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3일 치러진 러시아 지방선거에서 '최대 이변'을 일으킨 당선인은 한 농촌 마을(주민 400명이니 우리의 면 단위)의 수장(면장)으로 선출된 30대 아줌마 마리나 우드고드스카야 Марина Удгодская 다.
러시아 주요 언론들이 보잘 것 없는 작은 시골의 면장 당선인에 관심을 쏟은 것은, 그녀가 '인생 역전'에 성공한 소위 '청소 아줌마'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쉬꼴라'(초중고 통합학제) 졸업 후 고향 마을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다 청소부로 바꾼 것 외에 다른 경력은 없다. 최근까지 면 사무소 1층 건물을 청소하는 게 그녀의 직업이었다. 언론 매체들이 그녀의 이름 앞에 '전직 (러시아 서부지역의) 코스뜨로마 주 청소부'라는 타이틀이 불이는 이유다.
코스트로마 주 청소부가 농촌마을 수장 선거에서 승리/얀덱스 캡처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사진. 뒤에 걸려있는 옷들이 청소할 때 입는 작업복이다/현지 언론 캡처
마리나 우드고드스카야 당선인이 1일 고향 마을인 뽀발리힌스끼 Повалихинский 면장 당선증을 받고 새로운 직업(행정 업무)를 시작했다. 정식 취임식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엊그제까지 청소했던 그 관청의 최고 책임자(면장)이 됐다.
현지 지역 언론은 그녀의 첫 출근 차량이 관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차량이 아니라, 그동안 타고 다니던 허름한(?) 자신의 차를 타고 왔다는 등 시시콜콜하게 첫날 표정을 전했다.
출근 첫날 소감을 밝히는 마리나 우드고드스카야
면장 당선증을 받고 선관위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우드고드스카야(오른쪽 앞)
첫 출근길을 취재하는 현지 언론들/현지 방송 매체 캡처
그녀가 '면장'이라는 인생역전에 성공한 것은 우연, 그 자체였다. 전직 면장인 니콜라이 록테프(58)는 러시아 집권여당 '러시아 통합당' 출신. 면 주민들의 압도적인(?) 지지가 예상됐지만, 법률적으로 무투표 당선은 불가능하기에 그에게는 함께 뛰어줄 '들러리 후보'가 필요했다. 그것도 록테프 면장이 골랐다.
청소 아줌마의 '인생 역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투표함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투표를 하고 말고도 없을 것 같은 판세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하느님도 결과를 모른다'는 게 투표 아니던가? 이변도 그런 이변이 없었다. 그 마을 유권자들이 우드고드스카야에게 재선을 노린 현직 면장보다 2배나 많은 표(84표)를 안겨줬다.
우드고드스카야 면장이 근무할 면사무소(위)와 청소하는 모습/현지 TV 캡처
개표 결과는 그 마을은 물론, 러시아를 뒤집어놨다. 그녀는 단번에 전국적인 스타가 됐다. 포탈 사이트 얀덱스(yandex.ru) 주요 뉴스 면에 올랐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검색어 상위권에 오른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드고드스카야는 현지 TV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믿을 수 없다"며 "나는 준비되지 않은 면장"이라고 솔직히 말했다. 하지만 출근 첫날에는 "가장 먼저 아이들에게 안전하게 뛰어놀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다"며 "목재 수송차량으로 망가진 도로를 정비하고, 수영장 등의 시설 개선에 나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주민들은 상점 판매원과 청소부 일밖에 모르는 그녀를 면장으로 뽑았을까? 외신은 이 마을이 속한 '코스트로마 주' 의회 선거에서 집권여당이 패배(득표율 32%)한 선거 결과와 같은 맥락에서 분석하는데,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상점 판매원과 면 사무소 청소부만큼 지역 주민과 가깝고 친근한 사람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