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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쉰들러네
 
 
 
카페 게시글
말씀이나, 좋은 글 스크랩 (썬다싱 전집) 십자가는 천국이다|
김 쉰들러 추천 0 조회 21 10.07.04 18:0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썬다 싱] (썬다싱 전집) 십자가는 천국이다|

혼인잔치  http://cafe.daum.net/ConjugialLove/3cZV/98

십자가는 천국이다




-  목    차  -




1.  십자가의 주



2.  십자가를 통한 구원



3.  십자가는 천국이다



4.  십자가를 지는 자



5.  구도자(求道者)와 살아계신 그리스도



6.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안다



7.  개  괄 (槪 括)



십자가는 천국이다




제 1 장  십자가의 주



십자가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다



1921년 히마라야 산중의 밀림에 산불이 일어났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 속에서 물건을 운반해 내기에 바빴지만 몇몇 사람은 우두커니 서서 한 나무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쳐다보고 있는거요?"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이미 불붙기 시작한 나무가지에 새끼새들이 가득 들어 있는 새둥지를 가리키면서 대답하였다. 바라보니 한 마리의 새가 아주 괴로워 하며 분주히 떠돌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는 저 새들을 구해 주고 싶으나 불길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습니다"하고 말하였다.



몇 초 후에 불은 더욱 번져 새둥지에 옮아 갔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는 그 어미 새가 날아 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미 새는 나래를 펴서 새끼들을 덮고 있었던 것이다. 한 순간이 지난 다음 이 불쌍한 새는 새끼 새들과 함께 불에 타서 재가 되어 버렸다.



나는 이제까지 이같은 일을 본 일이 없었다. 나는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이상스러운 사랑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였다. 피조물에 이처럼 저를 돌보지 않는 사랑을 주신 조물주는 얼마나 놀라운 사랑을 가진 분이겠는가?



이같이 무한하고 무사(無私)한 사랑이 예수그리스도를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 와 사람이 되게 하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의 죄 속에서 생명을 내어 죽게 한 것이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지옥에 보내지 않으신다



어떤 때 남인도에서 나는 아주 영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과 이야기를 하였다.


그 집에는 주인의 아들과 1주일동안 함께 지내려고 찾아 온 한 청년이 있었다. 그가 우리들의 대화를 듣고 있더니 점차 괴로워 하고 있아는 것을 우리는 눈치채었다.



그 청년은 1주일동안 유숙할 예정으로 찾아 왔으나 이윽고 차 시간표를 보기 시작하였다.


"어찌된 일이요, 젊은이는 1주일 예정으로 온 것이 아니오? 방도 준비되어 있는데..." 하고 주인이 말하였다.



이 청년은 잠시라도 영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며 만약 1주일이나 그 속에서 지내게 된다면 그야말로 지옥의 괴로움을 맛 볼 것이고 그렇다고 그런 심정을 설명할 처지도 못되어 15분 후에는 도망치고 말았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어찌 이 아들들이 지옥에서 괴로워 하는 것을 볼 수 있겠는가? 죄인을 지옥에 보내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고 "죄"인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는 것을 허용하신다. 그러나 죄인은 그 곳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청년은 천사와 함께 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우리들과 함께 15분동안도 지내지 못하였다. 하늘나라에서는 15초도 머물러 있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를 알고 있다



늙은 한 불교 제사(祭司)가 13세 되는 소녀에 관하여 나에게 이야기 하였다.


그 소녀가 노승에게 "나는 그리스도교 신자입니다"하고 말 하였을 때




"그럼 너는 그리스도에 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나는 그에 관하여 오직 한가지 일 밖에 모릅니다"


"어리석은 애야, 너는 아직 어리고 무식한 어린아이가 아니냐?"


"나는 나의 부모를 알기보다도 그리스도를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 부모를 사랑하며 그들도 나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내 속에 살아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세상이 주거나 빼앗을 수 없는 생명을 나에게 주셨고 영생을 나에게 주셨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결국 소녀는 24시간동안 한 방에 갇혔고 아무런 음식물도 주지 않았다.


그런 후 노승이 찾아가 "어떤 기분이냐?"고 물었다.



소녀는 초연한 태도로


"마음 속으로 우러나는 기쁨으로 노래를 불렀기때문에 조금도 피로하지 않다"고 대답하였다. 소녀는 사흘동안을 갇혀 지냈으며 3일이 지난 후에 문을 열어 보니 그는 평화와 기쁨에 찬 얼굴로 찬송을 계속해 부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노승은 소녀에게 고백하며 말하였다.


"너는 나의 선생이다. 나는 늙었고 너는 불과 13세 밖에 되지 않지만 나는 너의 제자이다. 그대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은 나이나 학문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 소녀는 설교를 할 수는 없었지만 노승이 발견하지 못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었다.




보라,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어느 때 나는 3일간 티?에서 설교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나를 배척하고 있었다.


불교도는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급기야 나는 마을 밖으로 쫓겨났으며 사흘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였다.



그 곳은 4천미터 이상의 고원지대였으므로 밤에는 아주 추웠다.


나는 밤새도록 추위에 떨고 굶주리며 목말라 있었으나 아무도 나를 도와 주는 사람이 없었다.



사탄은 나를 시험하였다.


"너는 집에 있기만 하면 호사스럽게 지낼 수 있는데 지금 그리스도는 너를 도울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도하였으며 기도중에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 세상이 줄 수도, 뺏을 수도 없는 놀라운 평화를 얻었다.


나는 동굴에서 나와 한 나무에서 약간의 잎새를 뜯어 먹었다.


그 잎은 딱딱하고 맛도 별로 좋은 것이 아니었지만 그리스도의 임재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 나무 잎을 아주 맛있는 것으로 느꼈으며 집에 있을 때는 일찌기 그렇게 맛있는 것을 먹어 본 일이 없었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나는 사탄을 향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는 내 안에 계사다. 그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고 약속하셨다. 나는 그것을 체험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는 오직 위대한 인물, 하나의 예언자로 알고 그는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일은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



위인은 "나는 항상 당신과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나는 이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와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마 28:20)




그리스도를 알기 위하여서는 기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느 때 아버지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나는 이 몇 해 동안 너에게 주의를 기울이며 살펴 보았다. 네가 가정에 있었을 때와 비교해서 가정에 있었을 때는 결코 행복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곤란속에 있으면서도 언제나 행복해 보인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나는 아버지에게 "그것은 나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내가 예전에는 미워하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그 가운데서 평화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이야기는 아버지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 아버지는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어떻게 하면 나도 그리스도를 알 수 있게 되는가?" 고 물었다.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에 관해서 알고 싶다고 생각하시면 성경을 읽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리스도를 알아야 되겠다고 생각하신다면 기도를 하셔야 합니다. 읽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무신론자나 이교도들도 성경을 읽지만 그리스도를 알지 못합니다. 기도는 진리의 문을 여는 유일의 열쇠며 참된 열쇠입니다."



아버지는 나의 말대로 실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얼마 동안의 시일이 지난 후에 "나는 너의 구주를 찾아 냈다. 그는 지금 나의 구주다."하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을 때에 나는 참다운 기쁨을 느꼈다.




우리는 단순한 빵 말고 생명의 빵을 필요로 한다



나는 인도의 한 신자가 그의 경험을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


한 거지가 날마다 그에게 찾아가서 빵 한 조각을 구걸하였으며 그것을 얻으면 곧 사라져 버리곤 하였다.



어떤 날 그 기도인은 거지가 또 다시 찾아왔지만 아무것도 줄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사람들이 음식물을 가져오는 동안 거지와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였다.


한시간 사이에 이 거지는 믿음을 얻고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더니 아주 변화하여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깨닫고 기쁨으로 충만하여 있었다.



거지는 "긴 세월동안 나는 당신에게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찾아 왔지만 그 이상 당신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고 말하였다.



기도인은 말하기를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지 나의 잘못은 아니요, 당신은 빵만 받으면 곧 사라졌지만 오늘은 내가 당신에게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이요." 하였다. 그것은 우리의 주님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천부에게 이런일 저런 일을 구한다.


우리의 주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와는 다르게 기도를 드리며 "나의 뜻대로 되게 하여 달라"고 기원한다.



우리는 혓바닥을 놀려 말로 표현해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우리들이 하는 일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소원이 이루어지면 곧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버리고 만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우리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주시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가난하여도 그의 두 눈은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1920년 내가 영국에 있을 때에 죽음에 직면한 한 남자를 방문해 줄 것을 요청받았다.


나는 시간이 없었으므로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나에게 요청한 신도가 "당신은 꼭 그 사람을 만나 보십시요. 아마 당신에게 유익할 것입니다"하므로 나는 가 보았다.



그는 아주 가난했으며 그를 돌봐주고 있는 오직 하나의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의 전신은 병들었고 오랜동안 병석에서 괴로움을 겪고 있었다. 그의 몸은 쇠약하여 뼈가 앙상했으며 마치 해골과 같아 보였다.


내가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았을 때에 그의 두 눈은 별처럼 빛나 있었다.



그는 말하였다.


"당신은 나에게 대해 교시를 주려고 합니까? 그러나 나로부터의 교시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괴로움 속에서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긴 세월동안 고난중에서 살아 왔지만 나는 놀랄만한 행복을 지속해 왔습니다. 이 기쁨은 왕이 그 궁전 속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아주 쇠약해 보였지만 그 얼굴은 천사처럼 빛났고 그의 눈 속에는 하늘나라가 있었다.


