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베프는? (이마리 마리아 앵죠, 아동청소년소설가)
‘앙~앙~, 앙~앙!’ 떼쓰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남편과 나는 순식간에 뒤를 돌아본다. 아뿔싸! 누구도 돌아보는 사람 없고 신경 쓰지 않은 채 체칠리아 성당의 미사는 계속된다. 가뜩이나 잘 안 들리는 복음 말씀에 귀를 쫑긋하고 있는 판인데, 아이를 얼른 밖으로 데리고 나갈 것이지 왜 저렇게 울리는 걸까? 아무 일 없다는 듯 미사는 계속된다. 간간이 아기 울음소리가 날카로워지기도 하지만, 신부님의 미소는 여전하다.
드디어 주님의 기도 합송 시간. 신부님은 여느 때처럼 어린이들을 제단으로 청한다. 이 시간을 위해 성당에 온 듯 아이들 얼굴이 기쁨으로 반짝인다. 한껏 멋을 부린 아이들의 노랑머리, 까만 머리가 공작처럼 어울려 제단으로 이동한다. 하늘거리는 여아의 원피스도 미사 축제의 기분을 한층 북돋운다. 한 손으로 동생 아가를 옆구리에 낀 형이랑, 흘러내리는 바지를 움켜쥐고 아장걸음을 내딛는 코흘리개의 행진은 신자들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미사 중 최고인 꼬마 손님들이 축복받는 순간이다.
따가운 햇볕이 스테인드글라스를 붉게 물들이며 미사는 절정에 다다른다. 우렁찬 주님의 기도가 100여 년 묵은 체칠리아 성당 밖으로 울려 퍼진다. 이제 아가 울음소리도 잦아들었다. 제대 위의 반짝이는 눈동자들이 밤별처럼 초롱초롱하다. 신자 석을 마주 보고 짓는 어색한 미소조차 사랑스럽다. 은퇴자들이 태반인 이 성당이 아니라도 이 소중한 보석에 반하지 않을 자 뉘뇨! 재단에 초대받아 존중받는 자존감으로 충만한 아이들의 표정이 얼마나 믿음직한가.
내 어릴 적 소원은 엄마 아빠랑 손잡고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사다 주던 「가톨릭 소년」 잡지 속의 사이좋은 서양 가족들처럼. 그러나 그것은 한여름 밤의 꿈, 나는 항상 부모님과 떨어져 어린이 미사에 가야 했다. 덕분에 나름 독립적인 신앙인으로 성장했겠지만, 어린 나에게 성당은 항상 엄숙하고 중세 수도원 같은 곳이었다. 성당 마루 위를 까치발로 다니고 정숙해야만 했다. 예수님은 고해소나 감실, 그리고 아주 먼 하늘에 계시는 분으로 배웠다.
이제 호주 미사에 익숙해져 아기 울음소리에 눈 하나 끔쩍 않는 나 자신에 놀란다. 아기 울음소리가 더는 소음으로 들리지 않음은 웬 은총일까. 미사 후 신부님은 울고불고했던 아기에게 다가가, “이제 화가 다 풀렸나?”라며 까르륵거리는 아가와 친구 해준다. 미사 후 성작과 제구를 당신이 직접 챙기는 소탈한 모습이 더욱 감동이다.
호주 전역이 거의 은퇴한 백인 신부의 사목에 수녀가 부족한 상황인데, 체칠리아 성당은 운 좋게도 젊은 필리핀 신부님의 사목으로 이뤄지고 있다. 게다가 아이들을 으뜸으로 섬기는 분이시라니! 그분에게선 아이들의 베프 예수님의 향내가 솔솔 풍긴다. 교리실에서 깔깔거리는 아이들 웃음 속에 베프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르 10,14)
이마리(마리아 앵죠) / 아동청소년소설가, 「캥거루 소녀」 외 다수의 역사소설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