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1828~1910
[서문] 삶과 죽음의 유쾌한 조우
-앤서니 브릭스Anthony Briggs-
(브리스톨 대학 연구 교수이자 버밍엄 대학 명예 교수)
“이 세상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뜨는 것도 사람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견뎌야 합니다. 성숙해져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리어왕, 5막 2장
-죽음의 음성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마친 1860년대 후반(1869년. 그의 나이 41세)에 그가 이룬 모든 것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빠졌다. 그때 그의 아내가 본 톨스토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자주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어떤 고통스러운 과정이 그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이제 죽을 때가 됐다고 말하고는 했다.” (*당시 그가 읽던 책이 고통의 한 원인이었다. 1869년 여름 그는 독일 철학자인 쇼펜하우어에 심취해 있었는데, 그의 글은 어찌나 염세적인지 행복한 사람을 슬프게, 또 슬픈 사람이라면 자살 충동을 느끼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8월에 톨스토이는 땅을 좀 사려고 멀리 떨어진 펜자 지방으로 떠났는데 아르자마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길을 멈췄다. 불면의 밤에 그는 갑자기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때의 느낌을 그는 다음과 같이 아내에게 기술했다. “새벽 두 시였소. 나는 피곤했다오. 자고 싶었고 내 건강은 정말 좋았소. 그런데 갑자기 절망과 두려움 그리고 공포가 나를 덮쳤소. 그런 기분은 정말 처음이었소....., 그처럼 고통스러운 기분은..... 하나님이 보우하사, 다른 이들은 그런 기분을 경험하게 되지 않기를.-1869년 9월 4일에 소피야 톨스토이에게 쓴 편지.-A. N. 윌슨의 ‘톨스토이 249~250쪽 인용.)
십일 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는 <광인 일기>라는 미완성 소설에서 그때를 회상했다.
“나는 그 방에서 나를 괴롭히던 바를 떨쳐 버리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뒤에서 나타났고 모든 것이 검게 변했다. 나는 점점 더 무서워졌다. ‘말도 안 돼’ 나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내가 뭘 두려워하는 거지?’ ‘나를 두려워하는 거지.’ 죽음이 대답했다. ‘내가 여기 있다.’
톨스토이가 이때 겪었던 정신적 고통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그는 죽음과 대면한 이때의 충격에서 결코 헤어나지 못했다. 그는 고통, 죽음, 그리고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 늘 생각했고, 그래서 그 주제들이 이후 그의 작품에 빈번하게 반영됐다. <안나 카레니나. 1878년>의 마지막 부분과 <고백론. 1869년> 전체가 특히 그렇다. 그런데 1869년의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 내재된 여러 겹의 아이러니는 놀랍기만 하다. 첫째, 세계문학 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삶을 궁정한 소설을 마친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죽음에 대해 집착하게 됐다는 점. 둘째,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너무나 우울해서 삶을 고통으로밖에 보지 않으며 그 어떤 만족도 없는 노력의 연속이라 여기는데, 그렇다면 죽음을 환영해야 할 해방으로 반겨야 한다는 점. 셋째, 비록 톨스토이는 당시 몰랐겠지만, 죽음의 음성이 그처럼 무시무시하게 그를 호출하고 있을 때 사실 그의 인생의 절반밖에 t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때 나이 41세였고, 그 이후로 그는 41년을 더 살 것이었다. 참고로, 당시 러시아인의 평균 수명은 41세였다.
