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메달이 어디야?
최광희 목사
2022항저우아시안게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원래 2022년에 개최될 경기가 2023년으로 연기되었다). 선수들은 죽을힘을 다해 뛰고 있는데 일반 국민은 TV 앞에서 편히 구경만 하면 된다. 그리고 무조건 우리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 오기를 응원한다. 말이 응원이지 대한민국 선수라면 금메달 꼭 따 와야 하고 메달권에 못 든 선수를 아무도 기억도 안 해 준다. 내일 저녁에는 한국과 일본 축구팀이 금과 은의 색깔 경쟁을 할 텐데 금메달을 못 따면 아쉬움을 넘어 감독과 선수를 비난하는 팬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어떤 여론 조사에서 금/은/동 각 메달리스트의 만족도 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은메달보다 동메달 받은 선수의 만족도가 훨씬 높다고 한다.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분석 내용을 보니 2등은 1등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 커서 속상해하고 3등은 4등에게 이겨 메달권에 들어간 안도감이 커서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은 비교 대상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진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아시아 20개국 중에 행복지수가 가장 좋은 나라가 방글라데시이고 일본이 최하위라는 통계를 본 기억이 난다. 지금 다시 조사하면 어쩌면 헬조선(?)에 사는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지수가 아시아 최하위가 아닐지 모르겠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선진국에 들어서고 보니 원하는 것과 요구사항이 많아져서 마음으로는 훨씬 가난해졌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난한 마음이란 이런 것은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인 것이 문제이다. 내가 늦은 나이에 박사 학위를 받고 보니 전에는 만나기 어려웠던 박사들과 교수들과 의사, 변호사 등을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 그분들은 젊은 나이에 유학하여 학위를 받고 교수로 있으면서 내 나이에는 학장, 총장도 하고 있다. 그분들은 대한민국 최고 학부인 서울대학교 출신도 많고 외국의 유명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분들도 많다. 그분들은 영어로 거듭나서 영어가 모국어처럼 유창하다. 그런데 그런 분들을 만나다 보니 그분들과 나를 비교하게 된다.
나와 함께 박사과정에서 공부한 분 중에 아직 논문을 완성하지 못한 분도 많다. 내 주위에는 박사과정은커녕 석사과정도 공부하지 않는 분들이 훨씬 더 많다. 나는 그분들 앞에서 강의할 기회도 제법 있다. 그런 분들이 나를 항해 대단하다고 칭찬해준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이 어느새 은메달 딴 선수의 입장이 되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비슷한 나이에 남들은 교수도 하고 학장, 총장도 하는데 나는 이게 뭔가 싶으니 말이다. 세미나와 심포지엄에서 발표하는 분들을 보면 언제 저런 것을 다 연구했는지 대단하다는 마음이 든다. 그분들과 비교하면 나는 한참 뒤처지는 것을 느낀다.
공부를 쬐금 하고나니 세상에 내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보이기 시작한다. 교수들, 총장들 옆에 서면 그들에 비해 내가 얼마나 머리가 안 좋은지 답답함을 느낀다. 그런데 은메달 딴 선수들의 만족도가 동메달 딴 선수보다 현저히 낮다는 조사 결과를 보면서 내 마음이 들킨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든다.
전에 포항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리나라 포항공대는 서울대학교 졸업생들이 석사 과정에 입학하고 싶어 하는 학교이다. 어떤 청년이 포항공대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 입학시험에 낙방했다고 한다. 너무나 실망한 청년은 포항 시내 어느 카페 구석에 쭈그려 앉아서 인생을 비관하고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포항 시내에 나가서 이런 말을 하면 남들이 나더러 미쳤다고 하겠지.”
맞다. 포항공대 석사가 인생을 비관하면, 은메달 딴 선수가 불행하다고 느끼면,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스스로 못났다고 느끼면 남들이 분명히 미쳤다고 할 것이다. 석사, 그것도 포항공대 석사가 어디야?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 받은 은메달이 어디야? 수많은 목사 가운데 박사 학위가 어디야? 박사가 되자 내가 모르는 것이 있는 줄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겸손할 수 있고 모르는 것을 찾아 공부할 수도 있고 내가 부족한 것을 어디서 도움받으면 되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지나친 겸손은 교만의 다른 표현이라고 하는 말은 나의 입버릇이다. 은메달리스트의 불만족은 겸손을 지나 교만함이다. 은메달 땄다고 의기소침하면 메달권 밖의 선수들은 모두 죽으라는 소리인가? 은메달을 땄으면 그 자체로 만족하고 감사하면 된다. 그리고 겸손하게 더 노력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