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저우17 - 싼팡치시앙에서 옛날 집을 구경하다가 아편전쟁을 떠올리다!
2025년 3월 12일 푸저우(福州) 에서 서호와 우산( 烏山 오산) 에 위산( 于山 우산) 을 본후 "상샤항" 에서 운하에
상항루(上杭路) 와 샤항루(下杭路) 골목을 보고는 지하철로 동지에커우역에 내려 긴 골목길을 걸어
산팡치시앙 (三坊七巷) 의 넓은 거리를 지나 남문으로 나가 린쩌쉬츠땅 林则徐 祠堂 (임칙서 사당)을 구경합니다.
임칙서 기념관을 나와 남문으로 들어가 산팡치시앙(三坊七巷,세방칠항) 거리를 걷는데..... 여긴 옛날 푸저우
읍성으로 옛날 양식을 가진 건물이 많고 근현대 역사상 푸저우 출신인 유명한 사람의 옛집도 많다고 합니다.
3개 동네인지라 "세방/ 산팡" 이라고 하고 골목 7개가 있어서 "칠항/ 치시앙" 이라고 하니 합쳐 싼팡치시앙
(3 坊 방 7 巷항) 이라는데 넓은 거리를 구경하고는 해가 져서 밤이 되니 다시 골목길을 걸어나옵니다.
"사오위엔이하오 芍园壹号" 는 "작약꽃 화원1번지" 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왜 이 이름으로
불리느냐고 하면 근처에 "작약화원 (芍园里)" 이라는 골목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작약화원 (芍园里)" 이라는 골목에 들어가면 문위기 잇는 멋진 카페에 레스토랑과 팝 이 늘어서
있는 젊음의 거리라고 할수 있는데.... 또 창의적 문화 상품을 파는 가게도 있다고 합니다.
여기 푸저우 관광지 싼팡치샹 (三坊七巷) 은 5A 급 관광지로 중국에서는 급수로 관광지의 중요도를 표시
하는데..... 한국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5A급 관광지는 사천성에 유명한 구채구 (九寨沟) 가 있습니다.
이외에 길거리에도 요즘은 피자집, 랍스터 집, 해외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 등 다양한 상점
들이 있어 불편함이 없으며 푸저우 전통 요리는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다고들 합니다.
푸저우의 맛집 포디엔 (破店 五四路店) 은 푸젠성 전통 요리를 잘 하는
집으로...... bar 에서 파는 그런 생맥주는 없고 그냥 병맥주 입니다.
푸저우에는 송대인 964년에 세워진 화림사의 금당이 유명하니 남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는데
당송 대에 여러 불교 사원들이 지어졌는데 동시에 유학도 흥하여 주희가 머물기도
하였으며, 명나라 대에는 당시 쇠퇴해 가던 남쪽의 취안저우를 대신한 무역항으로 기능하였습니다.
명나라 영락제 때 정화의 대원정 함대가 출항한 곳도 바로 푸저우현이었고 1842년의 난징 조약에서
청나라가 서구에 개방한 5개의 항구 중 하나였으며 청말의 흠차대신 임칙서가 이곳 출신입니다.
또 푸저우(복주) 는 장개석의 중화민국이 모택동의 홍군과 다투던 1933년부터 1934년 까지 잠시
동안 건설되었던 사회주의 국가인 중화공화국 (中华共和国) 의 수도이기도 하였습니다.
골목길 중간에 小黃樓(소황루) 라고 부르는 어느 큰 집을 개방하는지라 들어가니 여긴 정말 중국 부자
들의 집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곳으로 입이 떡 벌어지니 부자들이 어찌 살았는지 알수 있습니다.
이 큰 옛날의 저택에서도 개항시기에 기선이며 여러 사진들이 보이는지라
조금 전에 우리가 임칙서 기념관에서 본 아편 전쟁이 떠오릅니다.
영국의 청나라에 대한 무역은 제1차 아편전쟁 후에도 여전히 아편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중국이 아편의 자체생산을 늘리고, 난징조약에서 관세를
제한해준 덕분에 자유무역의 효과가 생겨 청나라 차의 영국 수출량이 오히려 증가됩니다.