-삶 한가운데에서 만나는 죽음
기도집에는 이런 엄숙한 구절이 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죽음 가운데 있다.” ~~~톨스토이에게 죽음은 그의 집을 정기적으로 찾아왔다. 그의 아이들 중 다섯은 유년 시절을 넘기지 못했고. 1873년에서 1875년에 이르는 짧은 기간에 채척 다섯 명이 죽었다. 그는 전장에서 총에 맞거나 폭탄에 찢긴 사람들을 봤으며, 프랑스에서는 기요틴 칼날 아래 사람이 죽는 광경을 목격했고, 형이 폐결핵으로 죽을 때는 곁에서 임종을 지켜봤다. ~~~친 어머니는 그의 나이 겨우 두 살 때 죽었고, 아버지는 아홉 살 때, 할머니는 열 살 때, 그리고 그를 귀여워했던 타티야나 고모가 그의 나이 열세 살 때 죽었다. ~~ 이 책<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죽음이란 테마를 다룬 톨스토이 저술의 대표 선집이다. ~~
-이반 일리치의 삶
병상과 임종이란 소재로 쓰인 소설 중 가장 통찰력이 있는 작품 중 하나인데, 이것이 작가가 아내 생일에 준 깜짝 선물이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아내 소냐는 이야기의 충격적인 내용에 동요하기는 커녕 기뻐했다. 첫째, 모스코바에서 지내다가 1882년에 집에 돌아온 그녀는 이 선물을 반겼다. 상징적 가치 때문이었다. 톨스토이는 삼 년 전에 <안나 카레니나>를 마친 후 아무도 읽으려 들지 않는 2급 수준의 철학이며 도덕, 종교 서적을 끼적이고 있었다. 제목에 죽음이 들어 있다고는 하지만 새 소설 작품을 썼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그의 부활과도 같이 느껴졌다. 둘째, 그녀는 남편의 작품에 관한 한 감수성이 있는 평자로서, 이 작품을 읽고 그것이 걸작임을 알았다. 남편은 60대였지만 아직 재능을 소진하지도, 그리고 쇠퇴기에 접어든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셋째, 이 작품은 그녀가 준비중이던 <전집>을 더 빛나게 해줄 터였다. 마지막으로 생활력이 강한 그녀였던 만큼 소냐는 새로 들어오게 될 인세에 무관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가 심상치 않다. 제목이 결말을 예고하고 있다. ~~~“여러분 이반 일리치가 사망했다는군요.” ~~~중요한 것은 이반 일리치의 삶이다. ~~
이 이야기의 착상은 실화에서 왔다. 톨스토이의 영지 가까이에 있는 툴라라는 도시에서 그 전 해(1881년), 이반 일리치 메치니코프란 이름을 가진 판사가 아직 젊고 한창 일할 나이에 위암으로 죽었다. 톨스토이는 그의 판결로 인해 시베리아에서 오랜 유형 생활을 하게 된 불쌍한 사람들을(그중에는 아주 사소한 죄도 있었다) 만나면서, 그들을 재판해 멀리 유형 보내고 자신은 집으로 돌아가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던 사람이 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 했다. 메치니코프의 형제가 되는 사람이 톨스토이에게 판사의 죽음에 관해 상세하게 얘기해 주었고 이로써 이야기의 전체 윤곽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판결을 내리는 데 익숙한 사람이 죽음의 판결을 받게 됐다는 것이 바로 그 기본 골격이다. 독자는 그의 싸움을 지켜보며 죽어가는 이의 공허한 인생을 경멸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처음에 판사의 죽음 이란 제목 아래 일기 형식으로 쓰일 계획이었으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생각들을 다 담아내기에는 깊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폐기되었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파기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일례로 주인공의 성 과 부칭은 그대로 유지됐다. ~~~
우리는 이반 일리치가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보게 된다. 그는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물질적이다. 그는 법대를 나오고 막연히 결혼을 해서는 별 생각 없이 두 아이를 낳았고, 출세를 위해 인맥을 동원하고 기회를 잡아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출세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그도 계속해서 자신의 능력보다 더 높이 올라갔지만, 승진할 때마다 그는 더 많은 돈을 벌게 되고 자신이 잘 건사할 수 잇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의 가정생활은 무관심으로 대변되는 데, 그 이유는 부부가 서로 맞지 않고 그나마 있던 애정마저도 곧 식어버렸기 때문이다. 가정생활이 그렇게 되자 이반 일리치는 직장, 그리고 적은 돈을 걸고 카드놀이를 하는 몇몇 친구들과의 어울림에서 만족을 찾았다. ~~
