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원사지 동.서삼층석탑 /보물
- 경북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원원사지(遠願寺址, 사적)엔 원원사가 있다.
원원사는 신라 신인종(神印宗)의 개조(開祖) 명랑(明郎)이 세운 사천왕사(四天王寺)·금광사(金光寺)와 함께 통일신라시대 때
문두루비법(文豆婁祕法 : 神印宗)의 중심 도량(道場)이었던 절이었다.
원원사는 밀교의 후계자인 승려 안혜(安惠)·낭융(朗融) 등과 김유신(金庾信)·김의원(金義元)·김술종(金述宗) 등이
국가의 평강을 기원하기 위하여 세웠다.
절터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축대를 비롯하여 금당지(金堂址), 석등·부도 등이 남아 있다.
봉서산(봉황이 머무는 곳이란 뜻) 원원사
경주 원원사지 동.서삼층석탑 /보물
동·서 삼층석탑(높이 약 7m)은 무너져 있던 것을 1931년에 경주고적보존회에서 복원하였다.
두 탑은 같은 구조와 양식이며, 2중 기단으로 하층기단 면석과 갑석, 상층기단 면석은 각각 8매, 상층기단 갑석은 4매로 구성.
상·하층기단의 면석에는 2개의 탱주(버팀기둥)와 우주(모퉁이기둥), 하층갑석의 상면에는 2단의 상층기단 괴임,
상층갑석 4면의 각 기둥 사이에는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 십이지상을 조각하였다.
1층 탑신석(몸돌) 이상 3층 옥개석(지붕돌)까지는 모두 1매석으로 만들었다.
1층 탑신에는 우주가 있고, 4면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사천왕상이 있다.
일반적 표현형식, 옥개석의 돌다듬기 수법, 기단부와 탑신부에 구현된 양식, 석재의 조립방법 등으로 보아 8세기 중엽에 조성된
석탑으로 추정되며, 하층기단에서 십이지상을 최초로 배치한 점 등 석탑의 조각기술, 구조적 특징, 표현양식 등을 고려할 때
학술적, 미술사적 중요한 가치를 지닌 석탑으로 평가되고 있다.
동탑보다 서탑은 많이 훼손되었다.
받침돌 네 면에 십이지신상이 조각된 것이 특징이다. 1층 몸돌 네 면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동탑
동탑과서탑(뒤)
석등 , 동탑과 서탑 가운데 있다.
서탑
숭복사지(崇福寺址) 삼층석탑 /경북 문화재자료
- 경북 경주시 외동읍 말방리
숭복사지에 숭복사가 있지만 세월의 때가 묻은 건 아니다.
숭복사 금당 앞에 있는 쌍탑이지만 지금은 크게 훼손되었다. 동.서 쌍탑 몸돌에 팔부신중을 새겼다.
초월산 대숭복사지비
신라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썼다고 한다. 여기 세원진 비는 복제한 것이다.
숭복사지 금당지와 쌍탑
연지암 /전통사찰
- 경북 경주시 외동읍 활성리
일제강점기 때 김연지화 보살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경주 활성리 석불입상 / 경북 문화재자료
대웅전 안에 있다. 머리 부분은 훼손이 심해 복원한 것이다.
영지 석불좌상 / 경북 유형문화재
-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보존처리 공사 중이다. 영지 근방에 있으며 석가탑을 만든 아사달이 아사녀의 영혼을 위해 지었다고 전한다.
2024년 4월 10일 수요일. 국회의원 선거일
경주시 외동읍, 원원사지~숭복사지~연지암~영지 석불좌상~감산사/감산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