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암나무<문학의 즐거움37>
우물 파는 아이들
린다 수 박 지음 | 공경희 옮김
독자 대상 초등 고학년 동화 ․책 크기 152.4×225mm ․값 9,000원
․출간일 2012.4.30 ․페이지 128쪽 ․ISBN 978-89-92844-74-1 73840
․원제 A long walk to water
책 소개
문학의 즐거움37 우물 파는 아이들
한국계 뉴베리 메달 수상 작가 린다 수 박이 그려 낸 아프리카 수단 어린이들의 감동 실화!
《우물 파는 아이들》은 지난 2002년 《사금파리 한 조각》으로 한국인 최초로 뉴베리 메달을 수상한 한국계 미국인 작가 린다 수 박의 신작 동화로, ‘살바’라는 한 소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극심한 물 부족과 오랜 전쟁으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 수단의 실상을 전하고 그들을 향한 진심 어린 도움의 손길을 촉구하는 이야기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넓은 국가인 수단은 오랜 내전과 극심한 물 부족으로 신음하는 곳이다. 이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수단의 두 어린이, 수단 내전으로 가족과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되어 떠도는 ‘잃어버린 소년’ 살바와 물 부족으로 고통 받는 수단의 소녀 니아가 그 주인공이다. 십여 년의 시간차를 두고 살바와 니아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이 책은 아프리카 수단의 실상을 보여 준다.
1985년 수단 남부 톤즈의 작은 마을 룬아리익의 열한 살 소년 살바는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갑작스러운 총성에 공포에 휩싸인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무작정 숲으로 도망친 살바는 가족들의 생사도 모른 채 전쟁을 피해 달아나는 낯선 사람들 틈에 섞여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피난길에 오른다. 안전한 난민 캠프를 향해 머나먼 길을 걸어서 이동하는 동안, 살바는 사자의 공격으로 소중한 친구 마리알을 잃기도 하고, 든든하게 곁을 지켜 주던 주위이르 삼촌의 죽음을 두 눈으로 목격하기도 한다. 갖은 어려움을 헤치고 살바는 에티오피아 난민 캠프에 도착하지만 안전할 줄 알았던 에티오피아도 일시적인 쉼터일 뿐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수천 명의 난민이 에티오피아에서 쫓겨나 악어 떼가 득실대는 강을 건너다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살바는 수천 명의 다른 소년들과 함께 케냐의 안전지대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다. 그리고 어느덧 청년이 된 살바에게 난민 캠프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캠프에서 3천 명의 젊은이들을 뽑아 미국으로 데려가는 프로그램에 선발된 살바는 새로운 땅 미국에서, 고향에 두고 온 잃어버린 가족을 찾고 고국 수단을 도울 희망을 품는다.
한편 2008년 현재, 수단 어느 마을의 소녀 니아는 가족이 마실 물을 긷기 위해 연못까지 하루에 여덟 시간을 걷는다. 그러나 그렇게 길어 오는 물도 형편없이 적은 데다 더러운 흙탕물이라 니아의 어린 동생은 배앓이를 하기 일쑤다. 비가 오지 않는 건기가 되면 가족은 집을 떠나 마른 호수 바닥에 자리 잡고는 물이 솟을 때까지 진흙을 파서 그 물을 마시곤 한다. 이런 상황이니, 니아와 니아네 형제들이 학교를 다니는 것은 꿈꾸기조차 힘들다. 그러던 어느 날 니아의 마을에 낯선 사람들이 나타나 우물을 파 주겠다고 한다. 우물을 파는 비용은 머나먼 나라의 어느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돈을 걷어 보내 준 것이라고. 우물이 생기면 물을 길러 오랜 시간 걸어갈 필요가 없고, 그러면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다. 학교에 나가고 읽고 쓰는 법을 배울 수 있다니, 니아는 생각만 해도 설렌다. 그렇지만 땅을 판다고 깨끗한 물이 나올까? 그리고 우물 작업의 책임자는 니아의 마을 부족과 적대 관계인 딩카 족 사람이라는데 그 부족 사람이 왜 우리를 도울까? 걱정 반, 기대 반인 니아의 눈앞에서 커다란 기계가 땅을 파기 시작하고 마침내 땅속에서 물이 쏟아져 나온다. 니아와 온 마을 사람은 환호성을 지른다. 그리고 니아는 우물 작업의 책임자인 딩카 부족 아저씨와 수줍게 인사를 나눈다. 그의 이름은 살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기에 더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이 이야기는 책장을 덮을 무렵에는 마음을 울리는 진한 감동을 전해 준다. 오랜 세월 불화하던 두 부족이 우물을 통해 화해의 손길을 마주 잡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미래의 희망도 엿볼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고통 받는 수단의 현실과 그 너머 희망까지 함께 볼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속으로
1985년, 남수단
꽝!