톨스토이가 미묘하지만 초지일관 그려낸 그의 생활 방식은 무미건조하고 메마르고 무용한 것으로, 돌아봤을 때는 후회의 대상이요, 사고할 줄 아는 사람이 밖에서 보면 경멸의 대상이다. 하지만 만일 이 비난이 자기 자신에게 떨어진다면 반발할 사람이 꽤 될 것이다. 판사는 하찮은 사람이 아니라 성공한 사람이며,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꼼꼼하게 한다. ~~~~‘내가 모든 걸 제대로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걸까?’ 삶의 막바지에서 이반 일리치는 톨스토이의 진리, 잘못 산 인생은 편안한 죽음에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듯하다.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했던 때는 오직 유년기뿐이며 그 후로는, 즉 인생의 후반기는 무너가 아주 불쾌하게 잘못됐다고 결론짓게 된다. 종국에 그는 빛을 보게 되고 그로써 죽음을 받아들인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 소설을 극ㅊ나한 사람 중에 프랑스 작가 기 드 모파상이 있다. 그에게 이 소설은 그가 죽기 전에 읽은 최후의 문학작품이며 이 소설을 dflr고 그는 낙담해서 이런 문구를 썼다고 한다. “내가 한 모든 일은 무의미하며 내가 쓴 열 구너의 책 역시 아무 쓸모가 없단느 사실을 깨달았다.” ~~~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스타일, 구성, 섬세한 언어 구사 면에서 본보기가 되는 소설이다. ~~~사실 병의 정체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어느 날 새 집에서 커튼을 달다가 이반이 살짝 떨어지고 그로 인해 옆구리에 혹이 생긴다. 이 사소한 사건으로부터 병이 발생한다. ~~~이 소설은 세계문학에서 손꼽히는 ‘메멘트 모리’ 작품이다. ~~~톨스토이는 개인적인 악의를 전파하지 않고, 죽음이라는 냉혹한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를 한데 보듬어 안는 연민으로 글을 써 나가고 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1)
커다란 법원 건물, 멜빈스키 사건을 심리하던 재판관들과 검사가 휴정 시간을 이용해 이반 예고르비치 셰베크의 집무실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를 화제 삼아 대화를 나누었고, 대화의 주제는 어느새 그 유명한 크라소프 사건으로 옮겨 가 있었다. ~~~
여러분, 그가 입을 뗐다. “이반 일리차가 사망했다는군요.” “그게 사실입니까?” “자, 여기 한번 읽어들 보시죠.” ~~~
이반 일리치는 방 안에 모인 신사들의 동료였고, 그들 모두 이반 일리치를 좋아했다.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할 거라 짐작은 했습니다. 표트르이바노비치가 소리 내어 말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대체 어디가 아팠던 거랍니까? ~~
그들은 모두 그래 그 친구는 죽었는데, 나는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군 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반 일리치와 친구라는 이 사람들은, 이제 예의상 도의적인 의무를 수행하고, 추도식에 참석하고, 미망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조의를 표명해야 할 일들이 자신도 모르게 귀찮아지는 것이었다. ~~
(2)
이반 일리치는 항소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중 마흔 다섯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는 관리의 아들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아버지인 삼등문관 일리야 예피모비치 골로빈이 바로 쓸모없이 세워진 관청들을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하는 일 없이 한 자리씩을 차지하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는 아들이 세살이었다. 이반 일리치는 그중 둘째였다. ~~
첫 부임지에 발령받아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반 일리치는 법률학교 시절처럼 산뜻하고 기분 좋은 자신만의 생활방식을 만들어냈다. ~~~이반 일리치가 보기에 아내는 정말 아무 이유 없이, 그가 스스로 일컽은 것처럼 아주 고의적으로 기분 좋고 고상한 삶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
이반 일리치는 결혼생활로부터 자신을 지킬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이반 일리치는 가정 밖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아내가 신경질적으로 나오고 까탈을 부리면 부릴수록 이반 일리치는 점점 더 인생의 무게중심을 자신의 일 쪽에 두기 시작했다. 그는 전보다 더 일에 빠져 지내는 날이 많아졌고 명예욕도 전보다 더 강해졌다. ~~~업무의 탁우러한 능력을 인정받은 이반 일리치는 삼 년 뒤에 검사보로 승진했다. ~~
연달아 아이들이 태어났다. 아내는 잔소리가 더욱 심해지고 사나워졌지만, 이미 결혼생활에 대한 자신의 원칙을 세워 놓은 이반 일리치는 이제 아내의 잔소리쯤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게 되었다.
