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수남 "고교때 AFKN 듣고 받아 쓴 팝송 200곡… 그게 날 가수로 키워"
[한미 동맹 70년, 번영을 위한 동맹] [6]
1세대 포크 가수 서수남과 AFKN
윤수정 기자 입력 2023.10.04. 03:52 조선일보
경기도 화성시 동탄에서 최근 ‘서수남의 노래배움터’란 노래 교실을 연 서수남은 “이토록 오래 음악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도 미8군 쇼에서 얻은 경험의 힘이 크다”고 했다. /남강호 기자
“고등학생 때 AFKN 라디오 듣고 빼곡하게 베껴 적은 영어 노래 가사가 200곡입니다. 오후 3시와 7시, 컨트리 음악 나오는 시간을 늘 기다렸죠.”
최근 경기도 용인시에서 만난 가수 서수남(80)은 아직도 그 시절 기억이 사진처럼 또렷하다고 했다. 서수남은 196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컨트리 송과 포크 팝 흐름을 이끈 1세대 가수로 손꼽힌다. 서수남은 “미군 부대와 AFKN에서 얻은 음악적 영감이 가수의 길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당시 미군 부대에서 들려온 ‘브러더스 포’ ‘킹스턴 트리오’ ‘비틀스’ ‘클리프 리처드’ 같은 가수들이 저 같은 학생들 마음을 설레게 했죠. 명동 딸라(달러) 골목에서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컨트리 음악책을 사와 열심히 가사를 오렸고요.”
서수남은 1962년 MBC (라디오) 문화방송 주최 서울특별시 콩쿠르대회 금상을 받으며 가수로 데뷔했지만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한국의 브러더스 포’를 꿈꾸며 결성한 4중창 그룹 ‘아리랑 브라더스’에 합류했지만 워커힐 호텔 쇼무대 오디션에 혼자만 떨어졌다. “당시 워커힐 쇼는 주로 일본 관광객이나 주한 미군들이 찾아오는 곳이었어요. 화음 맞추는 백 코러스 역할로 사중창이 꼭 한 팀씩 들어갔어요. 저는 키가 너무 커서 너무 튄다며 제가 빠져야 팀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거예요. 눈물을 머금고 팀을 떠나야 했죠.”
1969년 AFKN 라디오 ‘굿모닝 코리아’ 방송 모습. /AFRTS 아카이브 홈페이지
서수남은 “그때 만회의 기회를 준 곳이 미8군 쇼였다”고 했다. 워커힐 오디션을 지켜본 누군가가 그에게 말했다. “용산 삼각지 로터리 미군 부대 쇼단을 찾아가 보소. 당신 거기서 인기 엄청 끌겠네.” 당시 용산에는 미8군에 가수를 공급하는 용역 업체들이 여럿 있었다. 요즘의 연예 기획사였다. 패티김·현미 등 스타들이 속한 곳이자 가장 규모가 컸던 ‘화양’을 필두로 ‘유니버설’ ‘대영’ 등이 경쟁했다. 업체 산하에 악단장이 이끄는 쇼단이 여러 개 있었고, 유명 가수를 길러낸 길옥윤·이봉조 등 작곡가들이 미8군 악단장을 겸했다.
“이 쇼단 사장과 악단장 눈에 들어야 미8군 쇼에 데뷔할 수 있었어요.” 서수남은 ‘대영’을 찾아갔다. 미8군 쇼 내 희귀했던 컨트리 밴드로 최고 인기를 얻은 ‘웨스턴 쥬빌리’ 쇼단이 그곳 소속이었다. 키 180cm, 몸무게 60kg대의 깡마른 체구로 기타를 들고 온 서수남에게 대영 사장의 첫마디는 “당신이 노래한다고?”였다. 서수남에겐 고등학교 시절 AFKN으로 집어 삼켰던 영어 노래 200곡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노래를 들은 대영 사장은 “야, 이거 물건이네”라고 말했다. “즉석에서 악보 없이 외워 부를 수 있는 건 50~60곡이라 했더니 ‘미8군 쇼 오디션을 봐라’라고 하더군요.” 오디션 결과는 ‘A등급’이었다.
‘미8군 영내 클럽’은 그야말로 “별세계”였다. “보통 오후 7시~8시 반 사이 디너타임 공연을 하는데 4~5시까지 쇼단들이 전부 삼각지에 모여요. 그럼 군용 트럭을 타고 전국 곳곳의 무대로 향하는 거죠. 미8군은 최고급 물자만 썼거든요. 거기만 가면 햄버거나 콜라도 박스로 싸주고, 매점에는 최신 레코드판과 악기가 반짝거리고 있어요.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죠.” 특히 화장실이 너무 좋아 충격이었다고 했다. “바깥에선 신문지를 오려서 철사에 꽂아 썼는데 거긴 부드러운 두루마리 휴지를 썼어요. 주변에 ‘미8군 오니 똥구멍까지 호강한다’ 우스갯소리도 자주 했지요. 하하.”
그래픽=이철원
수입도 좋았다. 서수남은 “미8군 쇼 덕분에 홀어머니 모시는 데 큰 보탬이 됐다”고 했다. 어머니는 1943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외동아들인 서수남을 혼자 키웠다. “미8군 무대 서기 시작한 지 1년 반쯤 지나서 사글세를 벗어나 당시 인왕동·공덕동 일부에 처음 생긴 아파트를 딱 한 채 마련했을 정도였으니깐요.”
서수남은 1969년 MBC 방송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하청일과 콤비를 이루면서 대중에게 유명해졌다. ‘거꾸리와 장다리’ 별칭을 얻은 이들은 특히 동물 소리를 흉내 낸 번안곡 ‘동물농장’으로 일약 스타가 됐다. 서수남은 “이 스타덤의 시작 또한 미8군과 맞닿아 있다”고 했다. “1969년에는 미군 부대 바깥에서도 미8군 쇼 같은 극장쇼가 큰 인기를 끌었어요. 저도 ‘그랜드 올프리’란 악단을 독립적으로 차려 그해 10월쯤 서울시민회관에 미8군 극장쇼를 올려 크게 흥행 중이었죠. 그런데 같은 해 12월 MBC TV방송 개국을 앞두고 ‘웃으면 복이 와요’ 김경태 PD가 내 쇼 녹화를 왔다가 스카우트 제의를 한 거예요. 이후 하청일씨와 콤비를 결성했죠.”
서수남은 “그 시절 미8군 무대는 국내 가수들에겐 음악 유학지이자 미군 청춘들에게 고향의 향수를 달래주는 민간 외교지와 다름없었다”고 했다. “나는 미8군에서도 40대 백인이 많은 하사관(부사관) NCO 클럽에서 인기가 많았어요. 조니 캐시의 ‘I walk the line’, 멀 해가드의 ‘Okie from Muskogee’…. 최신 컨트리 음악을 열심히 익혀 불렀고, 미군 관객들은 고향에서 유행하는 노래를 실시간 라이브로 듣고 감격의 박수를 쏟아냈죠. 우리 대중음악계도 세계 음악의 문화적 흐름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었고요. 지금 우리가 ‘한류’라는 융성한 결과를 얻고 있는 것도 그때 기반을 잘 닦은 덕분 아닐까요?”
☞ AFKN
American Forces Korean Network. 1957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에서 정식 송출된 주한미군 라디오와 TV 방송 채널. 이 채널을 통해 한국인들도 50년대 후반부터 미국 내 인기 애니메이션과 프로레슬링, 할리우드 영화, 드라마, 오락 프로그램 등을 일상에서 접할 수 있었다.
윤수정 기자 문화부
대중음악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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