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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탐욕/복음
제목 : 탐욕을 버리고 복음으로
성경 : 행 19:23-41
찬송 : 322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40616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행 19: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행 19: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행 19: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행 19: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행 19: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행 19: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행 19: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행 19: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행 19:31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행 19:32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행 19: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행 19:34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행 19:35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행 19: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행 19:37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행 19:38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행 19: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행 19: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행 19: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이라는 책에 보면 박관태 의사의 간증이 나옵니다.
2004년 7월 담낭염이 아주 심한 환자를 복강경으로 수술한 일이 있었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고 환자는 잘 회복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반쯤 지나 환자가 이유를 알 수 없는 복강 내 농양으로 몽골국립병원에서 수술 받았는데, 복막염이 심해 수술 후 패혈증으로 일주일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를 수술한 몽골 의사들은 내가 먼저 한 복강경 수술이 잘못돼 남아 있던 담석 몇 개가 농양을 만들었다고 주장했고, 그들의 말만 믿은 유가족들이 나를 상대로 소송을 했습니다. 경찰서에 가서야 이유를 알았습니다. 죽은 환자를 수술한 세 명의 의사가 부검의들을 압력해 사망 원인의 첫 번째가 복강 내 담석이고, 두 번째 이유가 천공성 맹장염이라고 바꾼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몽골에서는 이런 소송이 걸린 경우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지는데, 2월 8일에 방글라데시에서 수술이 예약돼 있었고, 2월 17일에는 연길에 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2월 21일부터는 서울 아산병원에 출근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2월 7일 몽골에서 출국하지 못하면 모든 문제가 복잡해졌습니다.
나는 “주님, 제게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놀랍게도 부검의 중 제자 한 명이 있었는데, 어려움을 무릅쓰고 나를 위해 변호해 주었습니다. 출국 날, 그 제자의 변호로 뒤바뀐 사인 순서를 바로잡을 수 있었고, 무죄판결을 받고 출국금지 조치도 풀리게 되었습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이 극적으로 도우신 일이 여러분들에게도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배경을 잠깐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2차와 3차 전도여행 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길라 부부를 에베소에 머물게 하고 그곳을 떠나 안디옥 교회로 갔다가, 곧 바로 3차 전도 여행길에 나섭니다. 3차 전도 여행 때 다시 에베소를 방문해 2년 이상 머물며 말씀을 전합니다. 에베소에 가면 칠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아데미 신전’이 있습니다. 에베소의 아데미 여신은 다산을 가져다주는 ‘대지의 모신(母神)’이자 신들과 사람들의 어머니로, 소아시에서는 옛적부터 숭배한 우상입니다. 해마다 수많은 순례자와 여행자들이 아데미 신상을 보기 위해 에베소에 몰려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신전 주변에는 이들을 상대로 음식이나 기념품 등을 팔고 숙소를 제공해 생계를 유지하는 장사꾼들이 있었습니다. 이중 가장 수입이 좋은 것이 은으로 만든 아데미 신전 모형(은감실)이었습니다. 바울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며 사람이 만든 것은 허탄한 것이고 물질적인 존재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많은 에베소 시민과 방문객들이 개종하고 아데미와 관련한 우상의 물건들을 더 이상 사지 않게 되자, 이것이 소요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선동자
행 19: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행 19: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행 19: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행 19: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행 19: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은장색(은 세공업자) 데메드리오가 복음을 대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데메드리오는 아데미 여신에 대한 종교적 열정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탐욕과 상업적 동기가 주된 것이었습니다. 종교적 동기는 상업적 동기를 합리화하기 위한 포장에 불과합니다. 그는 자신의 동업자들에게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하며 그들을 선동합니다.
√첫째, 아데미가 쓸모없는 우상에 불과하다는 바울의 말을 상기시키며 아데미 신전 모형을 만드는 자신들이 신뢰를 잃었고, 사업의 일거리가 줄어들게 될 것이라 합니다.
√둘째, 복음이 퍼질수록 아데미 신전의 모형을 사지 않는 사람이 증가하며, 결국 여신의 권위도 추락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셋째, 여신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 결국 여신의 분노를 사서 대재난이 닥칠 것이라 위협합니다.
그는 두려움을 이용해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조정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데메드리오의 주장은 겉으로는 아데미의 위엄과 권위를 수호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데메드리오의 선동으로 분노와 위기감을 느낀 사람들은 아데미 여신을 찬양하며 거리로 뛰어 나가 성읍을 소란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탐욕과 물질주의는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우상들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으로서 이런 것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간음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아도 탐욕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만큼 탐욕이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탐심이 곧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골 3:5). 탐욕에 빠진 사람은 개인의 정체성을 돈에 둡니다. 이런 사람은 재산을 잃으면 자아도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정체성과 안정감을 하나님께 둔다면 탐욕은 더 이상 우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삭개오는 돈에 기반을 둔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은혜를 경험한 후에는 더 이상 돈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마음 속 죄악은 동기를 유발하는 기본적 충동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를 심층에 깔린 우상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돈을 우상시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영향력, 권력, 인정, 존중, 안정감, 조종등과 같은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우상들은 심층에 깔린 우상들을 얻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심층에 깔린 우상부터 처리해야 하는데, 유일한 방법은 바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군중
행 19: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행 19: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행 19: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행 19:31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행 19:32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행 19: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행 19:34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은세공업자 동맹은 즉시 항의 운동에 돌입합니다. 그들은 시가를 지나 연극장으로 갔습니다. 그러면서 분이 가득차서 “크도다, 에베소인의 아데미여”하고 외쳤습니다. 그들이 연극장까지 행진할 때 다른 시민들도 합세했을 것입니다. 연극장 안은 마치 도시 전체 인구가 몰린 것 같이 혼란스러웠습니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이 연극장은 약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에베소에 가면 이 연극장이 있는데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규모가 엄청납니다.