"아마 잠시 후면 사람들이 내가 죽었다고 할 것입니다. 제발 그들에게 말해 주십시요. 나는 죽은 것이 아니라 더 참되게 살고 있다."고...



나는 기쁨에 차서 이야기 한 병자의 말을 널리 전했다.


그 때에 나는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는 죽기 전에 놀랄만큼 기쁨으로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천사와 함께 나의 구주를 만나러 갑니다. 나의 구주와 함께 살기 위해서 갑니다."하고 사람들은 이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또 세상에 물든 사람들은 이 사람과 같은 기쁨을 가질 수 없다."




평화는 그리스도의 은사이지 상상(想像)이 아니다



성경을 읽은 후에 나는 기도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 때 나는 놀랄만한 평화를 느꼈다. 그것은 지상의 천국이라고 불리우는 바로 그것이었다. 심리학자가 그 경험에 관해서 나에게 물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어떤 사람은 내가 평화를 느끼고 있는 것을 감정의 문제거나 또는 상상과 명상의 결과일 것이라고 말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대답하기를


"좋습니다. 대답에 앞서 한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여기에 앞 못 보는 장님이 추운 겨울날 태양을 향해 앉았습니다."


그 때 옆의 사람들이 "어떻게 느껴지는가?"고 물으니 "따뜻하다"고 대답하였다.


"그것은 태양이 빛인 때문이라"고 말하니



"아니오, 아니오. 이 따뜻함은 나의 상상의 결과입니다. 불덩이가 허공에 걸려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태양이 기둥도 없이 공중에 떠 있다는 따위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열은 내 몸 속에 피가 순환하여 생긴 것입니다. 태양의 존재같은 것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하고 내가 물으니


그 심리학자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보입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당신은 학문을 배운 바보입니다. 나는 여러 시간의 명상과 상상을 가지고도 그 경험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내가 조금도 예기치 않을 때에 그것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조용히 있을 때 의의 태양으로부터 열과 빛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상상이나 명상의 결과가 아니고 하나의 실재입니다."



매일 기도생활을 하는 사람이 그것이 진실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보증한다.




영적 문둥병이 고쳐지다



어느 때 나는 한 목사와 함께 문둥병 환자에게 문병을 갔다.


함께 간 나의 친구는 병자에게


"참 안되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괴로워 하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프고 슬퍼집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런데 나는 문둥병 환자의 대답을 듣고 놀랐다.


그는 "여보시오, 당신은 슬픔을 느끼고 있는 모양인데 나는 내 마음 속의 놀랄만한 평화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문둥병을 앓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가 문둥병에 걸린 것을 감사한다는 말을 듣고 놀랐지만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 내가 건강해 있다면 아마 나는 살인을 했거나 도둑질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문둥병을 통해 죄의 문둥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육체의 병이 낫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나의 영적인 문둥병은 고침을 받아 지금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기쁨을 찾았습니다."



이 가난한 병자는 말로 나타낼 수 없는 기쁨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눈물은 그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리스도가 와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가난한 자는 그것을 잘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안다.



그러한 일은 나로 하여금 목사는 이 가난한 문둥병자보다도 오히려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그리고 많은 부자와 많은 건강인들이 가난한 자들처럼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경험은 책 속에서가 아니라 살아 계신 그리스도 안에서 가난한 자에게 전해지는 복음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십자가는 천국이다




제 2 장  십자가를 통한 구원




그리스도는 나의 생명



그리스도는 나의 구주, 그리스도는 나의 생명, 하늘에 있어서도 그는 나의 모든 것이다.



이전에 사막을 여행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나는 피곤하고 갈증이 나서 언덕 위에 서서 물 있는 곳을 살펴 보았는데 저 편 먼 곳에 호수가 있는 것을 보고 무한히 기뻐하였다.



이제 목을 축일 수 잇게 되었다는 생각에서 희망을 걸고 그 쪽을 향하여 장시간 걸어 갔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 갔어도 그 곳에 이르지 못하고 말았다.


후에야 그것이 신기루라는 것을 알았다. 태양 빛의 반사에 의하여 물처럼 보였던 것이다.



거기에는 실제 아무 것도 없었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생명의 물을 찾아 세계를 방황하였다.


이 세상의 일들을 - 부,지위,명예,호사 - 마치 그것이 나의 영혼의 갈증을 고치는 샘물인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나의 갈증을 고치는 한 방울의 물도 찾지 못하였다. 나는 갈증으로 죽으려 하였다. 그러한 때에 나의 영안이 열려 생명수가 샘을 이루어 그의 찔린 옆구리로부터 흘러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 물을 충족하게 마셨으므로 이제 목마르지 않는 몸이 되었다.


그로부터 나는 항상 생명수를 마시며 이 세상의 사막을 지날 때에도 결코 목마르지 않는 자가 되었으며 나의 마음은 찬미로 충만해 있다.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다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평화이며 나는 어떤 역경에 있어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박해 속에서 평화와 기쁨과 행복을 느끼며 그 누구도 내가 주님 안에서 찾은 기쁨을 뺏아갈 수는 없다.



집에 있을 때에도 주님은 함께 있고 옥중에 있어도 거기에 함께 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옥은 하늘로 변하며 십자가는 은혜의 원천이 된다. 그리스도를 따라 십자가를 지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만약 하늘나라에 가서 이미 십자가를 질 수 없게 된다면 나는 주님에게 애원하여 선교사가 되겠으며 지옥에 있어서 필요하다면 거기에 가서 주님의 십자가를 질 기회를 얻고자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다면 지옥도 하늘나라로 변할 것이다.



벙어리는 과자의 단 맛을 이야기할 수 없듯이 구원을 받은 자는 그 입으로 주님이 계신 존귀한 사실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 오직 하늘의 말만이 이 천적평화를 표현할 수 있다. 비록 나는 이 세상의 위험, 유혹, 죄, 슬픔 속에 있었지만 생명을 주시는 주님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다.



바닷물은 짜고 고기는 그 속에서 살지만 바다 고기의 살맛이 짜지 않은 것은 생명이 잇기 때문이다.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으면 세상속에 있을지라도 세상의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 있어서도 우리는 자신을 그리스도 속에서 발견할 것이다. 이제 나는 재산이나 지위, 목숨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직 나의 마음을 하늘나라로 변하게 하신 주님만을 필요로 한다. 그의 무한한 사랑은 다른 모든 자의 사랑을 쫓아 내었다.



많은 그리스도신자가 그의 존귀한 생명을 주는 현재를 실현하지 못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그이 두뇌와 성서 속에서만 살아 있고 그 마음 속에 살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직 그 마음을 그리스도에게 바침으로서 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은 왕의 왕인 주님의 보좌이다. 하늘의 주부(主府)는 주님의 통치하시는 마음이다.




놀라운 사건



카이라시(히말라야 산중의 한 고산)의 산간을 넘어 한 지역에 이르렀을 때에 마을 사람으로부터 이리로 가면 촌락으로 가는 가장 바른 길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크리스챤인 나에게 적의를 가지고 위험이 많은 숲속으로 보내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였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모르고 그 길을 따라 갔다.



가도 가도 마을은 나타나지 않고 해가 지게 되었는데 나는 한 강변에 이르게 되었다. 사방에서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강을 건너고 싶었지만 그것도 할 수가 없어 드디어는 실망한 채 거기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모든 조건은 나쁘기만 했으며 나는 이제 내 목숨이 다할 때가 가까와 오는구나 하고 느꼈다. 나의 눈에는 눈물이 넘쳐 흘렀다.



그 때에 눈을 들어 보니 강 건너 편에서 한 사람이 모닥불을 피워 몸을 녹히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는 소리쳐 말하였다.

"걱정 마시오, 나는 당신을 구하러 가겠소."


나는 그가 일어나 나에게로 걸어 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가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급류속으로 뛰어 들어 이 쪽으로 헤엄쳐 온 것을 보고 나는 놀랐다.



그는 "내 어깨를 붙잡으시오. 그리고 겁내지 마십시오."하고 말하였다.


그는 나를 부축하여 저쪽 강변으로 옮겨 놓았다.


놀랍게도 나는 내 홀몸으로도 건널 수 없는 급류를 그는 나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도 아무런 괴로움 없이 강을 건넜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는 이 고장에 살기 때문에 강을 건너는데 익숙해 있는 것이다. 그럼 나는 그에게 복음을 전도하여 그에게 대한 감사의 뜻을 표해야 하겠다."



그런데 내가 뒤돌아 보니 벌써 그 사람도 없고 모닥불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놀라는 한편 두려움을 가졌다.


정녕 주님은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변함이 없으시단 것을 깨달았다.


언제나 주님은 변치 않으시지만 우리의 신앙이 변하는 것이다.




구원은 용서며 죄로부터의 해방이다.



구원은 단순히 죄의 용서일뿐만 아니라 죄로부터 해방되는 일이다.


죄가 용서된 후에도 우리는 자신의 죄에 의하여 죽는 일이 얼마던지 있을 수 있다.



많은 죄인들이 그 죄가 용서된 후에 그들의 죄가운데서 죽어 간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다.



히말라야산 지방에 살고 있던 한 사람이 오랜 동안의 병으로 정신이상이 되었는데 어떤 날 한 친척이 문병을 와서 그 옆에 앉아 있으니 정신이상된 사람이 문득 예리한 칼로 그 사람의 목을 찔러 죽였다.



정신이상자는 붙잡히어 교수형의 언도를 받았다.


그의 가까운 친척 한 사람이 변호를 하는 자리에서 그가 오랜동안 병으로 시달리다가 미치게 되어 한 짓이니 용서하여 달라고 애원하였다.



