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쉼표
연못에 조용히 떠 있는 수련을 본다.
수련 꽃에 겹치는 얼굴이 있다. 얼굴과 겹쳐진 수련은 물 위에 넓은 잎 동동 띄워놓고 가만히 꽃대를 밀어 올려 우아한 자태다.
삶은 항상 연속성이 있는 걸까.
말없이 밀려가는 일상이지만 거센 파도처럼 일렁이는가 하면 한가하면서도 차분한 미소로 꽃잎 위에 떠 있는 것처럼 여유로울 때가 있다.
아침에 방긋이 깨어났다가 어둠이 내리기 전 꽃잎을 닫는 모습은 영락없는 너와 나의 일상의 쉼표이다.
수련이 꽃잎 한 장 함부로 흩어놓는 법 없이 고요히 물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아침이면 다시 피어 아름다운 자태를 들어낼 때, 먼 길 같이하는 한결 같은 사람을 바라본다.
남은 여정도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수많은 삶의 쉼표를 찍으며 함께할 그 사람. 수련처럼 곱다. 하지만 애처롭다.
조용히 침잠했다가 다시 피어나는 수련, 그 사람 역시 결코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리듬을 잃어버리는 일 없는 고요히 피었다 지는 수련의 화신(化身) 같다. 사랑한다는 말 없어도 은은한 그 모습은 고단한 삶의 잠시 쉼표일 때가 더욱 아름답다.
삶의 쉼표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기준이다. 말없음으로서 말 없는데 이르는 깨달음의 완성으로 가는 삶의 쉼표는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서로 닮아가고 있는 기준을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연약한 다리 끝에 기포를 만들어 물 위에 떠 있는 소금쟁이 한 마리, 소금쟁이는 다리 끝 기포가 삶을 지탱하는 신호등 같은 쉼표다.
연못의 고요를 딛고 서서 미세한 바람에도 떠밀려가는 미물만의 삶도 연못 속 하늘을 보며 쉼표를 찍는 여유가 있는 것일까. 세상을 펼친 잎에서 마지막 이슬방울 굴러 내린 고고한 그 자태, 소금쟁이 다리에 매달린 물방울이 미세한 동그라미를 그린다.
이슬 떨어진 자리와 겹쳐 동그라미로 맴도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들.
사라진 동그라미 자리에 다시 적막이 흐른다.
소금쟁이 발밑 연못에 하늘이 내려와 앉았다.
인간의 삶도 저러한 것들의 연속이란 생각에서 다시 쉼표를 찍어본다.
천년 옛 절에 우리 님 간곳없고
어수대 빈터만 남아있네
지난일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바람에 학이나 불러나 볼거나
판소리아카데미에서 배운 부안 기생 이매창의 시를 단가로 부른 “흥타령‘이다.
이 노래를 듣거나 부르면 알지 못할 아득한 옛날의 지난(至難)했던 삶의 흔적과 고달픔이 밀물처럼 조용히 다가오는 것 같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밀물처럼 찾아오는 것이지만, 그 찾아오는 순간이 너무도 짧아 쉼표의 그 자취 먼지처럼 사라지고, 돌아보면 어느새 형체 없는 추억만 맴돌다 밀려난다.
이상일 뿐일까.
수련 같은 삶과 쉼표 그리고 사랑이.
손가락 한번 탁 퉁기는 찰라와 같은 것일까.
그럼에도 우리는 모르고 들뜨고 허둥대다가 연못의 동그라미처럼 정막만 남긴다.
그러나 정막 속에서도 다시 수련은 피어나 삶을 영위하고, 우리의 사랑도 끝없이 쉼표를 남기며 이어진다.
삶에는 사랑과 그리움이 동반한다. 거기에는 괴로움이 따르기 마련이며, 애정(戀情)에서 다시 근심이 생긴다.
인생(人生)의 삶은 현재적(現在的)인 것이어서 삶의 가치는 지금 이곳, 이 시점에만 존재함을 알아, 꿀벌이 수련 꽃 거쳐 올 때 꿀 만들기에 적당한 꽃가루만을 취하고 빛깔이나 향기는 다치지 않는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다.
이 나이에도 수련 같은 삶과 사랑, 연모하는 마음 다치지 않게 삶의 쉼표 하나 찍고 싶다.
조용하면서도 안온한 삶과 사랑이 머무는 ’쉼표‘ 만들기를 꿈꾸어보면서 스스로를 다스리는 슬기로움이 부족하지 않기를 가만히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