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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울컥’의 대화엄의 세계
----결의 시학
반경환
이서빈 시인은 언어에 대한 남 다른 관심을 갖고 있고, 그의 시들은 언어학적으로도 대단한 깊이와 그 넓이를 자랑한다. 깊이는 수직적 차원에서 인식의 깊이가 되고, 넓이는 수평적 차원에서 영토의 넓이가 된다. 깊이는 집중(수축)의 힘이 되고, 넓이는 확산의 힘이 된다. 이서빈 시인의 시들은 인식의 깊이와 그 넓이를 가지고 있으며, 이 인식의 깊이와 넓이는 언어학적인 차원을 넘어서 역사 철학적인 차원으로 수직 상승하게 된다. 언어는 인식의 도구이며, 이 인식의 도구를 자유자재롭게 사용하는 자가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앎의 투쟁)에서 승리하는 역사 철학자, 또는 사상가라고 할 수가 있다.
나무의 결은 나무의 나이고
물결은 물의 나이입니다.
나무의 나이는 나무가 죽어야만 알 수 있어요. 결을 보는 것은 조문하는
일입니다. 고요한 물의 나이를 알려면 돌멩이 하나 던져보면 되지요.
잠깐 보여주고 사라지는 물의 나이
어느새 출몰했다 사라지는 뼈들입니다.
세상의 것들은 결을 간직하고 있지요. 반질반질한 머릿결. 여전히 가르마
로 옛날 나이를 고집하는 할머니는 한 번도 구불구불한 머릿결을 가진 적
없지요.
결국 나이를 감추고 있다는 뜻이지요.
나이를 걷어내면 결은 곧 사라져요.
봄 들판에 출렁이는 결, 어린 나이도 있고 늙은 나이도 있지요. 가지런하
고 걸음이 일정한 숨결. 나긋나긋하던 결이 거칠어지면 오래지 않아 굳어
요. 들판을 어지럽히는 바람결에 봄 살결은 늙거나 시들어 가지요. 바람결
로 나이를 먹고 시들어가는 들판이에요.
살아있는 것들은 둥근 내면의 결을 가지고 있어
여린 것일수록 결이 보드랍게 잘 휘지요.
가끔 손 없는 이불 결이 꿈결을 쓰다듬는 날이면 하늘은 연한 육질을 위
해 햇빛과 별빛을 결대로 찢지요. 모든 결에서 비린내가 나는 이유지요.
청결이나 미결 같은 엉뚱한 단어들이
결 사이로 끼어들기 때문이지요.
----[결] 전문
이서빈 시인의 ‘결’은 나무의 나이이고, 물의 나이이다. 나무의 나이는 죽어야만 알 수가 있고, 나무의 결을 보는 것은 나무를 조문하는 일이 된다. 물의 나이는 물결이고, 물의 나이를 알려면 돌멩이를 던져보면 된다. 물의 나이, 즉, 물결은 물의 뼈이고, 돌멩이를 던지면 어느새 출몰했다가 사라진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결을 간직하고 있다. 여전히 옛날의 나이를 고집하는 할머니의 머릿결도 있고, 봄 들판에 출렁이는 결도 있다. 어린 나이의 결도 있고, 늙은 나이의 결도 있다. 가지런하고 걸음이 일정한 숨결도 있고, 나이를 먹고 시들어가는 들판의 바람결도 있다. 이불 결도 있고, 꿈결도 있고, 청결도 있고, 미결도 있다.