바깥에서 소리가 났다. 총소리인가? 아니면 그냥 자동차 소리?
선생님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교실에 있는 아이들 모두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조용했다.
선생님이 헛기침을 했고, 학생들은 다시 교실 앞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은 하던 이야기를 잇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꽝! 탁, 탁, 꽝!
두두두두두두!
총소리!
“모두 숙여!”
선생님이 소리쳤다.
몇 명이 동시에 움직여 등을 굽히고 머리를 숙였다. 다른 아이들은 겁을 먹고 두리번거렸다.
선생님은 벽을 따라서 창가로 갔다. 선생님이 재빨리 밖을 살폈다. 총소리는 멈추었지만, 이제 아이들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선생님이 낮은 소리로 다급히 말했다.
“모두 얼른 나가라. 숲으로 가. 내 말을 들었니? 집은 안 돼. 집으로 뛰어가지 마. 저들이 마을로 들어갈 게다. 마을에서 멀찌감치 있어라. 숲으로 달아나도록 해.”
그가 문으로 가서 다시 밖을 내다보았다.
“가거라! 모두! 어서!” -10~11쪽 중에서-
2008년, 남수단
어머니는 니아한테 물통을 받아 커다란 단지 세 개에 물을 부었다. 어머니가 끓인 수수죽에 우유를 조금 부어서 딸에게 주었다.
니아는 집의 그림자 속에 앉아서 죽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자 그릇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막내 남동생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니아의 여동생을 고개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키르를 데려가거라.”
니아는 동생을 힐끗 보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아키르는 겨우 다섯 살이라 키도 너무 작고 걸음도 느린데.’
“그 아이도 배워야지.”
어머니가 말했다.
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물통을 들고 아키르의 손을 잡았다.
집에는 밥 먹는 동안만 머물렀다. 이제 다시 연못으로 가야 했다. 연못에서 집으로, 다시 연못으로…… 하루 종일 걸어 다녔다. 이것이 니아의 하루 생활이었다. 일 년의 일곱 달을 그렇게 살았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26~27쪽 중에서-
지은이 소개
지은이 | 린다 수 박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한국인 부모님을 둔 한국계 미국인이다. 스탠포드대학 영문학과 졸업 후, 저널리스트, 카피라이터, 대학 영어 강사 등의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부모님에게 들은 한국 옛날이야기를 밑바탕으로 동화를 쓰기 시작했으며, 고려청자 이야기를 담은 세 번째 장편 동화 《사금파리 한 조각》으로 2002년 뉴베리 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뽕나무 프로젝트》 《내 이름이 교코였을 때》 《연싸움》 등이 있다. 지금은 뉴욕에서 작품 작업과 강연 활동 중이다.
옮긴이 | 공경희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성균관대학교 번역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서울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대학원에서 강의했다. 《호밀밭의 파수꾼》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비밀의 화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파이 이야기》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스톨른 차일드》 《굿바이, 찰리 피스풀》 《윈터걸스》 등 수많은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Tel : 02) 6254-0601, 6207-0603 Fax : 02-6254-0602
E-mail: gaeam@gaeamnamu.co.kr 개암나무 카페: http: //cafe.naver.com/gaeam
[Why] [김윤덕의 사람人]
수단內戰 동화, 美중학 교재로 한국계 작가 린다 수 박
조선닷컴 _ 김윤덕 기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11/2012051101271.html
비극의 땅… 동화로 우물을 파다, 생명을 퍼올리다
"물 한 방울이 그 땅엔 혁명… 책 읽은 전세계 아이들이 수단을 돕는다"
그래픽=박상훈 기자 ps@chosun.com
