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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봄] 제13기 초기불전학림 『우다나』 제7강 후기
◎강사: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각묵스님
◎장소: 김해 장유 보리원
◎일시: 2021년 5월 4일 (화) 저녁 7시 30분~ 9시 40분
⊙교재: 『우다나』각묵스님 옮김, 초기불전연구원
⊙공부내용: 제2품: 임산부 경~ 제3품: 업이 익어서 생김 경(Ud2:6~Ud3:1)
⊙동참인원: 대림스님, 온·오프 150여 명
⊙사진 및 방송: 김호동 학림부회장, 장상재 선생님
⊙본 강좌는 YouTube의 초기불교TV를 통해서 송출되었고, 돌려보기를 할 수 있습니다.
제13기 장유 학림의 『우다나』 일곱 번째 강의 소식입니다.
단비가 내리는 화요일 저녁, 13기 학림의 일곱 번째 법회와 강의는 어김없이 저녁 7시 30분 정시에
장유 보리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온라인 수강생들은 15분 전부터 유튜브 초기불교 채널에 접속해서
출석 체크를 했고요.
단체 카톡방에 당일 유튜브 공부방 주소가 공지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멀리 싱가폴에서부터
경기 서울 등 전국 곳곳에서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이름들이 유튜브 채팅창에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마음속에서 환희로움이 퍼져나옵니다!
약 20분에 걸쳐 삼귀의와 오계 수지, 자애경과 큰 행복경 합송, 원장 스님 인사말씀 순으로 법회가 진행되었고,
잠시 입정 후 시작된 법사 스님의 우다나 본 강의는 9시 40분까지 이어졌습니다. 음향, 화질, 자막, 진행 등
거의 완벽에 가까운 방송을 제작 송출하신 보리원 미디어 팀의 노고 덕분에 100명이 훨씬 넘는 온라인 출석자
들은 환희롭게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점을 먼저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원장 스님 인사 말씀
오늘 요약한 원장 스님 인사말씀의 주제는 불자들이 모아야 할 성스러운 일곱 가지 재산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담마와나 부회장님이 따로 편집해서 올리는 동영상으로 보세요!)
코로나 이후 한국에서는 주식 열풍이 불어서 주린이^^, 동학개미, 서학개미 등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대화의 주제는 어디를 가나 주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재산을 가졌어도 감각적 욕망에 물릴 줄을
모르는 것이 중생의 특징입니다.
감각적 욕망에 기반한 세속적인 재산은 아무리 많아도 충분하지 않아서 중생들은 늘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다른 사람의 재물을 탐하게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일곱 가지 성스러운 재산을 지닌 사람들은 가난하지 않고
그들의 삶은 헛되지 않다고 디가 니까야와 앙굿따라 니까야의 여러 곳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곱 가지 재산은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① 믿음의 재산: 부처님의 깨달음, 열 가지 공덕(여래십호)에 대한 청정한 믿음
② 계의 재산: 오계를 지킴
③ 양심의 재산: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삿된 행위와 불선법에 빠지는 것을 부끄러워함.
④ 수치심의 재산: 불선법을 짓고 불선법에 빠지는 것을 수치스러워함.
⑤ 배움의 재산: 가르침을 잘 배우고 바르게 정리하고 잘 기억하여 입으로 친숙해지고 마음으로
숙고하고 바른 견해로써 꿰뚫는다.
⑥ 베풂의 재산: 주는 것을 좋아하고 인색함의 때를 여의고 다른 사람의 요구에 부응한다.
⑦ 통찰지의 재산: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통찰지를 구족한다.
‘이러한 재산을 가진 여자와 남자를
사람들은 가난하지 않다 말하나니
슬기로운 자는 부처님의 교법을 마음에 지니고 잘 따라 수념하면서
청정한 믿음과 계와 자신의 법을 보는 것에 몰두할지라.’
(* 앙굿따라 니까야 『재산 경2(A7:6)』에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런 성스러운 재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돌이켜보고
오늘도 유익한 공부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아마 반떼~
법사 스님 본 강의
본 강의는 먼저 10여 분 정도 지난 6강까지의 핵심을 간단히 복습하고, 교재인 『우다나』 제2품 여섯 번째
경인 ‘임산부 경’부터 제3품 첫 번 째 경인 ‘업이 익어서 생김 경’까지 모두 6개의 경을 읽고 공부했습니다.