결이란 매듭이고, 나이테이며, 그것은 그 주체자의 삶의 궤적을 증명해준다. 국가의 역사는 국사이고, 세계의 역사는 세계사이고, 존재의 역사는 결의 역사이다. 반질반질한 머릿결은 반질반질한 역사를 갖고 있고, 구불구불한 머릿결은 구불구불한 역사를 갖고 있다.“살아있는 것들은 둥근 내면의 결을 가지고” 있고, “여린 것일수록 결이 보드랍게 잘” 휜다. 이불 결도 나이를 먹고 꿈결도 나이를 먹고, “이불 결이 꿈결을 쓰다듬는 날”----흉몽을 말한다----이면, “하늘은 연한 육질을 위해 햇빛과 별빛을 결대로” 찢는다. 이불 결과 꿈결은 물론이고, 햇빛과 별빛도 결이 있으며, 이 결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가 있다. 투쟁의 역사는 ‘청결’과 ‘미결’을 둘러싼 도덕과 밥그릇의 싸움으로 점철되어 있고, 모든 싸움에는 피 비린내가 풍겨나오기 마련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결을 간직하고 있고 결의 역사가 투쟁의 역사라면, 그것은 이서빈 시인의 인식의 깊이가 되고, 이 인식의 깊이는 다양한 결의 모습으로 그 울림과 그 파장을 드러낸다. 결, 결, 나무가 죽어야만 볼 수 있는 결, 잠깐 보여주고 사라지는 물의 결, 한 번도 구불구불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할머니의 머릿결, 봄 들판에 출렁이는 머릿결, 어린 나이의 결, 늙은 나이의 결, 가지런하고 걸음이 일정한 숨결, 들판을 어지럽히는 바람결, 늙거나 시들어가는 살결, 이불 결, 꿈결, 햇빛의 결, 바람의 결, 청결, 미결 등은 다양한 결의 울림과 그 파장을 보여준다.
결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이자 축제의 역사이다. 모든 투쟁은 축제이고, 모든 축제는 투쟁이다. 모든 사물은 결에서 태어나고, 그 결을 살다가 그 결을 남기고 죽어간다. 결이 결을 낳고, 결의 노래를 부른다. 결이 결의 다리를 걸고, 결의 얼굴을 짓밟아 버린다. 결과 결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결이 결에 짓밟혀 죽으며, 또, 무수한 결을 생산해낸다. 이서빈 시인의 [결]은‘결의 역사’와 ‘결의 삶’을 언어학적으로, 또는 역사 철학적으로 천착해낸 수작이라고 할 수가 있다.
저 조그만 네모 하나에 모든 도형들이 다 빨려 들어간다.
먹다·굶다가 한통속으로 들어가거나 나간다, 밥 먹고 욕 먹고 일도 시켜 먹는다. 녹을 먹고 나라를 말아먹는다.
먹는 것 입 꾹 다물면 굶는 것도 끝난다.
때론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굴레를 쓰고 사람을 가두어 수인囚人이 되게도 하는 口. 하루의 끝이 꾸역꾸역 모여 잠을 볼모로 잡고 있는 口.
조금 먹은 놈은 도둑이라 하고 많이 먹은 놈 영웅이라 하는 저 口. 끝내 삼킨 것 다 뱉어내 저 조그만 관속 들어가 꽝꽝 못질 당할 口.
살도 뼈도 수식어도 없는 막대기 네 개 저것 안에 4주가 들어 있고 4방이 들어있고 온갖 사연 다 들어 있어 죽음까지도 4망이라 한다면 저 ㅁ는 모든 비밀 다 틀어쥐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 모두 저 네모안에 들어가기 위해 오늘도 꽃도 새도 나비도 끊임없이 태어나 날고 있다.