(3)
이반 일리치가 결혼하고 십칠 년이라는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다. 그 사이 고참 검사가 된 이반 일리치는 더 좋은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며 몇 차례의 전근 기회를 거절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않게 그의 평온한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불쾌하고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반 일리치는 대학 도시의 수석 판사직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동료인 고페가 그를 제치고 그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로 그는 냉대를 받기 시작했고 다음번 인사이동에서도 제외되었다. ~~~그 해는 이반 일리치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암울한 시기였다. ~~~
그해 여름 그는 휴가를 받아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와 함께 처남이 사는 시골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여름을 보내며 생활비를 줄여 볼 작정이었다. ~~~시골에서 지내는 동안 이반 일리치는 난생 처음 무료하다 못해 고통스럽기까지 한 기분을 느꼈다. ~~~다음날 그는 아내와 처남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페테르부르크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렇게 떠난 이번 여행은 이반 일리치에게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성과를 알려 주었다. ~~~수일 내로 정부 부처 내에서 인사이동이 있을 예정인데, 표트르 이바노비치의 자리에 이반 세묘노비치가 내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이반 일리치는 친구인 자하르 이바노비치를 찾아가, 예전에 근무하던 법무부에 확실한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는 확답을 받아냈다. 일주일이 지나 그는 아내에게 전보를 쳤다. “자하르가 밀레르의 후임으로 발령되는 즉시 나도 임명 받을 예정.”
이러한 인사이동 덕분에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근무하던 옛 부처에서 뜻하지 않은 승진을 하게 되었다. 자신의 동료들보다 단번에 두 직급이나 더 높아진 직위를 임명받았고 오천 루불의 연봉에 삼천 오백 루불의 이사 비용까지 더해졌다. 그러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밉기만 하던 사람들과 예전 근무처 전체에 대한 원망의 마음은 모두 눈 녹듯 사라지고, 이제 이반 일리치는 아주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 역시 기뻐했고, 부부 사이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이반 일리치는 폐테르부르크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신을 축하해 주었다는 이야기며, 자신에게 매몰차게 등을 돌렸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아첨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며, 사람들이 자신의 지위를 부러워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특히 폐테르부르크 사람들이 자신에게 너무도 많은 홍의를 베풀어 주었다는 이야기 등을 계속해서 들려주었다. 프라스코비야 표드로브나는 남편이 이야기하는 내내 열심히 귀를 기울였고, 남편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듯, 전처럼 반박을 한다든지 토를 단다든지 하는 행동은 일체 보이지 않았다.
이반 일리치는 시골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9월 10일이면 새로운 직무를 시작해야 했고~~~두 사람은 신혼 초 이후로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하고 사이가 좋았다. ~~~이반 일리치는 시골을 출발했다. 자신의 성공과 아내와의 관계 회복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흐믓하고 즐거운 기분을 만들었고, 이것은 새 부임지로 향하는 내내 그의 마음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그는 예쁜 집을 하나 발견했는데, 그 집은 자신과 아내가 꿈꾸던 바로 그런 집이었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집 안을 꾸미기 시작했다. 손수 벽지를 고르고 가구를 사들였다. ~~~그는 특별히 집 안 전체에 우아하고 고상한 분위기를 덧입혀 줄 골동품들을 찾아내 싼 가격에 사들였다. ~~~심지어는 법정에서조차 천장 돌림띠에 달 커튼을 주름이 없는 간단한 것으로 할지 주름 장식이 들어간 것으로 할지에 골몰하는 등 딴 생각을 하기 일쑤였다. ~~~한번은 도무지 말귀를 못 알아듣는 도배장이에게 주름 장식천을 어떻게 달아야 할지 그가 직접 보여 주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다. 하지만 워낙 튼튼하고 민첩하게 단련된 몸인지라 다행히 사다리에서 굴러 떨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창틀로 튀어나와 있는 여닫이창 손잡이에 옆구리를 세게 부딪쳤을 뿐이었다. 부딪친 옆구리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금방 사라졌다. ~~
그는 기차역으로 가족을 마중 나가, 단장을 끝내고 환하게 불을 밝힌 집으로 데려왔다. 하얀 넥타이를 맨 하인이 꽃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현관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가족들은 거실로 서재로 돌아다니며 기쁨에 겨운 탄성을 질렀고, 그 모습을 보며 그는 더없는 행복을 맛보았다. ~~~바로 그날 저녁,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가 사다리에서 떨어졌다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이반일리치에게 물었다. 그는 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이 사다리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도배장이가 혼비백산했던 장면을 가족들 앞에서 재연해 보였다. 이래뵈도 내가 체조선수 출신이잖겠어. ~~~아직 건드리면 아프긴 해. 그래도 이제 거의 다 나았어. 멍만 조금 들었을 뿐이니까. ~~~
그렇게 지내는 처음 한동안 그는 기분이 좋았다. 이반 일리치의 삶은 대체로 삶이란 반드시 쉽고, 기분 좋고, 고상하게만 흘러갔다. 고 믿는 자신의 소신대로 흘러갔다. ~~~한번은 그의 집에서 저녁 연회가 열려 사람들이 춤을 춘 적이 있었다. 이반 일리치는 한창 흥이 올라 즐거웠고 나머지 다른 일들도 모두 순조롭게 풀려 가고 있었다. 그런데 손님들에게 내놓을 케이크와 사탕 문제로 그의 아내 사이에 큰 다툼이 벌어지고 말았다.