◈ 빠알리 삼장 가운데 경장(Sutta Pitaka)의 다섯 번째 모음인 <쿳다까 니까야(소부)>의
세 번째 경전인 『우다나(Udāna)』는 문자적으로 ud(up, 위로)+√an(to breathe, 숨 쉬다)
에서 파생된 중성명사로서, ‘부처님께서 읊으신 우러나온 말씀, 즉 부처님의 가슴에서
위로 솟아나온(우러나온) 말씀’ 80개를 모은 것입니다.
『우다나』주석서를 남긴 담마빨라 스님의 ‘우다나’ 정리:
“참으로 우러나온 말씀이란 것은
㉠ 희열과 기쁨에서 솟아 나오거나(pītisomanassa-samuṭṭhāpīta)
㉡ 법에 대한 절박함에서 솟아 나오거나(dhammasaṁvega-samuṭṭhāpīta)
㉢ 법을 받아들일 사람이 있는 것을 기대하지 않고 우러나온 것(udāhāra)이다.”
- 중국에서는『우다나』를 ‘자설경’ 또는 ‘무문자설경’이라고 옮기기도 했다.
- 『우다나』의 80개 경 중에서 4개는 산문, 한 개는 산문과 게송이 섞여 있고,
나머지 75개는 게송만으로 되어 있다.
『우다나』는 8품으로 구성되어 있다.(1품=10개의 경)
제1품에서는 ‘진정한 바라문이란 누구인가?’를 주제로,
제2품에서는 ‘불교의 목적인 행복’에 대해서 설하신다.
임산부 경(Ud2:6)
Gabbhinī-sutta
우다나를 읊으신 배경:
- 세존께서 사왓티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을 때,
바라문 출신의 *유행승과 결혼한 바라문 출신의 아내가 임신하여 출산을 하게 됐는데
그 아내가 유행승에게 출산에 필요한 기름을 구해 달라고 말했다.
** 유행승(paribbājaka)은 부처님 제자를 제외한 출가 수행자를 일컫는 말인데 이 유행승은 바라문
출신이면서 아내가 있는 유행승으로 나오고 있다.
“바라문이여, 당신은 가서 기름을 구해 오십시오, 저는 그것을 출산할 때 사용하고자 합니다.”
그러자 그 유행승은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여보, 그런데 내가 어디서 기름을 구해 온단 말이오?”
두 번째로, 세 번째로 그 아내가 남편인 유행승에게 부탁하자 유행승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빠세나디 꼬살라 왕의 곳간에서는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버터기름이나 기름을 원하는 대로 마실 수 있도록
하였지만 가져가지는 못하게 한다. 그러니 내가 곳간에 가서 기름을 원하는대로 마신 뒤 집으로 와서
토해내야겠다. 그래서 그것을 출산할 때 사용하게 해야겠다.‘라고.
유행승은 왕의 곳간에 가서 원하는 대로 기름을 마시고 집에 왔지만 위로 토해낼 수도 아래로 내릴 수도
없었다. 그는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찌르는 느낌들에 닿아서 이리저리 데굴데굴 굴렀다.
세존께서 오전에 사왓티로 탁발을 가셔서 그 유행승이 괴로운 느낌들에 닿아서 이리저리 데굴데굴
구르는 것을 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의미를 아시고 그 즉시 바로 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
“무소유인 자들은 참으로 행복한 자들이니
지혜의 달인들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노라.
소유한 자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라.
사람은 사람에게 강하게 얽매이는 마음을 가진다.”
- 여기서 무소유인 자는 아내가 없는 독신 출가자.
- 성직자인 종교인은 독신이어야 한다.
- 아내가 없는 출가자의 무소유의 행복에 대한 말씀
외동아들 경(Ud2:7)
Ekaputtaka-sutta
우다나를 읊으신 배경:
- 세존께서 사왓티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을 때, 어떤 재가신도의 소중한
외동아들이 죽었다.
많은 청신사들이 옷이 젖고 머리가 젖은 채 한낮에 세존을 뵈러 가서 절을 올리고 한곁에 앉았다.
그들에게 세존께서 ‘왜 그렇게 옷과 머리가 젖은 채 이리로 왔는가?’라고 물으시자 그들은 세존께
‘저희들의 사랑스럽고 소중한 외동아들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옷이 젖고 머리가 젖은 채
한낮에 세존을 뵈러 왔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의미를 아시고 그 즉시 바로 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
“신들의 무리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스러운 모습의 달콤함에 빠져있도다.
