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스트레스 / 홍속렬
음성 학교에 있을 때 수필 교실을 나갔다
유명한 수필가 반숙자 선생님이 지도하는 수필 교실에 수강생으로 일주 한 번 나가 공부를 했다. 주로 여성들이었고 남자는 두세 명에 지나지 않았다
내 멋대로 써오던 글을 제대로 된 이론과 바탕위에서 격식을 갖춰 쓰게 되니 공부가 많이 되었다
그때 시베리아스트레스 라는 걸 배웠다
시베리아의 황혼은 너무 아름답단다. 어느 날 농부가 그 황혼이 너무나 아름다워 그만 그 노을을 따라 갔다가 날이 저물어 짐승의 먹이가 되어 버려단 기가 막힌 얘기이다
나는 그 농부가 기가 막힌 인물이라 생각한다. 아름다움을 위해 자기의 생명 까지 바칠 수 있는 열정이 있다는데
요즘 엔도 쿠사쿠의 침묵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과연 나도 순교를 당할 즈음에 예수님을 부인 하고 성화에 침을 뱉으면 살려 줄 것이다 하면 과연 나는 어떻게 할까? 아름다움을 위해 죽음도 불사 하는 아름다운 영혼도 있는데 하물며 시방은 나는 주님을 위해 생명까지도 바칠 수 있습니다 하고 고백 하며 기도 해 왔던 내가 언제냐? 하고 예수를 부인 하고 성화에 침을 뱉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를 부인 할 것이란 예수님의 말씀에 강력 부인 하다가 과연 그렇게 자신이 무기력 했던 걸 깨닫고 통곡을 하던 그 심정을 알만 하다
그리고 나는 선교사로 나와 헌신된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신앙을 위해 신념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일이다
나는 전쟁터를 누비고 다녔다 그러면서 여러 번 생명을 잃을 뻔한 일을 당 했고 또 자원해서 특수임무를 맡았었다
어떤 사명감이나 특별히 충성심이 뛰어나서가 아닌 나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었다.
또 어떤 아름다운 조국 사랑 때문도 아니었다.
그건 나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일찍 철이 들어 사물을 구분할 수 있을 때 한국전쟁으로 인해 가장 불행한 시기를 살았던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유년시절 가장 민감할 때 당한 인생의 고통과 쓰라림이 날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 보다는 명예롭게 죽는 것이(전사)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하는 생각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나는 용감한 군인이 돼 있었다.
피난 나가서 원주민 아이들이 텃세를 한다고 때린다. 늘 맞기만 하다가 어느 날 생각 해 보았다 이왕 맞는 것 나도 때리자 그런데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 아주 죽여 버리자 그랬더니 어느덧 나는 그 동네의 왕초가 돼 있었다. 죽기 살기로 달려들다 보니 나는 쌈패가 되어있었다 싸움은 아무리 태권도가 몇 단이고 운동을 많이 했어도 싸움 많이 해본 사람에겐 당할 수가 없다
전쟁 스트레스 때문에 나는 용감한 군인이 되어 있었고 싸움 잘하는 쌈패가 되어 있었다. 내가 받은 전쟁의 상흔? 아직도 내 가슴에서 크나큰 아픔으로 남아있다
내가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영원히 아물지 못할 상처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