(4)
이반 일리치가 이따금 입안에 이상한 맛이 돌고 배 왼쪽이 왠지 거북하고 불편하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거북하고 불편한 증상은 점점 더 강도를 더해 갔고, 이어서 통증까지는 아니지만 옆구리가 항상 묵직한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나쁜 상태로 바뀌었다. ~~~
남편과 아내가 말다툼을 벌이는 일이 점점 잦아지면서 산뜻하고 여유로운 삶의 모습은 사라지고 간신히 체면만 유지하는 지경이 되었다. ~~~이제 프리스코비야 표도로브나가 남편은 원래 까다로운 사람이라며 대놓고 비난을 퍼부어도 전혀 근거가 없는 말만은 아니게 되었다. ~~~
이반 일리치가 유난히 억지를 부려서 한바탕 망다툼을 벌인 어느 날, 이반 일리치는 소동이 가라앉자 자신은 지금 병에 걸렸고 그것 때문에 몹시 예민해져 있다고 아내에게 설명했다. ~~
그는 의사를 찾아갔다. 모든 것이 그가 예상한 대로였다. ~~~그는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불분명한 의학용어들을 쉬운 일상어로 옮긴다음, 그 안에서 내 상태가 안 좋긴 안 좋다는 말인데, 아주 안 좋다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일까? 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통증은 여전히 계속되며 좀처럼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5)
그렇게 한 달이 가고 또 한 달이 흘렀다. ~~~내가 과장한다고? 누나 눈에는 안 보여? 매형은 지금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어. 매형 눈을 한번 보라고 산 사람의 눈이라고 할 수 없다니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6)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래서 끊임없이 절망했다.
(7)
이반 일리치의 병은 발병한 지 삼 개월째에 급격히 상태가 나빠졌는데, 어떻게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설명하기란 불가능했다. ~~~
그는 이따금 게라심이 그의 발을 붙잡고서 잠자러 갈 생각도 잊은 채 밤을 꼬박 새우며 “걱정 마십시오, 이반 일리치 나리, 자야 잠잘 시간이 얼마든지 있으니까요.”라고 말해 줄 때가 더없이 좋았다. ~~~게라심만이 유일하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한번은 이반 일리치가 그에게 물러가라고 하자, 그는 솔직하게 대놓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러니 제가 나리를 위해 수고 좀 못하겠습니까?” 그는 이 말을 통해 ‘자신은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수고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도 힘들지 않으며, 또 언젠가 자신이 병들어 죽게 되면,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서도 똑같은 수고를 해주기를 바란다.‘는 속내를 내비치고 있었다.
(9)
아내는 늦은 밤에 돌아왔다. 아내는 살금살금 소리를 죽이고 방으로 들어왔지만, 그는 아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 많이 아파요? 상관없어. 아편을 좀 들어요. 그가 동의하고 아편을 조금 마셨다. 아내가 방에서 나갔다. 새벽 세 시경까지 통증이 느껴지는 혼미한 의식 상태가 이어졌다. ~~~
잠시 후 그는 조용해졌다. 울음도 멈추고 죽은 듯이 숨도 멈춘 채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마치 소리를 내어 말하는 목소리가 아닌, 영혼의 소리, 자신의 내면에서 솟구쳐 오르는 생각의 흐름들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네가 바라는 게 뭐지? 이 물음은 문득문득 그의 마음에 생각으로만 찾아들던 개념이 처음, 귀로 들을 수 있는 말로 분명하게 표현된 것이었다. ”네가 바라는 게 뭐지? 대체 네가 바라는 게 뭐냐고?“ 그가 반복해서 자신에게 물었다. ”바라는 것?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는 것, 그리고 사는 것.“ 이라는 자신의 대답이 돌아왔다. ~~~
사는 것이라고? 어떻게 사는 것을 말하는데? 영혼의 목소리가 물었다. 그래, 사는 것, 예전에 살던 것처럼 행복하고 기쁘게. “예전에 어떻게 살았는데? 네가 행복하고 기쁘게 살았다고?” 목소리가 다시 물었다. 그는 행복했던 지난 삶에서 최고로 좋았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마음속에 그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의 지난 삶에서 가장 좋았던 그 모든 순간들이 이제는 그 당시에 만족스럽게 여겼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한 인생의 다른 모든 순간들이 그랬다. 그 시절, 어렸을 적에는 그것이 다시 돌아온다면 그것만 가지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정말로 행복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 그 행복을 느꼈던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마치 다른 누군가를 추억하는 것과 같았다.
