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넘게 소설을 써 보겠노라 맘먹었을 때 글감을 얻으려는 속셈으로 파고다의 노인들과 술깨나 마셨다
삶의 자취란 게 그사람의 표정이나 입성에 묻어있는 거라서
어쩔땐 얼굴만 봐도 나옴직한 얘기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노인들의 얘기는 화수분이다
그들의 삶 속엔 최인훈이 바라본 광장이 있고 박태원의 말하는 구보씨의 하루가 있다
오래 산 노인들은 저마다 하나씩 보따리가 있는데 그 속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침방송에 나와 노래하는 아마추어 가수들은 구구절절 사연도 많다
방송을 볼 때마다 세상엔 아픈 사람도 많고 숨은 고수들도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내 꺼 올리는데만 급급했는데 차차 이웃들의 안부도 묻고
댓글도 답하면서 많은 걸 알아간다
소소한 일상을 여과없이 올리는 분들도 계시고
어마무지한 내공이 쌓인 글을 올리는 분들도 계신다
특히나 나는 달리 내놓을 게 마땅찮아 음악얘길 주로 하는 편인데
공감하는 이웃을 대할때면 정말 만나서 같이 노래라도 하는듯한 기쁨도 있다
댓글도 찬찬히 읽어보면 상대의 마음이 보인다
블로그를 한다는 게 개인의 아카이브를 구축한다~생각하면 쉬울것도 같은데 막상 해보면 힘든 시간도 있다
일기를 쓰다보면 하루를 돌아보게 되고 내일을 염려하듯 말이다
지금처럼 병웥생활을 할땐 더욱 그렇다
전엔 이것저것 꾸며본다고 화분값만 해도 꽤 들었는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하다
어느 겨울엔 수족관을 들여놨다가 애먼 물고기들만 많이 죽고 말았다
여름엔 해바라기를 심었는데 놀랍게도 모두 싹을 띄웠다
극성스런 더위였지만 굴광성 식물이니까 잘 크겠지 했는데 제대로 된 씨앗을 못보고 말라 죽었다
물만 있다고 구피들의 다 사는것도 아니고
꽃을 피웠다고 해바라기가 다 사는것도 아니더라
엄마는 맨날 웃으니까 아픈데도 없을거라 여겼던 어린시절의 치기어린 마음같다고나 할까?
이젠 내가 그날 파고다의 노인이 되어 어린 친구를 만나야 할 시간이다
내가 가진 보따리엔 어떤 꿈들이 들어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