그리고 여전히 면직물은 청나라의 싱품이 품질도 좋았고 가격도 저렴했기에, 영국의 무역
적자가 다시 늘어나기 시작햇으며 또한 광둥성에서 대영 항쟁까지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청나라 정부가 애로호 라는 청나라 배를 단속하였으니 애로호가 해적질을 하고 다녔기 때문인데,
선원들은 모두 청나라 사람이었으나 선주가 영국인 이었으니, 영국은 청나라가 애로호 단속 과정에 영국
국기를 바닥에 던져 모욕했다며, 다시 전쟁을 선언했는데.... 사후 조사에서 영국 국기는 발견되지도 않았습니다.
영국 하원은 부도덕한 전쟁을 부결시켰고, 제1차 아편 전쟁을 비판했던 글래드스턴 (Gladston) 은 정부 불신임안
까지 제출했는데.... 그러나 수상이었던 파머스턴 (Palmerston) 이 하원을 해산시키고, 투표를 통과시킵니다.
그러자 영국에 이어 프랑스도 선교사가 처형된 것을 빌미로 전쟁에 참가하기로 했으며 먹이를 보고 하이에나
가 달려 들 듯 러시아와 미국까지도 참전의사를 밝히니 이 참에 자기들도 중국을 뜯어 먹겠다는.....
영국과 프랑스 군대는 광저우(廣州) 를 침략한 후, 양쯔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북상하니 이때.... 청나라
에서는 태평천국운동이 일어나 남경까지 함락된 상황이라 서양군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러시아까지 만주를 통해 청나라 영토 내로 진격해 들어왔으니..... 열강 연합군은
톈진을 점령하고, 1858년 6월 톈진조약을 맺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아편무역의 합법화, 2. 전쟁배상금 지불, 3. 개항 항구 확대,
4. 베이징에 외국 외교관 상주 허용, 5. 기독교 공인
6. 중국 노동자 수출, 7. 장강 통행, 8. 외국인 중국 내륙 여행 자유화
톈진조약이 체결되었지만,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청나라의 후속조치가 미흡하다는 핑계로 계속
진격하여 1859년 베이징 근처까지 이르렀으니 이때, 다구포대의 청나라군이
대포를 발사하여, 영국과 프랑스 함대에게 큰 피해를 입히니 영국과 프랑스 함대는 퇴각 합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는 병력을 증강하여, 1860년에 영국군은 173척의 함대에 2만명, 프랑스군은 33척의
함대에 6,300명을 이끌고 되돌아 왔으니 영국과 프랑스 함대는 발해만의 항구를 초토화시켰고, 다구
포대로 가서 복수했으며 톈진에 상륙하여, 베이징으로 진격하자 함풍제와 신하들은 열하로 피신합니다.
베이징에서 30리 떨어진 팔리교 방어에 나선 청나라 장수는 몽고 출신의 49세 장군 승격림심(僧格林沈)
이었으니...... 그는 태평천국운동 반란군을 진압하며, 청나라 최고의 명장으로 대접받았습니다.
청나라의 총 병력은 27,000명이었고, 이중에 몽골기병이 중심이 된 기마병이 12,000명 이고 보병이 15,000명
이었는데.... 반면에 영국은 4,000명, 프랑스는 8,000명으로 청나라의 군대의 3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승격림심의 기마대는 영국과 프랑스 군대를 향해 돌격했으나, 대포와 라이플 소총에 쓰러져 몇시간
만에 전투가 끝났고, 청나라는 12,000의 기마병 중에 10,000명이 전사하고 2,000명이
살아남은 반면에...... 영국군은 2명, 프랑스군은 3명이 전사하여 서양 군대는 총 5명만
전사했으니, 1875년 일본 운양호가 강화도를 침범했을 때 전적과 매우 유사한데, 아 청나라와 조선이여!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이어서 베이징을 점령하고, 청나라 황제의 별궁인 원명원을 약탈하니,
원명원은 청나라 황제에게 바친 진상품을 보관하는 보물창고였는데 보물들을 약탈
한후 건물을 불태워버리니..... 결국 청나라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베이징 조약을 맺습니다.