결국은 죽음을 향해 열심히 달려온 것이나 마찬가지인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순간, 그때는 기쁨으로 여겨졌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그의 눈앞에서 허망하게 녹아내리면서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것으로, 더러는 구역질나도록 추한 것으로 변해버렸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생명력이 사라지는 삶이었다. 난, 내가 조금씩 조금씩 산을 내려오는 것도 모르고 산 정상을 향해 나아간다고 믿고 있었던 거야. ~~~그래, 이제 다 끝났어. 죽는 일만 남은 거야!
(10)
다시 두 주일이 흘렀다. 이반 일리치는 소파에서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이게 뭘까? 나는 정말 죽는 걸까?” 그가 물으면 내면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래, 정말이야.”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거지?”라고 다시 물으면 내면의 목소리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그런 거야. 별 다른 이유는 없어.” 그러고는 더 이상 아무 대답이 없었다.
(11)
그렇게 또 두 주가 지났다. 이 두 주 사이에 이반 일리치와 그의 아내가 전부터 바라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드디어 페트리셰프가 딸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해온 것이었다. ~~~그날 밤따라 이반 일리치는 병세가 훨씬 악화되었음을 알리는 새로운 증상을 보였다. ~~~제발 부탁인데, 편안히 눈감을 수 있도록 날 좀 내버려 둬. 그가 말했다. ~~
우리가 뭘 잘못했단느 거예요? 리자가 엄마에게 물었다. “마치 우리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투잖아요! 나도 아빠가 불쌍해요. 그렇다고 아빠가 우릴 괴롭힐 이유는 없잖아요?”
의사는 늘 오던 시간에 도착했다. 이반 일리치는 줄곧 증오에 찬 시선으로 의사를 바라보며 의사가 묻는 말에 “그렇소. 아니요.” 라고만 짧게 대꾸하다가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여보시오, 의사 양반, 당신이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당신 자신이 잘 알고 있잖소. 그러니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시오.” “고통을 덜어드릴 수 있습니다.” 의사가 대답했다. ~~~
이반 일리치의 정신적인 고통은 그날 밤, 강대뼈가 튀어나오고 선량하게 생긴, 잠이 가득한 게라심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불연듯 머릿속에 ‘만약 정말로 내가 살아온 모든 삶이, 의식적인 나의 생활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어떡하지?’ 라는 의심이 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전에는 절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일, 그러니까 그가 살아온 인생이 송두리째 잘못된 것일 수 있고, 또 어쩌면 그것이 진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 맞서서 저항하고 싶었던 마음속의 희미한 유혹들이, 자신이 깜짝 놀라서 곧바로 떨쳐 버리고 말았던 이 은밀한 유혹들이 어쩌면 진짜였고, 나머지는 모두 잘못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의 일도, 삶을 살았던 방식도, 가족도 그리고 사교계와 직장에서 친분을 쌓은 사람들까지도,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이 다 거짓일 수 있는 노릇이었다. 그는 눈앞의 이 모든 것들을 지키고 변호하려 했다. 하지만 돌연 자신이 변호하는 이것들이 헛되고 무력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똑똑히 느껴지는 것이었다. 지키고 변호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가 자신에게 말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나 스스로 망쳐놓았다는 생각을 가진 채, 또 그것을 바로잡을 기회도 없이 눈을 감아하는 거라면 그땐 정말 어떻게 되는 걸까? 그는 똑바로 누워 자신의 일생을 새로운 눈으로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하인에 이어서 아내, 그리고 딸, 마지막으로 의사가 차례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을 때, 그들 한명 한명이 보여 준 모든 행동과 그들 한명 한명이 내뱉은 모든 말들을 지난 밤 비로소 그에게 실체를 드러낸 끔찍한 진실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와도 같았다. 그는 그들 안에서 바로 자기 자신의 모습과 자신이 삶의 수단으로 삼았던 모든 것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잘못된 것이었으며, 그것들은 또한 삶도 죽음도 가려버리는 하나의 거대하고도 무서운 기만이었다는 사실을 그들을 통해 똑똑히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자꾸만 커져갔고, 그가 겪는 육체적인 고통을 열 배나 가중했다. 그는 신음했고 자신의 옷을 쥐어뜯으며 몸부림쳤다. 옷이 자꾸만 자신의 숨통을 조이고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바로 이것 때문에도 그는 그들이 밉고 또 미웠다.