[늙음과 죽음 등의] 재난에 처한 그들은
죽음의 왕의 지배를 받도다.
- 세속적 행복(달콤함)의 위험함
그러나 낮과 밤으로 방일하지 않고- 마음챙김을 유지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버려버린- 세속적 행복에 매이지 않는
그들은 참으로 재난의 뿌리를 파버리나니
넘어서기 어려운 죽음의 미끼를!”
- 재난의 뿌리는 윤회의 괴로움의 뿌리인 무명과 갈애다.
- 팔정도와 성스러운 도(예류, 일래, 불환, 아라한도)의 지혜로써 이 무명과 갈애를
제거해서 궁극적 행복을 실현한다.
숩빠와사 경(Ud2:8)
Suppavāsā-sutta
우다나를 읊으신 배경:
- 한때 세존께서 꾼디까에서 꾼다다나 숲에 머무셨을 때,
꼴리야의 딸 숩빠와사가 7년째 임신 중이었다. 그러다 7일을 난산으로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찌르는 느낌에
닿았지만 그녀는 세 가지 생각으로 감내하고 있었다.
‘그분 세존께서는 참으로 정등각이시니 이런 형태의 괴로움을 제거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신다. 그분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참으로 잘 도를 닦으시니 이런 형태의 괴로움을 제거하기 위해서 도를 닦으신다.
저 열반은 참으로 지극한 행복이니 그곳에는 이런 형태의 괴로움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 그때 숩빠와사는 남편을 불러서 세존을 뵈러 가서 자기 이름으로 세존의 발에 머리 조아리고 문안을
드리리고 했다. ‘세존께서 병은 없으신지 어려움은 없으신지 가볍고 힘있고 편안하게 머무시는지 꼴리야의
딸 숩빠와사가 문안을 여쭙니다.’라고. 그리고 ‘세존이시여, 꼴리야의 딸 숩빠와사가 7년째 임신 중에 있습니다.
그러다 7일을 난산으로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찌르는 느낌에 닿았지만 그녀는 세 가지 생각으로 감내하고
있습니다.
‘그분 세존께서는 참으로 정등각이시니 이런 형태의 괴로움을 제거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신다. 그분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참으로 잘 도를 닦으시니 이런 형태의 괴로움을 제거하기 위해서 도를 닦으신다.
저 열반은 참으로 지극한 행복이니 그곳에는 이런 형태의 괴로움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최고입니다.”라고 대답하고 남편인 꼴리야의 후손은 세존을 뵈러 가서 절을 올리고 한곁에 앉았다.
그리고 세존께 아내인 숩빠와사가 시킨 대로 말씀드렸다.
“꼴리야의 딸 숩빠와사가 행복하기를, 그녀가 병이 없이 건강한 아들을 낳게 되기를.”이라는 세존의 말씀과
함께 숩빠와사는 행복해지고 병이 없어져서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세존이시여, 감사합니다.”라고 그 꼴리야의 후손은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고 감사드린 후 절을 올리고
경의를 표한 뒤 집으로 돌아가서 숩빠와사가 행복해지고 병이 없어져서 건강한 아들을 낳은 것을 보았다.
‘오, 여래의 크나큰 신통력과 위력은 참으로 경이롭구나. 참으로 놀랍구나. 세존의 말씀과 함께 숩빠와사가
행복해지고 병이 없어져서 건강한 아들을 낳다니! 그는 마음으로 흡족해하고 환희로워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그러자 숩빠와사는 남편을 불러서 세존께 가서 자기 이름으로 문안드리고 ‘숩빠와사는 칠 년째 임신 중에
있었고 칠 일 동안 난산으로 괴로워했지만 건강한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 그녀는 칠 일 동안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 승가에 음식으로 공양청을 하오니 세존께서는 숩빠와사의 일곱 가지 음식을 허락하여
주십시오.’라고 말씀드리라고 했다.
“최고입니다.” 라고 남편은 대답하고 세존을 뵈러 가서 절을 올린 후 숩빠와사가 시킨 대로 말씀드렸다.
