, 안타깝게도 선수로서의 전성기를 아깝게 흘려보낸다. 〈분노의 주먹〉의 제이크가 때이른 몰락과 은퇴의 이야기라면, 알리는 은퇴를 고려해야 한다고 평가되는 32살에 챔피언 벨트를 되찾기 위해 24살의 조지 포먼에게 도전한다는 이야기다.
〈신데렐라 맨〉(2005, 론 하워드) : 미국 최고 암흑기였던 경제 대공황 시기를 배경으로, 전도유망했던 실존 라이트 헤비급 복서 브래독(러셀 크로)과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스스로를 ‘헝그리 복서’라 칭하며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던 미국인들에게 큰 희망을 선사했다. 〈분노의 주먹〉보다는 앞선 시대, 보다 가정적인 남자주인공의 이야기다.
첫댓글 1970년의 자서전, 1980년 영화화
인간은 누구나 현실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한다
지나놓고 보면 그때가 좋았고,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좀더 잘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그 교훈을 미들급 복싱선수를 등장시켜 철학적으로 풀어냈다.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가 놀랍다
43년생인데도 아직도 연기생활을 계속하는 노익장을 보여주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한 영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