왕은 동정심 많은 사람이 어서 동정과 이해로 이를 용서하여 그를 놓아 줄 것을 명령하였다.


그가 친척되는 사람을 죽인 것은 20일이었고 교수형 집행일로 선고된 날은 22일이었다.


그리고 용서를 받고 놓여 나온 날이 21일이었는데 그는 22일에 죽고 말았다.



그의 죄는 용서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죽은 것이다.


그래서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사람의 구원은 병의 고침을 받는 일이었다. 그가 살인죄를 범한 것은 그의 병의 결과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병을 고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범한 죄는 용서를 받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죄로 인하여 죽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에서 구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죄로부터 고침을 받는다면 우리는 구하여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아직도 죄를 범하고 있다면 우리는 죄때문에 죽지 않으면 안된다.



많은 사람은 그것을 잘 못 알고 있다.


그들은 범한 죄가 사하여졌으므로 구원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만일에 그들의 죄악의 성질이 고쳐지지 않았다면 구함을 받은 것이 아니다.




고통과 번뇌의 숨은 뜻



세상 가운데 있는 고통과 번뇌의 숨은 뜻은 큰 문제이다.


그것은 죄의 결과라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그것을 통하여 우리에게 평화를 주신다. 하나님의 성전에 부르시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우리의 영적 생활과 진보와의 사이에 본질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만일에 고통과 번뇌가 하나님의 피조물을 위하여 유익한 것이 못된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곧 이 땅 위에서 고통을 없애버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또 지금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유익하고 또 우리에게 있어서 단련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알의 종자가 땅에 뿌려지는 것을 보라. 그것이 성장하여 햇볕과 열을 받아 아름답게 되기 위하여 대기 속에서 자라기 전에 땅 속의 어두운 태내에 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런 후에 정해진 시기에 싹을 나게 하고 또 열매를 맺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또한 그런 것이다.




회개가 가장 필요하다



회개는 하늘나라에 들어 가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필요하다(막 3:2).


하늘나라는 미래의 나라는 아니며 이 지상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가장 작은 하나의 죄라도, 또 나쁜 한가지 생각이라도 우리의 희망을 멸하며, 하늘나라 밖에 있게 하기에 충분하다.



작은 죄라고 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마치 병을 일으키는 세균처럼...



우리는 육안으로 세균을 볼 수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의 피해를 입고 있는 것 같이 우리도 볼 수 없는 죄 때문에 화를 입는 것이다. 우리가 평화를 경험하는 것은 죄가운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증거이다.



한 교수가 어떤 때 나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어디에 당신이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나는 대답하기를


"그것은 마치 어떤 것을 먹고서 단맛을 아는 것처럼 나는 내가 구원되어 있는 것을 평화의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어떤 사람은 눈이나 얼음에 상하는 것 (동상을 일으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고 보온의 방법은 취하지 않고서 벗은 발로 얼음 위를 걸어서 발의 피부를 손상시키고 만다.


그와 같이 사람들은 죄가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결합을 파괴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부러진 뼈가 접골되기에 앞서 고통으로부터 구원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죄로 인하여 일어난 고통이 제거되기 전에 우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안된다.


십자가는 천국이다




제 3 장  십자가는 천국이다



참다운 기쁨



나는 때때로 친구들에게 설명하기 위하여 감옥, 고통, 박해 따위의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고통은 결코 고통이 아니다.


만일 내가 정말 고통을 느낀다면 복음을 전도하기 위하여 여러 마을로 돌지 않을 것이다.



사실은 이렇다.


언제든지 내가 사랑하는 구주를 위하여 고통을 당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지상의 천국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어디서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의 기쁨을 나에게 주었다.



나는 언제나 의문을 남길 수 없는 명백한 방법으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통은 내가 그리스도 신자가 되기 이전에는 그야말로 고통이었다.


그리고 지옥 가운데 있는 느낌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내가 회개한 후부터는 고통이 없어지고 말았다.


내가 옥중에 갇혀 있었을 때에는 거기가 옥이 아니고 나에게 있어서는 지상의 천국이었다.


박해 속에서는 박해가 없었을 때보다는 더 큰 기쁨을 가지고,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호사한 생활을 할 때보다 더욱 큰 기쁨을 가졌다.



주님의 임재가 이런 기쁨을 나에게 주고 지상의 천국으로 만든 것으로써 그 누구도 이 기쁨을 빼앗아 갈 자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애무



네팔의 이로무에 가는 길에서 나는 마을을 지나면서 여러번 설교를 하였다. 사람들은 정성껏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이 곳의 길은 실로 겁이 날 정도로 험하였다.


어떤 때는 높은 고개, 때로는 내리막 길 혹은 개천도 건너야 했는데, 이런 여행으로 나는 피곤해 지쳐 있었다.



1914년 7월 7일을 나는 언제나 상기한다.


험난한 여행으로 지쳤고 극도의 굶주림을 겪는 가운데 모질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7마일이나 되는 고개 길을 오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때 무서운 돌풍이 불어 나를 언덕 밑의 한 동굴 속으로 쳐박아 넣었다.


그런데 나는 그처럼 높은 곳으로부터 떨어졌는데도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


그 동굴은 하나님의 애무로 변하였다. 거기에 상처 따위가 있을 수 없다.


그 곳은 낙원이었다.



돌풍은 사랑의 큰 여울이 되었고, 폭우는 은혜의 비로 변했으며, 기갈은 만족으로 바뀌고, 피곤은 청신으로 화했으며 십자가는 평화로 변하였다.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의 여러 모습이 환상으로 나의 앞에 나타났다.



첫째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세워 기도하시던 모습,


둘째로, 굶주리고 목 말라 하시던 모습,


세째로, 채찍에 맞고 가시 면류관이 씌워져 피를 흘리시던 모습,


네째로는 그러한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시던 모습....



그랬기 때문에 골고다의 언덕 길을 올라갈 때에 넘어지셨다.



나의 십자가 따위는 당신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 사랑의 주님이시여, 당신의 십자가의 비할데 없는 사랑과 은혜로 인하여 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금 후에도 받을 것입니다.



나는 이 형언키 어려운 영혼의 평화를 이런 일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하고 무감각한 나의 형제들에게 보여 줄 수 있었으면 하는데 어떻게 그것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감춘 만나로써 그것을 받는 자 외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내가 직접 겪었던 경험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즉 십자가는 그것을 지는 자를 받침해 준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고통이 가득찬 곳에서 평화의 물결 속으로 인도해 가고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를 천국에 이르게 한다.




정부 관리와의 회화



나 :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의 생명을 얻게 하려고 만민을 부르셨다.


그리하여 당신에게 이 복음을 전할 것을 나에게 명령하셨다.


만일 당신이 그에 대한 신앙을 갖지 않는다면 그 날이 되어 지금 내가 당신 앞에 서 있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서서 당신 앞에 펼쳐진 영원한 형벌의 선고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



관리 : 그 때가 오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당신을 옥에 집어 넣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어떻게 당신을 구해 주는가를 지켜 볼 작정이다.



나 : 나는 투옥되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


내가 그런 것을 겁낼 정도라면 여기 와서 설교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취급당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나의 그리스도는 나를 감옥으로부터 해방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나를 죄와 사탄으로부터 놓여나게 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이나 또 언제라도 자유롭다. 비록 당신이 나의 발에 족쇠를 잠그었다 할찌라도 나는 여전히 자유롭다.



관리 : 조용히 하라! 더 이상 말하면 안된다.



나 : 생명이 있는 한, 그리고 나의 혀가 입 속에 있는 한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그칠 수 없다. 족쇠를 풀라. 나는 나의 생명도 버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관리 : (검사관을 향하여) 이제 더 이상 이론할 필요가 없다. 그를 끌어다 옥 속에 넣으라



검사관 : 귀관, 우리가 이 이단자를 옥 속에 넣는다면 결과적으로 그 곳을 더럽히는 일이 될 것이오. 저 자를 괴롭히기 위하여 옥 속에 집어 넣었는데 그는 그것을 기쁨과 위로로 받아 들였소. 그러므로 다른 형벌로 벌을 줄 것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관리 : 그렇다면 우리의 영토 밖으로 추방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


만약 그를 감방속에 넣어 두면 6개월 사이에 다른 죄인들이 모두 크리스챤이 될 가능성이 있다.


독방도 없는 처지니까....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영토 밖으로 쫓겨났다.




그리스도에의 접붙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접붙임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하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생활이 가시로 가득차 있었지만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비로소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이 "나는 이 나무에 열매가 맺을 수 있도록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하였다.


어떻게 하여 그처럼 만들 수 있을까 하고 몇년 후에 찾아가 보았다.


정원사가 그 나무에 접목을 했기때문에 가시 대신 좋은 열매가 맺혀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은혜로우신 주님은 우리를 손으로 붙잡아 열매를 맺게 하신다.


주님은 만인을 위하여 오신 것이며, 내가 지금 이야기 한 나무처럼 죄인을 성도로 변하게 하시는 것이다.



비루지스쾌에 한 도적이 있었는데 그는 많은 사람을 죽였다.


사람들은 그를 가르켜 저런 인간은 도저히 변화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그는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놀랄만한 변화를 일으켰다.



사람들은 변한 그를 보고 "어떻게 된 일인가?"고 물으니



도적은 "이러한 변화를 일으킨 것은 내가 아니고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가 내 생명 속에 들어 오셔서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나는 이 땅 위에도 그가 주시는 변화를 통하여 천국이 오게 한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나는 그처럼 흉악한 살인자였지만 지금은 설교자가 되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한 수렵자가 사냥을 하기 위하여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한 나무에 꿀집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자기의 총을 나무 밑에 놓고 기어 올라가서 꿀을 핥기 시작하였다.