이때 두 막간극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헬라인 막간극’(29b~31절)입니다.
대혼란 속에서 ‘마게도냐 사람, 바울의 여행 동행자,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붙들려’ 극장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이들은 누구인가요? 아마도 바울이 에베소에 체류했던 3년 사이에 소순회 여행을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막간극에는 또 다른 인물도 등장합니다. 바울이 극장에 들어가려는데, ‘아시아 관리들’이 바울 저지합니다. 이 명칭은 아시아 주 의회의 ‘1년직 회장들’ 혹은 ‘전직회장들’, 또는 시의회의 임명을 받아 황제 제의를 담당하는 제사장들의 관할 하에 있었던 여러 신전의 행정 관리들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샬은 이들이 ‘아시아에 있던 도시들의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그룹의 구성원들이었고, 귀족 계급에 속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바울은 이들 중에 친구를 두고 있었고, 그들이 폭도 앞에서 바울의 안전을 염려했다는 것이 주목할 만 하다.’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복음이 각 사회, 종교의 심장부를 정복한 모습의 일부입니다(참조, 6:7; 17:34; 18:8,17).
또 다른 하나는 ‘유대인 막간극’입니다.
바로 이 소요가 일어난 후 잠시 등장하는 유대인 알렉산더입니다. 그는 군중 때문에 대사를 하지 못한 배우였습니다.
행 19: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이 알렉산더는 누구입니까?
왜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알렉산더에게 큰 유감을 표했을까요?
딤후 4: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딤후 4:15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바울에 따르면 알렉산더는 구리 세공업자였습니다. 이 말은 그가 데메드리오 및 조합원들과 동일한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는 이 조합의 회원이었거나 독립적으로 그들과 경쟁하면서 아데미 신상 모형을 만들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에베소 극장에서 앞으로 나선 이유는 아마도,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과 다른 종교에 속했다는 것을 변증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그가 입을 떼었다면 자신들과 바울을 차별화하기 위해 복음을 공격하는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가 우리말을 심히 대적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극장에 모인 군중의 태반은 자신들이 모인 모임의 이유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행 19:32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유대인들은 알렉산더를 통해 바울이 유대인이지만 자기들과는 다르거나, 또는 이 기회에 바울을 몰아내자는 주장을 하려 했을 것입니다.
행 19: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누가는 이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여 기록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 앞에 세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함성의 크기를 믿지 마십시오. 아무리 함성이 커도 진리가 아닌 것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소리가 크면 이길 줄 압니다. 숫자가 많으면 다 끝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불법 집회 해산
행 19:35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행 19: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행 19:37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행 19:38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행 19: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행 19: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행 19: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하나님은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에베소의 서기장을 통해 구하십니다. 서기장은 에베소 시의회에서 선출된 최고 행정관리로 비록 로마에 의해 임명되지는 않았지만 로마 총독과 논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는 시 의회 결의 사항을 발표하고 집행하는 관리로, 시민들과 로마의 주 행정 당국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서기장은 이번 소요 사태가 몰고 올 로마 당국의 문책을 염려해 일단 소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먼저 소요 이유가 불확실함을 보고 시위의 불법성과 그에 따른 책임을 지적합니다. 이런 불법 집회가 있으면 시의 치안 책임자인 자신이 로마 당국의 문책을 받게 되고, 나아가 소요의 주모자는 재판에 회부되어야 함을 경고합니다. 실제로 로마는 관대한 식민지 정책을 펼쳤지만, 소요 사건은 엄정히 처리해 주모자는 사형에 처하고 그 도시의 자치권을 박탈했습니다. 만약 그래도 이의가 있을 경우는 민회를 통해 이의를 제기하면 된다고 설득합니다. 결국 서기장의 경고와 설득으로 흥분한 군중은 흩어지고 상황은 종료됩니다. 이것은 배후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고난 가운데 있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차이는 고난의 유무가 아니라 고난 앞에서의 태도를 통해 구분됩니다.
시 121: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시 121: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산을 향하여 눈을 든다는 말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을 향해 하나님의 구원을 구한다는 의미입니다. 난파된 요트 안에서 한 성도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를 구해주십시오!” 때마침 배 한척이 지나갔는데 성도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다 결국 난파한 배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가 천국에서 하나님을 뵙자 이렇게 항의 합니다.
“하나님 간절히 기도 했는데 왜 응답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답하십시다. “내가 너를 구원하기 위해 배 한 척을 보냈는데 보지 못했느냐?”
여러분! 하나님의 도움은 여러 가지 형태로 찾아옵니다. 우리는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제한하면 안 됩니다.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성도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마 6;24). 은장색 데메드리오는 탐심에 이끌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대적하는 자가 됩니다. 아데미의 위험과 권위를 수호한다는 명목이지만, 결국 자신의 영업 이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탐심은 곧 우상숭배입니다. 탐심과 같은 마음속 우상을 처리하는 방법은 복음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기에 탐심을 죄로 간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도는 자기 안의 탐심을 의식하지 못한 채 재물의 종노릇하고 있지 않은지 늘 돌아보고 주의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