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2] 최봉춘(崔奉春) - 일본 개척의 감회 4. 도망가는 길밖에 없다 - 3
17 이제 뭔가 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수는 나를 입원시켰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자유의 몸은 아니지만 병원은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기 때문이다.
18 자동차 안에서도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으니 간수가 보고 “아! 청년 염려하지 마 죽지 않으니까, 병원에 가서 치료하면 다 나을 수 있어” 하였지만 내가 좋아서 울고 있는 줄 그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19 병원에서도 자기들의 책임이 있으니까 전문 의사가 정밀검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심장은 조금도 나쁘지 않으니까 돌아가라고 했다.
20 나의 입장을 자세히 그 의사에게 고백했다. “나는 돌아가서는 안 돼요. 나는 목사로서 일본교회와 문화시찰을 왔어요. 정식 길이 없어서 밀선을 타고 왔지만 3개월간만 있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고. 그러자 의사는 3개월간 입원하라는 진단서를 떼주었다.
21 이제 빨리 도망가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4월의 어느 토요일 어두워지는 틈을 타서 병원에서 도망을 했다. 기차를 타고 동경을 향해 갔지만 너무나 흥분하고 있었다.
22 열차 속에서 창밖을 보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선생님, 저는 이제 동경 갑니다. 아버지 염려 마시고 기대하시고 보호해 주세요. 동경에 가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하고 기도하고 다짐했다.
23 나는 형무소 생활을 하면서 영어와 역사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따금씩 한국에 있는 3위기대 전경선씨와 송도빈(宋道彬) 씨 등으로부터 편지가 와서 조국의 소식을 알 수 있었다.
24 선생님 39주년 탄신행사일에는 고국 식구와 함께 금식에도 동참했다. 또 기회가 있는 대로 전도하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원리를 번역하는 생활을 했다. |