----[구口] 전문
이서빈 시인의 언어학적 인식의 깊이는 [결]과 [가락], [함께, 울컥] 이외에도 [구口] 라는 시에서 가장 잘 드러나고 있으며, 그 방법은‘현상학적’이라고 할 수가 있다. 입(口)은 사람 또는 동식물들의 입이며, 우리는 이 입을 통해서 먹고 살아간다. “저 조그만 네모 하나에 모든 도형들이 다 빨려 들어간다.// 먹다·굶다가 한통속으로 들어가거나 나간다, 밥 먹고 욕 먹고 일도 시켜 먹는다. 녹을 먹고 나라를 말아먹는다.”그렇다.“먹는 것 입 꾹 다물면 굶는 것도 끝난다.”그 입, 그 먹는 것 때문에 때로는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굴레를 쓰고 형무소를 가게 되고, 조금 먹은 놈은 도둑이라고 하고, 많이 먹은 놈은 영웅이라고 한다. 사회적 약자인 좀도둑들은 일벌백계로 단죄하고, 사회적 강자인 대도둑들에게는 온갖 영웅의 칭호를 다 부여한다.
하지만, 그러나 최종심급은 입이며, 죽을 때는 끝내 삼킨 것 다 토해내고 조그만 관속으로 들어가 꽝꽝 못질을 당하게 된다. 입은 살도 뼈도 수식어도 없는 막대기 네 개의 관이 되고, 이 관속에는 사주四柱가 들어 있고, 사방四方이 들어 있고, “온갖 사연 다 들어 있어 죽음까지도”사망死亡 이라고 한다. 입은 모든 비밀을 다 틀어쥐고 있는 우주이며, 이 입을 통해서 모든 인간들과, 꽃과 새와 나비들의 삶이 펼쳐진다. 이럴 때의 이서빈 시인은 그 모든 것을‘입’으로 설명하는 언어학자이자 현상학자라고 할 수가 있다. 그의 언어는 인식의 깊이가 되고, 그 인식의 깊이는‘입口’의 본질을 파헤치는 현상학적 깊이가 된다. 이 인식의 깊이와 현상학적 깊이는 참으로 대단하고 경이로우며,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으로서 한국문학의 신기원을 활짝 열어제친다. 이제 한국문학은 제3세계의 역사 철학적인 무지와 암흑과 혼돈의 장막을 걷어내고 문화선진국의 문턱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가락이란 말에는 흥이 섞여있다. 엿가락 노랫가락 손가락 발가락 숟가락 젓가락엔 길고 짧은 가락이 흐른다. 흥이 나면 발가락을 까딱이고 손가락장단 맞추기도 하고 가락지 끼며 약속을 맞추기도 한다.
5일장 가면 각설이 타령 엿장수 맘대로 엿가락 늘리듯 음 늘리며 가위로 노랫가락 자르며 엿가락 판다. 찍찍 늘어난 엿가락은 달고 흥겹다. 젓가락 밥상 두드리며 장단치고 숟가락 소주병에 꽂아 흔들며 가락 만들어내기도 한다. 숟가락 두들기며 부르는 질펀한 가락에는 술 냄새가 난다. 노래하고 술 마시고 춤추는 가락은 절로 신나 어깨를 흔들어 댄다. 친한 사이가 되면 그 집 숟가락이 몇 개고 젓가락이 몇 개인 것 까지 알 수 있는 것만 봐도 가락이란 말은 참 흥이 돋고 정 묻은 말이다.
가락국을 세운 김해지방의 걸쭉한 사투리가 막걸리와 섞여 전설 같은 선율로 흐르는 별밤.
기차 여행을 하다 간이역에서 가락국수 한 그릇 훌훌 들이키고 싶다. 눈에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 가락들은 늘 사람의 곁을 지킨다.