그는 거기에 위험이 숨겨져 있는 것을 생각지 못하였다.



얼마 후 호랑이가 나무 밑에 다가왔다.


그는 "내가 위험한 곳에 있구나...."하고 생각하였지만 "나는 나무 위에 있으므로 위험을 면할 수 있겠지"하고 계속해 꿀을 핥았다.



나무는 강변에 있었으므로 만일 호랑이가 덤벼들면 강속에 뛰어 들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강물을 내려다 보니 거기에는 큰 악어 한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 나는 궁지에 몰려 있구나. 죽을 때가 가까웠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까지라도 여기에 그저 머물러 있어야 하겠다. 그러는 사이에 호랑이나 악어도 가 버릴 것이다"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위험은 곧 닥쳐왔다. 내려다 보니 들짐승이 나무 뿌리를 갉암먹고 있었으며 잠시 후 나무는 악어가 입을 벌리고 있는 쪽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것은 우리의 입장과 흡사하다.


우리들은 숲으로부터 나와서 살고 있다.



한 쪽에서는 악마가 잡아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영은 나무 위에 살고 있으며 우리의 육체 속에 위험이 깃들어 있는 것을 잊고 죄의 꿀을 즐기는 일에 빠져 있다.



만일 우리가 주 안에 있다면 사탄이 엿볼지라도 안전하며 아무도 주님의 품으로부터 우리를 뗄 수 없는 일이다.



주님이 보시려고 하는 열매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보일 수 있는 것으로써 우리의 행위는 우리의 생명의 열매인 것이다.



인도교에서는 착한 일을 행하면 만사가 잘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는 "먼저 착한 사람이 되라. 그러면 선행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예수그리스도와 성경을 통하여 당신은 착하게 될 수 있다.


그 때면 당신은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도적의 회심



나는 어느 때 베-레라라고 불리우는 고원지대의 산림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 때 네 사람의 사나이들이 길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한 사람의 큰 사나이가 긴 칼을 들고 나에게 덤벼들었다.



도망갈 길이라곤 아무데도 없으므로 나는 몬을 내밀었다.


그랬더니 그는 내리치려던 손을 잠깐 멈추고 ㅅㅆ다가 내 어깨에 걸친 담요를 뺏아 가지고 가버렸다.



다시 길을 걸어 한참을 가고 있는데 그 사나이가 다시 나를 부르며 돌아 오라고 외쳤다.


나는 이제 죽었구나 하고 생각하였는데 나의 상상과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그가 나에게 "누군가?"고 묻기에 나에 관한 이야기와 전도를 위하여 여행중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 내용은 그의 마음을 강하게 자극하여 "만일 부자가 아무런 도적질도 하지 않았는데 지옥에서 괴로움을 당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면 셀 수 없을만큼 도적질을 한 나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는가?" 하면서 겁을 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사죄하면서 담요를 되돌려 주었다.


그는 나를 위하여 차를 끓이고 과일을 내놓았다.


그것은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다." (삿 14:14)는 것과 같으며, 주께서 "나의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시 122:5) 한 것과 같았다.



나는 그와 함께 기도를 드렸는데 그는 아주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기의 저고리를 벗어 나에게 깔아 주었으며 한 쪽을 향하여 참회를 하면서 울기 시작하였다.



그 곳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그는 자기가 지난날에 저지른 죄행을 털어 놓았으며 한 동굴속에 있는 수많은 백골을 보이면서 "이것이 나의 죄입니다"하고 말하였다.



나는 그를 불쌍히 여겼지만 내 자신을 생각할 때 감사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만약 주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나의 뼈다구도 그 속에 쌓였을 것이다.



그 후 나는 그에게 한 도적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주님이 "오늘 너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전하고 함께 기도하였다.



그는 마음속에서 "주님이 자기도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믿으므로써 위로를 받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서 세례를 받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언젠가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으라고 권한 다음 평원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현재의 기쁨과 평화



나는 인도교의 한 사두와 만났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오랜동안 요가를 실행하고 있었다.



나는 얼마동안이나 그것을 실행했는가고 물으니 13년간을 했다고 대답하였다.


그는 성실한 진리탐구자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기쁨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그렇게 노력을 들이고도 기쁨을 얻지 못했다면 무슨 유익이 있는가?"고 말하였다.



그는 대답하기를 "우리는 구원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을 따름이지 이 세상에서 기쁨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래세에서의 기쁨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나도 인도교도였을 때는 항상 그렇게 생각하였다.


즉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죄와 슬픔, 괴로움과 더불어 살게 마련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 세상에서 주님이 기쁨과 평화를 주신 증거를 보고 있다.




평화냐? 사랑이냐?



때때로 사람들이 나에게 "당신은 언제나 평화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평화는 우리의 영혼의 목적이다.


우리는 금전을 얻기 위하여 많은 고생을 하며 평화를 얻기 위하여 육체의 쾌락을 구한다. 그러나 참된 평화는 오직 주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사랑의 하나님 안에서만이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이 그 평화를 얻었을 때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떨어져 있을 수 없다.


당신은 그 사랑을 느낄 것이며 또 남에 대한 사랑도 느끼게 돌 것이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면 누가 만족지 못한 것을 남에게 이야기 하려고 애쓰겠는가?


제일 중요한 일은 우리가 먼저 평화를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 후에 우리는 그것을 증거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실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에게 있는 놀라운 평화



수웨덴에서 나는 여러 곳을 여행하고 돌아 왔다는 한 사람을 만났다.


나는 그에게 무엇을 구하여 그렇게 여행을 했는가고 물었다.



그는 대답하기를


"나는 쾌락과 희열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나라, 병과 슬픔이 없는 나라, 더위와 추위가 없는 나라를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찾아내지 못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내가 찾아낸 평화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 평화는 어떤 특정한 나라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찾았다고 말하였다.


그런 후에 "나는 이 평화를 입증하기 위해 여행을 합니다"하고 말하였다.




주님은 백배를 주신다



나는 회개를 한 후에 유혹을 받았다.


먼저 나는 세례를 받지 않아도 크리스챤으로서 생활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가족들의 박해때문에 먼 곳에 가서 비밀히 세례를 받을까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였을 때 나의 마음속에서 평화를 볼 수 없었다.


비록 부모와 모든 것을 버렸지만 떳떳이 말하고 주님을 따르지 않으면 평화를 받을 수 없었다.



나의 소신대로 행하였을 때 주님은 나의 요구를 충만케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실로 백배나 은총을 베푸셨다.




비록 혀로 말할 수는 없어도 생활이 사실을 말한다.



어떤 날 명상과 기도를 드리는 중에 그리스도가 임재한 것을 강하게 느꼈다.


나의 마음은 하늘에 오른듯한 기쁨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 때 나는 슬픔과 괴로움이 가득찬 이 세상 가운데 큰 기쁨이 숨겨진 무진장한 광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에 대해서 이 세상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경험한 사람도 적합하게 또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가 경험한 것을 그대로 인식하게끔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기쁨을 남과 나누고 싶은 절실한 생각에서 가까운 이웃 마을로 향해 떠났다.


그 때 나의 건강치 못한 육체와 간절한 소원과의 사이에 영육의 싸움을 일으켰다.



영혼을 갈 것을 원하였고, 육체는 뒤로 처지려고 했으나 드디어 영혼이 이기어 병든 몸을 이끌고 마을로 갔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가 나에게 임하였던 경험을 이야기 하고 그들도 이같은 경험을 얻도록 종용하였다.



그들은 내가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찾아와서 이야기 할 때에에는 반드시 내적인 어떤 강요에 이끌려 그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리스도가 내 마음속에 일한 경험을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들에게 통역하여 그들은 신앙면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혀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지만 생활이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천국이다




제 4 장  십자가를 지는 자



순교자 칼타-싱



이 청년은 파치아라 주의 썬다-할나무싱의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크리스챤이 되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여러가지 수단을 다 하여 그것을 막으려고 하였다.



아들 : "나는 곳곳을 다니며 구원의 길을 찾았으나 아무데서도 찾아내지 못했는데 이제야 드디어 그의 말씀을 통하여 주예수 그리스도가 구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나를 위하여 생명을 버리신 그로부터 떨어질 수 없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아버지는 그의 사랑하는 약혼녀를 불렀다. 그녀는 바구왈.궁와루라는 이름을 가진 아름답고 정숙한 처녀였다.



그녀는 와서 말하기를



처녀 : "오! 당신은 행운을 타고난 분입니다. 당신은 위안과 젊음과 지위를 생각지 않습니까? 잘 생각해 보십시요. 그렇지 않으면 후일에 후회할 것입니다" 하며



칼타-싱은 "당신은 나를 쓰러뜨리는 자가 되지 말아 주십시요. 위안이나 젊음, 지위 따위는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나에게 영원한 나라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리를 주셨습니다. 당신은 나와 함께 이 특권을 얻고자 하는 생각이 없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녀는 대답하기를


약혼녀 : "나는 이미 나의 마음을 당신에게 바쳤습니다. 당신도 마음을 나에게 주실 수 없습니까?"



칼타-싱은 "오! 그대여, 나의 가슴 속에는 오직 하나밖에 없소.


