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웅 미카엘 신부( 진안 성당 주임)
진안 성당, 갑작스런 인사 발령이었다. 군종 신부로 4년을 살고 제대한 후, 청소년 교육국에 온 지 이제 겨우 6개월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인사 이동이 되는 시점이 교육국으로서는 굉장히 많은 행사들이 연이어 있는 시기였기에,
함께 준비한 봉사자들에게 모든 짐을 떠맡기고 떠나오는 듯하여 마음도 무겁고 미안함만 가득했었다.
마음을 정리할 시간도 짐도 꾸릴 시간도 제대로 갖질 못한 채 그렇게 부임하였다.
뭔가에 쫒기듯 말이다.
몸이 아픈 80을 훌쩍 넘기신 할머님이
새 신부라고 큰절로 인사
공소를 15개나 가진 112년 된 성당의 주임신부라는 것도 실감하지못한 채 정신없이 지내던 어느 날,
병자봉성체를 하는 날이었다. 몸이 오랫동안 아프셔서 계속 누워 계시는. 연세도 이미 80을 훌쩍 넘기신 할머니를 방문하였다.
그런데 아파서 누워 계셔야 할 할머니께서는 날씨도 추운데 바깥 마당에 나와 앉아 계셨다.나를 기다리신 것이었다. 왜 추운데
나와 계시냐며 손을 잡아 드렸더니, 오히려 신부님 고생시켜 드려서 죄송하다며 내 손을 잡고 비벼대셨다.
할머니를 모시고 집안에 들어갔더니, 신부님 새로 오셨으니까 정식으로 인사드리겠다며 갑자기 큰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시면서 성당에 가서 인사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오시게 해서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이셨다.
그날 밤, 떨리는 마음에 잠을 잘수가 없었다. 아프시면서도 자신보다는 사제를 더 걱정하는 그 마음, 새로 부임한 신부님께 예를
갖추시는 그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난 매사에 늘 자신감이 있었다. 뭐든 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10년가까이 살아왔던, 그래서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제직'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두렵고 부끄러웠다.
나는 누구인가? 과연 내가 그 할머니가 그 추위 속에서 기다렸던 '그'사제인지... 죄송스러웠다. 그러면서 하느님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그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다. 할머니의 삶 속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있었던 것이다.
급히 병자성사 청한 할아버님
옷매무새부터 고치고 맞아들여
전화벨이 유난히 크게 울렸다. 요셉 할아버지께서 위급하시다고 병자성사를 청하셨다. 급히 준비해서 달려갔다.
누워 계시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고 누워 계셨다. "본당 신부예요~"라고 말하자마자 두 손을 잡더니
한쪽 팔꿈치로 방바닥을 짚고 갑자기 일어나셨다. 온 힘을 다해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곤 할머니께 옷을 달라고 하신 뒤
러닝셔츠위에 단정히 입으셨다. 그렇게 앉은 채로 병자성사를 받으셨다.
본당 신부 앞에서 누워 계실 수가 없으셨던 것이다. 옷도 단정히 해야한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당신 앞에 놓여진 죽음보다도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사제가 더 소중하셨던 것이다. 그 힘겨운 마지막 발걸음 앞에서도
한 사제에게 보이신 그 태도는 하느님을 믿는 이의 모습이었다. 요셉 할아버지는 병자성사를 받으시고 일주일이
안 되어서 돌아가셨다.
병자성사를 드린 날 저녁에 미사를 드리는데, 첫미사를 봉헌하는 것처럼 긴장이 되고 떨렸다. 그동안 내 옷이 아닌 것을 입고
내 것인 양 살아오다가 걸린 것처럼, 신자들 앞에서 얼굴이 벌게졌다. 무서웠고, 죄송했고, 떨렸다. 나는 '그 '사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교우들의 고통과 아픔과 죽음 앞에서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는 그런 사제로 살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달이상 모아온 누룽지
전해주고 급하게 돌아서 가
주일 아침이면 바쁘다. 공소 미사를 다녀와서 때론 예비신자 교리를 가르치고, 레지오 강복을 주고 교중 미사 30분 전에
고해성사를 주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그렇게 분주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 ~"A4용지 박스를 손에 들고 웬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예, 어떻게 오셨어요?' " 이거 신부님 드세요."
