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눈길끄는 겨울강차 시스템[사진 출처=재규어, 지프, 현대차, 한국타이어] |
[세상만車-157] #지난 2월 17일 순천~완주고속도로 사매2터널에서는 녹은 눈으로 터널 진입부가 미끄러운 상태에서 질산 1만8000여 ℓ를 실은 24t 탱크로리 차량과 트레일러, 화물차 등 32대가 연쇄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40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지난해 12월 4일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평택방향 장안대교에서는 10중 추돌 사고가 일어났다. 트럭이 빙판길에 미끄러지면서 1∼2차로에 걸쳐 멈춰선 데 이어 뒤따르던 25t 트레일러가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트럭을 들이받았다. 이후 차량 8대가 연속으로 부딪쳤다. 이 사고로 2명이 숨졌다.
지난겨울 국내에서 연쇄추돌사고가 잇따랐다. 사고 원인으로는 블랙아이스가 지목됐다. 블랙아이스는 기온이 갑작스럽게 내려가 한번 녹았던 눈이 다시 얼면서 생긴다.
먼지가 눈과 함께 엉겨 검은색을 띠고 검은색 아스팔트 위에 얇게 형성돼 가까이 가지 않는 이상 파악하기 어렵다. 그늘진 도로, 터널 입출구, 곡선구간 등 햇빛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생긴다.
블랙아이스로 형성된 도로는 일반 도로보다 14배, 눈길보다 6배 정도 더 미끄러운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아이스는 연쇄 추돌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도로 위 암살자'라 부르는 이유다.
올겨울에는 강력한 한파로 블랙아이스 사고 위험이 더 커졌다. 사실 지난겨울 연쇄추돌 사고로 블랙아이스가 주목받았지만 평범(?)한 눈과 얼음도 조심해야 한다. 눈길이나 빙판길도 일반 노면보다 4~8배 더 미끄럽기 때문이다.
"겨울을 세 번은 나야 초보(운전자) 딱지를 뗀다"는 말이 있는 것도 눈과 얼음 때문이다. 자동차는 운전자의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 '달리는 흉기'가 된다. 눈과 얼음은 운전자가 차를 통제를 못 하도록 훼방을 놓는다.
겨울에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사진 출처=브리지스톤타이어] |
겨울철 운전 철학 '유능제강'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유능제강(柔能制剛)'처럼 겨울철 운전에 어울리는 말은 없다. 겨울에는 부드러운 운전이 생명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차량이 눈길이나 빙판길에 미끄러져 발생하는 사고를 피하려면 급가속이나 급제동은 피해야 한다. 출발 및 운행 중 가속이나 감속도 천천히 해야 한다.
교통안전공단 산하 자동차안전연구원이 빙판길 운전실험을 실시한 결과, 차량이 시속 40㎞ 이상으로 달릴 경우 곡선 구간에서 뒷바퀴가 미끄러지고 차량을 제어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왔다. 따라서 빙판길이나 눈길에서는 시속 40㎞ 이하로 서행해야 한다.
또 바퀴자국이 있는 눈길에서는 핸들을 놓치지 않도록 꽉 쥐어야 하고, 언덕길에서는 미리 저속으로 기어를 변속해야 한다. 내리막길에서는 엔진브레이크를 사용해야 한다.
제동을 할 경우 거리를 충분히 유지해 여유 있게 멈춰야 하며 브레이크를 갑자기 세게 밟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타이어 공기압을 평소보다 낮춰 주행하는 것은 금물이다. 트레드 마모한계선(트레드 깊이 1.6㎜)이 넘은 타이어는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므로 교환하거나 눈길 혹은 빙판길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타이어 공기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적으로 감소하게 되는데 특히 겨울철에는 수축 현상으로 더욱 빨리 감소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기적으로 점검해 조정해줘야 한다.
아울러 겨울철에는 온도 차가 심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기 때문에 마모가 심해지므로 타이어 공기압을 자주 확인해야 한다.
겨울강차 필수조건 '4륜구동'
겨울에는 앞차와 거리를 두고 급출발, 급가속, 급제동, 급회전 등을 하지 않고 천천히 부드럽게 주행해야 한다.
그러나 블랙아이스처럼 갑자기 나타난 운전 복병이나 운전자의 실수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럴 때는 안전운전을 지원할 장치들이 필요하다.
자동차회사들은 이에 운전자가 겨울을 안전하게 날 수 있는 '겨울강차(强車)' 시스템 개발에 공을 들였다. 4륜구동, 지형 관리 시스템, 내리막·오르막길 주행 장치, 겨울용 타이어 등이다.
겨울강차를 대표하는 자동차 시스템은 4륜구동이다. 엔진에서 나오는 동력을 앞바퀴(전륜)나 뒷바퀴(후륜)에 전달하는 2륜구동과 달리 앞뒤 바퀴에 모두 전달한다. 4륜구동은 앞에서 끌거나 뒤에서 미는 2륜구동과 달리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기 때문에 안정적이다.
곡선 구간에서도 동력을 네 바퀴에 적절히 배분해 도로에서 미끄러지거나 벗어나려는 현상을 줄일 수 있다. 4륜구동은 2륜구동보다 눈길에 강하다. 차체가 미끄러지는 현상을 줄여주고 안정적으로 주행할 수 있게 도와준다.
4륜구동과 '찰떡궁합' 시스템
4륜구동은 겨울에 빛나지만 진정한 겨울강차가 되기에는 지원 세력이 있어야 한다. 전자식 주행안정 프로그램(ESP)은 4륜구동과 찰떡궁합이다.