1985년 아프리카 수단. 열한 살 소년 살바는 학교에 있다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그 길로 피란길에 오른다.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에티오피아를 거쳐 케냐의 난민캠프까지 사막을 걷고 또 걷는 동안 소년은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다. 손잡고 걷던 친구가 맹수의 밥이 되고, 삼촌은 총살당한다. 정부군의 공격과 전염병, 식인 악어떼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긴 살바는 10년간 난민캠프를 떠돌다 미국으로 건너간다.2008년 아프리카 수단. 열한 살 소녀 니아는 가족이 마실 물을 긷기 위해 집에서 수십 ㎞ 떨어진 연못까지 하루 8시간을 걷는다. 48도를 웃도는 사막을 20㎏이나 되는 물통을 머리에 이고 걷는 것이 소녀의 일과다. 어느 날 니아의 마을에 낯선 사람들이 나타난다. 마을 한복판에 우물을 파겠다고 온 사람들이다. 니아의 눈앞에서 커다란 기계가 땅을 파기 시작하고, 마침내 땅 속에서 물이 솟구쳐오른다. 우물을 파준 사람은 니아네 부족과 수백년간 앙숙인 부족에서 온 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이름은 살바였다.뉴베리상 수상작가인 린다 수 박(Linda Sue Park·52)의 새 책 '우물 파는 아이들(A Long Walk to Water)'(개암나무)은 수단 내전을 다뤘다. 30년 전쟁 동안 200만명이 죽고 400만명이 난민이 된 수단의 비극에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는 청년, 살바 두트(Salva Dut·38)의 실화다. 출간 직후 이 책은 미국 중학교들의 세계사 교재로 채택됐다. 고려청자의 비밀을 파고든 '사금파리 한 조각(A Single Shard)'으로 2002년 미국 최고 아동문학상인 '뉴베리' 메달을 거머쥐었던 린다 수 박에게 '우물 파는 아이들'은 또 한번의 전환점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연싸움' '내 친구 주몽' 등 이전의 작품들이 한국계 미국인(Korean-American)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집요한 노력이었다면, '우물 파는 아이들'은 그 시야를 세계로 확장시킨 첫 작업이다.지난달 30일,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린다를 만났다. 동양인 최초로 뉴베리상을 수상한 뒤 1년의 절반은 미국과 유럽의 학교들을 순회하며 특강을 하는 그녀는 인터뷰 날에도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로 날아갈 참이었다. 요즘은 살바와 함께 수단 문제를 알리는 일로 더욱 바빠졌다. "수단 분쟁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다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던 배우 조지 클루니와 물 문제에 관심이 많은 맷 데이먼에게 저희 책을 보냈어요. 공식적으로 결정된 건 없지만 좋은 소식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웃음)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수단의 평화가 앞당겨질 수 있을 텐데요."
◇'살바 두트'를 아십니까?
―의외로 수단의 참상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수단 내전은 북부의 이슬람교도 중심 정부군과 남부의 비이슬람교도들 간 싸움이다. 지난해 7월 남수단이 독립을 선포했지만 지금도 아랍 분파와 아프리카 분파가 싸우고 있으며, 수년간의 심각한 가뭄은 수단 국민 전체에게 참혹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특히 남수단은 전쟁으로 인해 그들이 갖고 있는 자원을 거의 다 소모해버린 탓에 자력으로는 국민의 삶을 개선할 수 없는 상황이다."―소설의 주인공인 살바 두트와는 어떻게 알게 됐나.
"남편(벤 도빈)이 AP통신 기자다. 그가 수단 내전을 취재하고 와서 여러 편의 기사를 썼는데, 그중에서도 살바의 이야기가 나를 감동시켰다. 살바는 수단 내전으로 집과 가족을 잃고 떠돌다 1990년대 중반 미국으로 들어온 이른바 '잃어버린 소년들(the lost boys)'중 한 명이다. 놀랍게도 살바는 내가 사는 로체스터에 살고 있었다. 그를 만나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살바는 온순하며 겸손한 사람이다. 작은 소리로 이야기해도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게 하는 능력이 있다. 타이피스트처럼 나는 그의 이야기를 받아적기만 했다.(웃음) 작품을 위해 2008년 살바와 함께 남수단에 들어가려고 시도했지만 정치적 상황이 불안정한 데다 방문자 인원을 제한하는 바람에 좌절됐다. 나 대신 살바와 함께 수단으로 간 남편에게 그가 취재해 와야 할 리스트를 만들어줬다. 남편이 찍어온 수백장의 수단 현장 사진들과 동영상 클립들이 소설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살바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뭘까.