----[가락] 전문
이서빈 시인의 언어학과 현상학적 깊이는 그의 두 번째 시집인 {함께, 울컥}의 물적 토대가 되고 있지만, 그의 [가락]에도 그것은 유감없이 드러난다. 그는 대뜸 “가락이란 말에는 흥이 섞여있다”라고 말한다.“엿가락 노랫가락 손가락 발가락 숟가락 젓가락엔 길고 짧은 가락이 흐른다”고 말하고,“흥이 나면 발가락을 까딱이고 손가락장단 맞추기도 하고 가락지 끼며 약속을 맞추기도 한다”고 말한다. 가락이란 매우 다양하고 중층적인 의미를 지닌 한국어인데, 왜냐하면,
1. 음악의 기본 요소 가운데 하나로 소리의 높낮이가 길이나 리듬과 서로 어울려 이루어지는 음의 흐름;
2. 오랜 경험을 통해 몸에 밴 솜씨나 능력;
3. 조금 가늘고 길쭉하게 토막진 물건의 낱개;
4. 물레로 실을 자을 때, 고치솜에서 풀려 나오는 실을 감는 쇠꼬챙이;
5. 수 관형사 뒤에서 의존적 용법으로 쓰여, 조금 가늘고 길쭉하게 토막을 친 물건을 세는 말;
6, 고대 부족 국가(가락駕洛);
7. 기름하게 생긴 연장을 세는 단위를 나타내는 말;
등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엿가락, 노랫가락, 손가락, 발가락, 숟가락, 젓가락, 가락지, 가락국, 가락국수 등까지 그의 [가락] 속에 녹아들며, 이서빈 시인은 언어학자이자 현상학자로서의 종합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부분에서 전체로, 전체에서 부분으로 그의 시선은 넓고 깊으며, 무모순의 원리로서 그의‘함께, 울컥의 대화엄의 세계’를 펼쳐나간다.
5일장 가면 각설이 타령 엿장수 맘대로 엿가락 늘리듯 음 늘리며 가위로 노랫가락 자르며 엿가락 판다. 찍찍 늘어난 엿가락은 달고 흥겹다. 젓가락 밥상 두드리며 장단치고 숟가락 소주병에 꽂아 흔들며 가락 만들어내기도 한다. 숟가락 두들기며 부르는 질펀한 가락에는 술 냄새가 난다. 노래하고 술 마시고 춤추는 가락은 절로 신나 어깨를 흔들어 댄다. 친한 사이가 되면 그 집 숟가락이 몇 개고 젓가락이 몇 개인 것 까지 알 수 있는 것만 봐도 가락이란 말은 참 흥이 돋고 정 묻은 말이다.
가락국을 세운 김해지방의 걸쭉한 사투리가 막걸리와 섞여 전설 같은 선율로 흐르는 별밤.
기차 여행을 하다 간이역에서 가락국수 한 그릇 훌훌 들이키고 싶다. 눈에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 가락들은 늘 사람의 곁을 지킨다.
아는 것은 즐겁고 즐거운 것은 노래가 된다. 노래는 축제의 꽃이 되고, 이서빈 시인의 [가락]으로 모든 축제가 대성황을 이루게 된다. 제일급의 시인은 앎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높이 높이 끌어올리고, 그 사유의 힘, 그 역사 철학적인 힘으로 동시대를 비판하며,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우리 인간들의 이상낙원을 건설하고자 한다.
아무렇게나 핀 개망초
지금쯤 개명 신청 중일 거다.
‘개’자는 모두 좋지 못한 말로만 쓰인다며
불평꼬릴 바람개비처럼 살래살래 흔든다.
----개 명改名 부분
기형공화국엔 기형들만 사는 게 아니라
너무도 번듯한 외형들이 기형을 만들고 있다
----[기형공화국] 부분
개만도 못한 놈이 있고 사람보다 나은 개가 있다. 아테네 학당에도 개똥철학자가 있었고 견유학파犬儒學派의 디오게네스. 아테네 학당 천재들도 개에게는 꼼짝 못해 멍텅구리같은 개에게 신 개유학파가 생겼다지. 개구멍· 개지랄· 개웃겨· 개망나니· 개살구· 개머루· 개가죽나물· 개부랄꽃 같은
사람들은 사람새끼를 돼지새끼라고 부르기도 한다 돼지꿈· 돼지저금통 돈은 모두 돼지들이 차지하고 있다.