그리고 나는 이미 이것을 한 분(그리스도)에게 바쳐 버렸소. 이제 어디에도 당신에게 줄 딴 마음이 없소. 당신도 그 마음을 나에게서 도로 찾아 그에게 바쳐야 합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녀는 이 말을 듣고 울면서 그 곁을 떠나 그의 아버지에게 모든 일을 이야기 하였다. 아버지는 크게 노하여 칼타-싱을 불러 입고 있는 옷을 전부 벗기고 집을 떠나라고 명하였으며 그로부터 친척 모두가 그와 무곤계하다는 것을 일러 주었다. 그것은 12월 밤의 일이었다. 거기에는 어떤 도움도 있을 수 없었고 오직 명령에 복종할 이외에 별 도리가 없었으므로 그는 벗은 옷을 아버지의 발 앞에 놓으며 말하였다.



"나는 지금 이 옷을 벗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의가 나의 나체와 죄를 전부 감싸주고 있기 때문입니다."하고 아버지의 명령대로 집을 떠났다.



2,3일간은 숲속에서 지냈다.


추위와 굶주리매문에 고생스러웠지만 그의 마음은 평화로 충만해 있었다.



상상해 보라! 큰 저택과 호사스런 생활속에서 자란 그는 가난이라든가 결핍이라는 것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숲 속에서  추위와 배고픔으로 떨고 있었으니 그 괴로움이 얼마나 컸겠는가?



음식을 얻을 방법도 없었다. 사흘째 되던 날 그는 어떤 집으로 찾아가서 노동을 해 주고 먹을 것과 옷을 구하였다. 그로부터 그는 사두의 모습을 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티?으로 갔다.



그 도중에 그는 라바루산키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으며 티?어를 열심히 공부하였다.



이윽고 복음을 전하면서 티?의 다시강그 거리에 도달하여 거기에서 3일간 전도를 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적대시하게 되었다.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그를 꽁꽁 결박하여 마을 밖으로 쫓아 내었다. 그런데도 그는 며칠 후에 다시 그 곳으로 되돌아 왔다. 그리하여 라마는 드디어 그에게 대해 사형을 선고하게 되었다.



그 말을 듣고 칼타-싱은


"당신들은 좋을대로 나에게 할 수 있소. 그러나 나는 이 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오. 왜냐하면 주님의 크신 사랑은 당신들이 진리를 믿고 멸망을 벗어나기 위하여 나의 피를 이 곳에 뿌리도록 원하기 때문이오. 오! 라마여, 회개하고 주님을 믿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이와 마찬가지로 영원한 죽음의 선고가 당신에게 내려질 것입니다"하고 말하였다.



그 후 그들은 그를 형 집행장소인 언덕으로 끌고 갔다.


그들이 언덕으로 올라 갈 때에 그는 말하였다.


"나는 다시 이 언덕을 내려가지 않을 것이지만 사흘 후에는 나의 사랑하는 주님이 계신 하늘나라에 오를 것입니다."



그 장소에 이르니 야구(티?소)의 가죽으로 그를 결박하여 자빠뜨렸다.


아주 꽁꽁 묶어 햇볕에 쪼이게 하였다.


가죽은 물에 축여져 있었으므로 햇볕을 받자 점점 말라가며 조여들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사흘동안 고통을 당하는 동안에 충실한 주의 종은 찬미를 부르며 그의 적을 위하여 기도를 계속하였다.


고통중에서 그렇게까지 기쁨에 차 있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깜짝 놀랐으며 어떤 사람은 "그에게 여러 신 가운데 한 신이 옮아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였다.



나흘째, 그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이 세상을 하직하고 영원한 휴식처에 들어가게 될 무렵이 되자 그는 한 쪽 손만 자유롭게 하여 최후의 글자를 쓸 수 있도록 하여 달라고 원하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허용하였으며 그의 손에 연필을 쥐어 주니 그는 자기의 성경책에 다음과 같은 시를 적었는데



그것은 지금도 라마교 서기의 소유로 남아 있다.



[그는 나에게 생명을 주셨다. 그 생명은 그의 것이었다. 진리는 이런 것이다. 나는 어떠한 의미에 있어서도 그 은혜를 갚지 못하였다.


만약 내가 그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내 생명을 천번이나 희생하였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나의 친구들을 위하여 오직 한 번 뿐이 아니고 백.천번 죽어도 좋다.


나는 그에 대한 내 사랑이 인도의 부인이 죽은 남편의 시체와 함께 불 살라지기를 요구하는 그 요구에 결코 못하지 않을 것을 원한다.



다시 만날 수 없는 남편을 위하여 그녀들이 그렇게까지 한다면 하물며 생명의 주시며 살아계신 주님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할 것인가? 나에게 있어서 인도의 부인이 원하는 것보다 약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같은 글을 쓴 후에 사람들을 향하여 말하였다.


"당신들은 크리스챤의 죽음을 보려고 서 있는 것입니다. 가까이 와서 잘 보십시요. 죽는 것은 크리스챤이 아니고 사망이 여기서 죽는 것입니다. 오, 주여, 나의 영혼을 받으소서. 그것은 당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과 함께 영원한 안식처로 갔으며 우리에게 하나의 모범을 남기고 사라졌다.


내가 파치아라의 정거장에서 이 사실에 이야기할 때 한 신사가 서글픔을 참지 못하며 우는 것을 보았다.



후에 들으니 그는 카타싱의 아버지였으며 그는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아! 나는 그가 그렇게 헌신적인 크리스챤인줄은 몰랐소. 그런 줄을 알았다면 그처럼 심한 취급을 하지 않았을 것이요."



그의 아버지는 그 후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순교를 통하여 몇 명의 신자가 생겨나게 되었다.




순교자 구루 바와도샤



카일울라 목사가 아프카니스탄에서 순교한 이 사람에 관해서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그리스도 신자가 된 후에 그의 가족들이 있는데도 돌아갔다. 가족들은 처음에 애정으로 대하였으나 차츰 그리스도를 부정하면서 회교에 복귀할 것을 강력히 권하였다.



그러나 그는 늘 되풀이 하여 말하기를


"나는 그리스도교 신자입니다.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살기보다는 차라리 그를 위하여 죽는 편이 낫습니다."고 하였다. 그 후부터 가족들은 칼로 그를 찌르고 베이며 괴롭혔다.



그러나 그는 기쁨에 찬 모습으로 그들을 위하여 축복의 기도를 계속하였으며 끝내는 죽음에 이를 때까지 기도를 쉬지 않았다.



독자 여러분!


반성할지어다. 그리스도에 대한 봉사와 증거를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몸과 마음과 재물뿐만 아니라 생명까지도 바친 것이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을 바쳤으며 또 무엇을 바치려고 준비하고 있는가?



지금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에서 이들과 함께 있어야 할 기회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생애는 곧 끝날 것이며 다시는 여기에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도적들에 대한 한 친구의 사랑



어느 때 나의 친구 한 사람이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세 사람의 도적이 집에 침입하여 물건을 ?쳐가지고 사라졌다.



그는 도적들을 위하여 기도를 드린 후 그 뒤를 쫓아 가서

"당신들은 어떤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당신들이 필요한 것은 모두 가져가시오." 하면서 여러가지 물건들과 먹을 것을 주면서


"당신들은 아마 굶주려 있을 것이므로 이것으로 요기를 하시오."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경책 하나를 주면서


"이것을 받으시오. 다른 무엇보다도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하였다.



이들중 한 사람은 그 후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으며 다른 두 사람도 도적질을 청산하고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기도는 감옥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다.




다른 뺨을 돌려대다



나는 한 설교자와 함께 중앙시장통을 지나 한 물비(인도의 회교법학자)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그는 내가 설교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하였으나 서서 엿듣고 있었다. 그러나 곧 노한 표정으로 나의 뺨을 때렸다. 그래서 나는 다른 뺨을 돌려 대어 또 다시 치게 하니 그는 부끄럼을 느껴 잠자코 있었다.



밤이 되자 물비는 한 사람을 내 동무인 설교자엑 보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발 부탁이니 사두를 좀 만나게 해 주십시요. 나는 나의 과오를 용서 받아야 되겠습니다. 통 잠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때 먼 곳에 가 있었으므로 내 동무는 아침까지 기다려서야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이러한 내용을 전해 주면서 "물비가 당신과 식사를 함께 하려고 초대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영광이 하나님에게 있을찌어다.


주님은 그의 마음을 완전히 변화시킨 것이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산 증인이 될 수 있는 가망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십자가는 천국이다




제 5 장  한 구도자와 살아계신 그리스도



한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호사를 다 하며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오직 하나의 불행은 자식이 없는 것이었다. 그는 친구나 아내를 보고 "제발 나에게 아들이 생겨 재산을 물려 주고 가문과 명예를 이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 주시오"하고 말버릇처럼 이야기 하였다. 얼마 후 하나님은 그러한 기도들에 응답하여 똑똑하고 잘생긴 아들을 주었다.



부모는 이 귀여운 아들을 위하여 많은 계획을 세웠으며 그들의 기대와 희망은 무한히 컸다.


어린아이가 여섯살이 되었을 때 부친은 그의 교육을 위하여 특별한 계획을 세웠으며 그것이 십 오세까지 계속 되었다.


가정을 위한 과학공부도 열심히 가르쳤다.



아들은 18세가 되어 결혼하였다. 신혼부부는 평화롭고 유족한 생활을 하였으며 인근 사람들은 그들을 모범적인 부부로 칭찬하였다.




불안정의 세상



그들 부부는 이 세상의 모든 쾌락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인간생활 가운데 있는 어떠한 슬픔이나 걱정도 경험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결혼하여 몇달 후에 남편은 큰 파산을 당하게 되었다.