텐진조약에 더하여, 개항 도시를 늘리고, 전쟁 배상금도 늘어났으며..... 영국에
홍콩을 할양했고 러시아에게는 흑룡감 이남의 하바로 프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톡에 이르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땅인 연해주 까지 빼앗깁니다.
참고로 제2차 아편전쟁으로 얻은 청나라의 유일한 이득은 태평천국운동을 진압한 것인데, 삼별초 잔당
들이 몽골군과 고려군 연합군에 도망치다가 진도와 제주도가 함락되어 망했듯.... 청나라와
서양 열강이 협력하게 되자, 홍수전은 두려움에 자살하고 남경이 함락되니 태평천국은 멸망해버립니다.
문득 이준식 성균관대 교수가 동아일보 이준식의 한시 한수 봄의 끝자락에서 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가는 봄이 아쉬워 술에 젖은 나날들, 깨어 보면 옷자락엔 덕지덕지 술자국.
꽃잎 뜬 작은 물줄기는 큰 시내로 흘러가고, 비 머금은 조각구름은 외로운 마을로 들어오네.
한가해지니 꽃 시절은 더 원망스럽고, 외진 곳이라 옛 친구의 혼백조차 불러내기 어렵네.
부끄럽구나, 꾀꼬리의 갸륵한 마음. 새벽이면 어김없이 서쪽 뜰로 날아드는 것을.
(惜春連日醉昏昏, 醒後衣裳見酒痕. 細水浮花歸別澗, 斷雲含雨入孤村.
人閑易有芳時恨, 地迥難招自古魂. 慚愧流鶯相厚意, 清晨猶為到西園.)
―‘봄이 끝나다(춘진·春盡)’ 한악(韓偓·약 842∼923)
화사한 꽃 시절이 저물어가는 아쉬움 속에서 봄날의 가슴앓이가 시작된다. 꽃잎을
띄운 채 또 다른 물줄기로 흘러드는 개울, 비를 머금은 회색 구름 사이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는 순간, 하릴없이 자신을 소모하고 있다는 공허함이 짙어간다.
외진 벽촌의 무료한 삶을 달래주는 건 오로지 술, 옷자락에 덕지덕지 얼룩이 묻는 줄도 모르고 마구
마셔댄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혼백이 나의 적막을 달래줄까 싶지만, 이 먼 곳까지 그를
불러올 자신은 없다. 한데 봄 끝자락에 찾아오는 유일한 위안은 새벽녘에 들려오는
꾀꼬리 소리. 그 갸륵한 정성조차 잠시 잊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는지, 시인은 다시금 마음을 추스른다.
관직에 머물다 당 왕조가 멸망한 후에는 남쪽 타향에서 홀로 말년을 보내야 했던 시인.
봄의 끝자락에서 그가 느꼈던 상춘(傷春)의 회한은 결코 가볍지 않았을 터.
그 속에는 계절과 인생의 상실감, 그에 더하여 망국의 한 까지 서려 있는 듯하다.
그러고는 소황루 저택을 나와 골목길을 마저 걸어서 큰 대로로 나와서는 푸저우의 야경을 구경하고는 다시
동지에커우(東街口 동가구) 역으로 들어가 65세 이상은 공짜이니 직원에게 여권을 보이고는 지하철
디테(地铁) 1호선 시양펑 象峰 방향을 타고 4정거장 푸저우역 (福州 火車站 푸저우훠처짠) 에 내립니다.
지상으로 올라와서는 기차역 바깥에 있는 맥도널드 가게 옆의 중국 식당으로 들어가서는 샤오롱빠오
만두를 시켜 맥주와 함께 저녁을 떼우고는 슈퍼인 초시(初市) 에서 맥주와 빵을 사서
호텔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이 드는데 맥주는 拉格(남격) 이 7元이고 칭따오는 8元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