----[굴레 벗기기] 부분
한 번도 자신의 집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 오늘도 다른 사람 집 짓고
한 번도 자신의 시 써 보지 못한 사람 다른 사람 시집 만들고 다음 생이나 그 다음 생 위해 남의 집 짓는다
오막살이라도 내 집 좋다던 사람들 이사 할 때는 한 사람도 집을 가져가지 않는다
----[헛말] 부분
이 거리는 이미 국적이 없다.
국산 종업원이 드물고 한글간판도 드문드문 이 거리는 잡종 인간 공화국이다. 말없는 법칙에 국산은 어디로 이주했는가. 수천 년 전 토종달빛이 휘영청 쏟아진다.
----[업業]부분
만일, 존재의 역사가 결의 역사이고, 결의 역사가 투쟁의 역사라면 시에 있어서의 언어란 투쟁의 도구라고 할 수가 있다. 언어란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일도필살의 검’과도 같은 것이며, 사상과 이론이란 최종적인 승리의 축포와도 같은 것이다. 비판이란 적과 동지, 친구와 친구, 스승과 제자, 부모형제와 나, 이웃과 이웃들 간의 싸움의 장이며, 비판없이는 그 어떤 승리도, 그 어떤 승리의 쟁취물도 없게 될 것이다. 비판의 기능에는 정화기능과 강화기능, 그리고 성화기능이 있다. 정화기능이란 자기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씻어주는 기능을 하고, 강화기능이란 그 약점과 결점들을 극복하고 천하무적의 힘을 길러주고, 성화기능이란 천하무적의 영웅들을 끊임없이 찬양하고 숭배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이 세상에 나갈 때는 전투정신으로 나가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학교교육은 최고급의 인식의 전사를 양성하게 된다. 비판만이 위대하고, 또, 위대하다. 비판은 당신의 존재증명이다. 당신은 누구를, 무엇을 비판할 수 있는가?
이서빈 시인의 ‘함께, 울컥의 대화엄의 세계’는 비판철학(역사 철학)의 힘이 각인되어 있으며, 그것은 [개명], [기형공화국], [굴레 벗기기], [헛말], [빈 휴일], [업業] 등으로 설명할 수가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국산종업원이 드물고 한글간판도 드문 ‘잡종인간 공화국’이며, 너무나도 번듯한 외형들이 [기형공화국]을 이루고 있는 나라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렇게나 제멋대로 살아온 개만도 못한 놈들이 개명을 신청 중이고, 그토록 부동산 투기를 좋아하면서도 죽어갈 때에는 단 한 사람도 집을 가져가지는 못한다. 이서빈 시인은 그 비판철학의 힘으로 명예를 위해 살고 명예를 위해 죽는 인간, 모든 탐욕과 허례허식을 다 버리고 그 이타적인 사랑으로 국적 있는 ‘한국인의 상’을 제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언어의 칼날은 이 땅의 잡종인간들의 인간성과 세태풍습을 자르고 해부하며, “고흐의 한쪽 귀 누가 베어먹었나/ 귀 잘린 자리 화엄꽃 핀다”라는 [화엄꽃 1]의 시구에서처럼, 그 어느 누구보다도 투철한 예술가의 정신으로 만인들의 사랑과 평화와 행복을 기원하게 된다. “나비왕국엔 법도 없고 귀양 가는 일도 없다/ 금 그어놓고 억압하지도 패거릴 만들지도 않는다/ 봄을 수놓은 온갖 꽃들이 다 나비들의 수예솜씨라면/ 그 화무십일홍들이 대통大統의회의 공무도 보게 해야 한다”의 [나비왕국]과 [함께, 울컥]의 대화엄의 세계가 바로 그것을 증명해준다.