“내전으로 고향 룬아리익을 떠나 미국으로 오기까지 당시 11살 소년이었던 살바가 겪은 참상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하지만 살바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살바가 위대한 것은, 조국을 원망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새 가족을 만나 대학까지 공부한 살바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는데도, 어떻게 하면 수단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인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Water for South Sudan’은 살바가 수단에 우물 파는 일을 하기 위해 설립한 재단이다. 자신의 고향인 룬아리익에 첫 번째 우물을 판 뒤 지금까지 50여 곳에 이르는 우물을 만들었다. 나는 살바라는 청년이 아이들의 롤모델이 되기를 소망했다. 살바는 열한 살에 부모와 헤어져 온갖 시련을 겪은 뒤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미국으로 왔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수천 명의 삶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
- 린다 수 박과 살바 두트(오른쪽). 살바는 우물 작업을 위해 1년의 대부분을 남수단에서 보낸다./린다 수 박 제공
◇희망은 저절로 실현되지 않는다
―왜 우물이었을까?
“살바를 만나기 전 나는 ‘물이란 인간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것’이라는 교과서적 지식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물, 아니 깨끗한 물은 그것을 한 번도 마셔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마을에 깨끗한 우물이 있으면 아이들은 물을 길으러 수십 ㎞를 걷는 대신 학교에 가서 공부할 수 있다. 주민들은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시장을 열 수 있으며, 작은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이러한 연쇄반응(knock-on effect)으로 그들의 삶 전체가 달라진다.”―‘우물 파는 아이들’은 2008년 니아의 이야기와 1985년 살바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하며 전개된다.“살바와 니아 모두 살기 위해 걷는다. 혹독한 삶이지만 둘 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난다. 살바와 니아의 부족은 원수지간이지만 살바는 니아의 마을에도 기꺼이 우물을 만들어준다. 희망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그러나 희망이 공짜로 실현되진 않는다. 치열한 노력(hard work)이 따라야만 희망을 현실로 꽃피울 수 있다는 걸 전하고 싶었다.”―이 책으로 ‘2011년 제인 아담스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어린 독자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미국 아이들은 7학년(중1) 때 처음 세계사를 접한다. 세계사의 한 단원이 아프리카에 관한 것인데, 아프리카의 역사를 가르칠 때 활용할 교재로 교사들이 이 책을 많이 선택하는 것 같더라. 가장 최근 작품이고, 아이들이 읽기에 분량이 많지 않으니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한 챕터(chapter)씩 아이들에게 읽어준다고 한다. 한 챕터를 읽어주고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하면 아이들이 ‘안돼요, 계속해서 읽어주세요’ 하면서 떼를 쓴다고 하니 반가울 뿐이다.”―책이 많이 팔렸겠다.
“정확한 부수는 모른다.(웃음) 이 책을 출간한 뒤 미국 전역의 학교를 돌며 특강을 많이 했는데, 내 이야기가 끝나면 아이들이 손을 들고 ‘수단의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죠?’ 하면서 질문을 쏟아낸다. 정말 기쁘고 흥분되는 순간이다. 실제로 많은 학교의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살바의 재단에 기부했다. 그 덕분에 남수단에 우물이 계속 늘어나고 있고 수천명의 주민들이 깨끗한 물을 마시고 있다. 열세 살 유대인 아이가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자신의 유대인 성년식에 친척들이 선물을 보낸다기에 선물 살 돈을 살바 재단에 기부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거다. 이 책이 아이들 가슴에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강력한 열정을 갖게 한다는 사실이 감사할 뿐이다.”◇나를 전율시킨 고려청자
린다 수 박은 미국 일리노이주 어바나에서 태어나 시카고에서 자랐다. 한국 이민자의 딸로, 한국 이름은 박명진이다. 다른 이민가족 자녀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혼돈을 느끼며 성장기를 보냈다. 명문 스탠퍼드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수재이지만 모국에 대한 갈증은 세월이 흘러도 해소되지 않았다. 이를 문학으로 표출할 수 있게 격려한 사람이 아일랜드 출신 기자인 남편 벤 도빈이다. “벤은 자신의 조국 아일랜드의 전통과 문화, 역사 이야기를 시간 날 때마다 두 아이에게 들려줬죠. 하지만 나는 나의 모국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어요. 더 늦기 전에 한국에 대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걸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로 엮어봤습니다.” 무명의 유색인종 린다에게 뉴베리 메달을 안겨준 ‘사금파리 한 조각’은 그렇게 탄생했다.―4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더라. 9살 때 어린이 잡지에 시를 발표했다던데?