그를 그렇게 사랑하던 부모는 호열자병으로 죽고 그 재산은 파산되고 말았다.


한편으로 부모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데 도적떼가 몰려 들어 남아 있는 고귀한 물건들은 모조리 약탈하여 갔다.



번영은 친구를 만들고 역경은 그들을 시험한다.


이러한 변화를 당하자 평소의 친구들이 하나 하나 그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는 실망속에서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오! 나는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어디에 가야 하나? 얼마 안되어 어린애가 태어날 것인데 그의 탄생을 나는 내 부모가 나를 낳았을 때 기뻐한 것처럼 기뻐하며 행복을 느낄 수 없다.


또 태어나는 어린애를 위해 나의 양친이 한 것처럼 해 줄 수 없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우리는 얼마나 불행한 것들인가!"하며 울부짖었다.



선량한 그의 처는 남편이 슬픔과 괴로움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애정이 담긴 손길로 눈물을 씻어 주며 위로하였다.


"사랑하는 당신이여, 울음을 그치고 슬픔을 거두시오. 오직 하나님을 믿으시오. 주님이 지금 우리에게 하신 일은 무엇이든 우리를 위해 좋은 일이겠지요. 또 어떤 방법으로 장차 우리를 인도하시든간에 반드시 우리를 보다 좋게 하기 위하여 하신 것임은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낙망치 말고 남자답게 행동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어떤 날 오후 이 불우한 부부에게 어린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되도록 잘 보살폈으며 아내도 돌봐 주었는데 불행하게도 어린아이는 다음날 죽고 말았다.


그는 어린 것의 장사를 치르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아주 무의식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는 냉수를 갖다 처의 입을 추기고 여러모로 극진히 간호를 하였다. 한참 후에야 처는 의식을 회복하여 눈을 떴다. 남편은 겹친 슬픔으로 지쳐 있었고 처도 극도의 쇠약과 피로로 서로 말을 건널수도 없어 그저 사랑과 사모의 눈을 마주칠 뿐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처의 눈은 다시 뜰 수 없게 영원히 감기고 말았다.



불쌍한 남편이 겪는 이같은 타격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기절하여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 상태가 얼마동안이나 계속되었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이웃에 사는 한 사람이 마침 그 곳을 지나다가 그가 찬 땅바닥에 혼자 쓰러져 무의식 상태에 있는 것을 보고 친척들에게 알렸다.


이윽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어 처의 장의준비를 하였다.



그리하여 관이 장지를 향해 갈 때 남편도 뒤를 따랐으며 묘에 이르자 남편은 통곡을 하며 부르짖었다.


"나와 나의 모든 슬픔과 고통이 처 대신 파묻히기를 바란다! 나의 친구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나를 두고 가버렸다. 아아! 나는 얼마나 불행하고 불쌍한 인간인가! 나는 외토리로 이 땅 위에 남게 되었다."



이렇게 부르짖으며 몸부림치던 그는 끝내 기절하여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주위 사람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사람들은 그를 위로하며 일으켜 집으로 부축하여 갔다. 얼마 동안이 지난 후에 사람들은 그를 동정하여 위로하며 말하였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니 이제 더 번뇌하면 무엇하겠나? 어차피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간에 다 당하는 일이 아닌가?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을 뒤로 두고 영 가야 하는 것이니까..."




살아 계신 그리스도



그런데 이 사람에게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얼마 후 그는 종교적인 지도자에게로 찾아 가서 종교적인 진리를 열심히 배웠다.


그렇지만 이같은 모든 일도 고뇌에 잠긴 그의 마음을 만족시키고 평화롭게 할 수가 엇었다. 그리하여 그는 혼자서 밀림으로 들어가 동굴 속에서 살며 온 마음을 기울여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오오! 나의 주시여, 나를 이 세상에서 데려 가시든가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신다면 당신의 진리와 실재를 직접 체험하게 하소서. 그 때에야 나는 새로운 삶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는 간절한 생각으로 하나님을 사모하며 열심히 기도를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마 7:8) 하는 하나님의 약속이 그의 기도에 대하여 응하여졌다.



어떤 날 이른 아침 그는 동굴 입구에 앉아 자신의 일을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때마침 한 사람이 동굴쪽으로 가까이 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이 사람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였다.



"이 사람은 아마 나처럼 이 세상 살림에 지쳐 어딘가 쉴 곳을 찾아 밀림속에까지 들어온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참된 헌신자로 명상하러 오는 것일까? 내가 살고 있는 이 동굴이 이전에는 이 사람의 것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은 나그네로서 길을 잃었거나 또 자기의 잃은 얄이나 염소를 찾아 다닐지도 모른다."



틀림없이 그의 행색은 이상한 데가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나그네는 동굴로 다가 왔으며 실망에 차 있는 동굴주인(구도자)에게 큰 사랑과 동정을 가지고 인사를 하였다.



그는 곧 일어나 나그네를 정중히 맞으며 땅에 깔아 놓은 담요 위에 앉을 것을 간청하였다.



구도자 : 미안하지만 당신은 누구시며 또 왜 여기에 오셨으며 어디에 살고 계신지요?


영원의 그리스도: 당신은 내 이름의 뜻도 알 수 없습니다. 나는 참된 목자며 내가 잃은 양을 찾아서 구원하기 위해 하늘로 부터 내려 온 것입니다(요 3:13).



진리의 탐구자인 그는 그 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그의 인격과 말씀은 그 마음에 길고 놀라운 인상을 주었다. 그리하여 그의 어둡던 마음은 이 나그네의 영광에 빛나는 임재로 마치 자기는 방황하고 있는 양으로 참된 목자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구도자 : 언제부터 당신은 이런 일을 하셨습니까?


영원의 그리스도 : 태초로부터..


구도자: 정말입니까? 그럼 당신은 예언자라고 생각됩니다. 부탁이니 제발 나에게 당신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해 주시요. 그리고 나를 축복하여 당신의 제자로 삼아 주십시요.




그리스도는 영원하시다



영원의 그리스도 : 나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와서 육신으로 나타난지 아직 2천년밖에 되지 않지만 나는 영원으로부터 존재해 있는 영원의 아버지(사9:6, 요14:9)요, 나는 의의 왕, 평화의 주 또는 제사장이오. 아무도 나처럼 주이며 동시에 제사장일 수는 없소. 이 세상의 경우처럼 나에게는 선조를 기록한 족보는 없는 것이요.(히 7:2-3, 눅 1:30-36).



육신으로 이 세상에 내려 오기 전에도 나는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났던 것이오. 나는 그들을 위해 축복하였고(창 14:18-18, 요 8:56-59, 단 3:25) 지금도 당신을 위하여 평화와 휴식과 영원의 생명을 주려고 나타난 것이오.



(이 현실을 충분히 느끼고 또 깨달았을 때 진리의 탐구자는 곧 자기를 영원의 그리스도의 발 아래 내던져 절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구도자 : 오! 나의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에야 나는 당신으로 말미암아 나의 생명의 주를 찾았습니다. 이제 나는 땅 위에서의 손실을 문제삼지 않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로부터 나는 당신의 아들이며 종입니다. 무슨 까닭에 당신은 이처럼 오랜동안 당신의 허약하고 불쌍한 종으로부터 그 모습을 감추셨습니까?




고통이 없으면 얻을 바 없다



영원의 그리스도: 실제 나는 지금까지 당신에게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당신은 이러한 계시를 받을만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었던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내가 인간만의 마음과 영원에 주는 내적 계시는 외적인 나타남보다 더욱 근본적인 것이다. 당신이 겹친 불행속에 쳐박혀 있는 사실조차도 특별한 길(슬픔과 고뇌)을 통하여 예비함을 가지게 한 것이며 그로 인하여 당신은 진리의 탐구자가 되어 나에게 가까이 오게 된 것이다.



이같은 방법에 의하여 영혼의 수용성이 나의 임재로 넓혀지고 각성되어 하나님을 위한 자각과 기쁨속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고통과 고뇌는 때때로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결함을 깨닫게 하며 부족함이 채워지도록 구하게 만들고 드디어는 나에게서 그의 요구의 모든 것이 만족케 된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구도자 : 오!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내 몸의 모든 숨구멍이 입이 되었다 할지라도 당신에 대한 감사의 뜻을 충분히 나타낼 수 없습니다.



나의 구주시여, 당신은 입술의 찬미를 요구하시지 않고 당신과 함께 있는데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부터의 찬미와 감사를 기뻐하시는 것을 압니다.



나의 주시여, 내가 감히 한가지 질문을 드리더라도 나의 버릇없는 짓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의 생애에 있어서의 이 존귀한 기회가 이 세상 합리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주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까? 나는 이 계시가 객관적이며 더우기 진실이란 것을 충분히 믿고 있습니다.




계시는 객관적



영원의 그리스도: 나의 아들이여! 이 세상의 박식한 사람들이 말하는 것에 대하여 심뇌하지 말라. 그들의 대부분은 불경건하고 자기주의인 까닭이다. 그들이 그처럼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소경을 이끄는 소경의 지도자인 때문이다.


비록 창조자는 만물을 만들었지만 피조물은 신이 아니며 그의 존재의 일부분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실재와 아주 떨어져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피조물은 객관적인 형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주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가고 말한다면 결코 그런 것도 아니다.



실제 나의 종들이 가진 신임재의 영적인 경험은 객관적이며 진실한 것이며, 의심할 것도 없이 나와의 친한 교제의 결과에서 온다.