함께라는 말에는 따뜻한 체온이 숨 쉬지
자음모음의 합계는 자음모음이지만
자음모음의 함께는 어떤 글자도 다 만들 수 있지
함께는 숨결이고 물이고 햇빛이지
함께라는 이 짧은 음절은 울컥이란 神이 사는 신전이지
세 평 구둣방서 21년 동안 구두 5천 켤레 고치고 닦아 평생 번 3만3천 평 땅
코로나로 힘든 이웃 위해 써달라고 기부한 울컥씨
4년간 모은 10원 5백원짜리 코 묻은 저금통 기탁하면서 도움주고 싶다는 7살 최울컥
어려운데 써 달라고 1백원 5백원짜리 전달한 취약계층 울컥독거노인
행정복지센터 찾아와 1백만원 내놓으며 이름 밝히지 않은 무명울컥
꼭 필요한 곳에 쓰이길 바란다며 곰팡이 핀 지폐를 내 놓은 폐지 줍는 굽은등울컥
바자회 열어 수익금 1백 59만원 전한 울컥고등학생
개인병원 문 닫고 코로나 치료 위해 대구로 달려가는 울컥의료진
이 위기 잘 넘기자고 각 체인점에 임대료 힘 한가마니씩 지원해 주는프렌차이즈 울컥사장
임대료 면제해 주는 울컥주
위험 무릅쓰고 밤낮 코로나 환자들 돌보는 울컥의사 울컥간호사
함께 울컥, 눈물을 제조해
가나다라마바사
가나다라마바사
슬픔 찢고 나온 푸른 휘파람
울컥나라 국기에 울컥울컥 희망을 펄럭이고 있네
----[함께, 울컥] 전문
이서빈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의 표제시인 [함께, 울컥]은 세계적인 대유행병인 ‘코로나’앞에서 국난극복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시이며, 그의 인식의 깊이와 역사 철학적인 깊이를 한국문학의 진수로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이서빈 시인은“함께는 숨결이고 물이고 햇빛이지”라고 말하고, 또한, 그는“함께라는 이 짧은 음절은 울컥이란 神이 사는 신전”이라고 말한다. 함께라는 말에는 따뜻한 체온이 숨쉬고, 자음모음의 합계는 단순한 자음모음에 지나지 않지만, 자음모음의 함께는 어떤 글자도 다 만든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 사는 사람에게는 언어가 필요없을는지도 모르지만, 둘 이상의 사람이 모여살면 언어가 필요하다. 우리는 언어로서 사물을 인식하고, 언어로서 어떤 사건과 현상들을 기록하고, 우리는 언어로서 상호간의 대화를 나눈다. 언어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며, 자기중심주의를 버리고 타자의 이타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가 없다.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면 단순한 자음과 모음에 불과하지만, 이 자음과 모음에‘함께’라는 공동체의 힘을 보태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왜냐하면 함께는 공동체의 숨결이고 물이며 햇빛이고, 함께라는 이 짧은 음절에‘울컥’이라는 민족정신, 즉, 전지전능한 신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자음과 모음, 즉, 한국어로 열리는 세상이며,‘함께, 울컥의 대화엄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세상이다. 인류의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유행병인 코로나 앞에서 모두들 다같이 벌벌벌, 떨고 있을 때, 세 평 구둣방서 21년 동안 구두 5천 켤레를 고치고 평생 번 3만3천평 땅을 기부한 울컥 씨, 4년간 모은 10원, 5백원짜리 코 묻은 저금통을 기탁한 7살 최울컥 어린이, 어려운 데 써달라고 1백원, 5백 원짜리 전달한 취약계층 울컥독거노인, 행정복지센터 찾아와 1백만원 내놓으며 이름 밝히지 않은 무명울컥 씨, 꼭 필요한 곳에 쓰이길 바란다며 곰팡이 핀 지폐를 내놓은 폐지 줍는 굽은등울컥 씨, 바자회 열어 수익금 1백 59만원 전한 울컥고등학생, 개인병원 문 닫고 코로나 치료를 위해 대구로 달려가는 울컥의료진, 이 위기 잘 넘기자고 각 체인점에 힘 한가마니씩 지원해 주는프렌차이즈 울컥사장, 임대료 면제해 주는 울컥주, 위험 무릅쓰고 밤낮 코로나 환자들 돌보는 울컥의사, 울컥간호사 등이 “함께 울컥, 눈물을 제조해”세계에서 제일 먼저 전국토의 국난극복의 의지를 불태우게 한다. 티끌 모아 태산을 이루고, 한마음--한뜻으로 일치단결하여 세계적인 대재앙을 극복하며, 천하태평의 화엄의 세계를 이루어낸다.