“내게 책 읽기의 재미를 가르쳐준 분은 어머니였다. 아버지는 내가 걷기 시작할 때부터 주말이면 날 데리고 공공도서관에 가셨다. 도서관에서 나를 매료시킨 마법의 책들을 발견했다. 문학에 대한 사랑을 그곳에서 싹 틔웠다.”―부모님은 왜 당신에게 한국말을 가르치지 않았을까.“나도 그게 유감스럽지만 그 당시 부모님의 선택은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던 동네에 한국인은 거의 없었고 어차피 미국에서 살아가야 할 자식들에게 영어교육은 절박했을 것이다. 그래도 부모님은 설이나 추석 명절이면 차례를 지냈고 우리에게 한복을 입혀 절하게 했다. 어른 공경하는 법 등 한국의 예절에 대해 가르치셨다.”―어느 인터뷰에 보니 ‘너는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 묻는 사람에게 ‘크리스천이야’라고 대답했다는 내용이 있더라.“어머니 말씀이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학교에서 매일 울면서 돌아왔다고 하더라.(웃음) 그때만 해도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미국 사회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뻥 뚫린 구멍을 채우기 위해 어른이 되어 뒤늦게 한국 공부에 매달린 것 같다. 일제시대 식민지 교육을 받았던 부모님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서 거의 매일 도서관에서 살았다. 미국 도서관 시스템은 환상적이어서 로체스터의 이 작은 도서관에서 컬럼비아대나 코넬대 도서관의 소장자료를 다 받아 볼 수 있다. 비록 미국 역사학자들이 쓴 책이지만, 한국 역사와 문화에 관한 책은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행복했다.”―지금까지 발표한 10여권의 책 중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이 7권이나 된다.
“뻥 뚫린 나의 한구석을 채워가는 경험이 결국은 나의 힘, 강점이 되더라. 넌픽션으로 쓸 자신은 없었다. 한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고, 한국말을 구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픽션은 상상이니 조금씩 틀려도 봐주지 않을까 해서 동화로 쓰기 시작했다.(웃음)”
- “살바 이야기가 한국판으로 출간돼 정말 기쁩니다.”린다 수 박이‘우물 파는 아이들’이란 제목으로 나온 자신의 책을 들고 활짝 웃었다. 인터뷰 장소였던 브라이턴 공립도서관은 린다가 창작의 불꽃을 피워올리는 산실이다./로체스터=김윤덕 기자
◇‘요코이야기’를 위한 변명
―고려청자를 빚는 도공들의 삶을 소재로 쓴 ‘사금파리 한 조각’이 뉴베리상을 수상했을 때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한국 미술에 관한 책을 읽던 중 우연히 고려청자 사진을 발견하고 전율했다. 900년 전, 단지 손과 간단한 도구만으로 이토록 아름다운 도자기를 빚어낼 수 있는지. 그때 처음 내 속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동시에 고려청자의 숨은 비밀을 미국 사회에도 알리고 싶었다.”―‘사금파리 한 조각’의 에필로그에서 간송 전형필에게 경의를 표했더라. 동화의 소재가 된 청자상감운학매병은 서울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는데, 그걸 직접 보고 동화를 쓴 건가.
“그렇지 않다. 순전히 상상의 산물이다.(웃음) 뉴베리상을 수상한 2002년 10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간송미술관에 처음 가봤다. 관람 요청을 했더니 전시 중이 아니라서 보여줄 수 없다고 하더라. 한국의 고미술품을 일본이 수탈해갈 때 전 재산을 털어 한국의 문화재를 지키려 했던 간송의 정신에 존경을 표하고 싶었다. 그가 개인적으로 만든 미술관이 있다는 것 자체로 충분히 감동적이고 교훈적이었다.”―‘사금파리 한 조각’이 한국 작가에 의해 한국말로 출간됐다면 크게 히트하지 못했을 거다. ‘미국인들의 이국적 취미를 만족시켜줬을 뿐’이라는 비평도 있다. 실제로 당신의 다른 작품들은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내 책이 미국 독자들에게 더 어필하는 건 당연하다. 그들이 몰랐던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내 작품을 통해 새롭게 배우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웃음)”―미국에 사는 10만명의 한국인 입양아들이 당신의 열렬한 애독자라고 하더라.
“사인회 때 많이 오고 편지도 주고받는다. 미국의 부모들이 한국인 자녀에게 그들의 모국에 대해 알게 하려고 일부러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다. 뭣보다 그들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쓴 소설이 뉴베리상을 받게 된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일제 말기 한국인을 가해자, 일본인을 피해자로 묘사한 ‘요코 이야기’가 미국 학교 교과서로 채택됐을 때 엄청난 논란이 있었다. 린다 수 박이라는 이름이 자주 거론됐던 것도 그 무렵이다. 마침 ‘창씨개명’을 소재로 한 당신의 작품 ‘내 이름이 교코였을 때’가 출간된 직후였다.
