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탁번 시인을 추모하며(2)
첫눈이 내린 겨울 아침, 쌀을 안치려고 부엌에 들어간 어머니는 불을 지피기 전에 꼭 부지깽이로 아궁이 이맛돌을 톡톡 때린다 그러면 다스운 아궁이 속에서 단잠을 잔 생쥐들이 쪼르르 달려 나와 살강 위로 달아난다
배고픈 까치들이 감나무 가지에 앉아 까치밥을 쪼아 먹는다 이 빠진 종지들이 달그락대는 살강에서는 생쥐들이 주걱에 붙은 밥풀을 냠냠 먹는다 햇좁쌀 같은 햇살이 오종종히 비치는 조붓한 우리 집 아침 두레반
- 오탁번(1943. 7. 3 - 2023.2.14 ) ‘두레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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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설명할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어릴 때 우리집에 두레판이란 게 있었다.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서 함께 밥을 먹는 둥근 밥상이 두레판이다. (둘레판이라고 불렀지). 함께 밥을 먹는 식구. 요즘의 나는 아내와 둘이 밥을 먹는다. 점심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서 내 사무실에서 혼자 먹는다. 가끔 친구들이 찾아오면 식당으로 가서 같이 먹기도 하지만 코로나 이후로는 줄 곧 혼자먹는다. 밥먹으러 가자고 부르면 부르는 사람이 밥 값을 내야 한다. 칼국수 한그릇에도 8천원이다. 찌짐이 하나 놓고 막걸리 한병 추가하면 서너명 만 불러도 5만원이다.
"소득주도 성장"이 낳은 겉보기만 배부른 거짓 세상이다. 주머니에 지폐가 많이 들어오니 부자가 된 줄 알았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칼국수도 맘껏 먹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오늘 점심은 내가 쏠게"하고 호기 부리던 세상은 이제 가마득한 전설이 되었다.
두레판이 사라져 버린 세상에 사는 나는 코로나가 끝나고서도 혼식하며 산다. 엄마 아베가 죽으면 사흘도 못넘기고 화장하고 혼백은 그날로 매혼하고, 함께 지냈던 따스함은 추억초차도 하지 않는다. 남은 찌꺼기 재산을 어떻게 나눌까만 궁리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돈 말고는 추억할 것이 남아 있는 게 없다. 삼수갑산을 갈때 가더라도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고 내일 점심 먹자고 친구들을 불렀다.
수필가협회 회장인 필자가 왜? 무엇 때문에 시인인 오탁번을 그리워할까?
오탁번 시인처럼 수필도 가슴으로 쓰라고 기르치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글은 가르치는 투의 글이니, 나 보다 나이가 어린 문학 초심자들만 읽기 바란다. 배우고 또한 익히는 일에 기분 나쁠게 뭐가 있나? 가르친다고 현자도 아니다. 교학상장 敎學相長 이란 말이 괜히 생긴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