이서빈 시인에게 있어서의 화엄이란 시를 통해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내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는 것을 말하고, 궁극적으로는 한마음--한뜻으로 공동체 사회의 사랑과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함께’라는 사적인‘나’를 버린‘함께’이며, 그 이타적인 몰아의 경지에서 너와 내가 손에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울컥’이란 마음, 그 심리적인 움직임은 서로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이며, 그 어떤 고통과 재난도 두렵지가 않다는 뜻이 된다. 이서빈 시인의 영광은 한국인의 영광이며, 한국인의 영광은 시인의 영광이다. 시인의 영광은 자음과 모음이 함께하는 세상을 탄생시키고, 한국인의 영광은 너와 내가 함께 하는 세상을 탄생시킨다. 요컨대“가나다라마바사/ 가나다라마바사/ 슬픔 찢고 나온 푸른 휘파람”이 “울컥나라 국기에 울컥울컥 희망을 펄럭”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서빈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함께, 울컥]은 그의 첫 시집인 {달의 이동경로}에 이어서 한국문학의 경사이며, 그 인식의 깊이와 현상학적, 혹은 역사 철학적인 깊이를 통해서 세계문학의 경지에 올라서게 되었다. 대단히 참신하고 기발하며 독특한 발상이 담겨있고, 수직적인 깊이와 수평적인 확산을 통해서 우리 한국인들은 물론, 전세계인들의 마음을 울리게 될 것이다.“자음모음의 합계는 자음모음이지만/ 자음모음의 함께는 어떤 글자도 다 만들 수 있지// 함께는 숨결이고 물이고 햇빛이지/ 함께라는 이 짧은 음절은 울컥이란 神이 사는 신전이지”라는 시구와“가나다라마바사/ 가나다라마바사/ 슬픔 찢고 나온 푸른 휘파람/ 울컥나라 국기에 울컥울컥 희망을 펄럭이고 있네”라는 시구를 쓰기 위해 그는 그 얼마나 많은 시간과 세월을 투자하며, 그토록 어렵고 힘든 언어의 산맥들과 전인류의 고전들이라는 고산영봉들을 찾아 헤매고 다녔단 말인가? 앞에도 절벽이고 뒤에도 절벽이고, 사지는 부들부들 떨리고 기력이 쇠잖아해지는 고통과 절망을 감당해내면서도 그 얼마나 그토록 고귀하고 위대한 언어의 혁명을 꿈꾸어 왔단 말인가?
이서빈 시인의 한국어는 다이아몬드이며, 그의 두 번째 시집인 {함께, 울컥}은 다이아몬드의 광산이다. 다이아몬드는 그 희소성 때문에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세계 최고가 되지만, 그러나 이서빈 시인의 한국어, 즉, 다이아몬드 광산은 천문학적인 그 매장력을 자랑한다. 한국어는 우리 한국인들의 영원한 자산이며, 그 언젠가, 그 어느 때는 전인류의 공용어가 될 것이다.
존재의 역사는 결의 역사이고, 결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이다. 어느 누구나 “가나다라마바사/ 가나다라마바사/ 슬픔 찢고 나온 푸른 휘파람/ 울컥나라 국기에 울컥울컥 희망”의 깃발을 펄럭이며,‘함께, 울컥의 대화엄의 세계’를 펼쳐보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인 만세, 이서빈 만세의 세상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