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글을 올린 지 10여 년이 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둔재인 자신은 아직도 많은 사람의 가슴에 다가가 뜨겁게 하나 될 수 없는 거리감 때문에, 홍역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글의 본질은 자유로운 자기 표출이기도 하지만 마치 고해성사하듯 여러 사람 앞에 부끄러움까지도 노출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표현의 자유에 매료되어 글을 꾸역꾸역 올린다. 어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일들을 이렇게 귀중한 지면에다 고주알미주알 부끄러운 고백을 늘어놓는 까닭은 무엇인가?
30여 년간 습작할 수 있은 동기는 젊은 날 수석水石과의 인연 때문이며, 그날그날 생활을 기록하면서 그때의 감정을 기록한 역사서이며, 시간 여행이었다. 이 시간 여행도 과거로부터의 여행이었다. 이 여행을 통하여 과거의 일을 들춰내고, 시공간을 초월하기도 했다. 젊을 때부터 역사책을 읽었으며, 내가 꾸역꾸역 글을 올리는 것은 뇌가 늘 생생해져서 기억력이 쇠퇴하는 속도를 완화 시켜 볼 속셈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과 산책은 나의 노후 건강법이고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습작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함양의 종갓집을 방문하였다. 고택을 지키고 있는 후손은 예의를 갖추어 방문객을 맞아들였다. 그런 모습을 보는 방문객도 그 집안 분위기에 알맞은 몸과 마음을 자연히 가다듬게 된다. 문 안에 사는 사람의 격에 따라 집안의 품위가 드러난다. 달리 말해 후손의 태도 여하에 따라 조상들의 명예가 좌우된다. 가문의 전통을 중요시했던 조상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지금 어떤 품격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해본다.
거창하게 성리학을 논하려는 게 아니지만, 성리학은 공자‧맹자의 유교를 계승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이론화시키고, 인간의 본질을 밝히고자 했다.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혈연공동체와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공동체의 윤리 규범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의 중심사상으로 발전시켰고, 사회적 인간관계와 개인 수양이라는 두 측면에서 그 사상을 심화시켰다. 여태껏 사회나 가정은 이 사상적 정통성에 매립되어 흐르고 있다.
아름다운 소리도 지나치면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 되듯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같은 말도 분위기에 따라 어투를 달리해야 하고 상대방의 처지나 기분에 따라 말의 높낮이도 달라져야 사리 분별이 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은 십중팔구 문제 있는 어투나 행동으로 마음의 상처를 주는 사람이다. 반대로 주고받는 게 없어도 느낌 좋은 사람은 말이 신중하며 어투는 바르고 공손한 사람이다. 거기다 다른 이의 기분이나 상황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세상에는 잘 난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중에 못난 나도 잘난 척하느라 타인에게 상처를 준 적이 많았을 것이다. 그들도 지금의 나처럼 아프고 가슴속 깊이에서 가늠조차 힘들게 아렸을 것이므로 자업자득이고 역지사지할 일이 아니겠는가.
세월은 흘러 진주 문중 말석에 앉아있던 내가 작년 시제 때 회장직을 맡았으니 책임과 의무 또한 가슴을 짓누른다. 문중의 발전을 위해서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물러나면 또 얼마나 송구할까? 하늘은 사람을 내보낼 때 무언가 하나를 줘서 내보낸다고 했다. 삶은 언제나 궁하면 통하는 법이 아니던가. 전임 집행부가 많은 일과 길을 터 주었기에 탄탄대로를 가고 있다. 하지만 물은 흘러야 한다. 그래야만 새 물결이 새 역사를 만들며 도도히 흘러갈 것이 아닌가.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있듯이 향후 젊고 패기 있는 새 일꾼들이 새 마음으로 몸을 추스르고 힘을 쏟는다면 문중의 미래는 더욱 창창할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의 하루하루가 모여 역사가 되듯, 재실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그날을 위해 심기일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