자동차 첨단제동장치의 대명사로 장착이 확산되고 있는 차체자세제어장치다. 브랜드에 따라 VDC, DSC, VSC 등으로 달리 부르기도 한다.
ESP는 차체가 가속 제동 코너링 등 주행 상황에 따라 한쪽으로 쏠리거나 미끄러지거나 전복할 위험에 처했을 때 브레이크 압력과 엔진 출력을 제어해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언덕길 미끄럼 방지 장치도 겨울강차에는 필수 시스템이다. 눈이나 얼음 때문에 미끄러운 오르막길이나 내리막길은 공포의 대상이다. 자동차회사들은 오르막길에서 뒤로 밀리지 않고 내려갈 때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만드는 장치를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내리막길 자동주행 안정장치(HDC)는 랜드로버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이다. 미끄러운 언덕을 내려올 때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아도 자동으로 속도를 줄여준다.
오르막길 주행 보조장치(HSC)는 브레이크 압력을 자동으로 조절해 안정적이고 부드럽게 달릴 수 있게 해준다. 경사로 브레이크 제어장치(GRC)는 운전자가 가파른 경사로에서 브레이크에서 발을 뗄 때 차량이 급가속되는 것을 방지해준다.
지형 관리 시스템도 겨울에 더 빛난다. 운전자가 도로 상태에 따라 차 특성을 바꿀 수 있는 지형 관리 시스템에는 '눈길 탈출' 모드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지프 셀렉터 레인 시스템은 샌드·머드 모드, 스포츠 모드, 오토 모드, 스노 모드, 록(Rock) 모드로 구성됐다. 혼다도 일반 도로, 눈길, 진흙길, 모랫길 등 노면 상태에 따라 차 특성을 바꿔주는 인텔리전트 트랙션 관리 시스템을 채택했다.
랜드로버도 눈길, 모래, 진흙, 바위 등 5가지 주행 모드로 구성한 전자동 지형 관리 시스템을 달았다. 재규어는 기본, 에코, 다이내믹, 윈터 모드로 이뤄진 드라이브 컨트롤 시스템을 장착했다.
포드 익스플로러에 장착된 지형 관리 시스템도 노멀, 스포츠, 트레일, 미끄러운 길, 에코, 깊은 눈/모래, 견인/끌기 등으로 구성됐다.
현대차 팰리세이드도 스노, 머드, 샌드 3가지 모드로 구성된 지형 맞춤형 드라이빙 시스템을 채택했다.
현대차 소형 SUV인 신형 코나는 4륜구동이 아니지만 눈길, 진흙길, 모랫길 등 험로상황에서 주행안전성을 높여주는 '2WD 험로 주행 모드'를 기본 적용했다. 오프로드와 겨울에 강한 4WD SUV만큼은 아니지만 '버금'가는 수준의 험로 주행 성능을 발휘한다.
겨울용 타이어와 사계절용 타이어 제동거리 비교 [자료 출처=한국타이어] |
겨울용 타이어도 '이름값' 한다
겨울에는 겨울용 타이어를 장착하면 사고를 줄일 수 있다. 겨울용 타이어라 부르는 스노타이어는 일반타이어보다 천연고무와 실리카 사용 비율이 높아 타이어가 더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다.
고무가 부드러울수록 타이어가 노면을 움켜잡는 효과가 커지고 제동거리도 줄여줘 눈길 추돌사고를 예방해준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테스트 결과에 따르면 눈길에서 시속 40㎞로 달리다 제동할 경우 겨울용 타이어는 제동거리가 18.49m에 불과한 반면 사계절용 타이어는 37.84m에 달했다. 빙판길 테스트(시속 20㎞에서 제동)에서도 겨울용 타이어는 사계절 타이어 대비 약 14% 짧은 제동 거리를 기록했다.
겨울용 타이어는 4바퀴 모두를 교체해줘야 효과를 제대로 발휘한다. 앞바퀴 두 개만 겨울용 타이어로 교체하면 앞바퀴의 접지력은 증가되는 반면, 뒷바퀴의 접지력은 낮은 상태가 돼 급격한 코너링 때 차선을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
겨울용 타이어는 눈이 올 때만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눈이 있건 없건 영하의 겨울 날씨로 접지력이 떨어질 때도 제 구실을 톡톡히 한다. 겨울용 타이어를 장착했다면 적어도 꽃샘추위가 있는 3월 초까지 장착해 두는 게 낫다.
스노체인도 겨울철 안전을 책임진다. 스노체인은 자주 사용하는 용품이 아니기에 사용법을 잘 모르는 운전자들이 많다. 제품별로 장착법도 다르다. 구입한 다음 눈이 오지 않더라도 사용법을 익혀둬야 제때 제대로 쓸 수 있다.
스노체인을 장착하면 눈이 30㎝ 정도 쌓여도 주행할 수 있으나 과속은 절대 금물이다. 또 도로가 얼었다면 스노체인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빙판길에서는 스노체인이 오히려 스케이트 날과 같은 역할을 해 더 미끄러질 수 있다.
눈이 많이 내리지 않을 때는 스노체인 대신 스프레이 체인을 뿌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스프레이 체인은 시속 40~50㎞로 달릴 때 20분 정도 미끄럼 방지 효과를 발휘한다. 대신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가 떨어진다.
따라서 비상용으로 구비한 뒤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거나 눈 쌓인 주차장을 빠져나올 때 잠시 사용하는 게 좋다. 가격은 5000원 안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