그 무렵 마하 목갈라나 존자의 신도였던 어떤 청신사가 이미 다음날 음식 공양청을 하였기 때문에 세존께서는
목갈라나 존자에게 그 청신사에게 가서 숩빠와사의 이야기를 하고 숩빠와사가 먼저 공양을 올린 후에 그
청신사가 공양을 올리도록 허락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목갈라나 존자가 청신사에게 가서 그렇게 말하자
청신사는 목갈라나 존자가 재물과 수명과 믿음의 세 가지 법을 보증해 주면 공양을 나중에 올리겠다고 말했다.
목갈라나 존자가 청신사에게 재물과 수명의 두 가지 법은 보증하지만 믿음은 자기 자신이 보증해야 한다고
말하자 그 청신사는 숩빠와사가 먼저 공양을 올리게 하고 자신이 그 후에 공양올리겠다고 허락했다.
그래서 숩빠와사는 칠 일 동안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 승가에게 맛있는 음식을 충분히 대접해서
만족시켜 드렸고 어린애가 세존과 비구 승가에 예배하도록 하였다.
그러자 사리뿟따 존자가 그 어린애에게 “얘야, 어떠하냐? 견딜 말하느냐? 지낼 만하느냐? 괴롭지는 않느냐?”
라고 묻자, “사리뿟따 존자시여, 어찌 제가 견딜 만하겠습니까? 지낼 만하겠습니까? 저는 칠 년을 피가 든
항아리에서 보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것을 본 숩빠와사는 ‘내 아들이 법의 대장군과 대화를 하는구나.’ 라며 마음으로 흡족해하고 환희로워하고
기뻐했다. 세존께서 그것을 아시고 “숩빠와사여, 그대는 이런 모습의 아들을 더 가지기를 원하느냐?” 라고
물으시자, “세존이시여, 저는 이런 모습을 한 다른 아들 일곱 명을 더 원하옵니다.”라고 대답했다.
-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의미를 아시고 그 즉시 바로 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
“불편함은 편안한 모습으로
사랑스럽지 않음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괴로움은 즐거운 모습으로
방일한 자를 덮어버린다.”
- 전도됨을(vipallāsattā)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불편하고, 사랑스럽지 않고, 괴롭기만 한,
이 모든 업 형성에 의한 태어남을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것을 원하는 것으로, 사랑스러운 것으로, 즐거운 것으로 삼아 시중들면서 지낸다.
마음챙김이 없기 때문에 ‘방일한’ 인간을 넘어서고 지배하고 덮어버린다.
그래서 편안함 등으로 위장된 괴로움을 아들이라 불리는 애정의 토대가 주는 즐거움으로 여기게 해서
숩빠와사로 하여금 다시 일곱 번을 이런 모습의 이 불편하고 사랑스럽지 않고 괴로운 것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 숩빠와사는 릿차위 마할리의 아내, 사꺄 청년의 아내였다고도 하는데 사꺄족과 가까운
형제국과 같았던 꼴리야 사람이었던 그녀는 세존의 가르침을 처음 듣고 바로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뛰어난 보시를 하는 자들 가운데서 꼴리야의 딸 숩빠와사가 으뜸’이라고 앙굿따라 니까야 제1권
제14장 『으뜸 품』(A1:14:7-6)에서 언급되고 있다.
- 숩빠와사가 7년 7일 만에 낳은 아들이 시왈리 장로다.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말을 하고 사리뿟따 존자가
데리고 가서 출가를 시켰는데 머리를 깎으면서 바로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세존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공양을 받았기 때문에 ‘공양을 얻는 자들 가운데서 시왈리가 으뜸’이라고 앙굿따라 니까야 제1권
제14장 『으뜸 품』(A1:14:2-10)에서 언급되고 있다.
위사카 경(Ud2:9)
Visākhā-sutta
우다나를 읊으신 배경:
-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 있는 동쪽 원림의 미가라마따(녹자모) 강당에 머무셨다.
위사카 미가라마따가 *어떤 일로 빠세나디 꼬살라 왕과 얽혀있었는데 그녀가 바라는 대로 그 일을 끝내지
못했다. 한낮에 세존을 뵈러 가서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은 위사카에게 세존께서 ‘위사카여, 그대는 이 한낮에
어디서 왔는가?’라고 물으시자 위사카는 세존께 빠세나디 꼬살라 왕과 어떤 일이 얽혀 있었는데 자신이 바라는
대로 그 일을 끝내지 못했다고 말씀드렸다.