참 부 자



구도자: 오! 나의 주여, 오늘 내가 얻은 축복을 나의 연약함과 등한함으로 잃는 일이 없이 끝까지 충실하게 간직할 수 있도록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시고 나로 하여금 당신의 참된 종으로 당신 가운데 있게 하고 또 당신을 위해 항상 살 수 있도록 하옵소서.



영원의 그리스도 :  항상 깨어 기도하는 것이 근본의(根本義)다. 만약 그대가 지상의 재산을 잃는 일이 있어도 결코 걱정하지 말라. 그것은 어차피 없어지는 것이니까.



그러나 그대가 가지고 있는 참된 재산은(은태) 그대 자신이 잃지 않는다면 아무도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그대는 보트에 타고 홍수로 뒤끓는 물 위를 떠 가는 것과 같다. 격심한 바람과 큰 파도가 배에 부닥쳐 배는 가라앉았다.



타고 있던 사람은 소란을 피운 끝에 헤엄을 쳐서 안전한 강가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던 재물중 주머니 속에 있던 얼마 안되는 돈 이외는 모두 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런데 강가에 오른 그는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던 도적들에게 가지고 있는 것을 몽땅 뺏겼다. 그러나 그는 그것때문에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마음 속에 인간이 결코 뺏아갈 수 없는 참된 재산과 평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요 14:27).



그러므로 그는 주를 우러러 보고 기쁜 마음으로 찬미를 부르며 주가 그에게 명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 그곳을 떠났다.



그처럼 그대도 역시 지상의 재물과 명예를 잃은 것으로써 참되고 영원한 재산을 받을 수 있도록 마음이 비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보라,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그러므로 가서 "나의 적은 양을 먹이라."(요 21:15).



진리의 탐구자는 존경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영원의 그리스도의 발 앞에 엎드려 머리를 숙었다.


그리스도는 그를 축복한 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님의 일을 위하여 전심전력을 다 하여 일하였다



십자가는 천국이다




제 6 장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안다



만약 사람이 자기 자신을 안다면 - 그가 누구이며 또 무엇인지를 - 자신이 그 모습을 닮게 만든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1:19).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자기를 안다는 것이 이 세상의 지식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여러가지 주의나 이론은 때때로 사람들을 진리로 이끌기보다는 오히려 멀게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학문이나 지식은 내적인 소리와 감각을 말살시키는 원인이 되며 기교적인 딴소리를 만들어 낸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항상 사람을 그릇되게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참된 지식은 기도와 명상에 의하여 얻어진다.


왜냐하면 그러한 때에 주님 안에 깊이 들어갈 수 있으며 하나님은 그의 마음 속에서 은밀하게 이야기 하시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 세상의 지식은 교수에 의하여 얻어지며 영적인 지식은 하나님의 빛에 비치어 직감에 의하여 주어진다.



영적 지식과 영혼의 힘과 내적감각 - 그것은 죄때문에 감각을 잃고 죽어 버렸다- 그것은 다시 각성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곳에 한 소경이 있었다.


그는 점자성경을 읽으려고 하였지만 심한 추위때문에 손가락 끝이 얼어서 감각을 잃고 한자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불 옆에 가서 손을 쪼였다.


얼마 후 그의 손은 녹아져서 점자를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이처럼 기도와 명상에 의하여 의의 태양(말 4:2)의 빛과 성령의 불이 마음 속에 역사하여 힘을 주고 또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이같이 하여 우리는 자신과 하나님을 알고 또 그의 생명을 주시는 임재를 영원히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중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에 성령은 이 세상의 말로써 한마리도 말하지 않아도 직접으로 영적생명의 숨은 뜻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또 계시하신다. 우리가 영에 의하여 거듭날 때에 영적인 말이 우리의 모국어가 되고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말을 자연히 배우는 것처럼 주님이 생각하시는 것을 힘들이지 않고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말은 그저 외측의 뜻을 전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 어린아이처럼- 말없이도 하나님이 나타내시려는 뜻을 이해한다. 예를 들면 만약 우리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한 어린아이에게 범어의 이스와르란 것은 GOD(신)을 의미한다고 가르쳤다고 하자. 그러나 신이란 말의 뜻을 알리려 하 ㄹ때 무슨 말로 하면 좋겠는가? 그것은 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어린이의 마음 속에 들어온 것으로써 이해하게 된다.



해는 그 자체의 빛에 의하여 볼 수 있다.


마치 그처럼 의의 태양도 오직 그 자신의 빛에 의하여서만 볼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영적인 시각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소경은 보아도 보지 못하여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마13:13).



그리스도가 하나님임을 아는 것은 참된 뜻에서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수성(獸性)만으로는 아무리 완전하다 해도 이런 사실을 알기에는 불충분하다. 죄가 깊고 타락한 인간은 그리스도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중생한 사람, 또 새로운 피조물(골 3:10)이 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인 그를 알고, 또 그 모습을 닮은 내 자신을 아는 근본 요소가 된다. 죄때문에 인간의 모습은 손상되었으므로 다시 지음을 받아야 비로소 그의 주되는 조물주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죄에 의하여 참된 품위와 인간다움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죽었다.


그래서 공기처럼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게 되었으며 죽은 사람은 주위에 충만한 공기를 느끼지 못하고 호휴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된 것이다.



그처럼 죄로 죽은 자는 하나님을 모르고 기도의 호유도 기쁘게 여기지 않으며 신령과 진리로 그리스도를 예배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창 2:7).


그리하여 생령이 되었다.


그러나 죄에 의하여 생령은 죽었다.


그러므로 주님은 다시 새로운 생명을 사람의 코에 불어 넣는 것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것이야말로 영원의 생명이다(요 20:22).



인간은 하나님을 향하여 참된 회개를 하고 전향하므로써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중의 위험이 있다.


즉, 하나님 앞에서의 기쁨에 넘치는 축복을 빼앗기든가, 또는 하나님 앞에 있는 그 사실과 평화를 마치 자기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잘못 생각하게 된다.



실제 하나님을 알고 참된 생명을 얻는데는 인간이 제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눅 9:23-24).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다 하기 위하여 자기의 소원과 의지를 버리는 자는 충만하게 채워지며 그의 영혼은 조물주 안에서 요구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지게 된다.



이에 반하여 제 자신을 만족케 하려는 자는 욕망하는 것과 수용성을 함께 잃게 된다.


바꿔서 말하면, 하나님을 찾기 위하여 제 자신과 모든 욕망을 버리는 자는 하나님을 찾고 요구하는 모든 것도 찾게 되지만 자기를 버리지 않는 자는 스스로 영적 자살을 하는 자이다.



만약,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불순종과 어리석음 때문에 그 모습을 손상케 하였다면 탕자와 같이 제 자신을 상하게 한 것이 된다. 그처럼 자신이 스스로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할 때에는 그가 남을 해치고 있는데 대하여 무감각하여 조금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고전 12:12-26).



그가 살아 있고 각성하여 있다면 자신과 남을 해치는 대신에 자기와 남의 영적 생활을 개선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한다.


이렇게 하여 그는 그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아무도 괴로움이나 십자가를 면할 수 없다.


그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데 필요하다(시 23:4).


그러나 참된 기독신자는 죽음의 십자가를 진다 할지라도 살아 있으며 박해 속에 있어도 겨울철의 나무가 죽은것처럼 보여도 새 봄이 되면 새싹이 나듯이 진실로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고후 4:8-10, 6:4-10).



슬픔과 괴로움으로 그 생활은 하나님 속에 숨겨져 있어도 마치 멕시코만의 난류가 대양을 가로지르는 조류가 되어 따뜻한 물결이 먼 북방의 나라들을 추위로부터 지켜주듯이 하나님의 사랑의 조류와 성령의 물결은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고 떠바쳐 기쁨과 만족을 갖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자신을 알게 되면 그 때 비로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인 것을 깨닫게 되므로 결코 오만하거나 잘난척 하지 않는다.


비록 그들이 남보다 훨씬 뛰어나 있다고 해도 그렇다.



인간의 영혼은 육체보다는 훨씬 뛰어나서 생각하거나 행동하는데 있어서 기계 역할을 하는 두뇌를 통하여 스스로 일할 수가 있다.


그처럼 중생한 사람이 주의 뜻을 따라 남에게 봉사하려 할 때 성령은 그 사람들의 생명을 통하여 역사하며 또 그 자신을 나타내신다.



의의 태양도 또한 그같은 인격을 통하여 계시하신다.


그러나 달이 태양으로부터 빌려온 빛의 반사로 어둠을 비추는 것이지만 어떤 때에는 태양과 지구와의 사이에 있어 어둠을 끼치는 것처럼 주의 종들도 이세상 사람들과의 사이에 있어 그들에게 어두움을 주고 주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노력하여 열심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


주님은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냐(마 6:23)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눈은 몸의 둥불이어서 비록 작지만 크고 작은 것, 멀고 가까운 것도 볼 수 있다.


만약 눈 속의 작은 동자가 백내장으로 볼 수 없게 되면 어둠은 더해지고 사방의 아무 것도 못보게 된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빛이 우리 안에서 어둡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마 5:16).


언제나 사람들 앞에 빛을 비추고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숭배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또한 진주를 캐는 잠수부가 바다속에 잠입하여 잠시동안 숨을 멈추고 있지만 맑은 공기와 연결되어 있는 관을 통하여 물위의 공기를 호흡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이 세상 가운데 있어도 세상에 속한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바울이 말한 것처럼 "이 세상에 대해서는 죽은 자"며 "하나님에 대해서는 산 자"이므로 이 세상의 공기를 마셔서는 안된다.


