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1월 20일 닉슨(Richard M. Nixon)은 제36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부통령으로서 미국의 베트남 개입을 주장한 바 있었고 1964년 2월에 개인자격으로 베트남을 방문하여 전략촌도 돌아보았었다. 그는 이미 취임전인 1968년 12월에 북베트남의 강경한 주장을 되풀이하는 회답을 받기는 하였으나 비공식 경로로 앞으로 진실과 성실로 협상할 용의가 있다는 메시지를 북베트남에 보냈었다.
베트남전에 관련되는 닉슨의 진용은 국무장관 로저스(William Rogers), 국방장관 레어드(Melvin Laird), 안보담당 보좌관 키신저(Henry Kissinger)였다.

윌리엄 로저스

멜빈 레어드
닉슨의 베트남전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 베트남 문제는 범세계적인 문제에 대처해 나가야 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부분적이고 단기적인 문제에 불과한 것인데도 1960년대 미국의 외교 정책은 베트남이라는 볼모에 사로잡혀 여기에만 매달려 있었다.
• 현 단계에서 베트남전은 전면적인 군사적 승리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가능한 군사적 승리의 방법으로서는 북베트남의 전 관개시설을 폭파시켜 버리거나, 전술핵을 운용하는 것이나 이는 수십만의 민간이 희생되어야 하고 국제 도의상 불가한 것이다.
• 전임 대통령들에 의해서 미군이 개입되었다고 해서 이를 즉각 철수시켜버릴 수는 없다. 그렇게 된다면 남베트남은 공산화될 것이 자명하다. 또한 우방국가에 대한 지금까지의 지지결의와 약속을 그렇게 쉽게 저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 그러나 가능한 한 전쟁을 조기에 종결하고 미군을 명예롭게 철수시켜야 한다.
• 미국 국민들은 남베트남의 현 티우(Thieu) 대통령을 지지할 가치가 없는 2류의 독재자로 평가하고 있으나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대동단결은 고사하고 파쟁만을 일삼는 현 남베트남 정국을 그래도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은 티우뿐이다. 그러기 때문에 북베트남도 협상에서 티우의 퇴진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티우를 지지하는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티우 남베트남 대통령
• 북베트남과의 협상에서 조기타결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과의 대결에서 힘에는 힘으로 맞서야 한다.
• 협상을 계속하면서 단계적으로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
닉슨은 취임 후 키신저에게 베트남전에 관하여 종합분석을 하도록 하였다. 키신저는 국무부, 국방부, CIA, 합참 등의 대표자로 구성된 베트남문제 특별연구위를 편성하여 베트남전에 대하여 분석을 하고 대책을 연구토록 하였다. 키신저는 이후 미국의 외교정책은 물론 베트남전에 대한 협상, 군사적 대책에 관하여 닉슨에게 건의하였고 닉슨도 이를 받아들여 국무, 국방장관을 제치고 사실상 미국의 대외정책을 주도해 나갔다.
베트남전에 관하여 키신저가 닉슨에게 보고한 요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지금까지 수행한 북폭, B-52의 전술적 지원 효과, 평정계획, 북베트남의 외부지원 문제 등에 관하여는 각 기관 및 개인별 견해에 따라 여러 가지 이견이 있으나 아래 3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의 견해가 일치된다.
• 남베트남군은 현재도 그렇고 가까운 장래에도 북베트남군과 단독으로 대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 남베트남 정부도 외부의 지원이 계속되지 않으면 지탱할 수가 없다.
• 남베트남 국경선내로 지상 작전 지역을 제한하는 현 여건 하에서의 미군의 소모 전략은 그 소모율이 북베트남군의 보충능력과 대남 침투능력에 못 미쳐 성과가 없으며 무한정 계속되어야 한다. 현 방식대로의 소모전으로 미군은 승리할 수 없고 이를 타개할 수 있는 어떤 조치가 없는 한 오히려 북베트남이 승리할 공산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 미국이 취할 방책은 남베트남군을 증강시키고, 남베트남의 자립능력을 지원하여야 하며 현 소모전 방식을 보완할 수 있는 전략적인 조치가 강구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베트남에서 군사적 승리를 쟁취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는 북베트남의 구정공세 이후 웨스트모얼랜드 대장의 전과확대 주장을 끝으로 이제 영영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닉슨과 키신저는 전임자들과는 조금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3월에 들어서 북베트남군이 사이공에 대하여 무차별 포격을 가하고 사이공 북방 캄보디아 국경인 타이닌(Tay Ninh) 성 지역에서 공격을 계속하다가 성역으로 회피하는 방식으로 나가자 키신저는 캄보디아 성역에 대하여 B-52의 과감한 폭격을 건의하였고 닉슨도 이를 받아들였다. 전임자들 방식대로라면 협상에 대한 영향과 언론의 압력이 무서워 보류되었을 문제였다.
4월 15일 북한의 전투기가 공해상에서 미 해군의 EC-121 정찰기를 격추시켰을 때 키신저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고 북한의 한 공군기지를 보복폭격하자고 강력히 건의하였다. 그는 이러한 강력한 대응책이 미국의 의지를 과시하고 우방국의 사기를 높이며 적의 차후 도발을 억제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하였으나 모든 각료들이 반대하여 채택되지는 않았다. 대신 닉슨은 전투기의 호위 하에 정찰비행을 계속하도록 명령하였으나 국방부가 3주가 지난 후에야 정찰비행을 실시하였고, 사건 발발 후 지중해와 북태평양 지역에서까지 정찰비행을 중지한데 대하여 격노하였다.

격추당하는 EC-121기를 그린 그림

EC-121을 격추시긴 미그 21
첫댓글 비행기가 요상하게 생겼네요. 초음속인가요?
EC-121말입니까? 프로펠라기인데 초음속일리가 없죠. 정찰과 전자전을 수행하는 비행기이기 때문에 체공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모양이 특이한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