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구성하는 것은 삼보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인천(人天)의 스승인 스님들이다. 재가신도인 우바새 우바이는 스님을 통해 불법을 배우고, 수행을 하게 된다. 그래서 승가교육을 담당한 교육원의 활동은 불교의 미래를 보여주는 창(窓)이다. 지난 17일, 조계종 교육원장 무비스님을 찾았다. 근대 대강백 탄허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스님은 〈화엄경 완역본〉 발간을 비롯 〈금강경〉 〈지장경〉에 이어 지난 6월 초 〈법화경〉을 해석해 책으로 출판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수행자다.
“불교생활 오래했다고 신심이 커지고 소견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야. 10년 된 불자보다 1년도 안된 불자가 더 신심 있게 수행을 잘 할 수 있지. 본질은 꾸준한 노력이야. 자신의 본업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 한 순간의 강도 높은 수행보다 꾸준히 자신을 성찰하려는 노력. 그것이 불교적으로 사는 것이지.”
불자들의 삶에 대한 질문에 무비스님은 최근 심취해 있다는 〈법화경〉 이야기를 꺼냈다. 그 중에서도 제바달타품의 이야기는 불자들의 행동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제바달타가 누구인가. 바로 수차례에 걸쳐 부처님을 해(害)하려 들었던 악인이 아닌가. 하지만 부처님은 그를 ‘나의 스승’이라 칭하고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내리셨다.
부처님과 제바달타 간의 악연을 바로 선연으로 바꾸신 것이다. 무비스님은 “바로 여기에 감동이 있고, 불자의 삶이 있다”고 지적한다.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을 우리 불자들은 어찌 대하는고. 나 또한 화를 내기도 하는데, 제바달타품의 이야기를 돌이켜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소인(小人)인지 깨닫곤 하지요.”
싫어하는 사람을 스승으로 대하는 부처님의 모습이 바로 불자들의 삶의 자세라면, 불자들이 사회를 바라보고 대해야 하는 행동은 무엇일까. 스님은 상불경보살의 이야기를 통해 명쾌하게 설명했다.
“임기 중 행자상설교육원 건립”
상불경보살이 있었는데, 수행이나 공부를 많이 한 분이 아니었다. 항상 남루한 옷을 입고 다니는 상불경보살은 만나는 사람마다 합장하고 공경의 예를 표했다. “당신은 부처님이 되실 분입니다. 제가 존경을 표합니다”
얼핏 출가수행자 같지 않을 정도로 초라한 행색의 상불경보살에게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화를 내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했다. 그러면 상불경보살은 좀 먼 곳으로 도망가서는 큰소리로 “당신은 부처님이 되실 분입니다. 제가 존경을 표합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이것이야, 〈법화경〉이 말하듯 모든 사람이 다 부처님이라는 생각, 그 한 생각을 갖고 다른 종교,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접하면 그 사람이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고, 또 부처가 되지 않겠나. 이런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봐야지. 대립과 갈등의 존재가 아니라 존중해야 할 존재 말이야”
거침없이 쏟아내는 법문이 시원스럽다. 마침 전화가 왔다. “응, 이것이 무엇인고. 됐지?” 선문답을 나누듯 간단한 대화에 무슨 내용이었는지 묻었다. 경전을 해석하다가 막힌 게 있어 물어온 질문에 답을 한 것이란다.
다시 스님에게 교육원과 관련한 사항을 물었다. 현재 교육원의 가장 큰 과제는 상설행자교육원 건립문제. 또 본말사 주지 연수 등 종단 내 주요 모임을 개최할 때 마땅한 장소가 없어 일반 기업이 운영하는 연수원을 전전하며 연수나 교육을 해야하는 현실이다. 스님은 “임기 중에 상설행자교육원 건립의 기초를 마련하고, 300여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연수원을 건립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와함께 스님은 승가 위계질서 회복을 위해 고시강화를 꼽았다. 스님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아야 일반인의 모범이 될 수 있고, 그러려면 승가고시를 강화하고 법계에 따른 차별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승가고시 강화하고 법계 따른 차별둬야
“고시를 반대하는 입장 중에 참선을 통해 깨달으면 되지 무슨 경전공부냐 주장하는 스님들도 있지. 하지만 조계종이란 조직은 규칙과 규율을 가진 단체라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돼. 선으로 생사해탈을 할 목적이면 승적이나, 나이가 뭔 필요 있겠어. 그런 분은 조계종이란 종단도 필요 없을거 아닌가. 사부대중이 함께 수행하며 포교하고, 깨달음을 향해 함께 갈 사람이 종단에 필요한 거고, 그래서 승가교육, 고시, 위계질서 이런 것들이 필요한 거지.”
스님들이 공부하는 강원에서는 강백으로, 교육원의 행정과 방향을 책임지는 원장으로, 또 항상 공부하는 학승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무비스님. 앞으로 〈유마경〉과 〈육조단경〉을 공부할 계획이라는 스님은 ‘허허’ 웃음 한 번 짓는 것으로 법문을 마쳤다.
[무비스님은] 탄허스님 전강받은 대강백
평생을 경전 연구에 헌신한 대강백 무비스님은 1958년 부산 범어사에서 여환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탄허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스님은 이후 통도사, 범어사에서 강주로 활약하며 조계종립 은해사 승가대학원장을 역임하면서 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강백으로 명성이 높지만 스님은 치열한 구도자이기도 했다. 해인사 강원을 졸업하고 선방으로 들어가서는 밤 12시가 넘어서야 선 채로 잠이 들었다. 졸음에 목이 넘어가지 않도록 목에 끈을 달고, 배 앞에 뽀족한 나무를 꽂고는 참선에 전념하며 말 그대로 ‘죽음을 각오’한 수행을 했다. 10년 선방 생활을 하던 스님에게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것은 역경연수원 1기생으로 들어가면서였다. 당시 역경원장이던 운허스님과 역경장 탄허스님, 관응스님, 이기영 박사 등 불교학의 대가들을 만나 경전을 배우면서 강백의 길로 들어섰다. 수행자이며, 강사로 명성을 날리던 스님이었지만 종단의 행정체계를 세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1979년에 조계종 총무원 교무부장을 역임할 당시, 승가위계 질서 확립과 자질향상을 위해 단일계단을 만들고 승가고시를 처음 실시했다. 24개 교구본사에서 행하는 수계식을 통해 승적을 인정하다보니 나타나는 여러 폐단을 일소에 해소한 것이다. 이후 20여년이 지나고 교육원장에 취임한 스님은 40년간 숙원이던 승가교육의 체계를 다시 정리했다. 2001년 11월, 3급 승가고시를 제도적으로 확립시켜낸 것이다. 즉, 고시에 통과해야 사미계를 받고, 구족계를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종단의 교육 풍토를 새롭게 다져가고 있다.
많은 경전 집필과 법문을 통해 불자들의 눈과 귀를 열어주고 있는 스님은 또 하나의 불사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교육원이 최대 역점사업으로 추진중인 상설행자교육원이 설립되면 한국불교 교육의 역사는 새로 씌여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