신부님 드시기에 너무 보잘것없는 거라며 부그러운듯 급히 뒤돌아 가셨다. 얼굴도 까맣고 손도 거칠고 그렇게 여유있어 보이지
않는 분이셨다. 당신도 그렇게 잘 드시며 사시는 분이 아니신데..., 박스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 누룽지가 가득 담겨있었다.
맛을 보았더니 고소한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시중에서 파는 누룽지가 아니었다. 집에서 밥을 하고 긁어낸 그 누룽지였다.
밥을 하시고 나오는 누룽지를 본당 신부를 위해 모아 오셨던 것이다.한 달 이상을 모아야 하는 양이었다. 화가 났다.
도대체 내가 뭐길래... 이 분들은 나를 위해 당신 드셔야 할 것을 그렇게 모아서 가져다 주시는지... 내 자신을 향한 화다.
나는 이런 걸 받을 수 있을 만큼 그분들이 생각하시는 '그' 사제가 아니니에...,
교우들이 생각하는 '그'사제가
아니기에 미안하고 죄송해
내 꿈은 사제가 되는 것이었다. 그 꿈외에는 다른 것은 가져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그 꿈을 이루었다. 보좌신부, 어학 연수, 군종 신부, 청소년교육국을 거치면서 내 꿈속에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 이곳 진안 성당 교우들이 보여준 모습 속에서 착각에 빠진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내 꿈을 위해 살아왔다.
내 꿈속에서 자기만족에 빠져 살면서도 그게 사제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상 내가 되고 싶은 사제로 살았지
교우들이 필요로 하는 사제로 살지 못했던 것이다. 바로 그것을 우리 교우들이 가르쳐 주었다. 그 들의 신앙안에서 ...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정말 그렇다. 돌이켜보니, 그분은 늘 나에게 말씀을 건네오고 계셨다.
음성으로가 아니라 사람들을 통하여 ... 더 정확히 말하면 그분의 말씀은 교우들이었다. 새로운 소명이 주어질 때마다
만나게 되는 교우들은 늘 나를 뒤돌아보게 하는 하느님의 말씀이셨다. 그리고 그 말씀은 나를 '그' 사제가 되어가도록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교우들에게 미안하고 죄송스럽다. 그리고 감사하다.
돌이켜보니, 내 삶의 첫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보내셨다. 나는 우리 부모님께 원하지 않는 아이였다.
아이를 더 이상 갖질 바라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그래서 두 분은 낙태를 결정하셨고, 실제로 그 일이 이루어질 뻔했다
한 자매님의 말씀이 아니었으면 말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버려서는 안 된다.
정 힘들면 하느님께 봉헌해라, 봉헌하면 하느님께서 키워주실 테니까...."
이 말씀이 우리 부모님의 마음을 움직에게 만들었고, 내가 태어났다. 그 자매님은 하느님의 말씀이셨다.
늘 나를 살려주시기위해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보내고 계셨다. 그리고 그 말씀은 나를 당신께로 한 걸음 한 걸음 걷게
만들어 주신다. " 사제로 사는 게 행복하세요?" 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럼요 ~~ 행복합니다. "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사람들과 함께 살기 때문이다. 물론 속상한 일도 많다, 하지만 그 역시도 하느님의 말씀이라 생각한다.
당시에는 너무나 아프지만,시간이 흐르고 나면 당신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걷고 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말씀으로 다가오는 교우들께
하느님의 말씀이 되어주고 싶어
말씀으로 다가오는 교우들에게' 그' 사제로 살고 싶다. 나 역시도 교우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되어 주고 싶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 아침에 일어날 시간이 되면, 침대에 더 이상 머물지 말고 벌떡 일어나게, 첫 생각을 하느님께 모으고 묵상을 잘하게,
미사를 드리고 분명한 의식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게, 매일 아침기도를 의식적으로 바치게,
성무일도를 주의 깊게 바치게. 그날 해야 할 일이 무엇이든 정확하게 양심적으로 하되 하느님을 위해서 실행하게,
성체조배 할 때, 분명한 정신으로 하게, 삼종기도를 정성껏 바치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먹고 마시게, 정성껏 묵주기도를 바치게
나쁜 생각을 멀리하게, 저녁 묵상을 제대로 하도록 노력하게, 매일 양심성찰을 하게, 잠자리에 늦지 않게 제 때에 들게,
그러면 자네는 완전해진 거네"( 존 헨리 뉴먼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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