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 13년 7월호
싱그러운 감성과 순수 서정의 조화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이번 호의 작품들은 신변의 잡사에서부터 사회성 있는 제재까지 글감의 범위가 예전에 비해 크게 확대되었고, 시적 기법, 복합구조 등 새롭고 다양한 수법을 구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다음 세 편의 수필은 평범한 소재와 참신한 형상화가 싱그러운 순수 감성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고 하겠다.
허효남의 <가르마>는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경험함으로써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한 연습의 장이 수필임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호소력이 강점이다. 작가는 도입부부터 상징계적 질서, 즉 타인의 담화, 시선으로 독자의 주의를 끌어와 상상력을 자극하고,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인생의 ‘길’을 계속 경험케 만든다. 이런 작업이 내는 효과를 위해 작가는 낯익은 시선이 내리는 해석을 어느 특정 서술에서만큼은 거부한다. ‘푸석푸석하게 윤기 없는 길도, 질곡을 그리며 구부러진 길도 한데로 모아져서야 검은 물결로 출렁인다.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유연함도 경직됨도 함께 어우러져서야 더욱 울창한 숲을 이루는 것만 같다. 언젠가 내 앞으로 다가올 길을 미용실 한켠에서 관망한 듯 다시 마음이 환해진다.’라는 진술은 수필만의 멋과 맛을 보여주는 언어예술이라고 하겠다. <발단부>에서 아주 익숙한 ‘길’을 무엇인지 잘 모르게 만들어 독자를 끌어들이고, <전개부>의 단계에서 한 단계 한 단계 호기심을 지속시키면서 끌고 나가다 마지막 단계에서 정체를 드러내는 암시적 기법을 통해 독자 스스로 작가의 의도와 주제의식을 찾아내게 만드는 전략이 돋보인다. 허효남의 <가르마>는 자매간에 일어났던 사건을 소재로 해서 깨달음을 극대화할 뿐만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송혜영의 <숭늉나무>는 작가의 사물을 보는 인간적 매력이 힘껏 빛나는 작품이다. ‘존재가 미미해 이름조차 알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애정이 샘솟았다. 거기다 이 땅에 내가 작명한 나무 하나 정도 갖고 싶은 욕심을 더했다. 그래서 여기저리 들춰보지 않고 그 낯모르는 나무를 숭늉나무라 불렀다. 하필 이름이 숭늉이 된 이유는 기름한 잎을 따거나 가지를 꺾으면 푹 끓인 숭늉냄새가 훅 끼쳐서다. 별스러운 후각이라고 갸웃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코에는 영락없는 구수한 숭늉 한 대접이다.’라는 진술은 멋도 나고 맛도 느껴진다. 이름 부여에서 존재는 가치를 갖지 않는가. 작가는 ‘바로 이거야'하면서, 이 나무를 제재로 그 상징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한 편의 작품을 구상했을 것이다. <숭늉나무>는 제재부터 ’낯설게 하기‘ 전략이 동원된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발단부, ’존재가 미미해 이름조차 알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애정이 샘솟았다‘고 하는 대목이 감동을 준다. 문장의 맛을 음미하면서 읽을 수 있는 고급 독자라면, ’숭늉나무‘ 이미지에서 앞으로 전개될 글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고, 작가는 제재의 독특함을 독자와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잘 활용하고 있다. ’나무의 등을 두드려주고 숭늉나무 닮은 사내 밥해 주러 들어간다.‘라는 여운적인 마무리도 멋진 주제의식의 상상화로 빛난다.
박래순의 <시째>도 인물수필로서 운명적인 인연을 화소로 우리들의 누선을 자극하는 감동적인 글이다. ‘하교 길에도 남의 집 심부름을 하고 오는 시째를 만나게 되면 어김없이 지게에 탔다. 싸리나무로 엮어 짠 지게 바작 사이엔 썩은 두엄 찌꺼기가 남아 있어 냄새가 났다. 시째는 그깟 냄새쯤이야 이골이 난 듯 원수 같은 제 지게 끈을 원망할 줄도 몰랐다. 지게 위에 올라앉은 내게 국어책을 읽어달라는 부탁도 했다. 언덕 아래 초가집에는 해수병을 앓고 있는 시째 아버지가 숨을 몰아쉬며 심한 기침을 토했다. 큰형과 작은형은 일찍이 돈 벌러 간다며 집을 떠났고 나는 시째의 엄마도 본 적이 없다.’유년 시절, 이런 기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시째를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병원에서 만난다. 그와의 인연을 소재로 그의 죽음을 기리는 이 수필은‘유년이 지나고 처음이자 마지막 본 시째는 지게 끝에 앉았던 나비처럼 훨훨 산 너머로 날아갔단다. 가슴에 흰 박꽃 같은 연민 하나 멍울지게 만들어놓고서. 아마도 음력 구월 이맘때가 열 번째쯤 맞이하는 시째의 기일일 것이다.’라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제재를 작품화하는 과정에서는 개성적이고, 경험적이고, 때로 심경적이기도 한 것이 문학수필인 것이다. 사건을 가지고 글을 쓴다고 할 경우, 수필은 그 사건의 결과로부터 출발하는 만큼 수필에서는 반드시 소재의 자기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른바 소재를 이해하고 해석함으로써 그를 자기 식으로 인간화하는 것이 수필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충실히 이행되고 있는 것이 <시째>라 하겠다.
이들 작가들은 서두와 결구 부분의 상징적, 암시적 처리 즉 자기화 내지는 의미화 기법에서 수필의 문학성이 드러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겠다. 세 작품 외에도 개미들의 신비스러운 행동에서 얻은 놀라움으로 수필을 쓴 송경순의 <개미와 나>, ‘탓’이라 단어의 부정적 의미를 긍정적으로 치환시킨 구금아의 <어머니의 빈 자리>, 견디는 것이 인생이라는 메시지를 사색으로 풀어낸 이화용의 <여름이 지나간 자리>도 일독을 권할 만한 작품이다. 이들 작품이 보여주는 세계는 싱그러운 감성과 순수 서정이 조화를 이룬 인정의 샘터다. 그윽한 종소리가 여는 새벽 같은 안온함의 세계다. 이들의 문학적 바탕이 견고한 만큼 이들이 보여줄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기대를 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