* 위사카의 친척집에서 위사카에게 보석 장식이 된 선물을 보냈는데 세금 징수원이 과도한 세금을 매기려고
압류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위사카는 꼬살라 왕에게 설명하려고 만나러 갔지만 왕은 내전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아서 결국 만나지 못했고 바라는 대로 일을 끝내지 못했다고 주석서에서 설명하고 있다.
-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의미를 아시고 그 즉시 바로 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
“남의 통제를 받는 것은 모두 괴로움이고
지배를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즐거움이로다.
함께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이니
속박은 참으로 건너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로다.”
- 지배하는 것은 즐거움이다. - 세속적 행복
- 함께하는 것은 남의 통제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괴로움이다: 함께함과 목적과 성취해야 하는 것이 있을 때
남들에게 예속되어서 자신이 의도하는 대로 성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스럽게 된다.
- 속박(yogā)은 참으로 건너기 어려운 것이다: 네 가지 속박인 감각적 쾌락의 속박, 존재의 속박, 사견의 속박,
무명의 속박 중에서 사견은 예류도에 의해서, 감각적 쾌락은 불환도에 의해서 존재와 무명의 속박은
아라한도에 의해서 버려진다. - 궁극적 행복
- 위사카는 부유한 상인이었던 미가라의 며느리였는데 미가라마타(미가라의 어머니)라고 불렸다.
니간타의 열렬한 신도였던 미가라가 며느리 위사카 덕분에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예류과를 얻고 너무
고마워서 며느리에게 어머니라고 불렀다고 한다.
- 미가라마따(녹자모) 강당은 위사카 미가라마따가 지은 강당인데 부처님께서 후반부 20여 년을 사왓티에
머무실 때 이곳과 아나타삔디까 원림을 번갈아가면서 머무셨다고 한다.
- ‘보시자들 가운데서 미가라마따 위사카가 으뜸’ 이라고 앙굿따라 니까야 제1권 제14장
『으뜸 품』 (A1:14:7-2)에서 언급되고 있다.
밧디야 경(Ud2:10)
Bhaddiya-sutta
우다나를 읊으신 배경:
- 한때 세존께서 아누삐야에서 망고 숲에 머무셨다. 그때 깔리야의 아들 밧디야 존자가 숲에서도
나무 아래에서도 빈집에 가서도 계속 ‘아, 행복하다. 아, 행복하다.’라고 우러나온 말을 읊었다. 그것을 보고
많은 비구들이 밧디야 존자는 청정범행을 닦는 기쁨이 아니고 출가하기 전에 왕이었을 때의 즐거움을
회상하면서 ‘아, 행복하다,’라고 우러나온 말을 읊는다고 생각했다. 그 비구들은 세존께 가서
“밧디야 존자가 아무런 기쁨 없이 청정범행을 닦으면서 숲에서도 나무 아래에서도 빈집에 가서도
왕이었을 때의 즐거움을 회상하면서 끊임 없이 ‘아, 행복하다. 아. 행복하다.’라고 감흥을 읊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 세존께서 밧디야 존자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밧디야여, 그대가 숲에 들어가서도 나무 아래에 가서도 빈 집에 가서도 끊임 없이
‘아, 행복하다. 아, 행복하다.’라고 우러나온 말을 읊는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그대는 무슨 이익을 보면서 ‘아, 행복하다. 아, 행복하다.’라고 읊는가?”
“세존이시여, 제가 출가하기 전에 왕국을 통치할 때에는 내전의 안과 밖, 도시의 안과 밖, 지방의 안과 밖에도
모두 호위가 잘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두렵고 동요하고 믿지 못하고 무서워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저는 숲에 들어가서도 나무 아래에 가서도 빈집에 가서도 혼자이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동요하지 않고 믿지 못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으며 담담하고 차분하고 다른 사람의 시주물로만 살고
*사슴과 같은 마음으로 머뭅니다. 저는 이러한 이익을 보면서 숲에서도 나무 아래에서도 빈집에서도
끊임없이 이렇게 우러나온 말을 읊습니다. ‘아, 행복하다. 아. 행복하다.’”(aho sukhaṁ, aho sukhaṁ)
(*사슴과 같은 마음으로 머무는 것은 인적이 없는 쪽을 의지하여 머문다는 뜻)
-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의미를 아시고 그 즉시 바로 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
“그의 내면에 분노가 없고
이런저런 것을 건넜으며
두려움이 없고 행복하고 슬픔 없는 그를
신들도 볼 수가 없도다.”
