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
왜 한국 사람들은 생일날 미역국을 먹었느냐는 인사를 할까. 나도 하마터면 딸 아이의 생일날 시어머니가 미역국을 끓여주시더냐고 물을 뻔했다. 시어머니와 함께 사니까 당일날은 시어멈니와 지내고 친정에서는 한 주지나 생일밥을 같이 먹자고 약속을 한 터였다. 생일 당일 날 내가 묻지 않았는데 딸아이는 시어머니가 미역국을 끓여주었다고 전한다. 웃었다. 미역국을 먹든 매운탕을 먹든 그날을 기념하며 별나게 조금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일 뿐이다.
나는 가족들 생일날 미역국을 잘 끓이지 않는 편이다. 반면, 산모가 없어도 수시로 미역국을 먹고살아서 우리집에서는 미역국이 특식이 되지 못한다. 아이들이 결혼을 하기 전까지 가족이 한 집에서 살았기에 엄마가 정성껏 끓여주는 집밥 차원의 그리운 음식도 아니고 늘 받아먹는 밥보다는 조금 낯설고 식욕이 동하는 특별식을 원할 것같아 오히려 외식을 하는 편이었다.
대체로 객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음식이 생일날 아침의 진하게 끓인 미역국에 의미를 둔다.
돌이켜보면 누가 생일날에 미역국을 끓이는 기원이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바로 엄마들이었을 것같다. 층층시하에서 출산을 하였을 때 유일하게 며느리만을 위한 음식이 미역국이었을 것이고 아무리독한 시어머니도 아기낳은 며느리에게 고기넣은 미역국을 끓였을 것이므로 자신을 위한 음식이 아니라 아기가 잘 먹는다는 이유로 생일날 미역국을 끓이는게 전통이 되었을 것같다.
지난 해이던가. 아들네가 5식구,딸네가 4식구, 우리 부부를 합하여 한 자리에 모이면 어지간히 음식을 준비하지 않으면 먹는 것 차려내기가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사태와 양지머리를 섞어서 진하게 끓인 미역국을 한 들통 마련하고 갈비와 생선구이를 준비하고 김치만 맛있으면 원하는대로 밑반찬에 곁들여 차려주기로 정했다. 아직 어린 아이가 있어서 음식점이 부적합하여 집에서 치르는게 대세가 되어 그리 하였다.
머리도 빗지 못하고 눈만 뜨면 정신없이 부엌과 거실을 오락가락 하는데 내 아들이 큰 손녀에게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현채야. 할머니집 미역국 맛있지."
"응."
아 나는 이 말을 들은 후부터는 행여 미역국에 실망할까봐 미역국 맛내는데 정성을 들이는 편이다. 아이들 먹이는 일은 행복한데 요리에 신명을 내지 못해서 우리 집에만 있는 특별식을 하지 않는 나라서 맛있다는 말에 귀가 쫑긋 섰다. 생일이거나 아니거나, 우리집에서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 나는 맛난 미역국 끓이기에 열을 올린다.
피를 맑히는 미역국이 가족 3대가 모인 자리에서 맛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소통을 막는 기름은 걷어내고 맛만 살아남게 하는 미역국이 되도록 정성을 들인다. 미역도 좋고 고기도 좋아야지 정성을 들인다고 다 맛난 미역국은 되지 않는다. 미역국은 오래 끓여야 맛나고 맨 미역국을 오래 끓여도 맛이 나는 것 또한 아니다. 혈관 속에서 소통을 막는 기름은 제거해야 하고, 혀끝에 달도록 고기도 적당한 비율로 섞어야 하고, 미역국 만큼은 전통 국간장이어야 맛이 난다는 것 쯤은 알고 끓여야하듯 만사에 그냥 좋은 것은 없다.
누군가는 미역국이 지겨운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미역국이 그리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음식이 물질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 답은 정해있다. 누가 끓여준 국인가 어디서 먹은 국인가, 누구와 함께 먹은 국인가 이야기가 녹아있는 국만이 그리운 음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