우리는 기도의 관을 통하여 성령을 호흡함으로써 영원히 살 수 있다.



이처럼 하여 우리는 자신을 알아야 하며 우리가 스스로를 알 때에 그 요구도 또한 알며 전심전력으로 하나님을 알려고 최선을 다 할 때 그 가운데서 우리의 모든 요구는 충분히 채워지며 영원히 만족하게 된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 또 그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보았고 사랑의 수육자 그리스도는 아무에게도 그를 나타내신다(요 17:25, 마 11:27)



십자가는 천국이다




제 7 장  개 괄 (槪 括)



자연계는 하나님에 대한 찬미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철학자나 박학한 사람들이 쓴 글을 이해하는데는 우선 그들의 전문용어를 알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글인 자연을 이해하는데는 시력만으로 충분하다.


"오! 현명한 자여, 눈에 보이는 푸른나무 잎들을 보라.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책장들이다"



강, 개울, 샘, 산과 들, 과일, 꽃 등은 완고한 마음도 녹이며 그들의 귀도 열리게 만든다.


피조물의 전체는 소리높여 하나님을 찬미하고 있다.



이런 것을 보고 한 사람이 불행한 인간세계의 상태를 탄식하며 말하였다.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의 피조물은 웃고 또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데 인간은 긴 혀가 주어졌건만 묶이운 채로 침묵을 계속하고 있다.



오! 인간이여, 너는 날카로운 혀로 쓸데 없는 말을 지껄이지만 너의 창조주를 찬미하는 말은 없다.


화(禍) 있을진저, 몇 겹으로 닥칠 화 있으리로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다



이 존귀한 책이 나를 그 저자(하나님)에게 소개한 지 약 25년이 되지만 그동안 나는 언제나 나의 구주는 이 책속에 기록된 그 분과 꼭 같다는 것을 알았다. 언어의 곤란이나 본문 비평은 조금도 그 진리를 감추지 않고 나의 마음속에 생명을 주는 영향을 방해치 않았다.


그것은 이 말들이 영이며 생명인 때문이다.



성경을 읽어가는 중에 과거에는 생각한 일도 없고 몽상조차도 하지 못한 영원의 부(富)를 발전하고 그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권해 읽도록 할 때 그 축복은 나에게나 그들에게 항상 더해가는 것이다.




생 명 수



1922년 내가 한 친구와 팔레스타인을 여행하고 있을 때에 유명한 야곱의 우물에 이르러 감미로운 물을 마셨는데 기분이 아주 청신하였다.



그런데 한 두 시간을 경과하니 다시 목이 말랐다. 그 때 주님의 말씀이 강하게 내 마음 속에 나타났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나는 마치 그처럼 인간이 판 우물에서 물을 마신 까닭에 다시 목말라 왔던 것이다. 나는 겸손과 감사를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내 마음을 그리스도에게 바친 후 그가 주신 생명의 물을 마시고 나서부터 20여년간 나는 결코 목마르지 않았다. 그는 참으로 생명의 샘이신 까닭이다.




요한복음은 생명의 빵이다



내가 중부지방을 여행하고 있을 때에 몇 사람의 미신자(未信者)를 앞에서 전도하였다.


이야기를 마친 후 나는 그 사람들에게 예수그리스도에 관해서 더 알기 위하여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이 없는가 물었다.



그 중 기독교에 반대하는 한 사람이 나와서 요한복음을 집어 들고 2,3절을 읽은 후 찢어 버렸다.


그것은 기차 안에서 된 일인데 2년 뒤 나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그 사람이 요한복음서를 찢어 창 밖으로 던진 바로 그 날 진리를 탐구하는 한 사람이 철길을 따라 걷고 있다가 철로 옆에 흩어져 있는 복음서의 한 조각을 주워 읽어 보니 거기에는 영원의 생명이란 글이 있었다.



인도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고 말한다.


그런데 영원의 생명이라니 무슨 말인가? 그는 다른 조각을 주워 읽으니 생명의 빵이란 말이 적혀 있었다. 그는 이 말들에 대해서 알려고 무던히 애썼다.



'생명의 빵이란 무엇일까?'


그는 그 조각들을 사람들에게 보이며 "이게 무슨 책인지... 나는 이 책이 찢어진 것을 무척 유감되게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이것은 크리스찬의 책입니다. 당신이 이것을 읽으면 해를 볼 것이요, 당신이 더럽혀지니까요. 이 책은 읽을만한 것이 못됩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곧 가서 신약전서 한 권을 사서 그것을 읽었다.


그리하여 그는 구주를 찾게 된 것이다. 실로 요한복음의 찢어진 한 조각은 "살아 있는 생명의 빵"의 한 조각이었음을 증명하였다.




우리는 보지 못하여도 믿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때 나는 인도의 고원지대를 여행하고 있었는데 잠시 쉬려고 바위에 걸터 앉으니 바위 아래에 있는 나무에 새 둥지가 있고 그 속에서 어린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어미새가 먹이를 가지고 와서 나래를 퍼덕이니 새끼들은 주둥이를 내밀고 지재거렸다.


어미새가 먹이를 준 후 날아 가 버리니 다시 조용해 졌다.



조사를 해 보니 새끼들은 아직 눈도 뜨지 않은 어린것들이었는데 용케도 어미새가 가까이 오는 것을 알고 주둥이를 내미는 것이었다.


그것이 저의 어민지, 적인지 또 가지고 온 것이 먹이인지, 독인지 알기 전까지는 입을 다문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약 그들이 그런 방법으로 행동한다면 배불리 먹고 눈을 뜨기 전에 굶어 죽었을 것이다.


그들은 어미의 사랑을 의심치 않고 어미새가 가지고 오는 것에 대해서도 믿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후면 눈이 뜨여 사랑하는 어미를 볼 수 있는 행복을 가지며 점점 강건해져서 어미새처럼 성장하여 마음껏 날아 다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조화 가운데서 최고의 피조물인 인간은 가치없다고 생각하는 이 새들보다도 못하여 천부의 존재와 사랑을 의심한대서야 되겠는가?



예수는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고 말씀하셨다.




생명과 풍부한 생명



어떤 사람이 중병에 걸려서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수족이 마비되어 독사가 가까이 와도 도망할 수가 없어 드디어는 그것에 물려 죽게 되었다.



어떤 크리스챤은 생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구원하기에는 불충분하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에게 죄로부터 벗어날(도망할) 수 있을 정도의 풍부한 생명을 주셨다.


이 생명의 공유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에게 따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영원한 생명은 이 땅 위에서 지금부터 시작된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그의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라고 하셨다.


모든 참된 크리스챤은 직접 경험과 관찰력에 의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사람들의 죽은 마음을 살리게 하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다른 종교의 경전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면 미래에 가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원의 생명을 가지지 못하면 미래에 대한 소망은 없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 있어서 천국의 영생과 같은 생명을 주시고 성령을 보내어 참신자의 마음을 낙원으로 만드신다.


주님은 진실로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며 이러한 일은 우리가 내세에 가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는 보증이 되는 것이다.




경험한 후에 이해할 수 있다.



히말라야 산중을 여행하고 있을 때, 거기는 만년의 눈으로 덮혀 모든 것이 얼어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온천마을에 온 한 나그네와 온천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그는 뜨거운 온천물을 손으로 대어보기까지는 온천이 뜨겁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 후 그는 산 속에 불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였다.



그의 두뇌는 경험을 통하여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는 온천에 대해서 비로소 경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우리는 영적경험을 가지기까지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경험은 기도를 통하여 오는 것이다.




기도는 숨은 뿌리다



어떤 사막지대에서 물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한 그루의 나무가 푸르게 자라 열매를 맺고 있었다.


까닭을 알아 보니 그 나무는 긴 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이 땅 속 깊이 숨겨있는 물줄기에까지 도달하여 있었다.



기도는 감추어진 샘인 하나님에게까지 이르는 숨은 뿌리인 것이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ㅎ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으며 열매를 맺도록 힘이 붙여진다.




죽은 교회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 나는 요단 강가에 서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물, 이 신선하고 맑은 물은 끊임없이 흘러서 사해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 바다는 언제까지나 짜기만한 죽은 상태다. 그것은 흘러들인 물을 밖으로 내쏟지 않기 때문이다."



그처럼 어떤 교회는 죽어 있다.


예수그리스도로부터 항상 새로운 물이 흘러 들어 오는데도 죽은 상태인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은 남에게 주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오직 한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주께 바치라



당신은 오직 한마음만 가지라.


만약 두마음을 가진다면 하나는 세상에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은 하나밖에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을 주님에게 바쳐야 한다.


그러면 당신은 주님을 받고 그와 함께 모든 것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그대 뿐



나의 주 되시는 하나님이시여,


나의 전부의 전부이시며 생명의 생명이시고 영의 영이신 주님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시사 성령으로 나를 충만케 하시옵소서!



그것은 내 마음은 당신을 두고 따로 다른데 바칠만한 곳이 없습니다.


나는 생명과 모든 은총을 베푸시는 주님 이외의 다른 무엇이나 또 세상의 보물도 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당신만을 요구하고 사모할 뿐입니다.


당신이 계신 곳, 그 곳이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마음의 기갈을 채워 주실 분은 이 요구를 주신 당신밖에 없습니다.



오! 나의 주님이시여!


당신은 나의 마음을 오로지 당신을 위해서만 만드셨으며 다른 것을 위해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고로 나의 마음은 당신 안에 있지 않고는 휴식이나 평안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 속에서 당신을 거역하는 것은 모두 떼어 버리고 영원히 나를 지배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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