- 밧디야 존자가 체득한 궁극적 행복에 대한 부처님의 기쁨에서 우러나온 말씀
- 세속적인 성취와 재난, 향상과 퇴보, 항상함과 단멸, 공덕과 악함, 선처와 악처, 사소한 것과 큰 것 등이
이런저런 것들이다. 네 가지 성자의 도를 통해서 건너고 넘어서게 된다.
- 『맛지마 니까야』 주석서에서는 영속과 단멸, 증장과 퇴보, 감각적 쾌락과 자기 학대의 여섯 가지를
이렇다거나 이렇지 않다는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제3품 난다 품
Nanda-vagga(Ud3:1~10)
- 제3품 난다 품은 부처님의 제자들 품이라 부를 수 있다.
- 9개 경은 직계 제자 비구들의 일화이고 마지막 경은 부처님의 대사자후를 담고 있다.
업이 익어서 생김 경(Ud3:1)
Kammavipākaja-sutta
우다나를 읊으신 배경:
-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어떤 비구가 세존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생의 업이 익어서
생긴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찌르는 느낌을 견디면서 마음챙기고 알아차리고 흔들림 없이 앉아 있었다.
세존께서 그 비구가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생의 업이 익어서 생긴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찌르는 느낌을 견디면서 마음챙기고 알아차리고 고통스러워하지 않으면서 앉아있는 것을 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의미를 아시고 그 즉시 바로 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
“모든 업을 제거한 비구는- 아라한
이전에 만든 먼지를 털어내면서
내 것 없이 서 있는 여여한 자이니
그는 남에게 알릴 필요가 없도다.”
- 이 의미를 아시고: 의사 등을 통해 치료가 될 질병일지라도 아라한들은 세속적인 치료를 받을 의향이
없기 때문에 약을 바르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를 모든 측면에서 아시고
- 여여한 자의 여여함은 ①세속적인 법들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음, ②육경(색성향미촉법의 여섯 가지
구성요소)에 대해서 평온함, ③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동일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매주 원만한 강의가 진행되도록 진두 지휘하시는 원장 스님과
열강의 아이콘이신 법사 스님,
멋진 영상 제작하시는 미디어 팀 선생님들,
보리원에서 봉사하시는 모든 분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고~
실시간 생방송으로 또는 녹화방송으로 공부에 동참하시는 모든 법우님들께도
사~두 사~두 사~두 보내며 부족한 후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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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사두 사두 사두 _()_
감사합니다 _()_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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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냐바사 법우님, 후기 감사합니다.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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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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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사두사두
두 분 스님의 큰 가르침에 깊이 감사드립니다_()_
온라인강의를 위해 애써주시는 모든 분께 항상 감사드립니다_()_
존경하는 두 분 스님께서 항상 건강하시길..._()_
보리원 불사가 원만히 이루어지길..._()_
사~두 사~두 사~두 _()_
감사합니다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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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공부한 '숩빠와사 경'에서 칠 년, 칠 일, 일곱가지 음식 등 '칠'이라는 숫자가 계속 나왔는데,
인도문화, 전통에서 7이 의미하는 것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법보신문의 현진 스님 글
'불교의 몇몇 숫자들'에서 '7'이라는 숫자가 영원성, 장수 등 오랜 시간을 뜻한다는 것을 짐작하게 됐어요.!
뭔가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어서 그 부분 발췌해서 공유합니다~~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7927
인도문화에서 숫자 일곱은 ‘영원성(永遠性)’을 상징하는데, 그 연원이 북쪽 하늘에서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영원히 회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북두칠성에 있다. 그래서 수명장수를 내세운 불교의 칠성신앙 이외에도 인도에서 ‘일곱’은 영원을 상징하는
몇몇 형태로 나타난다. 부처님께서 룸비니에서 나시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은 후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말씀하셨다는 것은
그 가르침이 영원함을 상징하는 것이며, 지금도 결혼식 때 신랑과 신부가 함께 예식장 중앙에 놓인 불[신으로서의 아그니(agni)]의
주위를 일곱 걸음을 걸음으로써 영원히 해로할 것을 약속하는 것 등이 있다.
감사합니다 _()_
고맙습니다 .... _()_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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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사두~사두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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