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장,
윤미의 장례식이 끝나고 삼우제도 지났다.
신동우는 자신의 서재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양영화는 그런 아들의 모습이 안타깝고 마음이 안쓰럽다.
갑자기 안 식구를 잃어버린 아들의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양영화는 차를 준비해 아들이 서재의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간다.
“차를 마셔봐라!”
신동우는 책상에 앉아 아내의 사진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이제 죽은 사람을 그렇게 생각한들 뭐하겠니?
어서 정신을 수습해서 회사엘 나가야 할 것이 아니냐?”
“네!”
그러나 신동우의 말에는 힘이 실려있지 않았다.
“간 사람은 이젠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산 사람이라도 기운을 차리고 살아야 한다.
언제까지 그렇게 기운을 잃고 있으면 어쩔 것이냐?”
“네!”
신동우는 윤미의 죽음이 충격이다.
그렇게 죽을 수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고 아직도 아내의 죽음을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세상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아내였다는 것을 느낀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통스러워했을 아내를 생각하니 자신이 죄인이라는 죄책감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아내였다.
정수아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소중했고 사랑했던 아내였다.
정수아를 사랑하면서 아내에 대한 사랑이 퇴색해 갔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아내의 자리는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아내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해 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신동우는 그렇게 아내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비틀거린다.
“윤미야!
그렇게 힘이 들었었니?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다.”
윤미의 사진을 보며 혼자서 중얼거린다.
“바보야!
당신이 있었기에 당신이 곁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었기에…..”
그러나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무엇이라 변명할 말이 없다.
그렇게 아내가 떠나고 나서야 신동우는 자신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자책과 함께 아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그 동안 얼마나 아내에게 무관심하고 차갑게 외면을 해 왔었던 가를 생각하며 자신이 아내를 죽음의 길로 내 몰았다는 자책을 지울 수가 없다.
자신이 낳지 않은 아들을 얼마나 모든 정성을 다해서 키웠는가 잘 알고 있다.
온 세상에 혼자만 가지고 있는 아들이라는 생각을 하며 모든 것을 바쳐 정성을 기울이고 사랑을 쏟아 부으며 키워낸 아들이다.
한편으로 심한 가슴앓이를 해 가면서도 너무나 반듯하게 성장을 한 재형이를 보며 가끔은 아내의 성품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모든 것에 사려 깊고 넉넉함으로 주변을 생각하며 챙길 줄 아는 그런 아들의 성품은 아내를 닮아 있었다.
재형이 역시 엄마를 보내고 나서 큰 슬픔과 충격에 기운을 잃는다.
엄마의 빈자리가 재형이에게 역시 너무나 크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엄마의 사랑이 재형이를 힘들게 하고 있다.
아무리 할머니가 많은 사랑을 보내 주고 계시지만 엄마의 사랑에 비교할 수도 없는 깊고 깊은 사랑으로 늘 품어 안아주던 엄마였다.
재형이는 깊은 슬픔 속에서도 말없이 엄마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재형이는 학업을 마치기 위해서 다시 출국을 해야만 한다.
“재형아!
혼자서도 잘 해 낼 수 있지?
이 할미가 없어도 잘 지내면서 공부도 열심히 할 수 있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아마 하늘에서 엄마가 너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절대로 엄마를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
그리고 넌 우리 삼일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할머니!
엄마를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때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하겠습니다.”
“오냐!
네 엄마가 너를 얼마나 정성을 다해서 키웠고 사랑했는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비록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엄마의 영혼은 언제까지 너를 지켜볼 것이다.”
“네!”
재형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사내녀석이 눈물이 그렇게 흔해서는 안 된다.
슬퍼도 눈물이 나도 꾹 참아내야만 한다.
너는 보통의 평범한 인물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 삼일 그룹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큰 재목이 되어야 하는 것이야!”
“할머니!
울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엄마가 그립고 보고 싶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겠습니다.”
재형이는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자신에게 다짐을 한다.
그렇게 재형이는 혼자서 다시 출국을 한다.
재형이가 출국하는 것을 보고 신동우 역시 마음을 잡고 회사에 출근한다.
서경화는 이제 수아의 기자회견을 서두른다.
이제 어느 정도 신동우가 마음을 잡고 회사 일에 매달리는 것을 알고 나서 더 이상 기자회견을 미룰 이유가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
수아는 입덧이 시작이 되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더 힘들기 전에 기자회견을 통해서 지정철과의 관계를 밝히고 당당하게 살게 해 주리라 생각하는 서경화는 기자들과 날짜를 정한다.
이젠 신동우의 눈치도 신동우의 의견도 들을 필요가 없다.
기자들은 정수아의 기자회견에 많은 신경들을 곤두세운다.
정수아의 남자에 대해서 확실한 사실여부를 팬들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수아는 기자회견을 정하고 나서 마음이 불안하다.
행여 신동우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된다.
“사장님!
지금 기자회견을 해서 신회장님의 신경을 더 거스르는 것은 아닌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젠 신회장이 그 어떤 일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노모께서 곁에 계시니 노모를 생각해서라도 마음대로 할 수 없겠지요.
그리고 이젠 노모께서는 신회장의 재혼을 놓고 많은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벌써 재혼을 생각하신다고요?”
“아무렴요.
잠시라도 안 주인이 없이는 안 되는 집안이지요.