“일본계 미국인 작가가 쓴 ‘요코 이야기’는 태평양 전쟁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일본 어린이의 이야기다. 그 작품의 문제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실제로 어떤 한국인 엄마가 나를 찾아와 중학생 아들 이야기를 하며 탄식하더라. 아들이 요코이야기를 읽고 자기가 한국사람이란 게 부끄럽다며 울었다는 거다. 하지만 거기엔 부모의 책임도 크다. 아들이 중학생이 되도록 일제 식민 역사를 말해주지 않은 거다. 유대인 아이가 15세가 될 때까지 홀로코스트에 대해 모른다는 게 말이 될까. ‘요코이야기’를 읽은 우리의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들고 ‘이건 틀리다’고 말할 수 있게 가르쳤어야 했다. 논란이 확대되자 미국 학교에서는 ‘요코이야기’와 ‘내 이름이 교코였을 때’를 함께 읽힌다고 들었다.”◇불공평한 세상을 바꾸는 법―미국의 저명한 서평지 ‘퍼블리셔즈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문학의 역할 중 하나는 당대의 사회적 이슈에 참여하고 논평하는 것’이라고 했더라.
“문학, 그중에서도 아동문학은 다음 세대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게 아니라, 시대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다. ‘내 이름이 교코였을 때’는 일본에서 연극으로 만들어져 반향을 일으켰다. 일본계 미국인들이 그 연극을 보고 ‘처음 듣는 사실이다, 슬펐다’며 편지를 보내왔다. 작가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세상의 아픔에 관심을 갖게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나의 작품 세계는 불공정한 세상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풀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도 했다.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면 ‘이건 불공평해! 이건 공정하지 않아!’라며 목소리를 높인다.(웃음)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불변의 진실 앞에 ‘어쩔 수 없어’ 하며 마침표를 찍거나 화를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이걸 공평하게 만들까 고민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어린이책을 쓰는 작가들의 책무는 그래서 무겁다.”―당신의 작품에는 ‘영웅’이 없더라. 해리포터 같은 매력적인 주인공 대신, 지극히 평범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영웅의 정의를 바꾸고 싶었다. 할리우드가 만들어낸 영웅이란 얼마나 허무하고 비현실적인가. 우리는 훨씬 작은 일로 영웅이 될 수 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작은 시련들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최선을 다해 극복해 나갈 때 우리 또한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실패가 실패가 아닌 이유―39세에 작가로 데뷔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문학이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웃음) 남편의 재촉이 없었다면 지금도 살림만 하고 있을 거다. 부모님도 내게 용기를 주셨다. 아버지는 70세가 다 되어 수채화 공부를 시작하셨고 어머니는 살림하느라 포기했던 작곡공부를 다시 시작하셨다. ‘늦은 때’란 없다.”―작가가 되기 전 석유회사, 광고회사, 영어강사, 푸드 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더라.
“작가에겐 모든 게 다 도움이 된다. 그냥 걸어다니는 것도!(웃음) 요리하는 걸 특히 좋아해서, 내 작품의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뭔가를 먹고 있다.(웃음) 글을 쓴다는 것은 수공예(craft)와 같다. 음식을 만들거나 뜨개질로 옷을 완성할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그만큼 어렵고 치밀하며 무한한 인내를 요구하는 작업이다. 바로 그 점이 내가 글쓰기를 사랑하는 이유다.”―뉴베리상을 받고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더라.
“해리 포터 작가나 워런 버핏의 부(富)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는 충분히 부자라고 느끼면서 살고 있다.(웃음) 학자금 대출 없이 두 아이가 대학까지 마친 것에 감사한다. 중고차를 타다가 새 차를 사게 되어서 행복하다.”―자신을 ‘루저(loser)’라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작가라면 누구나 흥행에 성공하는 작품을 발표하고 싶어한다. 나 또한 한국 독자들까지 열광하는 작품을 쓰고 싶다.(웃음) 하지만 나는 책을 쓰는 작업 그 자체에서 기쁨을 느낀다. 설령 그것이 실패작이 되더라도, 아예 출간되지 못한다 해도, 그 경험으로 다음 작품을 더 잘 쓸 수 있으니 실패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부와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이비리그를 못 가서 절망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인생의 진정한 기쁨은 결과보다 과정에서 거둔다. 내 친구 살바 두트의 삶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