그에게 상당량의 아편이 투약되었고, 그는 곧 의식을 잃었다. 하지만 식사 시간 무렵이 되자 다시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을 모두 자신의 방에서 나가라고 물리친 뒤 홀로 몸부림치며 고통스러워했다. 아내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장, 여보, 제발 날 위해서(날 위해서라고?)라도 그렇게 해요. 도움이 되면 되었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예요. 그런 것쯤,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니까요. 건강한 사람들도 자주....” 그가 눈을 크게 떴다. “뭐? 성찬을 받으라고? 뭣 때문에? 필요 없어! 아, 나도 잘 모르겠어....” 아내가 울음을 터뜨렸다.
(12)
그때부터 그의 고함 소리는 시작되었다. 그것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사흘 밤낮 내리 계속되었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크고 끔찍했던지 방이 두 칸이나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까지 오싹 소름이 돋지 않고는 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
별안간 어떤 힘이 그의 가슴과 옆구리를 세차게 밀어붙였고, 그는 숨쉬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그는 구멍 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곳, 구멍 끝에서 무언가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갈 때 흔히 있는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실제로는 뒤로 가고 있는 기차를 앞으론=만 간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기차의 진짜 진행 방향을 알게 되는 상황과 흡사했다. ~~~그것은 사흘째가 다 끝나갈 무렵, 그가 세상을 뜨기 한 시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바로 그 순간 김나지움에 다니는 아들이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들어와 아버지의 침대 곁으로 다가 왔다. ~~~
이반 일리치가 구멍 속으로 굴러 떨어져 빛을 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빛을 발견한 바로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여태 잘못 살아왔으며, 아직은 이 잘못된 삶을 바로잡을 기회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올바른 일이란 무엇인지 스스로 물은 뒤, 조용히 귀를 기울이며 입을 다물었던 것이었다. 이때 누군가 자신의 손에 입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뜨자 아들이 보였다. 느는 아들이 가엾어졌다. 아내가 그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는 입을 벌린 채 눈물이 코와 목을 타고 흘러내리도록 흐느껴 울며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런 아내가 불쌍해졌다.
그래 내가 지금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어. 그는 생각 했다. ~~~그는 가족들이 불쌍했고, 가족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도록 무언가를 해야 했다. ~~~그런데 죽음은? 죽음은 어디에 있지? ~~~죽음 대신 빛이 있었다. 그래, 바로 이것이었어! 그가 갑자기 소리 내어 말했다. “아, 이렇게 기쁠 수가!” 단 한 순간에 이 모든 일이 벌어졌고, 이 한 순간이 지니는 의미는 이미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임종을 지키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그러고도 두 시간이나 더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의 가슴에서 무언가가 그르렁거렸다. 그러더니 그르렁거리는 소리도, 숨이 차올라 쌕쌕거리는 소리도 점점 잦아들었다.
임종하셨습니다! 누군가 그를 굽어보며 말했다. 그는 그 말을 들었고 그 말을 마음속에서 되뇌었다. 죽음은 끝났어.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죽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하지만 들이마신 숨을 미처 내뱉기도 전에 온몸을 쭉 뻗더니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1886 3월 25일
[Review]
파스칼 은 팡세(183) 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심연을 볼 수 없게 방해하는 무엇인가 만들어놓고 아무런 근심 없이 심연을 향해 나아간다.“
인간이 자신이 향하는 길을 알지 못한다면 삶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묻고 있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무한한 시간 전체의 움직이지 않는 중심점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기에 현실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 삶은 무대 위의 배우처럼 허구라고 말한다.