거대한 그룹을 이끌어 나가는 아들인데 내조자 없이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게 둘 어머니가 아니지요.
아마 이번 재혼은 신회장의 의견보다는 노모가 결정권을 가지고 성사시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
“너무 신회장을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리고 기자회견장에는 너무 화려한 차림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 좋겠지요?”
“네!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그날 코디는 제가 해드립니다.
너무 화려하지 않게 그러나 또한 너무 수수하지도 않고 튀지 않으면서 품위를 잃지 않는 차림이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사장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요즘 입덧이 심한가요?”
“조금은………
그러나 시어머님께서 자주 오시어 보살펴주시고 계시기 때문에 힘든 것은 없지요.
너무 자상하게 보살펴주고 계시니까 참으로 편안합니다.”
“그 동안 수아씨가 고생을 하신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입니다.
지박사님의 성품이 부모님을 닮아서 그렇게 다정하고 따뜻한 분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참으로 좋으신 분들이십니다.”
“네!
그리고 사장님!
아무래도 이 집을 처분하고 이사를 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이사?
왜요?
이 집을 신회장이 구입을 해 준 이라 마음에 걸리나요?”
“그런 것도 없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싶은데 아기를 낳고 나면 갑자기 많은 가족들이 생기게 되니 집이 비좁을 것만 같아서요.”
“시부모님께서는 허락을 하셨나요?”
“아직은 말씀을 드리지 않았지만 어차피 우리 그이가 외아들이고 또한 쌍둥이가 태어나면 시부모님과 한 집에 사는 것이 여러 가지로 편리하고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이보다 얼마나 큰 평수로 할 생각인가요?”
“이젠 아파트보다는 단독 주택을 구입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커 나가면서 뛰어 놀 수 있는 마당이 있고 정원이 딸린 이층 주택이라면 시부모님과 아이들을 키우기에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향을 알겠습니다.
내가 좋은 곳으로 알아봐서 연락을 하지요.
그리고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병원에 가는 것을 잊지 말아요.”
“네!
항상 보살펴 주시어 고맙습니다.”
서경화 역시 정수아가 집을 옮기는데 찬성을 한다.
이 집을 처분한다고 해도 단독주택을 구입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워낙 고가의 빌라이다.
웬만한 서민 아파트의 몇 채 값은 충분히 넘을 것이다.
수아는 모든 일을 서경화와 의논을 한다.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처리해 주고 고생을 해 주는 서경화였다.
기자회견이 있는 날 정철은 두 번의 수술실에 들어가야 하는 예약이 되어있다.
함께 가고픈 정철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수아를 본다.
“당신이 혼자 가도 되겠어?”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아요.
서사장님과 함께 가는 것이고 또한 날 보호해주는 경호원들이 있으니 무슨 걱정이 있겠어요?”
“요즘 너무 신경을 쓰느라 제대로 음식도 먹지 못했으면서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된다.
더구나 입덧도 심하게 하면서 오늘을 어떻게 보낼지……..”
“정철씨!
이제 우린 오늘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면 어디든 당당하게 함께 나갈 수 있고 앞으로 점점 더 불러오는 내 배도 떳떳하게 내 밀고 다닐 수 있잖아요?
그것만을 생각하면 어려울 것이 뭐가 있어요?
아마 기자들이 당신을 만나서 다시 재 확인하려고 병원으로 갈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당분간 당신이 더 힘들면 어쩌죠?”
“나야 무슨 상관이 있어?
정수아라는 유명한 여배우의 남편이라고 당당하게 밝히면 되는 것이지.”
“호호호………
당신도 덩달아 유명인이 되는 겁니다.”
“그런가?
아무튼 조심해서 잘 다녀와!
그리고 오늘 저녁은 서사장님을 모시고 나가 근사한 외식이라도 합시다.
그 동안 우리들의 일로 늘 수고를 하시고 많은 고생을 하셨는데 이젠 당당하게 모시고 나가 대접을 해야지.”
“그럴까요?”
“내가 좋은 곳으로 예약을 해두지.”
정철은 수아를 품어 안고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출근을 한다.
이제 수아는 가벼운 샤워를 하고 잠시 자신을 돌아본다.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 속에서도 정철이 자신을 기다려주고 자신의 모든 것을 이해하며 받아드렸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감히 정철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자신의 감정이 신회장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던 수아였다.
정철과 다시 만나기 전에는 오직 신동우라는 남자가 전부였다고 믿었던 수아에게 마음 속 깊숙이 감춰두었던 사랑의 불씨가 다시 타오르고 있었다.
작은 불씨는 꺼지지 않고 그렇게 오랜 세월 마음 속 깊이 간직이 되어 조금씩 조금씩 큰 불덩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시간이 되자 서경화가 도착을 한다.
서경화는 모든 신경을 쓰면서 수아의 모든 것을 매만져준다.
화장과 머리 그리고 옷을 정성스럽게 코디를 해 나간다.
화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수수하지 않으며 정갈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가꾼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을 할 것을 이야기하며 해야 할 말들을 미리 작성을 해 놓은 것을 건네준다.
수아는 읽고 또 읽으며 차근차근 정리를 해 나간다.
서경화와 수아는 경호원들이 보호하는 차량에 승차를 한다.
그리고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선다.
이미 수많은 취재진들이 웅성거리며 정수아를 기다리고 있다.
글: 일향 이봉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