톨스토이는 40대 초반에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를 탐독하며 인생의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끊임없이 인생의 참된 의미에 의문을 품게 되었으며 사람은 무엇으로 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인가를 발견하고자 했으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수많은 문학작품 속에서 발견된다.
톨스토이는 특히 인간의 두 본성, 동물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이 문제에 답을 찾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인생론’에서 ‘인간은 세계에 대해 그의 이성적 의식이 갖는 관계야말로 자기 생명의 유일한 토대’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동물적 의식 및 물질이 갖는 눈에 보이는 관계를 자기 생명의 토대’라고 생각하면 세계에 대한 모든 관계가 불안해 진다고 했다.
이러한 일로 그는 현실의 삶 보다는 이성의 삶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에 반해 그의 아내인‘소피아 베르스’는 현실주의자였다. 이런 관계로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파문(1901년)과 부부간 갈등이 심화되어 가출(1910년), 그해 11월 7일, 외로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이 책 <이반일리치의 죽음>(1886년 작)은 시간과 공간에 접한 현실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서 톨스토이는 인생의 모든 수고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를 독자에게 묻고 있다.
법원 하급 판사였던 ‘이반 일리치’는 동료들보다 승진의 기회에서 밀려나자 깊은 회의에 빠지고, 설상가상 부인의 성화에 시달리게 되었다. 생활비에 쪼들리며 결국 잠시 동안 시골에 있는 처남 집에 내려가 지내던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정부 주요 요직에 전보다 두 단계 높은 자리에 발탁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걱정하던 주거비용으로 많은 돈을 받게 된 그는 홀로 모스크바로 올라가 새 집을 얻어 실내 장식을 호화롭게 준비하며 가족들을 기쁘게 해 줄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던 중 사다리에서 떨어지며 옆구리가 약간 뻐근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는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친구들을 불러 연회를 베풀었다. 그러나 지난번 다친 허리가 통증이 심해지고 결국 그의 삶 전체를 불행의 깊은 수렁으로 몰고 갔으며 그의 인생은 끝나버리고 말았다.
소설은 동료들로부터 ‘이반일리치가 죽었다’ 소문을 전하는 내용으로 시작되어, 그의 불만스런 일상에서 행운의 기회와 불행의 삶으로 빠르게 진행되며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참을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오히려 그는 가족들의 걱정을 덜어주려고 애썼지만, 대조적으로 가족들이 대하는 태도는 일상적이며 오히려 무심하기까지 했다. 임종의 마지막 순간에 이반일리치가 보았다는 빛이 어떤 것인지 톨스토이는 말하지 않지만 독자로 하여금 영원한 삶으로 이어지는 희망이 아닌가 상상하게 된다.
“별안간 어떤 힘이 그의 가슴과 옆구리를 세차게 밀어붙였고, 그는 숨쉬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그는 구멍 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곳, 구멍 끝에서 무언가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갈 때 흔히 있는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실제로는 뒤로 가고 있는 기차를 앞으로만 간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기차의 진짜 진행 방향을 알게 되는 상황과 흡사했다.(....)빛을 발견한 바로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여태 잘못 살아왔으며, 아직은 이 잘못된 삶을 바로잡을 기회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본문)
소설의 착상은 실화였으며. ‘이반 일리치 메치니코프’란 이름의 판사가 아직 젊고 한창 일할 나이에 병으로 죽은 이야기로 책 제목도 실재인물 그대로 했다고 전해진다. 톨스토이는 이 소재가 그동안 자신의 관심사와 잘 맞고 자신이 겪고 있는 아내와의 갈등이 소설의 주인공과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톨스토이가 이 책을 아내의 생일선물로 헌정했을 때 아내는 모스코바에서 돌아와서 크게 기뻐하며 출판에 적극 가담했다고 한다.
이 책을 마치며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로 잘 알려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책 <생의 수레바퀴>에서 본 한 대목이 떠올랐다.
“삶의 어느 시점에 있든 우리는 나아가야 할 방향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잘못된 선택을 하고 비참한 인생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면, 거기에서 교훈을 얻고, 충실하고 좋은 삶을 영위하고, 좋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Go My Book Review~~
https://blog.naver.com/bookrev/224431658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